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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대한 마지막 평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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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대한 마지막 평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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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2:13-21


어제 신문을 보니까 "복권 사상 최고액 주인공은 미국 백만장자, 3천 7백 80억원 돈벼락"이라는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무슨 내용인가 읽어보았더니 미국에 파워볼 복권이 있는가 봅니다. 이 복권에 여러개의 건설업체를 소유하고 있는 백만장자 건설그룹 회장인 앤드루 잭 휘태커(55)가 당첨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우선 매년 나눠 받는 대신 한꺼번에 현금으로 달라고 했답니다. 이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 보았더니 그는 아마 교회를 다니는가 봅니다. 먼저 그 돈의 10%는 교회에 십일조로 내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경비원들이 있는 고급 주택단지로 집을 옮기겠다고 했습니다. 최근 불경기 탓에 해고한 근로자 25명을 다시 복직시키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것으로 인해 내 생활이 크게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답니다. 지혜로운 사람같습니까? 어리석은 사람같습니까? 우리나라도 지난 3월 달에 55억원 복권 당첨자가 있었는데 우리 성도님이 이런 복권에 당첨된다면 어떻게 사용하겠습니까? 사람은 두 가지를 보면 금방 그 사람이 지혜로운가 어리석은가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미래가 어떻게 되는가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냐에 따라 지혜로운가 미련한가를 알 수 있고 그 사람의 미래를 알 수 있습니다. 오래 전 어떤 자매 중매를 하는데 자신은 남자의 무엇을 보겠느냐고 물어 보니까 그 사람의 하루의 생활을 물어 보고 결혼하겠다고 했습니다. 상당히 지혜로운 자매라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의 하루 생활은 결국 그의 일생의 축소판입니다. 둘째는 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신용카드로 모든 것을 사용한다면 그 신용카드 내역을 보면 그 사람의 미래를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지혜로운가 어리석은 가를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는 돈 사용에 대한 어리석은 사람에 대하여 나옵니다.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세상에 살면서 호의 호식하며 남부럽지 않는 삶을 산 사람입니다. 요즈음으로 말하면 사업도 잘되고 주식 투자를 했는데 많은 돈도 벌고 부동산에 투자 했는데 목 좋은 곳에 투자하여 졸지에 땅값이 10배 뛰어 오르고 기업은 계속 발전하여 쌓아 둘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은 돈을 벌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 부러워했을 것입니다. "야 저 사람 대단하다" "날마다 돼지 꿈을 꾸는가 보다." 우리나라 복권 당첨의 1/4은 돼지 꿈 꾸었다고 하지 않아요. 이번에 대통령 당첨자도 돼지 저금통 모으지 않아요. 복권 사서 돼지 꿈 꾸기 위해 돼지 저금통 품고 잔다고 하지 않아요. "나도 저렇게 한 번 살아 보았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부러움을 눈초리를 보내며 그의 출세와 성공에 부러운 눈초리를 보내었을 것입니다. 가는 곳마다 그는 부로 인하여 대접을 받았을 것입니다. 많은 술집의 여인들이 따랐을 것입니다. 정치인들이 만나자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평가는 달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부자에게 어떤 평가를 하고 있습니까? 20절을 한 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어리석은 자"라고 간단하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지혜롭지 못한 자라는 평가입니다. 그의 인생의 마지막 평가는 어리석은 인생을 살았다는 평가입니다. 부자는 항변할 수 있습니다. "아니 제가 왜 어리석습니까?" "지혜롭게 돈을 불렸습니다." "재산 형성의 법칙에 따라 부동산, 주식, 현금 삼 등분하여 투자하여 돈을 벌었습니다." "내가 남의 것 도둑질을 했습니까? 열심히 노력하여 돈을 번 것입니다." "지혜 없이 어떻게 이렇게 돈을 벌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고 내가 돈으로 사치를 했습니까? 아니면 바람을 피웠습니까? 백화점에 가서 낭비를 하였습니까?"
예수님은 사람들은 다 부러워하는 그의 인생을 왜 어리석은 자라고 평가했을까요? 한 해가 다 지나가는 마지막 주일입니다. 올 한해를 우리 인생을 보고 예수님은 어떤 평가를 할까요? 아니 우리 인생의 마지막에 우리 예수님은 우리 인생에 대하여 어떤 평가를 해 주실까요? 왜 오는 성경에 나오는 부자는 어리석다는 평가를 받았을까요?

