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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석위에 세워진 교회 (마 16: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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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석위에 세워진 교회 (마 16:15-20)

일본 도쿄의 임페리얼 호텔(Imperial Hotel Tokyo)공사를 맡았던 사람은 미국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입니다. 지진이 잦은 지역에 호텔을 짓는다고 선언했을 때 일본인들은 야유와 조소를 보냈습니다. "강진에 버틸 건물은 없다. 불가능한 일에 너무 많은 열정을 쏟지 마라." 하지만 라이트는 주위의 차가운 시선 속에서도 주도면밀한 건축계획을 세웠습니다. 지하 8피트 깊이에 분포해 있는 넓은 점토층이 지진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도록 특수공법을 사용하여 건물을 지었습니다. 총 공사 기간 4년 가운데 기초를 다지는 데 2년을 소비했습니다. 돈도 다른 건물의 배 이상을 들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쓸데없이 돈만 많이 들였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1952년 도쿄 역사상 최악의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모든 건물이 맥없이 무너져 내릴 때 당당하게 버티고 서 있던 건물은 오직 임페리얼 호텔 하나뿐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초의 차이였습니다. 기초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지탱하고 보존합니다. 기초를 닦는 것은 눈앞에 당장 효과가 나타나는 일이 아니기에 지루하기조차 합니다. 돈과 시간도 많이 듭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기초를 게을리 하여 후에 건물과 인생 전체가 무너지는 비극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기초가 튼튼하면 어떤 어려움이 온다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오히려 빛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기초를 어디에 두었는가는 실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교회는 창립 3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30주년의 역사는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과 함께 해온 역사였습니다. 교회와 함께 하셔서 바른 교회로 성장하도록 역사하셨고, 교회에 부여하신 사명을 이루도록 함께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기념 예배를 드리는 우리의 소망이 있다면 우리 교회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라는 간판을 걸었다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아닙니다. 십자가를 달았다고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자선단체도 아닙니다. 도덕을 가르치는 곳도 아닙니다. 사회단체도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이며 우리 자신이 교회입니다.

본문 18절에서 예수께서는 교회를 반석 위에 세우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반석과 베드로를 구별해야 합니다. 반석은 원어로 '패트라' 이고 베드로는 '패트로스'입니다. '패트라' 는 큰 바위를 뜻합니다. 그러나 '패트로스' 는 반석이 아니라 반석의 일부분이요, 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 는 것은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것이 아니고 베드로가 고백한 신앙고백 위에 세우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반석은 베드로의 인격이 아니라 베드로의 신앙고백입니다. 예수께서 교회의 기초를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대의 교회들이 능력을 잃어가는 이유가 기초의 문제에 있는 것이 아닌가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기초가 회복되어져야 합니다. 무엇보다 성경에 나타난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는,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가 세우신 교회입니다

사회 심리학자 에릭 프롬(Erich Fromm)의 "너도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You Shall be God)"라는 책이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주인이 되고 싶어하는 유혹, 주인처럼 행동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고 합니다. 사탄은 내가 마치 인생의 주인인 것처럼, 내가 모든 것을 쥐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하고 그렇게 살도록 만듭니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고백하는 사람들을 통해 세워집니다. 일찍이 하나님의 성도들은 성전에 오르면서 이런 노래를 불렀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 함이 허사로다". 성전을 오르는 그들의 고백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인" 이시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 13절에서 20절을 보면 1인칭 대명사가 6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15절에 보면 "나를 누구라 하느냐", 17절에는 "내 아버지", 18절에는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절에도 "내가 천국열쇠를 네게 주리니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라" 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설립자는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하고, 아무리 많은 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교회는 세워 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교회라도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교회의 주인이십니다.

교회가 흔들리는 큰 이유중의 하나가 주도권의 문제입니다. 누가 교회의 주인이 되느냐로 인하여 교회가 분열됩니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사람이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기업이나 단체의 끊임없는 싸움도 주도권에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기업과 다릅니다. 교회의 모든 주도권은 오직 주님만 가지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다만 우리는 주님의 위탁을 받은 종이요, 청지기일 뿐입니다. 그래야 교회의 기초가 흔들리지 않습니다.

