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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하는 고난으로 갑옷을 삼으라. (벧전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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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하는 고난으로 갑옷을 삼으라.
김성철목사 [성경본문] 베드로전서4:1-6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다는 신앙생활 속에서도 믿음으로 깨어 있지 못해서 우리의 불의와 죄 때문에 이런저런 고난을 당하고 있다면 그러한 고난은 하나님 앞에서도 할 말이 없고 그것은 아무런 소망도 없는 고난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는 그 믿음 때문에 내가 이런저런 고난을 당하고 있다면 그것은“내가 참으로 그리스도인이구나.” 하는 확실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고난에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 소망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목자 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다시 오실 그 때에 그로부터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의 기업을 상속받은 교회가, 세상에서 고난과 환란을 당하는 것은 이 세상이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악한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환란과 핍박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된 우리가 세상이 구하는 것처럼 땅의 복을 구하고 세상 것을 쫒아 살면 세상과 교회가 화평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교회가 하나님나라 백성이기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면 이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사도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사는 삶의 실상이 곧 고난이다”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평안하고 화평한가?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참으로 나에게 넘친다.” 꼭 그렇게 만 생각할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이 구하는 것과 같은 것을 구하고 그들과 평화하고 화평 하는 삶은 결코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삶이 아닙니다.

비록 세상에서는 소망이 없는 자처럼 그렇게 보여도 오히려 세상을 거스르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하나님이 아들 안에서 나타내신 그 은혜와 사랑을 따라서 그렇게 한 몸을 이룬 교회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처럼 우리가 세상에서 확연하게 구별된 그러한 삶을 살아야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 된 확실한 증거인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가 “ 너희는 세상에서의 모든 고난을 인내하고 나타날 기업에 소망을 두고 더욱 하늘나라의 백성으로 그 나라의 의를 구하고 행하는 거룩한 삶을 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살펴볼 본문의 말씀도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이방인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어떻게 그들의 구원을 인도하고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증거 하는 백성으로 살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말씀하면서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당하는 고난 중에도 두려워하거나 소동하지 말고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그리스도를 주로 섬기고 살아갈 때에 “너희는 그러한 고난을 어떻게 참고 견딜 수 있는가? 하고 묻는 자들에게 항상 대답할 것을 예비하며 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오늘 살펴볼 본문의 말씀도 베드로전서의 전체적인 주제와 그 맥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내용을 요약해보면 그리스도께서 육체의 고난을 받으심으로 죄를 그치셨는데 이것은 우리가 사람의 정욕을 따라 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런 일을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이방인들이 이상히 여기고 비방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비방으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비록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지만,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고 복음이 전파된 것이다. 그렇게 말씀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이 강조하는 것은 고난을 갑옷으로 삼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언뜻 생각하면 고난과 갑옷은 무슨 연관이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고난으로 이 갑옷을 삼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고난이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가는 결과물이라고 말씀하면서 이 일을 비방하는 자들은 심판을 받게 되고 고난의 삶의 끝은 바로 하나님처럼 사는 것이다. 그렇게 말씀합니다. 4장 1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만물의 통치자가 되신 분! 지옥까지 그 통치와 권세로 다스리시는 존귀하신 하나님의 그 아들! 그분이 고난을 당하셨는데 그 아들이 당하신 육체의 고난은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이냐 그런 말입니다.

주님이 이러한 육체의 고난을 당하신 이유는 죄를 끝내시기 위함이었다. 죄를 그쳤다는 말은 죄를 이기셨다는 말입니다. 곧 죄의 권세인 사망을 정복하심으로 죄의 지배력과 통치를 무너뜨리고 그 권세를 파하셨다는 말입니다. 주님께서 육체의 고난을 당하심으로 죄를 그치신 것은, 이전에 사람의 정욕을 따라 사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이고 우리 육신의 생명, 곧 육체의 남은 때를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게 하기 위해서 죄를 그치게 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말입니다.


아무런 흠도 티도 없고 죄 없으신 의로우신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세상에 오셔서 죄인처럼 고난당하시고 죽으신 것은 우리 죄를 대신해서 죽으신 것이고 이 죽음을 통해서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육체의 고난을 받으시기 전에는 우리가 사람의 정욕을 따라 살았지만, 그러나 주님께서 육체의 고난을 받음으로 죄의 권세를 밟으셨고 이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게 하시는 영원한 생명의 구원을 베푸신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은 우리가 이전처럼 세상을 따라 정욕대로 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의 정욕은 무어냐? 3절에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한마디로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하는 것, 다시 말해서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가 바로 정욕입니다.

