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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도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 (히 5: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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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도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 (히 5:5-10)

히3:1절 하반 절에는 이렇게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그렇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우리의 믿는 도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따라 가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이 가신 그 길은 골고다 언덕길이라고 하실 때에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이 바로 생명의 길이요,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는 길이기에 그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찬송가 364장에 1절에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같은 고생이나...’ 또 3절에 보면 ‘천성에 가는 길, 험하여도 생명 길 되나니 은혜로다. 천사 날 부르니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라고 노래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천성에 가는 길이 험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생명길이기에 은혜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신앙생활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하신 대제사장이시기 때문에 따라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대제사장입니다. 그분은 사단의 권세를 이기시고 사망권세를 깨뜨리신 우리의 대장이 되십니다. 그래서 그 분이 가신 그 길을 우리가 가야 합니다. 그 길이 우리가 살길이요, 영원한 축복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히브리서의 기자는 흩어진 성도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지 아니하고 세상을 따라가고 쫓아가는 성도들을 바라볼 때에 너무나 안타까워서 애타게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유대인 신자 가운데는, 신앙의 연조는 오래되어 가는데 신앙은 아직도 미숙합니다. 그래서 다시 해산의 수고를 해야 할 정도입니다. 믿음과 신앙이 성숙하지 못하니 당연히 열매도 없습니다. 심지어는 예배하기를 게을리 하거나 기피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히10:25절에 보면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이 옴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하면서 권면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진들의 영웅적인 믿음을 본받아서 어떤 고통과 핍박 중에도 믿음을 지킬 것을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날 우리는 로마시대와 같은 그런 핍박이나 박해 같은 것은 없지만, 오늘날은 오늘날 그대로 어려움이 적은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믿음의 선진들과 함께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바라보고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은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리는 사람”으로서,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중보자이십니다. 이 귀한 일을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대대로 맡기셨습니다.(히5:4) 이들은 사람이 부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불러 이 직임을 맡기셨습니다. 그런데 그 대제사장들 중에 특별한 대제사장이 계십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구약의 대제사장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구약의 대제사장들은 짐승을 잡아 그 피로 백성들의 죄를 속하게 하였는데 그 제사는 반복적이며, 완전하지 못한 제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대제사장은 짐승이 아닌 자기의 몸을 제물로 하나님께 드림으로 말미암아 단번에 자신의 몸을 드린 제사이며, 단번에 드린 그 제사의 효력은 영원하였습니다. 다시 반복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함께 히9:11-14절까지 봉독하도록 하시겠습니다. “11)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 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13)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14)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그렇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아론의 아들들과 같은 그런 제사장들보다 우월하신 대제사장이십니다.(시2:7,5:6,시110:4,창14:18) 즉 제사장직만을 수행한 아론 계통의 제사장들과는 달리 예수 그리스도는 왕이시면서, 제사장으로서 기름부음 받으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야 말로 전 인류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유일하신 중보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 분을 의지하는 것이 최고의 축복인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찬송가 340장을 쓴 시인은 이러한 축복을 받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우리 함께 찬송하면서 은혜를 받읍시다.

“구주 예수 의지함이 심히 기쁜 일일세. 허락하심 받았으니 의심 아주 없도다.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 예수 귀한 예수 믿음 더욱 주소서” 예수 믿고, 신앙생활하면서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를 바라보시고, 잘 따라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2. 우리는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왕이시며, 대제사장이라면” 이 분보다 더 존귀하신 분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예수님도 이 땅에 계실 때에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하셨는지 모릅니다. 함께 히5:7절을 봉독하도록 하시겠습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이렇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습니다. 누구에게 눈물로 기도하셨습니까?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그분이 누구십니까? 우리 하나님, 저와 여러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이신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기도하셨습니까? 심한 통곡으로 기도하셨습니다. 눈물로 기도하셨습니다. 간구와 소원을 가지고 기도하셨답니다.

만찬을 하신 후에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서 기도하셨습니다. 그 때의 예수님의 기도하는 모습을 생각하면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 성경을 기록하였을 것입니다. 고민하시고 슬퍼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그리고 또 나가서 얼굴을 땅에 대시고 기도하십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잠이 들어 있습니다. 주님이 또 흔들어 깨우시며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26:37-41) 그리고 또 나가서 기도하십니다. 그때의 예수님의 얼굴에는 땀방울이 온 얼굴을 적시고 흘러내리는 땀방울은 핏방울이 되어 흐릅니다. 누가는 기록하기를 예수님께서 힘쓰시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과 같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눅22:44) 이렇게 기도하시는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 한 말씀하신다면 어떤 말씀을 하실까요?

여러분들은 살아가시는 중에 문제가 생기면 어떤 방법으로 해결하십니까? 그리고 어떻게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까? 우리 예수님은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는 기도라고 하는 방법으로 해결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원하는 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원대로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그리스도를 배우되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배우시기를 축원합니다.

3. 우리는 순종하시는 모습을 예수님께 배워야 하겠습니다.

히5:8,9절을 봉독하시겠습니다. “8)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으로, 왕이심으로, 대제사장이심으로 고난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으십니다. 그런데 여기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이 말씀은 설명이 좀 필요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 고난을 통해 순종하게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예수께서는 처음부터 하나님께 순종하였으며, 순종의 과정 속에서 고난을 당하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셔서 십자가를 지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만일에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셨다면 십자가를 지실 일이 없으셨을 것입니다. 멸시천대 십자가와 조롱과 침 뱉음과 옷 벗김을 당하는 수치를 당하지 않으셔도 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온전한 순종을 하셨기 때문에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진정으로 순종하는 사람입니까? 그것은 고난도 감수하는 사람입니다. 주를 따른다고 하면서도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는 것’은 믿음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왕 중의 왕이시며, 대제사장이심에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니 그 고난을 피하지 아니하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순종하시는 예수님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를 지극히 높여 주셨습니다.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셨습니다. 인류의 구세주가 되셨고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시는 승리자가 되셨습니다.(빌2:9-11)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어떤 고난 중에도 순종하심으로 대제사장으로서 완전한 구원자가 되게 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순종할 수 없을까요?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왕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 순종을 본받아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최후 승리를 안겨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체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십일조 생활과 성수주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는 것입니다. 주일을 거룩히 지키는 것과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약속의 계명이면서 다 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이 있는 계명입니다. 십일조 생활에 순종하면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부어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자들에게 이렇게 큰 은혜와 복을 내려 주십니다. 순종을 생활화하여 혹시라도 닫힌 하늘의 문이 활짝 열려지는 축복이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모쪼록 우리가 본받아야 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왕이시며, 대제사장이십니다. 부디 이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과 순종을 본받아 강한 군사로 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윤정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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