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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임재안에서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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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3장 4절 ~11절 ' 남겨 두신 이 열국으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여호와께서모세로 그들의 열조에게 명하신 명령들을 청종하나 알고자 하셨더라/5 이스라엘자손은 마침내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아모리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사람과 여부스 사람사이에 거하여/6 그들의 딸들을 취하여 아내를 삼으며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며 또 그들의 신들을 섬겼더라/7 이스라엘자손이 여호와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왕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을 섬겼더니/9 이스라엘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10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리사다임을 그 손에 붙이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11 그 땅이 태평한 지 사십 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 사사시대의 특징은 그대로 이어집니다.여기에 나오는 본문의 내용도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을 섬기자, 하나님은 메소보다미아의 왕 구산 라시다임의 압제를 받게 하시고,이스라엘이 부르짖자 사사 옷니엘을 보내어 구원하십니다. 7절을 보면 '..여호와 목전에 악을 행하여..(..did evil in the eyes of the LORD)하고 표현하고 있음을 봅니다. '목전'이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아주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계심을 알 수 있고 하나님께서 항상 그들과 함께 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구약시대의 '율법,성막,도피성'등을 통해 알 수 있는 데 출애굽기 19장 9절 ~ 1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빽빽한 구름 가운데서 네게 임함은 내가 너와 말하는 것을 백성으로 듣게 하며 또한 너를 영영히 믿게 하려함이니라 모세가 백성의 말로 여호와께 고하였으므로/1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케 하며 그들로 옷을 빨고/11 예비하여 제삼일을 기다리게 하라 이는 제삼일에 나 여호와가 온 백성의 복전에 시대산에 강림할 것임이니' 라고 이스라엘백성에게만 허락한 율법과 성막(26절)을 하나님께서는 수 많은 이스라엘백성에게 친히 그 분의 특별한 임재함 가운데 나타내 주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그들의 옆에서,아주 가까운데서 이렇게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민수기 35장 11절~15절에 '너희를 위하여 성읍을 도피성으로 정하여 그릇 살인한 자로 그리로 피하게 하라/12 이는 너희가 보수할 자에게서 도피하는 성을 삼아 살인자가 회중 앞에 서서 판결을 받기까지 죽지 않게 하기 위함이니라/13 너희가 줄 성읍중에 여섯으로 도피성이 되게 하되/14 세 성읍은 요단 이편에서 주고 세 성읍은 가나안 땅에서 주어 도피성이 되게 하라/15 이 여섯 성읍은 이스라엘 자손과 타국인과 이스라엘 중에 우거하는 자의 도피성이 되리니 무릇 그릇 살인한 자가 그리로 도피할 수 있으리라.'라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섬세하게 은혜와 긍휼을 부어 주시는 도피성이 요단간을 중점으로 동편과 서편에 각각 세성읍씩이나 있어서 그들은 그 곳을 항상 주님의 뜻대로 이용하였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백성은 다른 나라사람과는 다르게 정말로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눈으로 보여지는 하나님과 아주 가까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이 하나님만 찾으면 언제든지 나타나시는 그러한 환경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7절을 보면'..여호와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그러한 은혜로운 환경에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호와목전에서 죄를 짓는 것은 물론이고 하나님여호와를 잊어버리고 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여호와를 거부한 것이 아나라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 표현의 심각성을 아십니까? 제가 이 심각성과 연관하여 마리로랑생의 시를 한번 인용하겠습니다. - 마리로랑생

권태로운 여자보다 더 불쌍한 것은 슬픈 여자예요
슬픈 여자보다 더 불쌍한 것은 불행한 여자예요
불행한 여자보다 더 불쌍한 것은 버려진 여자예요
버려진 여자보다 더 불쌍한 것은 떠도는 여자예요
