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로 오는 자를 괴롭게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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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5-31 19:01:01 read : 1087
사도행전 15:12-21
요즘 항상 뉴스시간마다 보도된 내용가운데 우리를 답답하게 한 것이 바로 "의료대란"이라고 일컬어지는 의사들의 파업문제였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도 의사도 있고 약사도 있고 하니 말하기가 조심스럽습니다만 이쪽 얘기와 저쪽 얘기가 다르니 어느 쪽이 진실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의약분업이 너무 빠르지 않느냐는 얘기도 들리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지금의 내 직업이 의사냐 약사냐는 접어두고 어떤 것이 국민건강을 위해 바람직하냐 하는 관점에서 결정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개인의 권리와 의견이 존중되는 사회가 좋은 사회이긴 하지만 자칫 지나치면 집단 이기주의에 빠져버릴 위험도 있습니다.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미묘한 문제로 대립될때는 두가지가 필요한데 하나는 양측이 모두 수긍할 수 있는 중도적인 '안(案)'이 있어야 합니다. 정치건 신학이건 사회적인 문제건 진보와 보수의 대립은 언제나 있을 수있는데 문제가 생겼을 때 이쪽도- 그게 좋겠네 저쪽도- 그게 좋겠네 할 수 있는 중도적인 안이 있을 때 새로운 질서와 발전이 있게 됩니다. 다른 하나는 지도자다운 지도자가 있어야 합니다. 이쪽도 저쪽도 다 신임할 수 있는 지도자, 아무에게도 치우치지 않고, 누구나 존경하고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가 있어야 합니다. 사회에 복잡한 일이 많이 생길때일수록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흔히 원로라고 하지요. 교회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이런 저런 문제로 시끄러울 때 원로지도자가 나서서 한마디 하면 다 따라올 수 있는 지도자. 이런 지도자가 있으면 됩니다. 조금 있다가 말씀드리겠지만 예루살렘 교회는 바로 이런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반복되는 말씀이지만 초대교회는 박해보다도 더 힘들고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은혜로 얻어지는 것이냐?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도 해야 하지만 동시에 모세의 율법도 지키고 할례도 받아야 하는 것이냐 하는 문제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이제껏 율법도 지키고 할례도 받아왔던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으면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지? 어떤 것은 바꾸고 어떤 것을 지켜내야 하는지를 분별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처음 기독교가 들어왔을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것을 잘못 분별하면 공연히 지켜도 좋은 문화가 한순간에 우상이 되어버리지요. 그래서 신학에서도 '토착화'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기독교는 서양의 문화적 배경을 깔고있는 서양기독교 그대로가 아니라 신앙의 본질을 변하지 않더라도 우리 문화에 적합하게 토착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가 입는 가운같은 것도 처음보다 많이 모양이 변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이것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어떻든 유대적 배경을 가지고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이 예수 믿으면서 유대종교의 율법과 할례, 전통을 어디까지 지켜야 하느냐 하는 문제는 쉽게 정리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가 드디어 문제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와 장로들이 이 문제를 가지고 처음으로 회의를 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베드로가 자신의 체험을 통해 율법이나 할례와 관계없이 이방인들에게도 유대인들과 동일한 성령께서 역사하셨음을 증거합니다. 이제 이 문제에 대해서 예루살렘 교회의 대표적인 지도자 야고보가 문제해결의 방안을 제시하고 결론을 내립니다.
1. 야고보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야고보는 예수의 동생입니다. 친동생입니다. 캐도릭은 야고보가 예수님의 친동생임을 부인합니다. 이유는, 마리아는 예수님 하나만 낳은 동정녀 였음을 주장하기위해서입니다. 캐도릭에서 성모 마리아에 대한 숭배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강한 이유가 있지요. 그러나 많은 성서학자들은 야고보는 예수님의 친동생임을 확실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열두제자들도 예수님과 3년 밖에 같이 있지 않았지만 야고보는 30년을 같이 있었으니 예수님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야고보는 예수님에 대해 가장 잘 알고 깊이 알았기에 예수를 믿는 모든 성도들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사도가 아니었으면서도 사도이상으로 존경 받는 사람이 야고보였습니다.
