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넉넉히 이긴다 (롬 8:31-37)
본문
할렐루야! 37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따라합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 주님으로 인해 넉넉히 이긴다.” 옆 사람에게 인사합니다. “예수님의 힘으로 넉넉히 이기세요!”
1.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시기에 넉넉히 이긴다.
31절 말씀을 보면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2:13절에는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다윗이 어떻게 골리앗 앞에 설 수 있었겠습니까? 그가 칼을 잘 쓰는 장군이었기 때문이었을까요? 그가 전략에 뛰어난 전략가였기 때문이었을까요? 결코 아닙니다. 그가 골리앗 앞에 그렇게 당당하게 서서 그와 싸울 수 있었던 것은 그 안에서 자신을 위해 싸우시고, 역사하시는 그 하나님을 철저하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골리앗과 싸움을 앞두고 사울 왕 앞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짐승의 하나같이 되리라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삼상17:34-37). 다윗이 골리앗 앞에 나가서 싸울 수 있었던 것은 그를 위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일하실 것이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 월요일에 어느 선교회에 방문할 일이 있어 방문했습니다. 그곳에서 일하는 어느 선교사 한분을 만났는데 제가 목사라고 소개하자 그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목사님, 개척교회 하시가 힘드시죠?”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요, 저는 하나님의 주신 은혜로 즐겁게 잘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그분이 또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도 개척교회는 힘들고 어렵다고 하던데... 힘들지 않으세요? “아니요, 저는 교회의 성도들이 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릅니다. 참 좋은 성도들을 만나서 어려움 없이 즐겁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또 “제 아버님도 개척교회 목사님이었는데 참 어렵게 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개척교회의 목사님이 참 어렵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는 겁니다. 이 말을 들이니 정말 마음에 화가 났습니다. “아니 내가 행복하고, 내가 주님 안에서 기쁘게 목회하고 있고, 함께하고 있는 성도들 역시 훌륭한 분들이라고 하는데 왜 자꾸 어렵다 어렵다고 하는 것입니까?”라는 고 큰소리로 말해 주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에 대해 어렵다 힘들다 하는 이유는 자신의 힘으로 자꾸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상처가 생기고, 열등감이 있는 것도 인생을 자신의 힘으로 살려고 하다가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살려는 이런 인생은 누구든지 힘들고 어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동에서 서로 나룻배를 타고 가는 사람이 바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만 노를 저어 항해를 한다면 힘들고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배를 향해 서풍이 불어 준다면 그 배는 노를 젓지 않아도 쉽게 동쪽을 향해 나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힘으로는 모든 것을 하려고 하는 것은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힘을 포기하고 바람을 이용하면 너무나도 쉽게 인생은 평안한 항해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만일 자신의 힘만 믿고, 골리앗 앞에 섰다면 그는 분명 실패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스가랴 4:6절 말씀에는 “힘으로도 되지 않고, 인간이 가진 재주로도 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된다”고 했습니다. 잠언서 19:21절에는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내가 니 안에 있다. 내가 너를 도울 것이다. 내가 네 오른 팔을 붙들어 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의 인생이 평안하고 넉넉히 이기는 인생이 되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이 나를 위해 지금 내 안에서 일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주님께서 내 안에서 지금 나를 위해 일 하신다. 그러므로 나는 넉넉히 이긴다”
2. 주님께서 채워 주시기에 넉넉히 이긴다
두 번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주님께서 채워 주시기 때문에 우리들이 넉넉히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3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아들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제가 어느 날 교도소를 방문했을 때 사형수를 만났다고 합시다. 그 때 이 사형수가 저에게 “목사님, 목사님의 아들 중에 한 명에 저에게 하루만 빌려 주세요.” 왜요?“ ”제가 살인죄를 범했기 때문에 내일 사형집행이 있습니다. 누군가 저를 위해 대신 죽으면 저는 살 수가 있습니다. 목사님은 사랑과 자비가 많으신 분이 아닙니까? 저를 위해 목사님의 아들이 교수형을 당하게 하도록 하루만 빌려 주십시오“ 그렇게 말했을 때, 제가 ”아 그러세요. 그러면, 저는 아들이 많으니 그들 중에 한 아들을 내일 보내드리지요?“라고 했겠습니까? 아들이 아무리 많이 있어도 그 일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외아들 하나 밖에 없는 외아들을 기꺼히 우리를 위해 보내 주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누구를 더 사랑하는 것입니까? 외아들이신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죄인인 이 사람을 더 사랑하시는 것입니까? 놀라운 사실이 아닙니까? 어떻게 친아들보다 당연히 죽어야할 죄인을 더 사랑할 수 있습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입니다. 오죽하면, 야고보서 4:5절에는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라고 했겠습니까?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실패하도록 버려두시겠습니까? 자신의 아들을 주시면서 까지도 우리를 사랑하신 그 하나님께서 우리가 필요한 것을 채워주지 아니하시겠습니까? 분명히 오늘 말씀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했습니다. 빌립보서 4:9절에는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넉넉히 채워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의 어떤 고난에서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들다고 말합니다. 사는 것이 힘들고 어렵다고 말합니다. 사실 우리의 삶은 어렵고 힘든 삶입니다. 왜 우리들의 삶이 어렵고 힘든 줄 아십니까? 바로 우리 앞에 원수 마귀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으려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해서 마귀는 우리에게 7가지 시험과 환난을 주는 영인 것입니다. 35절 말씀에 보면 마귀는 우리를 위하시는 그 위대한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어 내려고 “환난, 곤고, 박해, 기근, 적신, 위험, 칼”이라는 7가지의 환난을 주고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가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시는 그분으로 인해 모든 인생의 경제적인 환난과 육체적인 환난과 영혼의 환난에서 넉넉히 이기는 것입니다.