여러분 노아의 때만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술 취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우상 숭배를 행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바로 이러한 방탕과 범죄의 실상을 아주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소위 문화라고 일컬어지는 것들도 그 실상은 음란함이요, 사람들이 부지런히 일하고 수고해서 구하는 것도 대개는 결국 방탕과 먹고 마고 취하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말 못하고 썩어 없어질 우상을 섬기지 아니하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어하고, 그런 것 들을 섬기는 것을 큰 영광과 자랑으로 아는 세상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말하는 이방인이라고 하는 것도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못 박아 죽인 유대인과 이방인, 다시 말해서 모든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세상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러한 이방인과 유대인에게는 예수그리스도가 없습니다. 다만 그들의 영광은 세상 영광이 그들의 정점이고 극치입니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교회를 대적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어서 세상천하 만민을 썩지 않고 쇠하지 않고 더럽지 아니하는 하늘의 기업에로 인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들에게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고 거치는 것이고 미련한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방인의 뜻을 따라 사는 것, 곧 사람의 정욕을 따라 사는 것은 요한1서가 증거 하는 것처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은 무익한 것이고, 사라질 것이며,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받는 삶과는 전혀 무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은 극한 방탕으로 사는 것이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는 삶이고, 그리스도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을 대적하는 어두움의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은 우리가 예수 믿기 이전의 삶으로 족한 것이기 때문에 이제는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고난당하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시려는 것이기 때문에, 이제 우리에게 아직 살아야할 시간이 남아 있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뜻 곧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제사장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았을 때 세상이 고난을 주고 시련을 준다면 그것을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으로 알고 이 고난으로 갑옷으로 삼고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럴 때에 그 결말은 무엇이냐? 4~6절입니다.


“이러므로 너희가 저희와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저희가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저희가 산 자와 죽은 자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에게 직고하리라.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니라”


여러분 이방인들은 자신들과 같은 삶을 살지 아니하면 교회의 행실과 삶에 대해서 비방합니다. 단순히 비방하고 조롱하는 것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대적하고 멸시하고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습니다. 자신들과 같이 행하자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별로 실감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세상이 교회를 핍박하고 대적하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분명한 그러한 고난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세상이 자신들의 생존권과 영광이 걸린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된다, 그 말이요. 지금은 모든 단체와 개인들이 자신의 유익과 영광을 위해서라면 때로 죽음도 불사하는 그러한 시대입니다.


이것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목숨까지도 돌보지 아니하고 투쟁하는 것입니다. 만일에 교회가 이러한 단체와 사회와 흐름을 같이 하지 아니하고, 복음의 진리만을 위해서 그들을 거스르면, 세상은 결단코 가만히 있지 아니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기독교로 개종한 자들을 죽이는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로마 황제가 교회를 대적하고 죽인 것도 자신들 위에 또 다른 왕을 인정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세상도 하나님 없는 영광과 먹고 마심을 구하는 것이어서, 교회가 이러한 세상을 거스르고 믿는 사람들끼리만 서로 함께 사랑을 나누고 고난 중에도 악착을 떨고 그렇게 살면 세상은 이 일로 소동하고 비방하고 모든 교제를 끊고 교회를 적대시 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는 교회가 어떻게 세상을 사는가? 여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결단코 교회와 함께하고 서로 격려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고난이 없고 환란이 없고 핍박이 없다고 “아! 우리 하나님이 참으로 나를 사랑하셔서 내가 이렇게 평안하게 사는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만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고 주님을 섬기고 주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면 반드시 세상으로부터 비방과 고난과 핍박이 함께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러한 비방으로 교회가 세상에서는 어려움을 당하지만, 그들이 이제 마지막 심판대에 섰을 때에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 자신들이 이렇게 교회를 비방하고 핍박했다고 직고하게 될 것입니다. 그 고백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그들은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판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너희들도 이렇게 이방인들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삶을 살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주님 때문에 당하는 고난으로 갑옷을 삼으라!” 그렇게 베드로 사도는 격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6절을 보면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다고 했는데 여기서 죽은 자들은 모든 죽은 자들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으로 인해서 죽은 자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고난으로 갑옷은 삼은 자들입니다.

