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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본문

성경 삼상 16:2-13, 2004년 월 일 주일 낮
제목"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이윤근목사

서론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데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겉만 꾸미는 오늘의 현실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서는 얼굴까지도 수술을 해서라도 고쳐야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얼굴짱 몸짱 짱짱이 유행입니다. 외모를 고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먼저 심장을 고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실한 삶을 살아야하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생활이 필요합니다. 본문에는 이새의 집에서 대통령이 나온다는 사무엘의 말에 이새는 아들 여덟 중에 제일 못난 다윗만 양을 지키게 하고 일곱은 모두 불러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일곱 모두는 대통령감이 아니고 양을 지키고 있는 다윗이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1.천대받는 자를 귀하게 쓰십니다
본문 11 "또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가로되 아직 말째가 남았는데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하였습니다. 여기서 말째라는 말은 가장 어린이란 의미 외에 가장 작은 이란 의미도 있다는 점에서 당시 다윗의 모습은 사울의 큰 키와는 너무나도 대조적이었다는 것입니다(9:2, 10:23). 그리고 그의 형제들보다도 신장이 작고 볼품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하여 이새는 다른 아들들을 불러 온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이것은 그 당시 이새의 가족들이 다윗을 아직 어른으로 생각하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풍속으로 볼 때 어른만이 제사의 초청에 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그를 데려오지 아니하면 앉아서 식사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즉 사무엘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은 후 식사를 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쓰실 때 외모만 훤칠하고 키만 크면 사람이 훌륭한 줄로 알지만 하나님은 그와 같은 조건을 보시지 않고 그 중심 즉 마음을 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하기를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하였습니다(고전 1:26-29). 그러므로 외모만 가꾸려고 하지 말고 주께서 원하시는 중심을 가꾸어서 믿음이 없이는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음을 알고 믿음으로 주님의 인정을 받아 쓰임 받기를 바랍니다(롬 14:23, 히 11:6).


2.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를 귀하게 쓰십니다
행 13:21-22 "그 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하였습니다. 이는 삼상 13:14과 시 89:20을 인용한 것으로 보이는 본문은 이스라엘의 왕정(王政)을 인정한다는 의미를 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윗이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점은 왕가(王家) 의 정통성을 신적인 권위로 세우고자 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열망을 대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마음에 합한이라는 표현은 다윗이 하나님에 의해 계획된 구속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인물임을 부각시킨 것입니다. 이는 사람의 마음에 드는 사람을 주께서 쓰시는 것이 아니고 주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을 쓰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세상에 오셨을 때에도 사람들은 에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를 인정하지 아니하고 멸시한 것은 주님의 외부적인 조건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부모나 가문 그리고 가정환경이 그를 메시야로 믿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여기지 않고 그를 통하여 구속사업을 완성하셨습니다. 누가복음 저자는 기록하기를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뇨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하였습니다(눅 20:17-18). 이는 시 118:22을 인용한 문구인데 16절에서 언급된 결론과 청중들의 반응에 대한 추가적 대답입니다. 즉 성경의 본문을 인용함으로써 비유가 주는 교훈을 더욱 명료하게 합니다. 이 비유 역시 상징적 의미로서 건축자의 잘못된 판단에 대한 경고와 좋은 돌은 한때 버려졌을지라도 다시 발견되어 머릿돌로 쓰여지게 된다는 필연성에 대한 강조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건축자는 앞에서 언급했던 비유에서 주인의 종과 아들을 배척하고 죽인 농부들을 상징하며 사실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종교. 정치 지도자들과 불신앙적인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고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된 것은 예수를 상징하는 말로서 그들에 의해서 버림받고 죽임을 당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예수를 이스라엘의 머릿돌, 인류의 머릿돌이 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행 2:36). 그러므로 사람들에게는 멸시와 천대를 받아도 하나님의 마음에만 들면 얼마든지 귀하게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3성령에 감동된 자를 귀하게 쓰십니다
본문 13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하였습니다. 이는 다윗은 모두 3차에 걸쳐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즉 여기 첫번 기름 부음은 비공식적으로 이새의 가족만 참석한 가운데 은밀히 부어졌고, 두 번째의 헤브론에서 유다 족속의 왕으로 올랐을 때(삼하 2:3, 4) 기름 부음 받았으며 그리고 세 번째는 마침내 다윗이 전체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했을 때(삼하 5:3)받았습니다. 본문에서 기름 부음을 받은 것은 형제들이 목격하는 가운데서 다윗이 기름 부음 받았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이새의 가족 이외의 사람들은 그 장소에 아무도 없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다윗의 형제들은 사무엘의 엄중한 부탁과, 그리고 사울의 보복등을 우려해 그 사실을 비밀로 유지한 듯합니다.


그리하여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은 후에는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하였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신정 국가의 왕으로서 이스라엘의 정치적, 도덕적, 영적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역량과 은사를 허락하셨음을 뜻합니다. 그 결과 다윗의 행동과 말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삼상 16:18). 한편 이처럼 기름을 붓는 객관적 의식(儀式)의 결과로 여호와의 신이 주관적으로 임했다는 이 사실은 사울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났었습니다(삼상 10:1,10). 그러나 사울의 경우와는 달리, 다윗의 경우는 이 같은 일이 기름 부음의 의식 직후에 있었고 임재하신 여호와의 신이 끝까지 떠나지 않으셨으며 여호와의 신이 임할 때 발작적이지 않았다는 점에서(삼상 10:9-12; 11:6,7) 사울의 경우와는 구별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일은 누가 무엇이라 말해도 성령의 충만한 사람이라야 제대로 할 수 있고 제대로 주님의 쓰임에 합당하게 사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요셉도 바로에게 인정받기를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자를 우리가 어디서 얻겠느냐고 하였습니다(창41:38). 하나님의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이 귀하게 쓰임 받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힘으로도 할 수 없고 능으로도 할 수 없고 오직 나의 신으로만 된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슥 4:6). 그래서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빌 4:13). 그리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고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는 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한 사람을 주께서는 귀하게 쓰심을 알고 성령의 충만한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행 4:29-31).


"결론"
하나님은 천대받고 멸시받는 자를 불러서 귀하게 쓰시고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일을 하는 믿음을 가지 자를 귀하게 쓰시며 성령 충만한 사람을 귀하게 쓰심을 기억하고 외부적인 화려한 조건만 내세우지 말고 중심을 보시는 주님의 마음에 드는 일을 하는 믿음이 풍성한 사람들이 되어 주님의 귀한 일군으로 쓰임 받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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