떠도는 여자보다 더 불쌍한 것은 쫓겨난 여자예요
쫓겨난 여자보다 더 불쌍한 것은 죽은 여자예요
죽은 여자보다 더 불쌍한 것은 잊혀진 여자예요 이 시를 한 번 잘 생각해 보세요. 이 시에서 가장 비참하게 느껴지는 여자는 누가 읽어도 잊혀진 여자입니다.이스라엘 백성은 이렇게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러한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사랑하시기에 또 사사를 보내서 그들을 구출하시는 것일까요? 이사야 49장15,16절을 보면 이렇게 죄를 짓는 이스라엘백성을 사랑하는 맘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찌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그들은 혹시 잊을 찌라도 나는 너를 잊지않겠다'라고 하시고 우리를 항상 기억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떼어 놓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신약을 살고 있는 우리는 구약시대의 율법,장막,도피성보다 더 놀아운 특권속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교회,신구약이 완전히 완성된 성경66권,제사장이 필요없이 하나님께 직접나아갈 수 있는 은혜,그리고 어마어마한 특권인 성령님안에 살 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경험할 수 있는 기도모임,예배,기독교서적,ccm,영화,자연감상,기도수첩,QT 등등이 있습니다. 이렇게 각자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경험할 수 있는 특권들을 소홀히 여기어서는 안됩니다.사람마다 각기 다르겠지만 예전에 제가 20대 초반이었을 때는 영화 '벤허'를 보며 그 특권을 누렸는데 그 영화를 무려 3번이나 봤습니다. 한 번은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 고등학교 2학년 때 봤었습니다. 아카데미상을 11개부분이나 수상한 영화이어서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그 후 20살 때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기쁨으로 하나님의 메세지가 담긴 벤허를 2번째로 보게 되었고 그 후 1년정도가 지나서 어떠한 잃어버린 하나님의 감동,임재를 다시금 회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3번째로 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맘을 갖고 자연속에 들어가서도 그러한 특권을 누릴 수 있는데 미국의 유명한 신학자인 리차드포스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연속에서 걸어보라 긴장을 풀고 하나님의 창조물앞에서 그 우아함을 충분히 경험하라.일출과 지평선,수줍은 듯한 꽃봉우리,거대한 나무들을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려라.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려도 좋을 것이다. 당신이 본 아름다움을 다른이들과 함께 나누도록 하여라.찬송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찬송가 하나를 선택하여 부르라.' 예전에 저도 북한산에 올라 그 아름다움과 웅장함에 압도되어서 절로 찬송가40장'주 하나님 지은신 모든 세계'가 절로 나오는 감격적인 고백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다윗의 시편 8편에서도 '주의 손가락으로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윗 또한 주의 자연과 우주만물들을 직접 눈으로 보며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고백합니다.'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 이러한 하나님의 자연앞에 열린마음이 있을 때 다윗처럼 놀라운 고백을 할 수 있게 됩니다.자연의 잎사귀,숨결,바람,돌맹이 등등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권능과 창조를 나타내는 작품으로 다가옵니다. 이렇게 열린마음으로 자연을 대해야 하고 성도간의 교제를 해야 하며 기독교서적을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고 회복할 수 있는 분명한 특권은 예배입니다. 주일예배말고 수요예배나 평일에 하는 예배는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이렇게 생각합니다.'에이 요새는 나의 영적인 상태가 신통치 않은걸.좀 거룩해지고 예배에 참석해야지.' 그렇게 스스로가 만든 기준에 의하여 예배를 가지앉고 있습니다. 내가 영적으로 침체되었다고 생각할 수록 더 참석해야 합니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영적으로 충만한 사람은 절대로 예배를 빠지지 않습니다.또한 아무리 영적으로 충만한 사람이라도 예배를 빠지기 시작하면 그 사람은 영적으로 다운이 됩니다. 어떠한 회개의 영,기도의 영,하나님의 사랑,성령안에서의 자유함,성령님이 주시는 강력한 권능 등등 이 모든 것은 예배가운데서 강하게 얻을 수 있습니다. 다시 본문 8절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왕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을 섬겼더니..' 여기서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라고 여기서 이스라엘사람들을 구산 리사다임에 파신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돌이키기 위한 또 다른 사랑입니다.'