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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자기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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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자기 개혁
본문 : 출애굽기 3장 1 절- 12 절

오늘 아침 읽은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의 자기 개혁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는 모세가 위대한 믿음으로 놀라운 결단을 하게 된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 엘 민족이 애굽에서 노예 생활할 때 애굽 궁중에서 그것도 바로 왕의 공주의 양자로 자랐습니 다. 육신편으로 말하면 이 이상 행운이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나이 40이 되었을 때 그 형제 이스라엘 자 손, 자기 민족을 돌볼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애굽의 궁중에서 바로 왕의 공주의 아들로 그냥 지낼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고생하는 자기 민족 히브리 사람들 과 운명을 같이 할 것인가? 이 둘 사이에 끼어서 모세는 몸부림쳤습니다. 그때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 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라는 히브리서 11장 24절 말씀처럼 그는 자기 민족 을 위해 현실의 안일을 박차고 미련 없이 일어나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사실 세상의 지위와 부 귀 영화를 포기하고 고난을 받으러 나선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는 믿음으로 이 고귀한 결단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와 같은 고귀한 결단을 한 것으로 모세가 당장 그의 민족을 노예 생활하는 데서 구출해 내는 위대한 과업을 수행하게 된 것은 아닙니다. 모세는 생모 요게벳의 무릎에서 히브리 민족의 정신과 경건한 여호와 신앙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것으로 짐작됩니다. 바로 그 정 신과 신앙이 그의 일생을 바로 이끌어 주고 그의 삶을 윤택케 한 정신적 또는 영적인 자본이 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면서도 모세는 한편으로 그 당시 세계 문명의 첨단을 걷고 있는 애굽의 문명을 궁중 학자들로부터 모조리 습득할 수가 있었습니다. 학술을 통달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 고 정치하는 법도 배웠습니다. 본래 침착한 성품의 소유자인 모세는 천재적인 그의 두뇌로 오랜 시일에 걸쳐 40년 간이나 쌓아 올린 그의 실력은 자타가 공인할 정도로 굉장한 수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청년 모세는 자신이 생겼습니다. 히브리 민족이 섬기는 하나님은 애굽 민족이 섬기는 신하고 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분이셔서 신앙적인 배경 또한 튼튼했습니다. 더구나 애굽의 모든 권세와 보화를 포기하고 나설 정도의 불타는 애국심과 정의감은 어느 누구에도 지지 않는 것을 자부했 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지식이나 정치적인 판단력은 애굽 사람의 높은 수준을 넘어서고 있었습 니다. 모세의 정치 역량이나 수법은 결코 애굽의 위정자들보다 못하지 않다는 자신을 가지고 있 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이만하면 이제 내가 고생하는 내 민족을 위해 나서기만 하면 온 민족이 나를 이해하고 전적으로 따르겠지. 이와 같은 자신감을 가진 청년 모세는 한 번 자기 민족 히브리 사람이 노동하는 곳에 가 보았습니다. 그때는 히브리 사람들이 그 조상 요셉의 은공을 알지 못하는 새 왕에 의해서 말할 수 없는 학 대를 받고 있을 때였습니다.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한다는 명목으로 히브리인 남녀를 끌 어다가 흙을 이기는 것과 벽돌 굽기를 시키고, 또한 그들을 농토에 몰아 넣고 뜨거운 아프리카 의 태양 아래 농노처럼 혹사하고 있었습니다. 그 형편은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비참했습니 다.

