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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핵심을 놓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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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핵심을 놓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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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28:18-20


몇 년전 회교권에서 선교하시는 정선교사님께서 저희 교회에 오셔서 헌신예배 설교를 하신 일이 있습니다. 선교사님이 설교를 하시고 간 후 다음날 아침 새벽 기도회를 하러 강대상에 올라갔는데 낯선 시계가 있었습니다. 설교 시간을 맞추기 위해 시계를 벗어 놓았다가 놓고 가신 것입니다. 우리 교회 오시기 전 바로 부산에서 설교하시고 오셨는데 거기에서는 성경을 놓고 오셨습니다. 제가 우리 교회에 오시기 전에 자료를 드릴 것이 있어 노트북 컴퓨터를 가지고 오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노트북을 가져 오신다고 가지고 왔는데 노트북은 빠뜨리고 노트북 가방만 가져 오셨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빠뜨리고 오셨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핵심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공부하는데도 핵심을 잡아야 합니다. 기업을 하는데도 핵심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세계적인 사업 전략 컨설팅 회사인 베인 & 컴퍼니의 이사로 있는 크리스 주크는 성장하는 기업을 10년 동안 연구하여 "핵심에 집중하라"라는 책을 내었습니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가장 강력한 성과를 내는 기업은 1개 혹은 2개의 핵심 사업을 기반으로 새로운 고객, 경로, 제품, 또는 응용 분야로 이를 확장함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 책에서 말하기를 알렉산더 대왕이 4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에 올림포스에서 에베레스트에 이르는 4000마일에 이르는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지역을 정복하고 다스렸지만 그가 죽은 후 단 몇 년도 되지 않아 제국이 와해된 이유는 핵심으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마케도니아라는 핵심 지역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통치 자원을 분산시킬 수밖에 없었고, 제대로 통치하는 것이 처음부터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 생활도 핵심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핵심을 놓치면 전쟁에 나가면서 총을 가지고 가지 않은 군인과 같습니다. 차를 운전하러 가는 사람이 키를 놓고 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신앙 생활의 핵심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을 오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제자를 삼으라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핵심은 제자 삼는 사역에 초점을 두는 것입니다. 교회의 핵심이 무엇이겠습니까? 남전도회 여전도회의 핵심이 무엇이겠습니까? 개잡아 먹는 것이 아닙니다. 기름 파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제자 삼는 사역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1. 왜 그렇습니까?
1) 이 일이 예수님의 최대 관심사이고 우리가 이루어 드려야할 유언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부활하여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마지막 승천하시면서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2) 이 일이 예수님이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막 1: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막 2:17)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3) 이 일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막 1:17)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베드로와 안드래가 고기잡는 것을 보고 하신 말씀입니다.
(막 3:14-15)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
오늘 우리 시대는 모든 것이 진리다라는 상대주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포스트 모더니즘, 다원주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핵심을 잃어 버리면 안됩니다. 핵심을 붙들어야 합니다. 복음 핵심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병원은 병고치는 데 핵심이 있습니다. 군대는 적을 물리치는 데 핵심이 있습니다. 학교는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핵심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행해지는 다섯 개의 기둥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배, 교육, 봉사(구제), 전도, 친교입니다. 그런데 교회 활동의 축은 바로 제자를 삼는 사역입니다. 사람을 구원시키는 구원의 방주로 사용되는 것은 교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고 가장 고귀한 일입니다.
1904년 영국 국왕 에드워드 7세는 구세군을 창설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복지혜택을 준 윌리엄 부드를 왕실로 초청,격려했습니다.왕은 격려 끝에 "그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왕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주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구세군 대장] 윌리엄 부드는 겸손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국왕 폐하,제가 바라는 것은 한 명의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는 것입니다.이것만이 저의 희망이요,야망입니다.그리고 최대의 기쁨입니다"

