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신앙인에게 전도는 기본이다.(막 6:7-13)
본문
- 오주철 목사 (영신교회)
1964년의 일입니다. 경기도 포천 백암산 비무장 지대에 배속된 어떤 초급 장교가 빨간 단풍이 물들어가기 시작한 초가을 오후에 순찰 도중 잡초만 우거진 비무장 지대의 양지바른 산모퉁이에서 이끼가 낀 돌무더기 하나를 발견합니다. 그는 이 돌무더기 한쪽에서 녹쓴 철모와 썩은 나무등걸 같아 보이는 팻말 하나를 발견합니다. 그는 직감적으로 이 나무 팻말이 어느 이름 없는 무명 용사의 죽음을 기리기 위한 전우애로 새겨진 일종의 묘비임을 알아차립니다. 갑자기 그의 눈 앞에 자기 또래의 젊은 무명 용사의 환상이 지나가자 그는 아직도 화약 냄새가 가시지 않은 이 돌무덤 곁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미 글이 지워진 나무 팻말 대신 나라를 위해 인생을 꽃피우지 못하고 헌신한 젊음을 기억하며 주머니에 버려져 있었던 구겨진 종이 한 장을 꺼내 시를 써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시에 곡을 붙여서 탄생한 가곡이 바로 '비목'입니다.
"초연히 쓸고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모를 이름모를 비목이여…"
그렇게 해서 이름 모를 비목의 사연이, 그리고 무명의 주인공의 헌신이 우리 모두에게 기억될 수 있었다고 한다면 사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한 여러분들의 헌신을 우리 주님께서 잊으실까요? 이 질문에 대해서 히브리서 기자는 6장 1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신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헌신자를 기억하십니다. 여러분의 수고와 눈물과 헌신을 하나도 빠지지 않고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날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수고를 기억하시고 우리를 기쁜 모습으로 맞아주실 것입니다. 마지막날 주 앞에 섰을 때에 주님께서는 우리의 눈물을 씻어주시며 이렇게 칭찬하실 것입니다. "어서 와. 착하고 충성된 종아!"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구경꾼은 하나님의 기억의 대상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헌신의 자리를 거부하고 구경꾼으로 살아가는 그를 향해 마지막날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나는 너를 알지 못한다"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그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외면하시는 그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이 하나님께 기억되기를 원하신다면 이제는 제발 구경꾼의 삶을 청산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사역에 보다 구체적으로 참여하십시오. 헌신하십시오. 참여와 헌신이 하나님의 역사를 만들어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사역에 구체적으로 뛰어들어 헌신하게 될 때에 누가 가장 행복할까요? 하나님의 사역에 헌신할 때에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해도 자기 자신입니다. 헌신은 헌신하는 자를 행복하게 합니다. 헌신은 헌신하는 자를 건강하게 합니다. 풍성하게 합니다. 그런데 주를 향한 이 헌신은 나 자신에게서만 끝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헌신이 다른 모든 사람들을 즐겁게 합니다. 행복하게 합니다. 헌신하는 그 사람만 바라보아도 힘이 나고 용기가 솟게 만듭니다. 더 나아가서는 우리의 섬김과 헌신의 결과를 보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보십시오. 우리의 섬김과 헌신의 결과로 하나님이 즐거워하시고 자신이 기뻐하고 우리의 이웃이 기뻐할 수 있다면 왜 이런 섬김을 아직도 주저하십니까? 더 이상 헌신의 자리를 주저하지 마십시오. 저는 우리 모두가 훗날에 주 앞에서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 하나님 앞에서 자원함이 내게는 기회였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이 내게는 축복이었습니다. 이제는 내 삶의 마지막도 기쁨입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되어지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헌신의 자리에 서기를 주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 때 헌신하다가 쉽게 헌신을 포기하고 구경꾼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이유가 무엇일까? 나의 수고와 봉사를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보다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으려고 하십시오.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기 보다 하나님께서 나를 알아주신다는 사실에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의 이름이 하늘 나라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하십시오. 특별히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이 헌신하지 않는 사람을 보고 실망하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가만히 보면 헌신하지 않는 사람을 보고서 실망하고 좌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하는데 저 사람은 왜 하지 않느냐는 겁니다. 이 사람은 이렇게 하는데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하느냐는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 헌신하지 않는 사람을 보지 말고 우리 앞서 섬김의 길을 걸어가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는 그로 하여금 그의 길을 가게하고, 여러분은 주님만을 바라보며 사명의 길을 걸어가십시오. 그리고 기왕이면 헌신하지 않는 사람보다 헌신하는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십시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리 삶의 환경이 힘들고, 어려워도 헌신의 자리를 굳게 지키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몰라줘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기억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섬기는 일을 세상의 어떤 일들 가운데 하나처럼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을 악세사리로 취급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의 일을 존귀하게 여기면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을 존귀한 자로 세워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나님을 그저 그런 악세사리로 여긴다면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을 그렇게 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고 헌신하는 일들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제일주의의 삶을 산다면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여러분의 생애와 환경을 책임져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애만이 아니라 여러분의 자자손손을 기억하시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이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손 대대로 있어지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방망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돌 같은 내 마음을 부수는 방망이입니다. 