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거는 용기만 있다면 /수2:1…
본문
설교: 정권이 바뀌면 정권을 인계인수하게 됩니다. 모세가 죽었습니다. 그의 참모요, 비서요, 시종이었던 여호수아가 인수인계를 받았습니다. 이제까지 모세의 시종으로, 모세의 부관이나 비서 노릇을 하던 여호수아가 막중한 짐을 하루아침에 떠맡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수백 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야 할 책임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힘들고 무거웠을까요? 왜 하나님은 그냥 모세로 가나안땅까지 들어가게 하시지 가나안땅을 눈앞에 두고 못 들어가게 하시고 거기서 생명을 거두셨을까요? 그가 반석을 쳐 물 나오게 할 때 화를 내며 말했던 사건 때문이라고 성경은 해석하고 있습니다. 민수기20:10~12 20:10모세와 아론이 총회를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20:11 그 손을 들어 그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매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20: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 하리라 하시니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모세의 중대한 실수였습니다. 그토록 잘나가던 그가 말년에 너무 화가 나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들어내지 않고 자신들의 능력으로 힘을 과시하려고 했습니다. 그 실수 때문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왜 하필이면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세우셨을까요? 당대의 지도자는 갈렙도 될 수 있었습니다. 그도 한자파의 대표였고 여호수아와 함께 40일 동안 가나안땅을 탐지하였던 경력의 소유자입니다. 그런데 그중에 여호수아가 모세의 옆에서 모세를 보고 배웠기에 아마도 그의 리더십, 지도력 때문일 것이라는 것이 대다수의 의견들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것을 하나 배워야 합니다. 모세는 모세가 가본만큼 일했고 여호수아는 여호수아가 가본만큼 일했다는 것입니다. 애굽 왕궁에 있던 모세를 하나님이 광야로 내보내시어 40년간 그 땅을 미리 밟아보게 하셨고 그가 가본만큼 쓰셨던 것입니다. 여호수아도 하나님이 12명의 정탐꾼으로 가나안땅을 가 보게 하셨기에 이제 그 땅을 정복하는 정복자로 쓰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훈련 받은 만큼 쓰신다는 진리는 분명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도 지도자가 된 후 싯딤에서 두 명의 정탐꾼을 뽑아 가나안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고 몰래 들여보냅니다. 그들은 여리고까지 잠입하는데 성공했고 그들은 여리고성의 기생 라합의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몰래 파견한 그 비밀이 누군가에 의해 누설되어 여리고 왕의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그러니 세상에 비밀은 없습니다. 어느 정도 정보를 가지고 라합의 집에 들이닥친 여리고 군사들이 라합에게 다짜고짜 그 사람들을 끌어내라고 난리를 칩니다. 그때 라합이 재치를 발휘합니다. “아~ 그 사람들이오,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들이 우리 집에 왔다가 금방 나갔습니다. 어두워 성문 닫을 때쯤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으나 급히 따라가면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완전 거짓말입니다. 실상은 그들을 지붕 옥상에 숨겨놓고는 그들을 속인 것입니다. 그들을 돌려보내고는 잠들기 전에 옥상으로 올라와 그들에게 라합이 그들을 살려준 이유를 말합니다. 라합이 무엇 때문에 목숨을 거는 모험을 했을까요? 라합이 이방여인으로서 왜 자신들을 공격할 이스라엘 정탐꾼을 살려 준 것일까요? 엄밀히 말하자면 간첩을 살려주고 도와준 매국적인 행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는 그런 모험을 했을까요?
1. 그는 이방인이지만 하나님의 존재를 믿었습니다. 라합, 그는 가나안 족속 여인이었습니다. 그는 여리고의 기생으로 술집을 경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하나님을 전혀 믿을 수 없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마디씩 던지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9절 말씀을 보세요. “2:9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
여호와라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나안땅을 주셨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 하나님이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반드시 인도할 것을 알았습니다. 40년 전에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향해 오고 있다는 소식을 그냥 지나가는 소리로 듣지 않고 반드시 닥칠 일로 믿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는 지나가는 손님들 한마디 한마디를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믿었고 그분이 앞으로 하실 일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왜 이 자리에 나와 앉았습니까? 그냥 심심해서가 아니지 않습니까? 누군가가 복음을 들려주었고 그 복음이 믿어지고 깨달아지기에 나온 줄 믿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복이 있습니다. 절대로 아무나 못 믿습니다. 아무리 복음을 전해 주어도 하나님이 마음 문을 열어주시지 않으면 믿어지지 않는 것이 복음입니다. 아멘? 제가 그랬던 사람이고 우리 부친도 그런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믿어지고 깨달아졌습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오늘 우리가 여기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장차 하실 일을 믿고 있고 그분 앞에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세상이 복이 많지만 복중의 복,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을 믿는 복이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것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라합도 이것이 믿어졌기에 그 간첩을 살려주었고 그들을 구하는 일에 목숨을 걸었던 것입니다.
2. 살아계신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그 능력의 위대함을 믿었습니다. 10절~11절을 보세요. “2:10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2:11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上天下地)에 하나님이시니라.”