2. 우리가 어떻게 제자를 삼을 수가 있겠습니까?
"5대 핵심능력으로 나를 리모델링하라 "라는 책이 있습니다. 정신과의사 겸 와다 히데끼 인스티튜트 대표 와다 히데끼가 쓴 책입니다. 그는 그 책에서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는 진정한 방법은 자기 계발이라고 말합니다. 21세기 성공 비즈니스맨의 필수요건은 5대 핵심능력에 있다고 말하면서 그 5대 핵심능력이란 '신지식능력, 추론능력, 메타인지력 ,공감능력, 대인관계력'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으로 리모델링되면 생존 경쟁에서 유능한 비즈니스맨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영적 전쟁터에서 승리하기 위한 제자 삼은 사역의 원리를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제자 삼는 사역의 핵심 진리 4가지 원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핵심 진리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1) 먼저 가서 제자를 삼으라는 말씀입니다. 희생의 원리입니다. 헌신의 원리입니다. 희생없는 제자 사역은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제자는 우연히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희생의 거름을 통하여 피어나는 꽃입니다. 예수님의 희생의 원리를 보십시오. 만 왕의 왕 예수님께서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내려 오셨습니다. 말 구유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를 삼기 위해 찾아 가십니다. 물고기 잡는 베드로에게 갔습니다. 세리 마태에게 갔습니다. 예수님이 가서 나를 따르라고 했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만들겠다고 불렀습니다. 세상의 위대한 스승들의 제자가 되려면 돈을 싸들고 가야합니다. 그래도 받아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원리는 다릅니다. 주님 스스로 우리를 찾아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의 원리이고 은혜입니다. 결국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하였습니다. 목숨을 버리기까지 사랑하였습니다. 베드로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희생합니다. 우리가 제자를 삼기 위해서는 우리의 희생이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는 우리가 희생하지 않고는 다른 사람을 제자로 삼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가야 합니다. 낮아져야 합니다. 저들의 수준으로 내려가 이해해야 합니다. 물질의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시간의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자존심을 버려야 합니다. 때로는 수모를 당해야 만 합니다. 리빙스톤과 슈바이처 같은 사람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아프리카 사람들이 복음을 듣게 된 것입니다. 몰로카의 문둥이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은 다미앙 같은 분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토마스 목사와 같은 분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 민족이 이만큼 복음화된 것입니다. 1866년 토마스 목사는 우리 민족을 구원시키기 위해 목숨을 내어 놓는 희생을 감당하였습니다. 1866년 토마스 목사는 중국에서 선교사를 하다가 24살에 자기 부인이 열병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토마스 목사는 계속 선교 해야 할 것인 아니면 영국으로 돌아가야 할 것인지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그때 한국에서 온 천주교 신자 김자평과 최선일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한국 땅에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이 없이 죽는다는 말을 듣습니다. 이 말을 들은 토마스 목사는 영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한국 땅으로 가기로 결정하고 드디어 미국의 셔먼호라는 배를 타고 한국 대동강에 들어옵니다. 그때 당시에 평양 감사였던 박규수는 셔먼호에 불을 지릅니다. 거기에 탔던 많은 사람들이 대동강에서 익사했고 토마스 목사도 가지고 갔던 한문 성경을 대동강에 던지면서 "이 성경이 녹아 흘러가는 물을 마시는 자마다 복음이 들어가게 하옵소서. 이 성경이 녹아 흘러가 땅을 적실 때마다 복음의 땅이 되게 하옵소서." 하고 대동강에 뛰어듭니다. 하지만 그는 잡혀서 대동강 양각도 섬 위에서 사형을 당하게 됩니다. 망나니 박춘권이라는 사람이 칼을 들고 그의 몸을 돌면서 망나니 춤을 출 때 토마스 목사는 성경을 들고 "형제여, 예수 예수" 하고 외칩니다. 그때 망나니가 칼로 팔을 내려칩니다. 다른 손으로 성경을 들고 "예수 예수" 할 때 또 다른 쪽 팔도 내려칩니다. 그래도 "오, 형제여 예수 믿으시오." 할 때 그의 목을 내리쳤습니다. 드디어 토마스 목사는 대동강에서 목이 잘려 죽었습니다. 그때 토마스 목사가 대동강에 던졌던 성경을 주운 최초의 어린 아이가 최치량이라는 아이였습니다. 그 집이 여관이 되었는데 주운 성경을 가져다가 그 집 벽에 발랐습니다. 20년 후에 존 마팻이 선교사로 평양에 들어가서 어느 여관집에 들어갔는데 한문 성경이 벽에 붙어 있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최치량에게 묻습니다. 그때 최치량이가 "내가 어렸을 때 대동강에 갔다가 예수쟁이가 목이 잘릴 때 던진 그 성경을 주워다가 이 벽에 발랐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드디어 그는 존 마팻 선교사를 통해서 전도를 받고 장로가 됩니다. 그 후에 토마스 목사의 목을 쳐 죽였던 박춘권이는 김익두 목사님의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예수를 영접한 후에 자기 과거를 회개하면서 자기 집을 교회에 바치고 예수를 믿어서 장로가 됩니다.
우리가 얼마나 육적 자녀를 위해 희생합니까? 이것의 1/10만 영적 자녀를 위해 헌신하면 세상은 변합니다. 와그너는 전도 은사받은 사람 10%가 있고 이 중 이일에 헌신한자는 0.5%라고 말한 것을 읽어 보았습니다.

2) 세례를 주어 제자를 삼아야 합니다. 이것은 성령의 원리입니다. 영적 생명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제자를 삼는 두 번째 원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것입니다. 핵심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내 힘이 아닙니다. 결국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성령의 능력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입니다. 사도행전을 보십시오. 엄밀한 의미로는 성령의 행전입니다(행2:47; 4:4; 6:7; 8:12, 9:31,35; 11:21; 14:1; 21:20).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입니다. 영적 새생명으로 태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되어지는 일은 아닙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 우리 마음대로 태어 났습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어머니와 아버지에 의해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영적 생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새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을 은혜라고 말씀합니다.
(엡2:8-9)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사울이라는 청년을 보십시오. 예수님을 부정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을 학살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는 완전히 변했습니다. 율법주의자요 바리새인이요, 교만과 강퍅한 그를 주님은 산산히 부서뜨려버렸습니다. 그의 삶은 변하였습니다. 이제 주를 그리스도로 시인하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고전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무 상관이 없는 것 같은데 성부 성자 성령께서 우리를 변화시켜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게 하고 변화시켜 주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 권능받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행1:14). 회개해야 합니다. 순종해야 합니다.

