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있음을 선한 행실로 증명해야 합니다. > 설교자료실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Home > 설교자료실 > 설교자료실
설교자료실
설교자료실

믿음이 있음을 선한 행실로 증명해야 합니다.

본문

믿음이 있음을 선한 행실로 증명해야 합니다.
정수환 [성경본문] 잠22:1-2,8-9,22-23, 약2:1-10,11-13,14-17, 막7:24-37
잠22:1-2,8-9,22-23, 약2:1-10,11-13,14-17, 막7:24-37


‘왜 사느냐고 묻거든’이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루이제 린
저’라고 하는 독일의 소설가가 쓴 책을 ‘문학사상사’가 우리말
로 번역본을 내면서 붙인 이름입니다.
한편, ‘현미’가 부른 노래 중에도 이와 같은 제목의 노래가
있습니다. 그 가사는 이렇습니다. ‘왜 사느냐고 누가 묻거든, 못
다한 사랑 때문이라고. 그래도 다시 묻거든, 그때는 우리 모두
죽는 날까지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오랜 잎새처럼 윤기 나는
그런 사랑을, 불타는 태양처럼 뜨거운 그런 사랑을. 아~~ 왜 사
느냐고 묻거든, 나는 아직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그렇게 그
렇게 대답을 하겠어요.’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를 만드신 다음, “너는 60년만 살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단, 사람들을 위해서 평생 일을 해야 한다”고 조
건을 붙이셨습니다. 그러자, 소가 말하기를 ‘30년은 버리고 30
년만 살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또 개를 만드신 뒤에 “너는 30년만 살도록 하
라”고 지시하셨습니다. “단, 사람들을 위해서 평생 집을 지켜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개도 ‘15년은 버리고 15년만 살겠
노라’고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원숭이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원숭이
에게 “30년만 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조건은 “사람들
을 위해서 평생 재롱을 떨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원숭이도 ‘15년은 버리고 15년만 살겠노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시고, “너는 25년만 살
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대신에, 너한테는 생각할 수 있
는 머리를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사람은 하나님께 간
절히 부탁하기를 ‘소가 버린 30년, 개가 버린 15년, 원숭이가
버린 15년을 다 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너무
욕심 부린다 생각하시면서도, 그렇게 하라고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25세까지는 주어진 시간을 그냥저냥 살다가,
그 이후 소가 버린 30년을 사는 동안에 소처럼 죽도록 일만 하
고, 퇴직한 후에는 개가 버린 15년간 집을 지키게 되었으며, 그
이후 원숭이가 버린 15년을 사는 동안에는 손자와 손녀들 앞에
서 재롱을 떨면서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 누가 묻기를 ‘왜 사느냐?’고 한다면, 여러분
은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어느 시인이 이야기했듯이, ‘그냥
웃고’ 말겠는지요? 아니면, ‘그런 골치 아픈 질문을 왜 하느냐?’
고 반문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겠습니까? 또는, ‘현미’가 노
래한 것처럼, 그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인생을 산다
고 말씀하겠습니까?
그런데, 제가 생각할 때에 참으로 한심하게 여겨지는 대답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사느냐?’고 물어보면, 아주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냥 죽지 못해서 산다.’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대답을 들을 때에는, 저는 속으로 ‘그를 낳아주
신 어머니가 먹은 미역국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인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존재인데, 그렇게 함부로
말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시편기자는 말하기를 ‘하나님 다
음 가는 자리에 인간을 앉히셨다(공동)’고 했습니다. 그만큼, 인
간이라는 존재가 존귀하다는 뜻입니다. 시인은 ‘사람이 무엇이
기에 이토록 생각해주시며,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보살펴
주시는 것입니까? 인간을 하나님 다음가는 자리에 앉히시고 존
귀와 영광의 관을 씌워주셨습니다(8:4-5)’라고 노래했습니다.
이처럼, 존귀한 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인생 그 자체를 아주 귀중하게 여기고, 그 주어진 삶을
신중하고도 책임 있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냥 아
무렇게나 살아도 되는 존재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허락
하신 인생이기에, 그 뜻에 따라서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시편 84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손수 지으신 만물을 사람이
다스리게 하시고, 그 모든 것을 사람의 발아래에 두셨다(6)’고
했습니다. 이 시편기자의 말대로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
에게 너무나 놀라운 축복을 하셨습니다. 이처럼, 큰 축복을 받
은 인간이 어떻게 ‘죽지 못해 산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가을이 되면, 우리 인간이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지, 그
목적과 의미를 생각하게 됩니다. 모든 만물은, 이른 봄부터 시
작하여 무더운 여름을 지나서 늦가을에 이르기까지, 제각기 그
나름대로, 구슬땀을 흘리면서 정성스러운 수고를 아끼지 않습
니다. 그 결과, 가을에는 풍성한 열매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모든 생물은 가을에 많은 열매를 얻기 위해서 봄부
터 가을까지 내내 열심히 일을 하는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은 언제나 변함이 없는 진리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을 ‘심고 가꾸는 대로 거둔다.’는 말
로 바꿔야 합니다. 열심히 잘 가꾸지 않으면, 좋은 씨를 아무리
많이 뿌린다 해도, 그 결과가 신통치 않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인생을 살되,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언제나 부지런히 일을
해야, 가을이 되었을 때에 거둘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열매 실(實)’자를 보면, 어머니가 모자를 쓰고 바다
에서 조개 캐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조개는 돈을 의미합니
다. 결국, 사람은 ‘돈’이라는 재화를 얻기 위하여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돈 버는 것만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으면 안 됩니다. 물론, 돈을 벌지 못하고 게으르게
사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단지 돈을 벌기 위해 인생을
사는 것도 결코 아름답지가 못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잠언서 기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많은 재산을 모으는
것보다 명예를 얻는 것이 훨씬 더 소중하고, 이웃을 따뜻하게
대하고 아껴 주는 것이 금을 얻는 것보다 훨씬 더 낫다(22:1)’
고 말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재산이나 명예보다 더 귀한 것
이 ‘이웃을 따뜻하게 대하고 아껴주는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잠언 기자는 ‘남에게 주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고,
가난한 사람과 음식을 나눠먹는 자는 복을 받으리라(잠22:9)’고
했습니다. 결국, 잠언서 기자가 말하고 있는 ‘가치 있는 인생’이
란, 이웃과 함께 하는 삶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생 사는 목적을 자기 자신에게 둘 것이 아니
라, 가족과 이웃, 그리고 교회와 국가에 두고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곧,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위한 길이며, 또한 기쁨과 보
람이라는 열매를 많이 거둘 수 있는 삶의 방법인 것입니다.

