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 설교자료실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Home > 설교자료실 > 설교자료실
설교자료실
설교자료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본문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이사야 41:1~1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두려움’이라고 하는 것은 현대인의 당면한 공통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믿는 성도들을 향하여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이에 대하여 오늘 성경은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라.”(사 43: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두려워하는 마음은 본래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본능 가운데 하나입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은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고 유익하게 하기 위하여 주신 감정입니다.
두려워하는 감정이 있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높은 곳에 올라가면 두려운 생각이 듭니다.
깊은 곳을 내려다만 보아도 두렵습니다.
어두운 밤길을 혼자 걸을 때도 두렵고, 외딴 곳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도 두려운 생각에 조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두려워하는 마음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더구나 우리의 생명을 보호하는데 있어 퍽 유익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타락한 다음부터는 본래 인간에게 유익을 주던 이 본능이 그 도가 넘고 변질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땅히 두려워할 것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을 두려워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두려워하는 마음은 보통 사람의 경우에서는 생명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보다는 오히려 인간 생활에 해를 끼치는 감정적 요소로 전락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것은 심리적인 면이나 육체적인 면에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마음에 두려움이 있으면 볼 것도 바로 보지 못하고, 듣는 것도 바로 듣지 못하고, 말할 것도 바로 말하지 못하고 말하자면 그 심리 상태가 마비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가 심하게 되면 정신 이상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처럼 두려워하는 마음은 우리 육신의 건강에도 얼마나 큰 지장을 주는지 모릅니다.
우리 몸에 생기는 병이 꼭 병균에 의해서만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부상을 해서만 병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심리적인 관계로 인해서 오는 소위 기능적 질병이라는 게 있습니다.
신경 계통의 병, 소화기 계통의 병, 심장병 같은 것은 대개 두려워하는 마음이 쌓여서 오랫동안 근심과 염려로 세월을 보내다 보면 이런 병이 우리 몸에 자연히 생기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근심과 걱정, 염려와 두려움에 쌓여서 얼마동안을 지나게 되면 그 사람의 심령이 쇠약해지고 마지막에는 예민해지고 정말 심해지면 히스테리 같은 상태로 돼 버리고 맙니다.
결국 이렇게 사람이 두려운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면 그 심리 상태와 육체까지도 점점 마비가 되어서 온전한 생활을 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줄을 타는 사람이 높이 매어 있는 줄을 타다가 아래를 내려다 보면 두려운 마음이 생기게 되면 그 순간 줄에서 떨어지고 만다고 합니다.
전쟁터에 나가서 싸우는 군인이 두려운 마음이 생기면 그 싸움에 지고 만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군인에게 있어서 두려운 마음은 금물입니다.
학생이 시험을 칠 때 두려운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면 평소에 닦은 자기의 실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인간 생활에 있어서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에 미치는 해독이 얼마나 큰지 말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 가운데 자기가 맡은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던 종의 이야기를 기억하십니까?
왜 이 종은 주인에게서 받은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을까요?
여러 가지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 큰 이유는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가 주인에게 말합니다.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입니다”

이 종은 두려움 때문에 장사를 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도 두려운 마음 때문에 무익한 종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두려움의 정복’이란 책에서 바실 킹은 “두려움은 인생의 죄와 고통을 유발시키기보다는 인생을 불행한 자리로 빠지게 한다”고 했습니다.