4세기 중엽에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였던 크리소스톰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얼마나 말씀을 잘 전했던지 사람들은 그를 “황금의 입”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분도 핍박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날 핍박자들이 그분을 잡아다가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어떻게 처리할까 의논했습니다. 첫 번째 의견은 “그를 깊은 감옥에 가두어서, 평생토록 감옥 속에서 썩게 만드십시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안될 말입니다. 그러면 그는 그곳에서 하나님과 교제 시간을 가지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기도 생활을 힘쓸 것입니다.” 그러자, 다른 한 사람이 두 번째 의견으로 “그러면 그를 굶겨서 죽여 버리십시다.”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어느 사람이 “그러면 그는 그때부터 금식 기도를 하면서, 자기가 원하는 천국에 가게 되었다고 좋아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잠시의 침묵 후에 또 한 사람이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그러면 그를 불러내서, 모든 사람들이 보는데서, 심하게 매질을 합시다.” 그러자 또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반대를 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매를 맞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맞는다고 더 기뻐합니다.” 이 의견을 듣고 있던 사람 중에 한 사람이 화를 벌컥 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지 말고 차라리 그의 목을 당장 베어 버립시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러면 그는 순교하면서, 영생의 면류관을 얻게 되었다고 오히려 좋아할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환난과 곤고와 박해와 기근과 적신과 위험과 칼 등과 같은 7가지의 무기를 통해 주님의 사랑을 끊어버리고 믿음이 실패자가 되도록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이 모든 환난과 고통은 주님의 사랑을 통해 우리가 넉넉히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믿어야 합니다. 아들을 주신 그 하나님은 내가 필요한 모든 것을 넉넉히 채워 주셔서 반드시 모든 물질의 환난과 육신의 환난과 영혼의 환난에서 우리를 이기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따라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필요를 채우시고 넉넉히 이기게 하신다”
3. 주님이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기에 넉넉히 이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넉넉히 이길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3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할렐루야!
우리가 넉넉히 이길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의 형편과 처지와 고통과 아픔과 상처를 아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문제를 놓고 주님께서 중보하시면서 기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의 기도도 역사하는 힘이 있고, 비가 오지 않게 하고 비가 오게 하는 힘이 있는데, 하물며 주님의 기도야 얼마나 능력 있는 기도이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주님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어디 주님만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겠습니까? 26절과 2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
성령님도 우리를 위해 기도합니다. 예수님도 우리를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들의 문제를 놓고 형제자매들과 함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문제는 해결 될까요? 안될까요? 당연히 해결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기도에는 응답이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들이 기도하다가 포기하고, 믿음의 삶을 살다가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포기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따라서, 믿음의 경주를 포기하면 안 됩니다. 제가 수요일에 이런 말씀을 전했습니다. TV에서 보니 이제 돌쯤 되는 어린 아이들을 모아 놓고, 엄마에게 빨리 달려가는 시합을 했습니다. 엄마는 약 7-8m 앞에서 아기들을 향해 딸랑이를 흔들면서 아기 이름을 부르면서 소리를 칩니다. 그런데, 아기들이 엄마를 향해 나가다가 중간에 포기를 합니다. 그 원인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스스로 지져서 포기합니다. 막 기어가다가 힘이 듭니다. 무릎이 아픕니다. 그 자리에서 울어 버리고 포기합니다. 아무리 엄마가 딸랑이를 흔들고 이름을 부르며 소리를 쳐도 마음대로 해라하는 심정으로 주저앉아 있습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일어나야 합니다. 포기하기 때문에 엄마 품에 안기지 못하고, 상도 타지 못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의 경우는 말씀을 안 드려도 알 것입니다. 아기들 주위에 아기들을 유혹할 만한 인형과 여러 가지 다양한 색깔의 장남감과 먹을 것을 갔다 놨습니다. 아이들이 달려오다가 먹을 것이나 인형을 보고, 멈춰 서버립니다. 그러면, 끝나는 것입니다. 아무리 엄마가 소리쳐도 아기 이름을 불러도 그 아기는 장난감을 붙들고 그 자리에 앉아 놀고 있습니다. 결국, 그 아이는 결승점을 통과하지 못하고, 자신의 쾌락에 빠져 그 게임은 끝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마귀의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엄마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나가야 합니다. 지금도 성령님과 주님은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간구하는 것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과 성령님과 기도로 합력하여 선을 이뤄야 합니다. 믿음이 경주를 끝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에게 우리는 주님의 사랑 안에서 모든 것을 넉넉히 이긴다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제 문제는 여러분들의 믿음입니다. 포기할 것인가? 달려 갈 것인가? 하는 것이 여러분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첫째로 우리는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는 그 하나님으로 인해 넉넉히 이긴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채우시는 그 하나님으로 인해 넉넉히 이긴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시는 성령님과 예수님의 기도로 인해 넉넉히 이긴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따라 합니다. “나는 나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으로 인해 넉넉히 이긴다” “나는 넉넉히 이길 수 있다” “넉넉히 이길 수 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합니다. 이 말씀을 붙들고 마귀의 7가지 무기를 능히 이길 수 있도록 힘 달라고 기도합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을 채우시는 하나님을 향해 나의 필요를 채워 달라고,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