오늘 주 앞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의 방망이에 한 대씩 얻어맞으면서 성령의 은혜를 받으십시오. 그래서 말씀을 들으면서 굳어진 여러분의 심령이 깨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신령한 영안이 열려지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주 앞에서 사명적인 존재로 거듭나시기를 축복합니다.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내 생명을 불태울 수 있는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은 성공한 사람입니다. 아무쪼록 오늘 이 자리에서 내 생명을 불태울 수 있는 삶의 의미를 찾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나온 사람들은 아직도 공개되지 않은 약속된 미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우리의 심령에는 약속의 도성과 새로운 축복의 땅이 있음을 확신하고 믿음의 닻을 저어서 가게 됩니다. 그 항해가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다시 생명의 능력을 붙들고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닻을 더 높이 올리십시오. 주 앞에서 서는 그 날을 사모하며 더 힘차게 나아가십시오.
우리는 계속해서 성숙한 신앙인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신앙생활의 모습을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가 믿음과 지식에 있어서 하나가 되어 성숙한 신앙인으로서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 가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이미 말씀을 드렸지만 내가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찾아서 헌신하십시오. 하나님은 헌신하는 그 사람에게 축복하십니다. 헌신하는 그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기뻐하심을 받는 예배자가 되십시오. 예배가 악세사리가 되게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우리 인생의 최고의 목적이어야 합니다. 이 진리를 깨달았던 솔로몬은 전도서 결론 부분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하여 그의 백성을 만나주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앞에 우리의 모습을 보여 드리기를 게을리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지난 주일에 말씀을 드렸지만 하나님께 기쁜 마음으로 드리기를 힘쓰십시오. 우리는 우리의 시간과 노동과 물질을 하나님께 기쁜 마음으로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기를 즐겨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풍성함으로 우리에게 응답하여 주실 것입니다. 가만히 보면, 어떤 사람들은 돈을 쫓아갑니다. 그러나 여러분, 사람이 돈을 쫓아간다고 해서 돈이 모이는 것이 아닙니다. 명예를 쫓아간다고 해서 그 명예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창고를 열어 주셔야 합니다. 생명의 호흡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모든 재물과 명예가 하나님의 손에 달렸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십시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십시오. 하나님 보시기에 기특한 삶을 살아드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재물의 복을 주실 것입니다. 건강의 복도 주실 것입니다. 평안의 복도 주실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는 이미 복 중의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복 중의 복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은 시험이 와도 염려하지 않습니다. 고난이 와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은 천국 백성의 삶을 살아갑니다. 풍성한 삶을 살아갑니다.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저는 네 번째로 성숙한 신앙인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아주 지극히 당연하고도 분명한 삶의 모습을 말씀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전도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숙한 신앙인에게 전도는 기본이요, 생활입니다. 전도에 관한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런 설문 조사가 생각이 납니다. 그러니까 어느 교회 목사님이 교인들에게 설교에 관한 설문 조사를 하면서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어떤 설교를 들을 때에 제일 짜증이 납니까?' 그랬더니 '회개에 관한 설교'라는 대답이 가장 많이 나왔습니다. 대다수의 교인들은 죄를 지었으면 지은 대로 그냥 두지 그것을 꼭 지적해야 되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전도에 관한 설교'였고, 세 번째로 짜증나는 설교는 '헌금에 관한 설교'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앙생활에 있어서 제일 부담되는 설교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했더니 첫 번째가 '전도에 관한 설교'였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도'에 대한 설교를 한다고 하면 벌써 졸기부터 합니다. 오늘 우리 교우들 가운데서는 조는 분이 없기를 바랍니다. 사실, 교회에서의 전도에 관한 설교는 지극히 당연하고, 또 마땅히 들어야 하는 설교임에도 불구하고,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짜증 나고 부담되는 설교가 되어버렸습니다. 왜 그럴까? 그만큼 오늘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무미건조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지금 이 땅의 교회에는 영혼의 아토피 환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토피는 패스트푸드에 익숙한 신세대 여성들이 결혼하여 출산한 아이들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피부병입니다. 