라합은 여호와라는 하나님이 여러 신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 전능하신 분이다. 그분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홍해를 마르게 하셨다. 아모리의 두왕, 시흔과 옥을 전멸 시킨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는 소문을 통해 그런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분을 대적하면 애굽의 바로도 박살나고 홍해도 갈라지고 아무리 강한 세력도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은 라합만 안 것이 아닙니다. 9절하반절에 보니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았다고 했습니다. 11절에도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 떨기만 했고 간담이 녹았다고 했으나 그를 믿으려 하고 그를 받아들이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는 것으로 그치면 안 됩니다. 그 하나님을 알았으면 그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라합이 훌륭한 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전능하심을 듣고 그를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정탐꾼을 도와줍니다. 이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입니까? 정말 목숨이 위태로운 사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가지고 행함으로 연결을 지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아는 것으로 그치는 신앙이 아니라 믿고 행하는 신앙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많이 아는 것이 믿음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믿고 행하는 것이 믿음이 좋은 것입니다. 아무리 성경을 많이 알아도 행치 않으면 한두 가지만 알고도 행하는 믿음보다 나을 수 없습니다. 주님이 오늘 여러분의 믿음을 보시면 무어라 하실까요? “네 믿음이 크도다! 하실까요? 아니면 “이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며 책망하실까요? 그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행함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믿으면 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배가 귀하다는 것을 알면 행해야 합니다. 아무리 예배가 귀한 줄 알아도 저녁예배, 수요예배 안 나오면 무슨 소용 있습니까? 예수를 구주로 믿으면 천국 간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기는 하지만 전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죽은 믿음이고 복을 누릴 수 없는 믿음입니다.
여리고의 이방여인이며 기생인 라합 구원을 받고 나중에는 메시야의 혈통을 갖게 된 남자 살몬과 결혼을 하여 다윗의 조상 할머니가 되는 것을 보세요. 이것을 믿음의 열매라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가 하나님의 전능하시고 위대하신 것을 알기만 하고 믿지 않았다면 그는 이런 복을 절대로 누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나는 이런 믿음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3. 언약을 붙잡으면 산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라합은 그 정탐꾼을 살려 보내면서 그들에게 약속을 받아냅니다. 12절을 보세요. “그러므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여 나의 부모와 남녀 형제와 무릇 그들에게 있는 모든 자를 살려주어 우리 생명을 죽는데서 건져내기로 이제 여호와로 맹세하고 내게 진실한 표를 내라”
왜 이런 맹세와 표를 받아내는 것일까요? 그는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고 그 약속을 붙잡으면 산다는 언약의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정탐꾼이 자신들이 살기위해 그냥 행하는 언약으로 의심할 수도 있었을 터인데 그는 그 약속을 꼭 믿고 그들을 도와줍니다. 결과 나중에 여리고 성이 다 무너질 때 그 라합의 집은 살게 됩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붉은 줄을 창문에 내린 그 집에 들어간 사람은 다 살았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도 언약중심의 신앙이 되어야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을 받아들이면 사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을 다 외우시나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믿으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5장24절도 믿으시기 바랍니다.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믿음은 언약을 붙잡는 것입니다. 성경의 약속을 꼭 붙잡고 나가시기 바랍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흔들리지 않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영생의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도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라합처럼 우리도 목숨 거는 모험을 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죽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一死覺悟 없이는 믿음의 승리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 목숨을 걸어야 할까요?
1)하나님을 만나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주일 성수와 예배입니다. 성도의 생명은 하나님과의 만남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공은 주일 성수를 통해 그리고 예배에 있습니다. 주일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사람, 한마디로 하나님과의 만남을 소홀히 여기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주일성수와 예배에 라합이 그렇게 했듯이 목숨 걸고 행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교회를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성도가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 곧 교회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그러기에 교회를 지키고 교회를 세우는 일에 여러분의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그러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위해 목숨을 걸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해 모든 것을 행하실 것입니다. 왜 우리가 교회를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할까요? 그 교회를 위해 주님이 피를 흘렸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주님이 피값으로 세운 교회요, 곧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나를 살리기 위해 피값을 지불하시고 죽으셨던 주님 우리가 목숨 걸고 교회를 지키면 하나님은 엄청난 은혜를 우리에게 베푸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교회를 세우는 일은 복의 지름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간증을 들어보세요. 교회를 건축하고 교회를 위해 생명을 걸었더니 하나님이 엄청난 복을 주셨더라고 간증합니다.
3)생명을 살리는 선교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라합은 자기 집에 찾아온 사람들이 단순히 정탐꾼이라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보낸 사람들이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려고 보내신 사명자들, missionary이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보호하고 그들을 살렸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생명을 살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명자가 되어 생명 살리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돈에 목숨 걸지 마세요, 부귀영화에 목숨 걸지 마세요.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사도 바울이 뱀에 물렸어도 그가 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살기에 하나님이 책임을 지십니다. 주님께서도 당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뭐라고 하십니까? 마태복음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누가복음9:23~24를 보세요. “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9: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자기 否認’.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이 말은 목숨 걸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목숨을 걸 것입니까?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하나님과 만남을 위해, 그리고 교회와 영혼구원을 위해 목숨을 걸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보잘 것 없던 라합을 쓰신 것처럼 하나님이 여러분을 들어 쓰시고 놀라운 복, 감당키 어려운 은혜를 여러분 앞길에 예비하실 것입니다.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