1.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귀한 것이 이웃사랑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느 날 아침, 제가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있는데, 한 형제가
고춧대를 걷고 있었습니다. 고추를 다 따려면 아직 이른 시기
인데도 벌써 고춧대를 걷고 있기에, 제가 그 사람에게 “왜 벌써
고춧대를 걷느냐?”고 물어봤습니다.
사실은, 그 대답을 들을 것도 없이, 이미 그 이유를 알 수 있
었습니다. 장마가 워낙 오래 계속 되었기 때문에, 고추가 제대
로 열매 맺을 새가 없었던 것입니다. 고추나무는 아주 무성했
지만, 사람이 필요로 하는 열매는 맺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척 화려하고 아름답게 보이
더라도,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는 열매를 맺지 못할 경우, 세상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지 못하고, 자기 자신도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는, 이 세상 그 누구나 차
별 없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가치 있는 인생
살기를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가 무엇인지 바로
알고, 그 열매를 얻기 위하여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지금 열심히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
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웃이라는 것이 너무 제한되어 있
다는 사실이 문제입니다. 예를 들자면, 내가 잘 알고 있는 이
웃, 그리고 내가 가까이 하면 내게 도움이 될 만한 이웃, 나한
테 사랑을 베풀면서 잘해주는 이웃, 우리는 이런 이웃들만을
이웃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야고보서 기자는 ‘부자나 가난한 자를 차별하지 말라(2:1)’고
했습니다. 부자라고 해서 특별석에 앉히고,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서 바닥에 앉히는 것은, 나쁜 생각을 가지고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내게 있어서 부자는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차별하지
말고 사랑해야 한다고 교훈하셨습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는 외
국인 근로자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이들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
과 사랑을 기울여야 합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직접 외국인 근로자의 모
습을 하고서 우리에게 오시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웃사랑에 대해서 너무나 많은 설교를 들
어왔습니다. 하지만, 이웃사랑의 길에는 아주 많은 장애가 있기
때문에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런 장애들
중에는, 우리가 직접 만들어놓은 ‘사랑할 수 없는 이유와 조건
들’이 대부분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런 이유와 조건을 만든 것
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사랑할 만한 조건이나 이유를 만들
어놓으셨다면, 우리는 결코 구원받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웃사랑에는 조건이나 이유가 붙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께서 우리를 무조건 용서하고 사랑하셨듯이, 우리도 또한, 아무
조건이나 이유가 없이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
하고, 우리는 계속, ‘하지만, 그렇지만’하면서 사랑할 수 없는
‘조건과 이유’를 자꾸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사실, 나 자신을 스
스로 살펴볼 때에 타인으로부터 사랑받은 만한 이유나 조건이
라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하건만,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만 할
때에는 꼭 조건과 이유를 따지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주 목요일 오후, 어떤 청년 하나가 우리 집에 왔습니다.
40이 넘었으니 청년이라 할 수 없지만,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
다고 하니, 청년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아무튼, 이 청년
이 와서는 “목사님, 계신가요?”하고, 저를 찾았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차비 좀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도 많이 겪는 일이라서, 나에게는 지금 돈이 없다고 하면서
그냥 가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청년은 아무 말도 하지 않
고 순순히 되돌아서는 것이었습니다. 대개의 경우, 마치 맡겨둔
돈이라도 있는 것처럼, 생떼를 쓰면서 끝까지 돈을 달라고 하
는 법인데, 이 청년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청년이 불쌍했습니다. 그냥 가려고 하는 것을 다시
붙들어놓고 이것저것 물어봤습니다. 그리고 지갑을 보여 달라
고 하니, 지갑을 꺼내주었습니다. 지갑 속에는 한 푼도 없었습
니다. 그는 손잡이가 없는 양산을 들고 있었습니다. “양산을 왜
들고 다니느냐?”고 물었더니, 비가 올 것 같아서 들고 나섰다는
것입니다. 그날, 비가 온다는 소식이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 같았습니다. 그렇게 여기
니, 더욱 불쌍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포가 집이라고 해서, 김
포까지 갈 수 있는 여비를 주어서 보냈습니다. 보내놓고 보니,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바로 하나님의 천사일수도
있고, 아니면 주님이 그런 모습으로 오셨을지도 모르는데, 제가
너무 소홀히 대접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웃사랑이 몸에 배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랑을 실천하려고 하면 어쩐지 어색하고 불편합니다. 그동안
너무나 많이 나 중심으로만 살아왔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쩌
다가 남다른 사랑이라도 베풀게 되었을 때, 우리는 공치사 하
는 것을 빼놓지 않습니다. 조건이 붙거나 공치사가 따르는 사
랑은, 오히려 베풀지 않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할만한 사람의 모습으로
만 오시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 반대인 경우가 더 많으리라
는 것을, 상식적으로 알아두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없
는 사람이라도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할 줄 알기 때문입
니다. 심지어, 개나 고양이도 자기를 아껴주면 무척 좋아하면서
잘 따르지 않던가요? 그런고로, 우리에게 믿음이 있음을 보여주
려면, 그 누구를 막론하고 차별 없이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 당시 유대인들이 개처럼 여기던 수로보니게 여
인의 소원을 들어주셨습니다. 그 여인의 귀신 들린 딸의 병을
고쳐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주께서 그 여인의 소원을 들어
주면, 수로보니게 사람들을 개처럼 여기는 유대인들이 예수님
을 미워하게 되리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 여인의 소원을 들어주셨던 것입니
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유대인들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야고보 선생은 ‘믿음이 있음을 선한 행실로 보여주어야 한다
(2:17)’고 하면서, 만일 행동으로 보여주지 못할 경우, 그 믿음
은 아무 짝에도 소용이 없는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미운 사람을 용서하거나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죽기보
다 더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그 누구를 미워해서 하나님께 고소하거나 고발할 사람도
참 많겠지만, 그 반대로 나에 대해서 고발하거나 고소할 사람
도 아주 많으리라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주께서 가르쳐주신 산상수
훈의 팔복 중에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
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마5:7)’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내가 남을 불쌍히 여길 때에, 하나님께서도 나를 불쌍히 여기
시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고 사랑하신 것은, 우리
가 용서와 사랑을 받을 만한 무슨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
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무조건 우리를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나에게 큰 잘못을 행한 사람이 있
을 때, 그가 옛날보다 달라진 점이 있어서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불쌍히 여겨서 그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능력이나 의지만으로는 어렵습니다. 우리가 열심
히 기도할 때,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주셔서 다른 사람을 불쌍
히 여길 수 있는 마음과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그
리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까지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이 사실로 확정되는 것입니다.