보십시오. 오늘 교회 안에는 설교도 짧고 재미있게, 예배도 간단하게 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교인들은 입맛에 맞는 설교를 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패스트푸드 식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때문에 신앙 생활이 무미건조합니다. 감격과 감동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부담스러운 설교라도 들을 것은 들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제일 짜증나고 부담되는 것들이 사실은 제일 중요한 것들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전도를 부담스러워하지 마십시오. 전도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도를 통해서 기적과 능력을 베풀어주십니다. 교회도 부흥하고 성장하는 교회는 성도들의 전도 활동이 활발한 교회입니다. 그런데 목사님도 전도에 대한 설교를 안하고 성도들도 전도에 대한 관심이 없는 교회는 교인이 자꾸 줄어들어서 나중에는 건물만 남습니다. 이것은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영국이 전도를 많이 했을 때는 대영제국이 되었습니다. 미국도 열심히 전도할 때는 경제적인 축복을 누리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도와 선교활동을 그만두니까 많은 문제가 생겨서 나라가 점점 위축되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나라도, 교회도, 개인도 전도할 때 하늘의 복을 받습니다. 전도의 불길이 일어날 때 흥왕하게 됩니다. 일본의 우치무라간조는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것, 전도하는 것은 진정으로 복된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오늘 주 앞에 나오신 여러분, 여러분의 심장 속에 전도하고자하는 열망이 불처럼 타올라 뼛속에까지 타들어 가게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내가 복음을 증거하지 않으면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견딜 수 없는 간절한 열망이 여러분의 중심에서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주여, 내 안에 전도하고자 하는 열망을 주옵소서. 성령이여, 영신재단에 전도의 불길이 타오르게 하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의 사회는 끝도 없이 추락하고 있습니다. 입에 담을 수 없는 흉칙한 사건들이 홍수처럼 밀려오고 있습니다. 이대로 두면 우리의 사회와 나라는 어디로 갈까? 암담합니다. 길이 없을까?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에 길이 있습니다. 끝도 없이 추락하는 이 사회를 건지는 길은 전도 밖에는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추락하는 세상을 물려 줄 수는 없습니다. 죽고 망할 세상을 물려 줄 수는 없습니다. 살기 좋은 세상, 발전하는 세상, 점점 더 훌륭해지고 아름다워지는 세상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수고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열심히 전도하여 우리 영신 교회가 성장해야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점점 확장된다는 사실을 마음에 명심하십시오. 열심히 전도하여 영신교회가 성장하고, 우리 영신교회의 성장을 통하여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될 때 정치도 경제도 그리고 사회와 문화도 추락을 멈추고 맑고 밝은 아름다운 세상을 이룩하게 될 줄을 믿습니다. 우리는 전도로 교회를 성장시키고 전도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전도는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는 선택적인 것이 아닙니다. 전도는 반드시 해야 하는 필수적인 것입니다. 성숙한 신앙인에게 있어서 전도는 기본이요, 생활입니다. 전도를 해야 내가 삽니다. 전도를 해야 내 가정이 삽니다. 전도를 해야 끝도 없이 추락하는 이 땅을 살릴 수 있습니다. 황무한 이 땅을 살리고 고칠 수 있는 길은 오늘 이 땅에 전도의 불길이 일어나야 합니다.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성숙한 신앙인에게 전도는 기본이요, 생활입니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전도가 없다면 그는 신앙의 기본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고, 복된 인생을 살아가기를 원하신다면 전도하십시오. 그래서 이 시간 좌우를 돌아보시면서 "우리 전도 좀 합시다"라고 인사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전도를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물론 성경에서는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전도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전도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상 최대의 명령입니다. 이 명령은 선택의 기회가 없습니다. 반드시 받들어야 합니다. 전쟁터에서 군인이 명령을 거부하면 바로 사살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의 명령이 전도는 우리가 거부할 수 없는 사명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전도를 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교회 공동체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 공동체가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사역자들이 있어야 합니다. 보십시오. 한 사람보다는 두 사람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보다는 열 사람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 교회가 아무리 좋은 비전을 품고 있다고 할지라도 교회 구성원이 적다면 그 비전은 허상에 불과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이 사실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 개인적으로 한사람 한사람씩 만나서 그들을 부르셨습니다만은 그들을 부르신 다음에 열두 제자들로 하여금 하나의 공동체가 되게 하셨습니다. 열두 제자들이 바로 신약교회 공동체의 모체가 됩니다. 열두 제자는 그냥 무리가 모인 단순한 무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교회입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들을 부르시사 교회 공동체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전도하러 둘씩 보내셨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한사람씩 뿔뿔이 보내시는 상황하고 둘씩 짝지어 보내신 것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여러분이 혼자 나가서 전도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전도가 쉽지 않습니다. 