야고보는 철저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매사에 철저했습니다. 율법지키는 데에도 철저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의 율법지키는데에 철저했던 유대주의자들로부터도 신뢰를 받았습니다. 그뿐아니라 기도하는데에도 철저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야고보의 무릎은 낙타무릎과 같았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기도를 오래해서 무릎에 굳은 살이 박혀서 마치 낙타무릎같았다는 말입니다. 매사에 철저하게 기도하며 주님 중심,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고 따라서 자신은 검소하게 살며 남을 구제하는 일에도 열심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상상이 되십니까? 늘 기도하며 생활 속에 먹고 입는 것 별로 신경쓰지 않고 검소하게 살면서 남을 돕기를 즐겨하면서 사랑과 은혜 속에 살았던 지도자.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의 감독을 30년이나 지냈고 전설대로 순교한 사람이었습니다. 신약성경의 야고보서를 쓴 사람도 바로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로 알려져 있습니다.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하면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주장합니다. 믿음대로 실천하며 살았던 참된 지도자였습니다. 그렇니까 신뢰를 받게 되는 것 아닙니까?
13절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가라사대" 야고보는 다른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인내의 사람이요, 사람을 인정할 줄 아는 아량이 넓은 지도자였습니다. 남의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었습니다. 베드로의 얘기도 들어 주었고 바나바와 바울 얘기도 들어주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자기 얘기를 다 들어 주는 사람을 신뢰하게 됩니다. 많은 지도자들이 아랫사람 얘기를 끝까지 잘 듣지 않습니다. 남의 얘기를 듣는 다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를 이해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주지 않습니까?
이러한 야고보가 지녔던 지도자로서의 훌륭한 자격은 유대주의자 기독교인과 이방인 기독교인간에 발생한 구원문제에 대해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결론을 맺게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무엇을 느끼십니까? 지도자는 평소에 주위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의 공동체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할지라도 타격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야고보는 이 문제를 어떤 과정과 방법으로 해결했습니까?
2. 야고보의 해결 과정과 방법(제안)
(1) 먼저 문제를 가져온 바나바와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12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이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 고하는 것을 듣더니"
바나바와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죽도록 돌까지 맞으면서 복음을 전하여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와 구원받게 했는데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를 모여있던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고했습니다. 중요하게 보아야 할 두 단어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셨습니다. 앉은뱅이도 고치셨습니다. 병자도 낫게 하셨습니다. 귀신도 쫓아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행하셨습니다. 또 하나 "자기들로 말미암아" '말미암아'라는 영어로 through ∼을 통하여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바울과 바나바를 통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쓰셔서 많은 표적과 기사를 행하셨다는 말씀입니다.
12절에서 우리는 두가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은 유대인의 하나님만이 아니요 모든 열방,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선민으로 택하신 유대인, 율법을 지키고 전통을 지켜왔던 유대인들만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세계모든 민족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모든 민족/이방인의 하나님이기도 합니다. 또 하나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위하여 사람을 택하시고 그 사람을 통해 일하시고 그 사람을 통해 영광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내가 네게 복을 주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신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자신만 복받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복을 나누어 주는 근원의 사명을 다해야 한다는 말씀아닙니까?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실 때 모세를 쓰셨고, 여리고성을 무너뜨리실때는 여호수아를 도구로 쓰셨고, 바알숭배자와싸울때는 엘리야를 도구로 쓰셨습니다.
여러분. 도구는 도구일뿐 영광은 하나님께서 받으셔야 합니다.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 생각해야 할 영적교훈 - 하나님께서 우리를 쓰시면, 나를 쓰시면 나를 통해서도 엄청난 역사가 나타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영광은 누구에게? 하나님께 돌려야 함을 깊이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2) 야고보는 베드로의 경험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14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저희를 권고(眷顧)하신 것을 시므온이 고하였으니"
여기서 시므온이란 시몬 베드로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통하여 이방인들 가운데 고넬료를 희생시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셨음을 상기시킵니다. 고넬료는 로마 군인으로서 하나님에 대하여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도 율법에 대하여도 전혀 아는바 없어 다만 경건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찾던 사람인데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통하여 복음을 듣게 하셨습니다. 고넬료와 베드로가 기도하다가 환상중에 하나님의 지시대로 만났습니다. 지시대로 베드로가 복음을 고넬료에게 전했고 성령께서 고넬료를 변화시키셨던 사실을 야고보는 다시 말하고 있습니다.