팔다'의 반대발은 '사다'입니다. 출애굽기 6장6절,7절 을 보면'...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 내며 그 고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7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찌라.' 여기서 말씀하시는 '구속( the Redemption)'은 '다른 사람에게서 노예를 산다'라는 상거래의 용어로 값을 지불하고 사는 의미입니다. 즉 애굽의 종살이 하고 있었던 백성을 사신 것입니다.그리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되게 하신것입니다. 신약에서의 '구속( the Redemption)'은 죄의 종인 우리를 예수님의 피값으로 지불하시고 우리를 사셔서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신 것입니다. 골로새서1장 13,14절을 봅시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로마서 3장 23,24절을 봅시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리라.' 고린도전서 6장19,20절을 봅시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게 영광을 돌리라.' 고린도전서19절에 우리의 몸이 우리의 것이 아님은 값으로 우리의 몸이 하나님에게 산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몸을 예수님의 피값으로 사셨습니다. 우리를 예수님의 피로 구속하셨습니다. 노예가 다른 종에게 구속되었을 때는 그 새로운 주인을 섬기고 그 주인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그것이 완전한 구속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피값으로 구속받았기에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예수님을 섬겨야 합니다. 허나 가끔 옛날 주인을 그리워하는 노예도 있습니다. 출애굽기 16장 3절을 보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이라 하면서 과거를 그리워합니다. 과연 이것이 진실이었을 까요? 과연 그들이 고기와 떡을 배불리 먹고 행복했을까요? 출애굽기 3장 7절을 보면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8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 내고 ...' 라고 이스라엘이 고통속에 있었고 그러한 백성을 하나님께서 구출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말했던 고기와 떡은 어쩌다 바로의 생일 때나 애굽의 신들을 위한 축제기간때나 배불리 먹었던 것이었을 겁니다. 이렇게 애굽의 노예살이를 그리워하는 교인이 있습니다. 그러한 일은 현재 내 삶속에 크리스챤으로 만족하지 않고 살 때 옛날에 죄의 노예되었을 때를 그리워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예전친구들과 어울리며 술한잔할 때가 그립게 되고 옛날에 돈 잘벌었던 때가 그립게 되고 옛날에 성적으로 자유분방했던 자기모습을 그리워하게됩니다. 여기에 관해서 갈라디아서5장 17절에서 오묘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의 피값으로 우리가 구원받았음에도 옛날일을 그리워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소욕이 성령의 소욕과 충돌해서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됨으로 만족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우리들은 우리안에 분명히 성령님이 계십니다. 그 성령님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린다고 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성령님의 소욕에 받대되는 육체의 소욕을 따라가면 성령의 소욕과 충돌하여 우리의 소욕은 갈등과 좌절,번민,불안등으로 변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가 만족감을 얻고 성령안에서 행복과 자유함을 얻으려면 성령님께 순복하는 것뿐입니다.그 분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립니다. 그렇게 성령님께 순복하면 과거에 죄의 노예로 있을 때를 그리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주어진 모든 자연감상,경건서적,QT노트,기도노트,찬양,예배,성경의 가르침 등등이 하나님의 임재로 넘쳐흐를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을 메소보다미아왕에게 파셨지만 궁극적으로 이스라엘백성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려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사랑을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보왔습니다.하나님은 폭군이나 독재자가 아니십니다.우리가 그 분에게 구속을 받고 진정으로 자유함을 누리고 그 분과 사랑을 나누는 진짜 행복을 주고 싶어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삶을 우리의 주인 되신 성령님의 주도권에 내어 맡기십시다. 성령님의 소욕에 따릅시다. / 손종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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