하다보면 어려움을 느낍니다. 혼자 하다가 지치면 그냥 슬그머니 집에 들어가 버리면 그만입니다. 언제든지 땡땡이 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함께 묶여서 하다보면 상당히 상대방을 의식할 것입니다. 긴장도 합니다. '내가 여기서 그만두면 저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그래서 인간에게는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전도서에 보면,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한 사람이 넘어질 때 또 다른 사람이 붙들어 일으켜 세워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초대 열두 공동체를 보게 되면 아주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가령, 안드레와 베드로는 형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은 환상의 짝이었을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시몬과 유다입니다. 시몬은 아주 격렬한 열심당원 출신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 다음에도 아주 특별한 열심을 보였던 제자입니다. 그러나 가롯 유다는 배신자입니다. 오늘 우리가 바라본다면 유다와 시몬은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시몬도 유다를 생각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을 것입니다. 유다를 어떻게 가슴에 품어야 할까? 비판적인 유다. 그를 위해 기도하고 다독거리면서 어쩌면 시몬에게는 굉장한 신앙적 성숙이 있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고 보면 사람이 마음이 맞아야만 성숙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과 공동체를 이루면서 그를 위해 기도하고 용서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교회 공동체가 부흥하고 신앙의 성숙을 이루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저는 우리 시대의 신앙 속에서 정말 그리스도인 다운 신앙생활을 저해하는 장애물의 하나가 이 시대의 정신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시대의 정신 가운데 하나가 철저한 개인주의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에게도 예외 없이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때문에 공동체 의식을 상실하고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서는 왜 우리가 교회라는 공동체가 필요해서 교회를 세우셨을까요? 전도하기 위한 공동체입니다. 전도한다는 것이 보통 사건이 아닙니다. 전도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을 변화시킨다.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 여러분은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나 같은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부족한 대로, 연약한 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그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공동체가 될 때 그 공동체의 저력은 대단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 교회라는 공동체에게 지상명령의 과제와 숙제를 위임하셨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열한 제자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세상을 바꿔라. 모든 족속으로 네 제자를 삼으라."
우리가 나가서 전도를 하기 위해서는 교회 공동체를 향한 공동체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공동체 의식이 어렵습니다. 시대의 영향을 받아서 우리 모두가 뿔뿔이 개인으로 살아갑니다. 저는 우리 시대가 어떻게 흘러가는가를 가장 잘 아는 방법은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그 시대의 유행가이고, 다른 하나는 그 시대의 유머를 보면 됩니다. 유행가를 보면 그 시대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알게 됩니다. 유머는 그 시대를 풍자하고 있습니다. 한 동안 많이 사랑을 받았던 유머 가운데 하나가 사오정 시리즈였습니다. 저도 간혹 사오정 시리즈를 들먹이지만 말하는 저도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혼돈을 일으킵니다. 오히려 웃는다는 것이 멋적을 때도 있습니다. 사실 사오정 시리즈는 한 마디로 썰렁합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디에서 웃어야 할지를 모릅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웃음이 안나옵니다. 남들이 웃으니까 같이 웃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오정 시리즈에는 대화가 없습니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마음들이 통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사오정이 기가 막히게 현대인을 대표합니다. 예를 들면, 사오정 1과 2가 목욕탕 앞에서 만납니다. 사오정1이 2를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아 목욕탕에 오십니까?" 그랬더니 사오정 2가 말합니다. "아니요. 목욕탕에 갑니다" 그러니까 사오정1이 말합니다. "미안합니다. 나는 목욕탕에 가시는 줄 알았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서로가 통하지 않습니다. 대화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여러분. 똑같은 비극이 오늘 우리들의 교회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일날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고 갑니다. 그러나 통하지 않습니다. 만남이 없습니다. 만남의 접촉점이 없습니다. 우리는 예배드리고 또 흩어져 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과연 이런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주님이 의도하는 교회는 진정한 공동체입니다. 인생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 삶의 역경과 환희를 함께 나누는 공동체, 그리고 실패의 상처도 함께 나누면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일어나는 공동체. 이것이 우리들이 만들어가야 하는 진정한 교회의 공동체입니다. 교회 안에 깊이 들어가다 보면 마음에 안 드는 사람도 만납니다. 그러나 그들을 용납하고 용서하는 것을 배웁니다. 그래서 우리는 용서하는 공동체가 되고 사랑하는 공동체가 되면서 우리는 사랑과 용서를 모르는 세상을 향해서 이렇게 외칩니다. "당신에게도 이런 사랑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바로 이 공동체를 통해서 세상을 바꾸시기를 기대하십니다.