14절의 백성은 희랍어로 '라오스(λαοσ)'인데 이제까지는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만 사용되었었는데 여기서는 이방인을 가리키는 말로 이제부터 '라오스'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함께 포함하게 됩니다. '권고하다'는 희랍어로 '에피스케토마이(επισκετομαι) 로 '방문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직접 방문하셨다는 뜻이 권고하셨다는 의미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인을 직접 방문하실 때 구원받는 변화가 나타났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이방인을 구원하시려고 방문하셔서 변화시키셨는데 사람이 무슨 이의를 제기할 것이 있느냐?는 의미입니다.
(3) 야고보는 구약의 예언을 통하여도 설명합니다.
"16이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帳幕)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頹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야고보는 정통유대인으로 성경에 대해서도 해박한 성경학자였습니다. 16절은 15절에서 이야기하는 예언자들의 예언내용으로 아모스9:10-12의 70인역 성경의내용입니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성경은 히브리 성경 마소라 본문의 번역이고 70인역은 희랍어로 번역된 성경입니다) 무너진 다윗의 집을 하나님께서 다시 세우시겠다는 것으로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땅에 오심으로 다윗혈통을 통하여 하나님 왕국이 이땅에 다시 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교회를 통해 퇴락한 것이 다시 서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17절은 유대인가운데 남은 사람들이 주를 찾게 될 것이고 또한 이방인들 가운데라도 내 백성이라는 이름을 받은 사람은 - 주님을 찾게 하겠다 하셨습니다. 주님을 찾기만 하면 - 주님을 부르기만 하면 그들이 엄격한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구원을 주겠다는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10:13)
피흘려 구원받는 것 아닙니다. 땀흘려 구원받는 것 아닙니다. 눈물흘려 구원받는 것 아닙니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예수가 주님이시라 고백하기만 하면 구원받습니다. 야고보는 구약의 예언을 통하여 이미 이방인도 구원받게 될 것이 예언되었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여기에서 일방적으로 유대인들의 주장을 물리치지는 않았습니다. 이방인가운데 성령받고 구원받은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율법을 지키고 할례는 받지 아니할지라도 몇가지는 지키라고 권면합니다.
(4) 야고보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지킬 것을 요구한 몇가지
왜 지켜야 한다고했습니까? 21절을 봅니다.
"21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니라 하더라"
이방인들 가운데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안식일에 회당에서 읽은 내용을 통해 알터이니 그 정도는 지키라고 권면하여 유대주의자들의 입장을 고려합니다. 참으로절묘한 절충입니다. 그러면 이방인들이라도 지켜야 할 것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20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니"
1.우상에게 바친 더러운 음식을 멀리 하라는 것입니다.
우상이 제물을 먹습니까? 예수 믿기전 어릴 때 조상들에게 제사드릴 때 때로 밥에다, 평소 즐겨드시던 음식에도 수저를 놓고 잠간 밖으로 나갔다오지요? 왜? 좀 드시라구요. 후손의 정성과 사랑은 나무랄 것이 없지만은 나갔다와도 한 숫가락, 한젓가락 잡수신 것이 없어요. 누가 먹습니까? 가족들이 쌀밥 구경이 힘들던 때라 그래도 제삿날이 기다려지지 않았습니까? 제물은 사람이 먹게 되어있습니다.
우상에게 드려졌던 제물은 당시에는 제사드리는 자리에서 소비되기도 했고 시장에서 다른 고기와 함께 팔기도 했습니다. 야고보는 이런 고기를, 제물을 먹지 않도록 요청했습니다. 먹으면 우상제사에 동참했다는 오해도 받게 됩니다. 그러니 우상제물에 대해서는 손대지 말라(물론 먹지 말아야 지요) 는 것입니다.