모세가 현장에 나가 그 광경을 직접 목격하니 현실은 짐작했던 것보다는 더욱 참혹했습니다. 과로 때문에 지쳐서 쓰러지면 애굽인 감독관들은 회초리로 무자비하게 내려칩니다. 등에는 회초 리 자국이 나고 때에 따라서는 피가 흐릅니다. 이 광경을 볼 때 청년 모세는 혈관 속에서 피가 거꾸로 솟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의 정의감, 그의 애국심이 그를 가만두지를 않았습니다. 아무 런 잘못이 없는 자기 동족을 지나치게 학대하고 매질을 하는 애굽인 감독자를 보는 순간 모세의 눈에는 불이 붙었습니다. 온몸이 불덩어리가 되었습니다. 순간적인 의분이 일시에 폭발해서 그의 억센 주먹으로 애굽인 감독자를 쳤는데 당장 그 자리에서 죽어 버렸습니다. 아마 급소를 맞 은 모양입니다. 사실 모세는 애굽인 감독을 죽이려고까지 한 것은 아니었는데 죽고 말았으니, 모세는 당황한 나머지 시체를 모래밭 속에 매장시켜 버렸습니다. 히브리인의 울분은 그치고 모세의 마음은 한 편 통쾌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만하면 혁명의 지도자로 민족 앞에 서도 될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이튿날 다시 한 번 히브리인들이 강제 노동 하는 곳으로 나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는데 자기 동족 히브리 사람끼리 심각하게 싸우고 있는 것 이 아닙니까? 모세는 이 광경을 볼 때 분한 마음도 금할 수가 없었고 슬픈 마음까지 생겼습니 다. 아니, 애굽 사람들한테 학대받는 것만도 억울해서 죽을 지경인데, 이런 때일수록 민족이 하 나가 되어 나아가야지 같은 민족끼리 싸우다니. 모세는 얼른 달려들어 싸우는 사람을 뜯어말렸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요? 당신들은 동족이 아 니요? 이런 때 우리끼리 싸우면 어떻게 합니까? 너무 안타까워서 속으로는 울면서 말했습니다. 아, 그랬더니 싸움을 하던 히브리인의 반응에 너무 놀랐습니다. 천만 뜻밖에 모세의 말에 이렇 게 반응을 하고 나섰습니다. 그는 모세를 밀어뜨리며 누가 당신을 관원과 재판장으로 세웠소? 당신이 어제는 애굽 사람을 쳐죽이더니 오늘은 나를 죽이려 하시오? 했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 간 지금까지 모세의 마음에 가득찼던 자신감이 한꺼번에 무너지고 마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의 학문도, 그의 정략도, 그의 불타는 애국심도, 그의 굽힐 줄 모르는 정의감도, 그의 전적인 민족 을 위한 희생도 그의 동족에 의해서 본때 있게 채이고 말았습니다.

모세가 모든 것을 체념해 버리고 발길을 옮겨 찾아간 곳이 바로 미디안이라는 광야였습니다. 사람 구경을 하기 어려운 황량한 벌판, 끝없이 전개되는 지평선에 모세는 홀로 서 있었습니다. 모세가 여기에 도망온 것은 애굽 관권으로부터의 망명이라기보다는 자기 개혁의 필요를 느껴서 인간을 피하여 자연의 골방을 찾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신앙, 애국심, 지식, 더구나 애굽의 위정자들에게서 배운 정치 수법 같은 것은 순화되고 깨끗이 시정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절실히 느꼈습니다. 권모 술 수, 중상 모략, 폭력과 비위 등을 정치 철학으로 삼고 국민을 우롱하는 정치가들의 행실이 어떤 때는 자기에게도 필요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모세였습니다. 그래서 감정과 폭력으로 혁명을 시도한 그의 수법 같은 것은 다시 새로운 견실한 방법으로 고쳐져야 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렇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좋은 성품과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의 살고 있는 주위 환 경의 영향으로 그 생활 방법에 이끼가 끼고 곰팡이가 생길 수가 있습니다. 그 사상에도 곰팡이 가 핍니다. 그러므로 사회를 새롭게 해야겠다는 각성이 있는 사람일수록 순간 순간 자기 개혁을 하지 아니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종종 젊은이들이 기성 세대를 비난하며 갱신을 부르짖는 말을 듣습니다. 너무나 당연 한 말이요 주장입니다. 그래야만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꼭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갱 신을 부르짖는 자기 자신부터 갱신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간 망명 생활을 한 것은 인간의 안목으로 볼 때는 정말 볼 품없는 생활이었습니다. 화려한 애굽의 궁중에서 귀공자로 지낼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무서 운 대조가 되는 생활이었습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간 장인의 양을 치며 지냈습니다. 한 민족을 영도할 지도자가 양이나 친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볼품없는 광야 생활에서 너무 많 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는 목자의 생활에 익숙해졌습니다. 이스라엘 60만을 인도하기 전에 몇백 마리의 양무리를 인도할 줄 알아야 했습니다. 모세는 더 좋은 풀밭을 찾아서 양떼를 몰고 광야 서편으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습니다. 구약 학자 궁겔과 그레이스만이 말한 대로 오히려 양들이 모세를 성산으로 인도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모세는 크고 놀라운 광경을 보았습니다. 떨기나무에 불이 분명히 붙고 있는데 나무는 타지 아니합니다. 모세는 이 광경을 보고 이상히 여겨서 자세히 알아보려고 가까이 갔더 니 이 불꽃 중에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났습니다. 모세가 아무도 동행하는 사람이 없이 혼자 있을 때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렇습 니다. 인간적으로 가장 고독한 때는 하나님을 만나기에 가장 적합한 때입니다. 그러기에 위대한 영혼은 고독의 요람 속에서 자란다 는 말도 있습니다. 건강할 때가 아니라 중한 병에 걸려 병상 에 외롭게 누워 있을 때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 많습니다. 사업이 잘 될 때가 아니라 본의 아니 게 실패의 쓴 잔을 마시고 고독하게 실의에 잠겨 있을 때 하나님을 만난 사람도 많습니다. 노예로 고생하는 민족을 구출해 내고 새로운 율법을 세우고 새로운 종교를 창설하는 모세는 4 0년 간 광야에서 고독하게 양을 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하엣의 말대로 모세가 먼저 목자가 아 니었다면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영화를 거절한 모세, 인간의 향 락을 떠난 모세, 인간의 친구를 갖지 못한 모세에게 하나님이 같이 하시는 축복이 내렸습니다. 