이 땅에 IMF가 지나간 이후로 교회 안에는 등록하지 않는 철새 교인들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축도가 끝나자 마자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교인. 교회에 깊이 들어가기를 거부합니다. 헌신하기를 거부합니다. 신앙 생활을 하기는 해야 하겠지만 누구한테 간섭받기는 싫습니다. 그저 편하고 싶습니다. 물론 무척, 아주 편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교회생활을 하는 많은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이 결코 경험할 수 없는 두 가지를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들은 주님에 의해서 효율적으로 쓰임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또 하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관계 속에서 상처를 치유하고, 서로 위로하고 용서해 주는 성숙한 신앙인으로 자라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에게서는 신앙의 성숙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도자가 된다는 것은 교회 공동체의 비전을 함께 세워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함께 웃고 울면서 인생의 애환을 나누고 그 안에서 우리를 치료하시는 그리스도, 우리를 성숙시켜 주시는 그리스도를 경험하며 우리는 세상을 향해서 이렇게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소망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이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사랑하는 여러분, 동네 사람들을 만나십시오. 그들을 찾아가십시오. 그리고 그들을 끌어안고 교회 안으로 데리고 들어오십시오. 기억하십시오. 나 혼자서는 이 땅을 변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일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 한사람이 다른 사람을 전도하고, 그들이 모여서 강력한 교회 공동체를 만들어갈 때에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비전을, 우리의 비전을 세워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거룩한 교회 공동체의 비전을 세워갈 때에 세상은 바뀌어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홀로 교인이 되지 마십시오. 솔직히 우리들 가운데는 나 혼자 조용히 믿으면 되지 남편과 자식까지 전도할 필요가 있겠는가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정말로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믿으십니까? 교회에 나오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리는 것을 믿으십니까? 누구든지 교회에 나와서 예수를 믿으면 영원한 천국에 갈 것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왜 혼자만 예수를 믿으십니까? 왜 나 혼자만 은혜와 축복을 누리려고 하십니까? 우리 모두가 전도의 열정을 품고 이 한 주간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전도하십시오. 그래서 다음 주일에는 우리 모두가 한 사람씩 손에 손을 잡고 성전에 들어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잔치에 빈자리를 보면 주인은 마음이 섭섭해집니다. 주님께서는 천국의 잔치를 마련하시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인생들을 초청하십니다. 그런데 빈자리가 있습니다. 이 빈자리를 보시고 우리 주님께서는 섭섭해하실 것입니다.
이 한 주간 주님의 명령에 의지해서 전도하기를 결단하신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능력을 철저하게 신뢰하십시오. 전도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전도하다 보면 놀라운 사건들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전도를 하려고 할 때에 가장 먼저 만나는 대상은 어둠의 세력들입니다. 악한 사단의 세력들이 우리로 하여금 전도를 하지 못하도록 방해를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주시는 능력을 의지해서 전도하십시오. 본문 말씀에 보니까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 권세는 오늘 우리들에게도 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이 주시는 이 권세를 의지해서 전도를 하면 어둠의 세력들은 물러갈 것입니다. 나를 통해 역사하시는 주님의 능력으로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보다 더 확실하게 세워져 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능력에 의지해서 전도하십시오.
잠잠한 성도는 결국 세상에 물들기 쉽습니다. 잠잠한 교회는 영권을 상실하여 세속화되기 쉽습니다. 영혼 구원이 일어나지 않는 교회는 생명력이 없는 교회입니다. 저는 우리 영신교회가 세상을 향해서 어떠한 일도 할 수 없는 생명력 없는 교회가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여러분도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교회를 통해서 아웃을 구원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기를 원합니다. 우리 영신교회가 이 땅에 소금이 되고 빛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전도하십시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하십시오. 방안에만 콕 박혀있지 말고 거리로 나와서 두루 다니며 전도하십시오. 바쁘다는 핑계로 생명을 외면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찾아가서 한 생명을 주 앞으로 전도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