3) 말씀을 가르쳐 제자를 삼아야 합니다.
말씀의 원리입니다. 육신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음식이 필요합니다. 영적 성장을 위해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주님께서 분부한 모든 것입니다. 이 핵심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말씀이 우리를 성장시킵니다. 말씀이 성장시키고 말씀이 위로하고 말씀이 교훈하고 말씀이 가치관을 만들어 주고 말씀이 세계관을 만들어 줍니다. 말씀이 힘입니다. 시편 19:7-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우리의 사상이나 이론이나 경험이 아닙니다.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아이를 낳아 놓고 방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의 영은 말씀으로 양육되어야 합니다. 예배시간에도, 성경 공부시간에도 구역 공과를 통해서도 우리는 말씀을 듣고 읽고 배우고 외워 말씀으로 우리를 성장케 하고 말씀으로 다른 사람을 성장시켜야 합니다. 말씀은 인격을 변화시킵니다. 삶을 변화시킵니다. 방향을 전환하게 합니다.

4) 지키게 하여 제자를 삼아야 합니다. 실천의 원리입니다. 열매를 말합니다.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입니다. 말씀은 감상용이 아닙니다. 지적 교양만을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말씀은 삶으로 실천되어야 합니다. 변화되어야 합니다. 열매가 맺혀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음 믿음에 불과합니다. "(약 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작은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들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을 개혁했습니다. 말씀은 순종을 통해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가지 말씀을 실천하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지난 주간 우리 교회 어느 집사님이 경영하시는 회사 본사를 방문하였습니다. 사훈을 보니 진실이었습니다.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회사의 사훈으로는 특이한 것이었습니다. 신학교도 아닙니다. 홈페이지를 보았습니다. 회장의 신년사가 있었습니다. 내용을 보니 진실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회사가 다 속인다하여도 진실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실천적인 신앙입니다. 작은 것 하나라도 우리가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실행할 때 하나님의 나라는 그곳에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제자란 "일정한 계획에 따라 배울 것을 약속하고 선생의 특별한 행동과 지식을 받아들여 점진적으로 선생을 닮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 부르는 믿음의 사람(행11:26), 예수께 배우는 사람(마11:29), 성령이 충만한 사람(행6:3), 예수 그리스도께 희생적으로 헌신한 사람(눅14:26-27), 자신이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주님의 명령에 따라 다른 사람을 자신의 제자로 삼는 재생산을 하는 일군(마28:19)으로 살아야 합니다. 어느 과정을 거쳐 훈련된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일생동안 주님을 배우며 주님의 주권 아래 살아가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초대교회를 보십시오. 그들의 삶이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사도행전 2:41절 이하를 보십시오. 4장 32절 이하를 보십시오. 9장 31절을 보십시오. 이것을 우리가 놓쳐서는 안됩니다. 말씀이 생활화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3. 이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주님이 약속해 주신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언제까지입니까? 세상 끝날까지입니다. 그분은 누구이십니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분이십니다. 구주이십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지배하시고 섭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물질이 없다고, 시간이 없다고, 재능이 없다고, 힘이 없다고, 용기가 없다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은 구원의 확신이 없다고 합니다. 전도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합니다. 겁이 난다고 합니다. 방법을 모른다고 합니다. 해야할 다른 일들이 너무 많다고 합니다. 본 교회가 멀다고 합니다. 행실이 모범이 못된다고 합니다. 전도할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순종하려는 각오만 해보십시오. 그러면 우리 성령님께서 도와 주십니다. 영혼 구원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성령께서 하시는 사역에 우리가 쓰임받는 것입니다. 제자화 사역은 우리 주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사역입니다. 이 일에 우리가 쓰임받아야 합니다. 주님 말씀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8)"
성령의 권능을 받으면 됩니다. 요즈음은 건물 건능을 받아야 한다고 하지만 건물 건능을 못받아도 성령의 권능을 받으면 됩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120명의 성도들을 보십시오. 모여 기도합니다. 기도하다가 성령의 권능을 받습니다. 그러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들은 연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저주하고 부인한 사람들, 도망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통하여 세상이 변하였습니다. 1세기 세계 선교를 감당했던 안디옥 교회를 보십시오. 작은 무리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령의 권능을 받고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이 지역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고 세계 선교를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핵심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핵심은 제자 삼는 사역에 있습니다.

우 리는 핵심을 놓치지 않습니다./마28:18-20/ 2003.2.2/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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