한번은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작은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폭풍이 몰아치고 파도가 높게 이는데 그 세찬 물결은 배를 삼킬 것만 같았습니다.
그 배는 폭풍과 대항할 만큼 큰배도 아니었습니다.
물론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는 갈릴리 바다에서 어부 생활하던 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배를 젓는 것은 그렇게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폭풍을 이겨내기에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역량에 비해서 폭풍이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 폭풍 때문에 배가 침몰될 것 같아 그들은 두려워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마주쳐야 하는 일들이 우리의 능력과 비교가 되지 않음을 느낄 때 자연히 두려운 생각이 들기 마련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두려워 떨면서 “선생님,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아보시지 아니하시나이까?”라고 주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주무시다가 일어나셔서 “어찌하여 너희는 믿음이 없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폭풍이 몰아치는 가운데서도 예수님은 어떻게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까?
예수님에게는 그 폭풍을 진정시킬 수 있는 능력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성경에 보면 ‘두려워 말라’는 말씀이 거듭거듭 나옵니다.
이것은 우연이겠지만 성경에 ‘두려워 말라’는 말씀이 정확하게 365번 나옵니다.
매일 성경을 읽다 보면 하루에 한번 꼴로 ‘두려워 말라’는 말씀을 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다시 생각하면 우리의 삶에서 우리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다는 말도 됩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는 두려움의 존재를 부인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 다음부터는 애써 두려움의 존재를 부정하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두려움에 대한 오직 한 가지 치료약은 믿음입니다.
우리에게 믿음만 있으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게 됩니다.
사실 두려워한다는 것은 우리의 약점도 아닙니다.
두려움을 인식한다는 것은 믿음의 표시일 뿐 아니라 용기와 확신의 표시이기도 합니다.
두려움에 직면하여 문제를 다루게 되는 시점에 이르면 이미 오랜 신앙 생활에서 성숙해졌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운 상황에 직면하면 두려움을 시인해야 합니다.
마음 속으로나마 우리는 두려움에 겁을 내고 있다는 사실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두려움을 인정하는 그 자체에 이미 승리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자기확신을 향한 강한 발걸음입니다.
아무도 우리 대신 우리의 두려움을 없애 줄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자신 또한 우리의 힘으로 이 문제를 처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병에 걸리면 ‘병에서 죽음으로’ 연결될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한편 우리가 두려움을 받아들이면 이것을 처리해야 합니다.
물론 두려움을 받아들이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매우 고통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두려움을 처리하려면 그 정체가 무엇인가를 분명히 확인해야 합니다.
먼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두 가지를 제외한 모든 두려움은 후천적이라는 것입니다.
두 가지 자연적인 두려움은 높은 데서 떨어질 것 같은 두려움과 갑자기 ‘쾅’하고 나는 큰 소리에 놀라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 밖의 모든 두려움은 우리가 살면서 얻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두려움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이 없나 하면서 고민하는 것보다 신앙을 튼튼히 하여 두려움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이를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더욱 현명한 일입니다.
두려움은 모든 인간의 삶에서 건설적이며 적극적이고 또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두려움은 우리의 안정과 이익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감정입니다.
우리가 암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암에 관한 연구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일단 두려움을 인정하면 이에 대처해 나가는 방법을 연구하게 됩니다.

두려움이 없으면 신앙도 없습니다.
두려움은 모든 위인의 삶에 좋은 자극제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두려움은 실패가 아닙니다. 두려움은 우리의 약점도 아닙니다. 두려움은 파괴적인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두려움을 수치스럽게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두려움은 신앙을 자극합니다.
두려움은 우리가 열심을 내도록 고무하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지혜로 가는 관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움을 겁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번에 하루씩 살아가면 됩니다. 그날 그날에 충실해야 합니다.
어제의 실패에 집착할 필요가 없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조장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떠한 사태가 일어난다고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우리 자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남을 위해 봉사하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두려운 마음이 들 때 자신에 집착하지 마시고 여러분이 좋아하는 사람 또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선물을 사서 그에게 보내 보십시오.
이러한 사소한 행위가 여러분에게 생각 밖의 놀라운 변화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래를 보지말고 위를 보십시오. 뒤를 보지말고 앞을 내다보십시오.
안을 보지말고 밖을 보십시오.
어디 도움을 줄 곳이 없는지 찾아보십시오.
두려움이 닥칠 때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모든 두려움에서 해방시켜 주신다고 언약하시지는 않았지만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는 굳은 언약이 있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오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하나님의 약속을 분명히 믿고 두려워하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게 세상을 이기며 사는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객센터 개인정보취급방침 서비스이용약관 기독정보넷공식트위터 Copyright © cjob.co.kr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