좋은 교회가 되려면 무엇보다 예수님의 주인되심이 지속적으로 강조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주인노릇을 하려는 사람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교회를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는 사람들입니다. 마음대로 안 되면 교회를 어지럽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자기 뜻대로 안 되면 훼방을 놓고 떠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이기에 내 뜻보다 예수님의 뜻이 행사되어져야 합니다. 자신이 손해보고 마음 아픈 일이 있더라도 한 걸음 물러나며 양보하여 교회가 바로 세워지기를 원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모름지기 우리 교회를 세우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신앙고백에 기초한 교회입니다

요한 웨슬리(John Wesley)목사도 한 때는 신앙고백이 분명치 못했습니다. 한번은 모라비안 교도 지도자인 스팡겐 버그와 대화를 하게 됩니다. "당신은 예수를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웨슬리는 "인류의 구세주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예수를 당신의 구주라고 믿습니까?" "그러기를 바랍니다". 영어로 "I hope so" 인데 이것은 예수께 대한 분명한 신앙고백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선교사역이 제대로 될 리가 없습니다. 확신에 서지 못하니 전도를 해도 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목회사역을 중단하려고 선배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러나 "믿고 전할 수 없으면 전하다가 믿으라" 는 선배의 권면에 힘입어 위기를 넘겼습니다. 그러다가 1738년 5월 24일 저녁 8시 45분 경 올더스케일에서 모라비안 교도들의 집회에 참석하였다가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는 자신의 공로로 구원받을 것으로 생각하였었습니다. 그러니 기쁨도 없었습니다. 확신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임을 믿게 되니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감격이 넘쳤습니다. 웨슬리 목사가 새로워졌습니다. 그의 사역도 새로워졌습니다. 신앙고백이 달라진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동일한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고 나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셔서 날 대신 하여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고백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반드시 신앙고백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내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지식적으로 안되고 감정적으로도 안됩니다. 오직 성령의 역사하심 가운데서 이루어집니다. 본문 17절입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니라"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예수에 대하여 신앙의 고백을 할 수 없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들" 이라는 신앙고백 위에 교회와 성도가 세워져야 합니다. 사람 위에 신앙이 서 있으면 안됩니다. 사람 때문에 교회의 출석이 좌우되어서는 안됩니다. 신앙고백이 기초가 되어있는 교회를 통하여서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셋째로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교회입니다

1815년 프랑스의 나폴레옹군대는 웰링톤 장군이 이끄는 영국 군대와의 워터루(Waterloo)전투에서 참패를 하게 됩니다. 영국 국민들은 축제 분위기로 가득 차게 됩니다. 이때 영국에 거주하던 프랑스인이 영국국적으로 귀화를 위해 절차를 밟습니다. 영국 국민이 되고 난 후 친구들에게 인사합니다. 친구 한 사람이 "자네 영국 사람이 되고 나서 달라진 것이 무엇이 있는가?" 물었습니다. 그러자 "달라진 게 있지. 전에는 워털루 전쟁이 패전이었으나, 지금은 승리의 전쟁이 되었다네" 라고 분명히 대답하였습니다. 성도들은 구원받기 전까지는 음부의 권세 아래 놓여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그리스도라 고백하는 교회 안에 들어오면 승리자의 반열에 서게 됩니다. 사탄과 음부의 권세를 꺾는 승리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반석 위에 세운 교회이기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합니다. '음부의 권세' 를 현대인성경에는 '지옥의 권세', 표준 새 번역에는 '죽음의 세력' 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본문 18절입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즉 아무리 강한 사탄의 세력이라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고백 위에 서있는 교회를 절대로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죽음의 권세도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밖에는 음부의 권세가 강력하게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때로 힘들어도 교회를 멀리하여서는 안됩니다. 인간의 능력으로 살아가려고 해서도 안됩니다. 음부의 권세가 미치지 못하는 교회에 속해야 합니다. 아직 교회 안에 들어오지 못하고 구경꾼으로 머물고 있다면 교회 안으로 깊이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세상 어느 곳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주인 되시고 다스리시는 교회만이 안전한 곳입니다. 예수님을 고백하는 교회에 속하며 교회 안에 머무를 때 승리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5절입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라는 외침이 교회의 선언입니다. 사탄을 향해서 명령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진 곳도 교회입니다. 음부의 권세를 이길 수 있는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바른 교회는 예수께서 세우신 교회입니다. 바른 신앙의 고백위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사탄의 세력과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입니다. 부디 30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교회가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가 되어 사탄에 매여 신음하고 있는 이들을 구원해 내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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