1. 영혼을 물질로 만족할 수 있다고 생각한 삶이었기 때문에 어리석은 인생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19). 우리는 영혼의 만족을 물질로 채우려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됩니다. 단지 부자였기 때문에 어리석다고 평가받은 것이 아닙니다. 부자로 사는 것이 죄가 아닙니다. 열심히 노력해 청부가 되는 것 그것은 미덕이고 축복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 부자였습니다. 요셉 부자였습니다. 야곱 부자였습니다. 이삭 부자였습니다. 다윗, 솔로몬, 욥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의 부에 대하여 한 번도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구약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신약도 마찬가집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마련한 아리마대 요셉 부자였습니다. 초대 교회 바나바 부자였습니다. 카아네기, 록펠러 부자였습니다. 부자로 사는 것이 어리석은 것이 아닙니다. 왜 어리석은 것입니까? 이 부자는 많은 재물을 쌓아 놓고 자신의 영혼에 대하여 독백을 합니다.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합니다. 영혼의 존재를 인정합니다. 그런데 그 영혼이 어떻게 참 평안을 누리고 어떻게 참 안식을 누리고 어떻게 참 배부름을 누리고 어떻게 참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가는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재물로 영혼의 참 만족을 누릴 수 있을 것처럼 착각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어리석은 것입니다. 배부르지 못할 것으로 영혼의 배부름을 유지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소유로 행복을 유지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습니다. 많은 돈을 쌓아 놓는다고 행복할까요? 오늘 성경의 부자를 보십시오. 걱정 근심에 쌓여 있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여기 심중에 생각한다는 것을 아주 골똘하게 생각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이 자신의 삶을 사로잡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어 걱정합니다. 쌓고 마시고 즐기면 행복해 집니까? 즐기는 것이 행복이 아닙니다. 즐거움이라는 것은 즐거워하는 행동의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입니다. 반면에 행복은 즐거움이라고 하는 행동을 체험한 후 찾아오는 감정을 말합니다. 즐겼다고 반드시 행복이 따라오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껏 대화방에서 이름 모르는 사람과 즐겼다고 해 보십시오. 행복합니까? 밤새워 폭탄주를 즐겼습니다. 행복합니까? 외간 남자와 여자와 로맨틱한 꿈을 꾸며 즐겼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행복할까요? 아닙니다. 참된 행복이 쌓아 놓고 먹고 마시며 즐기는 것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인간은 좀더 성숙한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잇씁니다. 우리의 영혼은 물질로 만족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는 물질로 만족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영혼은 그것으로 되지 않습니다. 항상 공허하고 비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시 107:9)"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사 58:11)"
우리 주님을 통해 우리가 영혼의 참 만족함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 영혼의 배부름은 말씀을 통해 우리 영혼의 기쁨과 즐거움은 기도와 찬송, 전도를 통해 영적 생활을 통해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재물을 쌓아 놓는다고 영혼의 만족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 찬송: 주님 한 분 밖에는 아는 사람 없어요 가슴 깊이 숨어 있는 주를 사랑하는 맘 주님 한 분밖에는 기억하지 못해요 처음 주를 만나 그 날 울며 고백하던 말 나는 행복해요 죄사함 받았으니 아버지 품안에서 떠나 살기 싫어요 나는 행복해요 사랑이 샘솟으니 이 세상 무엇이든 채우고도 남아요)
그래서 시편기자는 시편 3편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시 23:1-6)"

2. 영혼을 말하면서 영혼의 주인 하나님께는 부요치 못한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땅에서는 부요하고 하나님께는 가난뱅이가 되어서는 아니됩니다.
부자의 생각은 오직 자기를 위해 재물을 쌓는데 집착합니다. 자기를 위해 쌓는 것이 부자의 생각 전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쌓아 놓자"라는 말은 한 마디도 없습니다. 21절에 부자의 인생을 하나님은 어떻게 한 마디로 요약하고 있습니까?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입니다. 재물에 대한 철학이 없습니다. 그저 자신을 위해 쌓는 재미로 사업을 하고 쌓은 재미로 장사를 하고 쌓는 재미로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자식들도 몰라 보는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부요치 못한 자 가난한 자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재물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서 쓰라고 준 것인데 재물관리를 잘 못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하나님 보시기에 어리석겠습니까? 자기 죽음이 다가 오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입니다.(히9:27) 죽음 후에는 내세가 있고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모르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재물을 가지고 영원히 누릴 것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20절입니다. 내 영혼 가져가면 그것 누구 것이 되겠느냐? 아무리 쌓아 놓아도 오늘 밤 영혼 거두어 가면 그것 네 것이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쌓아 놓는 자가 진정 부자입니다. 돈이 있으면 얼마든지 오래 살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부가 생명을 보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유명한 C.S. 루이스는 '교만한 사람은 항상 눈을 아래로 깔고 사람을 보고 사물을 본다.’부가 자신을 사로잡으면 위를 보지 못합니다. 살아계서서 자신의 마음까지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다.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자신이 생명의 주인인 것처럼 살아갑니다.
약5:1-6을 보십시오.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붐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
물질에 대하여서 결국 두 종류이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에 대하여 부요한자와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입니다. 자신에 대하여 부요하기를 힘쓰는 자는 늘 탐욕의 노예가 되어 살아갑니다. 밑빠진 독처럼 끝없이 쌓기에 급급하며 만족을 모르며 살아갑니다. 남과 끊임없이 투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부요한자는 물질의 노예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종이 되어 물질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물질로부터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탐심은 우리 삶의 주인되신 하나님을 망각하게 합니다. 물질을 어디에 쌓겠습니까? 하나님께 쌓겠습니까? 나의 창고에 쌓아 놓겠습니까? 주님 말씀합니다. 하나님께 쌓아 두는 방법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잘 쓰는 것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 6:19-21)"