2.우리는, 우리에게 믿음이 있음을 이웃사랑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아프리카의 성자인 슈바이처 박사에게 한 부인이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당신은 위대한 학자이며 천재적인 음악가입니다.
그런데, 당신 같은 사람이 어찌하여 이런 오지에 와서 생명을
바쳐 일을 하십니까?”
슈바이처 박사가 그 부인에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말로만으
로는 사람들을 감동시킬 만한 재주가 없답니다. 사랑을 아무리
열심히 설명해도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더군요. 그래
서 행동으로 그 사랑을 설명하려는 것뿐입니다. 나는 사람들에
게 사랑을 베풀면서 건강과 행복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면, 사랑을
받는 그 사람의 느낌은 어떤지 알 수 없지만, 사랑을 베풀고
있는 나 자신이 행복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란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이지, 나 홀로 나를 사랑할 수
는 없습니다. 물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만
은 아니지만, 그 사랑에는 감동이나 기쁨이 없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그리고 타인으로부터 사랑을
받게 될 때에, 기쁨도 있고 감동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할 때에, 나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진정한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내가 거짓된 사랑을 베풀면,
나도 거짓된 사랑을 받게 마련인 것입니다.

참 사랑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그 사랑을 모
방하고 흉내를 낼 수 있을 뿐입니다. 그렇지만, 흉내라도 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이 사는 이유와 그 목적을 깨달을 수 있습
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에, 사람이 그 누
군가를 진정 사랑함으로써 사람이 사는 이유와 목적을 깨달을
수 있도록, 그렇게 프로그램을 짜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 누가 우리에게 ‘왜 사느냐?’고 물으면, 우리는 분명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사는 목적은 하나님
과 부모와 이웃과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라고 말입니다. 사람이
사는 이유는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무쪼록,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
과 축복을 깊이 깨닫도록 하십시오. 그래서 그 사랑의 빛을 받
아서 이웃을 사랑하되, 차별이나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는 저
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고객센터 개인정보취급방침 서비스이용약관 기독정보넷공식트위터 Copyright © cjob.co.kr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