주님은 주님을 세상에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의 죄를 대신하는 대속의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대적한 세상은 그의 백성들도 대적합니다. 왕과 백성은 하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복음을 위해서 죽은 자들은 육체로, 사람처럼 심판을 받았습니다. 주님이 죄인취급을 받으신 것처럼 그들도 그렇게 심판을 받아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죽음은 세상에서 죄인으로 버림받아 죽은 죽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죄를 끝내는 죽음이어서 그분을 믿었던 자기 백성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죽음인 것처럼, 복음을 믿고 죽은 자들은 그리스도께 속해 있다는 확실한 증거로 죽은 것이어서 그리스도 예수의 재림하실 때에 그로부터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얻는 그러한 죽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육체로 받은 심판의 결국은 영원한 저주가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처럼 사는 것이고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왕 노릇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입니다. 복음 때문에 죽은 자들은 세상에서 무익한 자로 버림을 당했지만, 그러나 그들은 이제 하나님처럼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한 교회도 그리스도 예수로부터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얻을 것이며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만물을 심판하는 권세의 왕으로 오실 때에 교회를 대적했던 모든 세상들은 부끄러움과 멸시와 영원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우리에게 이방인으로 살 때 행하던 모든 악한 일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당하는 고난을 갑옷으로 삼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신실하게 살아라! 그렇게 성도들을 권면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하늘의 기업을 상속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후사로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고 그래서 우리의 본향은 하늘나라요, 우리의 소속은 하늘백성이고 우리의 왕은 예수 그리스도 만왕의 왕이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잠시 잠간 스쳐가는 나그네와 행인으로 사는 것이고 주님을 대적한 세상이 우리를 대적하지만, 주님의 이름으로 당하는 고난과 욕으로 갑옷을 삼고 우리가 주님 나라의 증인으로 살아서 우리에게 어떠한 고난이 오고 핍박이 와도 우리가 소망 중에 말씀으로 무장하고 주님의 구원역사에 동참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그 나라를 세워 가시고 세상 모든 천하 만민을 우리를 통해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지금 이 시대의 교회는 어떻습니까? 이러한 삶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게만 느껴집니다. 참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갑옷을 삼고, 그리스도가 받은 그 고난을 본받고 나타날 영광을 구하는 그러한 삶을 사는 것이냐? 아니면 교회를 세우면 무조건 사람을 끌어다 채우고 예수 믿으면 다 형통하고 나라가 잘 되어야 하고 기업이 잘되어야 예수를 잘 믿는 것이냐? 그런 말입니다.

이 시대에 교회가 선포하는 복음이라고 하는 것도 그리스도와는 아무 상관없고 그저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예수 믿는 것이라고 설교하고 있으니 예수 믿고 병들고 예수 믿고 가난해서 핍박받고 고난 받으면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러한 고난을 이해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들이 이렇게 잘못 돌아갈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그리스도인이 고난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예수 믿어도, 복음 때문에 나 자신을 챙기지 못해서 병도 들 수도 있고 가난해 질수도 있고 세상으로부터 핍박이 오고 고난이 오고 때로는 죽음도 감수해야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고난으로 갑옷을 삼고, 그리스도가 받은 그 고난을 본받고 나타날 영광을 구하는 그러한 삶을 살라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증거 하면 교회들까지라도 그러한 증거자들을 적대시하고 일어날 것입니다. 너만 옳으냐? 너만 예수를 믿느냐? 이렇게 질타할 것입니다. 그 고난의 두려움이 참으로 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세상이겠습니까? 그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지금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욕을 당하고 고난을 본받는 일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습니다. 세상이 높아지는 것을 구하고 세상 영광을 구함으로 그 음란함과 교만을 드러내는 것처럼 교회도 그렇게 추하고 악하게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러분, 세상이 다 이 길을 가고, 온 세상이 우리를 조롱하고 멸시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께 둔 소망을 따라 믿음으로 이 길을 걸어가야만 합니다. 주님 다시 오실 그때를 소망하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본분을 다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서 당하는 고난과 능욕을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고난당하시고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섬기는 이 복된 구원을 우리가 받았기에, 썩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고 더럽지 아니하는 이 기업을 상속받았기에 우리는 그 나라백성으로 합당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있는 소망을 묻는 자들에게 온유와 두려움으로 항상 대답할 말을 예비하고, 주님의 복음에 순종하고 그리스도의 인내와 사랑의 수고에 우리가 동참해서 주의 복음을 대적하고 훼방하는 일에는 결단코 타협하지 마시고 그리스도께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하늘나라에 둔 소망으로 모든 고난을 이기며 사시는 귀한 성도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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