3. 탐욕으로 인하여 진정한 행복이 이웃과의 삶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부자는 자기 자신만을 아는 사람입니다. 아주 극단적 이기주의자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라는 말이 여섯 번 나옵니다. 다른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네것도 내것이고 내것도 내것입니다. 이 비유는 예수님이 탐심에 대하여 교훈하시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끝없는 탐심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그의 인생관이 어리석습니다. 자기 밖에 모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농사지은 것을 모릅니다. 햇빛을 주시고 공기를 주시고 때에 따라 비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모릅니다. 자기 혼자 농사지은 것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농사를 지어 소출을 얻은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소유가 넉넉하면 함께 나누면 나눈만큼 더 큰 행복이 올텐데 그는 많은 것으로 인하여 걱정을 합니다. 그리고 멀쩡한 곡간을 헐어 버립니다. 더 크게 짓기 위해서입니다. 쌓을 것이 없어 걱정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으로 이웃과 나눌 생각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밭의 풍성한 소출을 자기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눅12:16) 회사가 잘되며 모든 것이 자기 힘으로 된 것으로 착각합니다. 근로자와 함께 나눌 줄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물질을 주신 뜻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행복론"에서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네가지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명랑한 정서,건강한 몸, 정서적 평온, 약간의 외부 자산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재산에 대하여 세 가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당연히 필요한 재산, 두 번째는 여유 있는 재산. 남에게 베푸는 재산입니다. 셋째는 불필요한 재산이라고 했습니다. 이 불필요한 재산 때문에 근심 걱정하고, 건강도 잃어버리고, 가정도 잃어버리고 자기 명예도 잃어 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질을 통해 진정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나누어야 합니다. 진정한 행복은 소유를 쌓아 놓는데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소유지만 나누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이 있다고 해도 아버지가 자식들과 나누지 않으면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없습니다. 단지 우리는 청지기에 불과하는 것입니다. 잠깐 맡은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이 굶주리며 죽어 가는데 나 홀로 큰 곡간 짓고 행복하게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나누어야 합니다.
지난 2000년 전세계 출생 인구의 41%에 해당하는 약 5000 만 명의 어린이가 출생 신고조차 하지 못해 이름과 국적, 공식 신분을 부여받지 못한채 살고 있습니다.(유엔아동기금UNICEF)
지금도 13 억 명이 하루 1달러 이하의 돈으로 생활하는 최극빈자들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전세계에서 매일 2만 5000명이 기아와 빈곤으로 숨지고 있으며, 매년 5세 미만 어린이 600만명이 굶어죽고 있습니다. 지구상에 글자를 읽지 못하는 20억 인구가 있고 먹지 못하여 죽어가는 사람들이 한해 2000만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스탠포드 의대의 의학박사인 필립 M. 하터는 좋은 집, 먹을 것이 있는데다 글을 읽을 수 있고, 컴퓨터를 가지고 있다면, 아주 엘리트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라고 합니다. 만약 고통, 체포, 고문, 혹은 심지어 죽음의 공포 없이 매주 교회를 다닐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는 곧 지구상 30억 인구가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을 누리는 행운아라고 합니다. 냉장고에 먹을 것이 있고, 몸엔 옷을 걸쳤고, 머리 위로는 지붕이 있는데다 잘 곳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세상 75%보다는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고, 은행에 돈이 있고, 지갑 속에도 있고, 어딘가 잔돈만 모아 놓은 동전통도 있는 사람이라면, 지구상에선 상위 8%의 부자에 속한다고 합니다.
6.25전쟁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이 60달러에도 안된 나라입니다. 이제 만 달러를 내가 보고 있습니다. 이차 대전 이후 신생 독립 국가로 세계 몇 개 되지 않는 나라로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고 있는 나라입니다. 우리 나라도 이제 세계 12위 권 안에 드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세계 선교사 162개국에 만여명을 보낸 나라입니다. 우리는 이웃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만만만 생명운동을 합니다. 제 삼 세계 배우지 못한 아이들 기르는 것입니다. 한 명이 10000원씩 만명을 기르자는 운동입니다. 5년 전 개척할 때부터 시작하였습니다. 이제 많이 발전하였지만 더욱 우리는 힘을 모아야 합니다. 좀더 멀리 높이 보아야 합니다. 나만 내집만 내 교회만 내 나라만 보지 말아야 합니다. 나눔의 축복을 우리가 누려야 합니다. 마지마 때 지혜 있는 사람으로 평가받아야 합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마지막 때 오른 편 있는 자들과 왼편 있는 자들을 평가합니다. 복받은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고 말씀합니다.(마 25:34)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마 25:35-36)" 언제 그런 일을 했느냐고 합니다. 그 때 예수님 말씀합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 25:40)"

나에 대한 마지막 평가는 ?/누가복음12:13-21/김필곤 목사/2002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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