모세는 불붙은 떨기나무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왜 다른 나무도 많은데 하필이면 아 무 쓸모없는 떨기나무에서 불이 붙었을까요? 왜 좀더 일찍 애굽 궁중의 귀공자 시절에, 민족애 에 불타던 젊은 시절의 모세에게 하나님의 불이 임하지 않았을까요? 인생의 백향목같이 쓸 만한 재목으로 지목받아서 애굽 왕의 총애를 누리며 애굽의 보좌가 기다리고 있던 청년 모세를 왜 하 나님이 부르시지 않았을까요? 우리는 여기 수많은 나무 가운데 유독 떨기나무에 불이 붙고, 인 생의 떨기나무 같은 나에게 하나님의 소명이 임하시는 사실에 대하여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 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이 찬송 그대로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가난하고 병들고 보잘것없는 인생 떨기나무로 엮여집니다. 오늘 우리는 떨 기나무와 같습니다.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우리는 치면 부서지는 질그릇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떨기나무 불꽃 속에 하나님이 계신 것처럼 보잘것없고 약한 질그릇 같은 우리 안에 보배이신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내 백성이 애굽에서 괴로움 받음을 내가 정녕히 보고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저희를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니 지금 내가 너를 애굽 땅으로 보내 리라. 이때 모세는,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성직을 받는 길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7장에 보면 스데반의 설교가 나오는데 25절에 저는 그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소원을 빌어 구원하여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다 라고 말했습니다. 35절에는 저희 말이 누가 너를 관원과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가시나무 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을 의탁하여 관원과 속 량하는 자로 보내셨으니 라고 했습니다. 이 두 구절은 같은 내용이지만 시간적으로 보면 40년이 란 긴 세월의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세에게도 인생의 백향목 같은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목자 생 활을 하며 지내는 동안에 인생의 떨기나무처럼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정력도 쇠하여지고, 자 신감도 온 데 간 데 없어지고, 불타던 애국심도 이제는 다 식어가고, 이제는 자기가 얼마나 무 력한 사람인지를 깨닫게 되었을 때입니다.

바로 이때에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셨고, 이스라엘 민 족을 애굽에서 구출해 내는 위대한 사명을 그에게 부여한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는 하나님의 또 다른 음성을 들었습니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처음으로 이 광경을 보았을 때, 떨기나무에 불이 붙는데 타지는 않는 것을 보고 너무 놀라서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 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모세가 떨기나무 가까이 갔더니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이 인생의 떨기나무인 것, 보잘것없는 것을 자인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설 때 그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모세가 서 있는 바로 그 곳이 거룩한 땅으로 구별된 것입니다. 호렙산이 이미 성산(聖山) 이란 말하고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하는 모세가 자신이 떨기나무인 것을 발견하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그가 서 있는 그 곳이 거룩한 땅이 된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사람들이 밟고 섰는 땅이 거룩한 땅이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접촉 하는 사람들이 거룩한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경영하는 사업이 거룩한 사업이 된다고 하 는 진리를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발의 신을 벗으라.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면 먼저 이 세상 줄을 끊어 버리고 나서는 결단이 첫 걸음이요, 그 다음은 나 자신의 부 족을 깨닫고 내 발의 신을 벗는 일입니다. 여러분, 분명히 들으십니다. 나 자신이 변화하지 못 하고서 사회를 변화시키겠다고 하는 것은 넌센스입니다. 사회를 개혁하기 이전에 우리 자신의 개혁이 있어야 합니다. 맹자 선생은 이러 말을 했습니다. 길은 가까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길을 먼 곳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일은 쉬운 데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일이 어려운 데 있는 줄로만 압 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의 종살이하는 데서 구출해야 하는 위대한 사명을 감당 하기 전에 모세는 그의 발의 신을 벗어야 했습니다. 우리에게도 귀한 일들이 맡겨져 있습니다.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먼저 우리 자신부터 변하여 새사람 되는 역사가 있어야겠습니다. 우 리의 부족과 허물 그리고 죄를 용서받아 깨끗해지고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바로 잘 감당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박조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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