2. 음행을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음행에 대한 얘기는 학자들마다 다양합니다.(Beza : 우상숭배, 영적간음, lightfort : 근친결혼, calvin : 축첩행위, Teller : 이교도와 결혼)그 가운데 Heirichs라는 학자의 설명입니다. 이교신전에서 행해지던 신전창기와의 음행을 뜻합니다. 다이아나 신전 같은 곳에서는 3천명이나 되는 창기가 있어서 제사 지내고 그 창기들과 성적관계를 갖습니다. 절대로 정상적 결혼관계 이외의 모든 성적 관계는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3.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라는 것입니다.
목매어 죽인 것 - 아직 피가 남아 있는 고기와 피 -그냥 피 뿐만 아니라 고기에 남아 있는 피도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참으로 철저했습니다. 짐작입니다만 목매어 죽을 때 받는 스트레스 때문에 독이 생긴답니다. 피 잘못 먹으면 그 동물이 가지고 있는 병균을 그대로 받아 치명적 위험이 올 수도 있다고하지요? 중요한 것은 야고보가 금한 서너가지 조건은 구원과 관계되는 - 믿음의 본질과관계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성도로서 세상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위한 조건일 뿐입니다.
3. 하나님께로 오는 자를 괴롭게 말라
마지막 한 절 다루지 않은 것이 있지요? 몇절입니까? 19절 "19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
장로님들과 서울 어느 장로교를 방문했을때의 일입니다. 안내하시던 장로님께서 교회 본 예배실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에게 결혼식하는 장소로 빌려준다고 하자 우리 교회 어느 장로님께서 '담배 피우면 어떻게 하느냐?' 거룩한 성전에서 담배 피운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 아닙니까? 그랫더니 '담배피우다가도 예수만 믿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예수만 믿게 된다면야 담배 한번 피운들 어떻겠습니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곰곰히 생각하게 하는 설명입니다.
어떤 사람이 술에 취해서 교회에 갔습니다. 예배 중 술냄새 나니 어떻겠습니까? 찡그리고 난리가 났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묻습니다. '술마시면서라도 교회에 나오는 것이 좋습니까? 술마시니까 교회에 안나오는 것이 좋습니까?' 술 먹는 것은 나쁘지만 교회에 나오는 것은 좋은 일 아닙니까? 취해 가지고 나오는 것은 곤란하지만 어쨋든 교회는 나오는 것이 좋습니다.
누가복음 15장 탕자이야기 아시지요? 돌아올 때 얼마나 걱정했습니까? 아버지가 나를 받아주시기나 할까? 형은 나를 어떻게 대해줄까?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오죽했으면 '품꾼의 하나로 써달라고 하자'했겟어요? 자 돌아왔습니다. 제가 묻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뭐라 했습니까? "꼴 좋다, 애비말 안듣고 뛰쳐나가더니 세상 맛 어떻드냐? 다시 나가거라 꼴도 보기싫다 이놈. 이제까지 어디서 뭐하다 왔다드냐?" 야단했습니까? 아니지요. 아무것도 묻지 않았어요. 그냥 기뻐 맞기만 햇습니다. 소잡고, 목욕시키고 옷갈아 입히고, 반지끼우고…
야고보 사도의 말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
이방인 중에 하나님께 오는 자 - 얼마나 반가우냐? 얼마나 기쁘냐? 이런 저런 제약과 장애물로 피곤치 말게 하라 이런 말 아닙니까? 쓸데없는 말로 남의 마음 상하게 하지 마세요. 나는 뭐그리 대단하다고 하나님 앞에 떳떳하다고 남을 책망합니까? 먼저 믿는 사람들이 첫째아들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잘 믿다보면 다 고쳐집니다. 예수 믿는 것으로족해야 합니다. 차차 고쳐져요. 괴롭게 하지 마세요.
정리
● 모든 사람들로부터 신뢰받던 야고보가 드디어 문제해결하지요? 베드로 바울과 바나바의 경험과 구약의 예언에서 이방인도 구원받아야 할 백성임을 설명합니다. 이방인 성도들에게는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라 권면하면서도 예수를 통한 구원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야고보의 권면을 마음에 담읍시다. - 예수 믿겠다고 온 사람들 괴롭게 말라. 그렇지 않아도 어색하고 불안할 터인데 차차 나아지지 않겟나? 먼저 믿은 성도들 문턱도 낯추고 자세와 눈도 낮춰 따뜻하게 맞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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