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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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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축복
로마서 11:33~3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로마서의 내용을 크게 나누면 두 부분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먼저 1장에서 11장까지는 주로 교리적인 면을 다루고 있습니다.
12장에서 16장까지는 이 교리에 입각한 그리스도인의 실제 생활 면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전개 방식은 사도 바울이 쓴 대개의 편지 내용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골로새서, 갈라디아서, 데살로니가전후서 같은 것이 다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교리부분의 끝으로 송영이라고 볼 수가 있는데 하나님의 신비로운 주권에 대해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섭리에서 하나님은 사람이 도저히 추측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깊은 면에서 경영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근본이요, 방법이요, 또한 목적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간의 한정된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보다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더 많이 있습니다.
개인도 그렇고 나라도 그렇습니다.
창세기의 마지막 인물 요셉을 보십시오.
누가 그의 일생을 예측할 수 있었습니까?
요셉은 다른 형들이 시기할 정도로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으며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요셉을 사랑하셔서 그에게 놀라운 꿈을 주셨으며, 그 또한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소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열일곱 살 난 어린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사서 형들이 그를 죽이려고 붙잡아 마른 웅덩이에 집어넣었습니다.
요셉은 웅덩이 속에서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때 마침 애굽으로 가는 대상이 그 앞을 지나 갑니다.
이에 형제 중 한 사람이 말합니다.
“요셉을 말라 죽게 할 필요 없이 애굽에 종으로 팔아버리자. 그러면 돈도 생기고 우리 눈앞에서 사라지게 되어 괜찮치 않겠느냐”
이 의견을 받아들여 형제들은 요셉을 애굽 가는 대상에게 돈 얼마를 받고 팔아 버렸습니다.
요셉은 소년의 몸으로 부모를 떠나 타국에, 그것도 노예의 신세로 팔려 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지낼 때 요셉이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게 될 것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요셉은 애굽 왕 바로의 경호실장인 보디발 장군의 집에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그 집에서 종살이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도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요셉은 종으로 있으면서도 그 주인에게 충성했습니다.
주인의 마음에 꼭 들게 일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요셉이 그 집에 온 이래 하나님께서 그 집에 복을 주셨습니다.

이에 보디발 장군은 요셉을 전적으로 신임하게 되었고 성경의 기록대로 하면 그의 아내 외에는 요셉에게 다 맡겨 총무의 일을 보게 했습니다.
그런데 주인의 아내가 요셉을 끈질기게 유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을 삶의 철학으로 삼고 있는 요셉은 그 무서운 자리를 피했고, 그 때문에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참으로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한 마디 변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부모 밑에서 곱게 자랐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았는데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할 줄 상상이나 했었습니까?
요셉은 무려 13년 간이나 고생에 고생을 더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30살 난 청년의 몸으로, 세계를 지배하던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이것도 생각이나 했고 기대했었던 일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당하는 일은 우리가 다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부요하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사람을 결국은 유익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한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일본 제국주의 지배하에서 해방이 되고 자유 독립할 수 있으리라고 누가 예측이나 했었습니까?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 동안 우리나라가 자유민주주의 대신 소위 한국적 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 유신 체제로 한 사람이 영구 집권할 수 있는 모든 기반을 다 잡고 있을 때 누가 감히 손댈 수 있었습니까?
그러나 그가 안전한 것을 보장하는, 소위 안가(安家)에서 모임을 갖다가 가장 믿던 사람 중에 한 사람의 손에 의해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군인들이 계속 정권의 야욕을 가지고 못할 짓을 해 가면서 소위 군사 독재를 자행해 왔으나 하나님은 조용히 역사의 방향을 바꿔 놓았습니다.
우리 가운데 이 나라의 군사 독재가 끝날 것을 누가 생각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여기서 롱펠로우의 아름다운 싯구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연자 맷돌은 매우 천천히 돌아갑니다. 그러나 몹시 보드랍게 갑니다.”

그렇습니다.
때로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하고 안타깝고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졸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셔서 역사하십니다.
우리의 지혜와 지식과 판단으로는 도저히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이에 시편 기자는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사람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찬송의 소리를 발하며 저희를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 42:2~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 속에서 지나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신비의 골자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지방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귀신들려 점치는 여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귀신의 힘으로 점을 치는데 그 마음이 너무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불쌍한 생각이 들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귀신을 내어쫓았습니다.
그랬더니 이 여자가 정신이 온전해진 대신 점을 칠 수 없으니까 여기서 수입을 얻던 주인이 시 당국에 고발해서 바울과 실라가 억울하게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노릇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때 바울이 자신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거나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권능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밤중에 캄캄한 데서 하나님께 찬미하고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어두울 때 감사했습니다.
이유를 모르고 찬미했습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사랑과 그의 권능을 믿고 감사하며 찬송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바울을 가두고 있던 감옥에 지진이 일어나고, 옥문이 열리고, 고랑이 풀리고, 그 감옥을 지키던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 믿어 구원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과 실라가 이렇게 될 것을 기대하기나 했었습니까?
다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우리 교회가 서는 것을 방해하는 세력도 여러 가지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지켜 주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를 오라 하시는 주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셔서 위로하셨고, 격려하셨고, 새로운 소망과 능력을 주셨습니다.
시편의 말씀대로 저가 내 모든 죄악을 사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우리 소원을 만족케하사 우리 청춘으로 독수리처럼 새롭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모든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우리 주님께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까지 여러 방면으로 꾸준하게 축복해 주신 하나님께 우리는 무엇으로 보답하겠습니까?
우리는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무엇으로 보답할꼬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에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에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아프리카에서 평생을 선교한 리빙스턴이 죽기 며칠 전에 남긴 일기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었습니다.
“오, 내 하나님이여, 나는 오늘 아침 새롭게 또 온전히 내 몸을 주님께 다시 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온 성도들도 이 주일에 새롭게 온전히 우리의 몸을 다시 드리는 거룩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찌 몸뿐이겠습니까?
자식도 여호와께서 주신 기업이요, 재산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몸에 있는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리십시다.
우리의 자녀도, 우리의 재물도 드리십시다.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봉사합시다.
모든 성도가 성령 충만해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우리 마음이 새로워져 하나님의 뜻 깨달아 우리 몸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려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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