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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해가는 리더 (삼상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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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해가는 리더
본문 : 사무엘상 3장 1 - 2절 마경훈 목사

본문 : 사무엘상 3장 1 - 2절
1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2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사람은 누구나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어느 단체, 어느 모임에도 리더가 있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있어도 리더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도 리더가 있습니다. 셀에도 리더가 있습니다. 각 부서마다 리더가 있습니다. 가정에도 리더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리더입니다. 아버지가 없으면 어머니가 리더이고, 부모님이 없으면 맏이가 리더입니다. 심지어 계모임에도 리더가 있다.
특히 그리스도인은 리더가 될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말씀대로 살면 자연스럽게 리더가 될 것입니다. 신 28장에 보니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머리가 된다는 것은 리더가 된다는 말입니다.
오늘은 사사시대 500년을 마감하는 시점에서 이스라엘의 리더가 된 엘리제사장을 통해서 무너져가는 리더, 망해가는 리더의 모습을 보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를 망하게 만드시기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망하게 만드는 존재는 사단. 마귀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 일을 위하여 하늘 보좌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까지 인간의 몸을 입고 찾아오셔서 죄인의 모습으로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셨던 것입니다.
내가 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내가 흥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은 망해가는 리더 엘리제사장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살피고 망하는 리더가 아닌 흥하는 리더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1. 망해가는 리더의 삶은 하나님을 섬김이 없습니다.
1절에 보니 아이 사무엘은 엘리 앞에서 하나님을 섬겼다고 말합니다. 동일한 말씀이 2:11에도 나옵니다. “그 아이는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니라”
그럼 엘리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습니까? 엘리제사장은 제사장의 자리에 있었으나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엘리제사장의 아들들은 불량자였습니다. 그 아들들의 소행이 2:12이하에 나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드려져야 할 고기 가운데서 먼저 자신들의 입 맛에 맞는 부분을 떼어냈습니다. 고기를 삶을 때에는 갈고리를 넣어서 걸려나오는 것을 자신들을 위하여 취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리려고 하면 제사를 드리기 전에 자기들에게 고기를 달라고 해서 빼앗다시피 했습니다.
22절 이하에 보니 성전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을 했습니다. 이러한 일들에 대해서 엘리제사장은 크게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또 자식들을 제사를 주관하는 일에서 제외시키지도 않았습니다.
27이하에 보면 엘리와 엘리의 자식들의 잘 못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이 찾아와서 엘리 가문의 몰락에 대해서 예언을 합니다. 그 예언의 내용 중에 30절 하반절에 보면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고 말했습니다. 그 내용으로 살펴볼 때 엘리는 하나님을 멸시했던 사람입니다.
교회를 나온다고 해서 그 사람이 꼭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에서 어떤 직분을 받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꼭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를 나오지만 자기의 목적만을 위하여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 봉사도 단지 자신의 축복만을 위해서 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목사가 되어서 목회를 해도 그 목적이 자신의 목적 성취를 위해서만 하는 것이라면 목회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목적과 중심입니다. 40일 금식을 해도 그 목적과 중심이 자기 욕망충족에 있다면 그 금식은 하나님을 섬김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일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일이 교회 일이든, 세상일이든 일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 일의 목적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세워져 있다면 그 일은 교회일이든 세상일이든 하나님의 일입니다. 반대로 일의 목적이 자신과 자신의 환경의 풍성함만이 목적이라면 그 일이 교회의 일이라도 그 일은 하나님의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에 일치시키시고 하나님의 일이 되게 하십시오. 마 7:12에 [누구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대접하십시오, 하나님도 여러분을 대접하실 것입니다.

2. 망해가는 리더의 귀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3:1의 말씀에 보면 그 시대에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했다"는 것은 그 시대의 영적인 무능력 때문에 하나님께서 계시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들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분입니다. 하나님은 태초에도 말씀하셨고, 2천년 전에도 말씀하셨습니다. 작년에도 금년에도 어제도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아모스는 아모스서 8장 11절에서 14절까지 말세의 특징을 선포합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영적인 기근의 시대가 됩니다. 들을 말씀이 없습니다. 백성들은 듣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려고 이교회 저 교회, 이기도원, 저기도원을 헤매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얻지 못합니다. 그리고 영적인 기갈로 전에는 믿음을 가졌던 사람들도 영적으로 쓰러져가는 시대입니다.
말씀이 없어서 기근이면서 동시에 말씀을 듣지 않기 때문에 기갈입니다.
지금 이 시대를 말씀의 홍수 시대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보혜사로 친히 우리 가운데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경을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수많은 설교를 들어도 내 마음에 감동이 없다면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의심해 보아야합니다. 숫하게 많은 예배를 들여도 예배를 통해서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면 심각하게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고민해야 합니다.
설교를 판단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설교를 듣고 감동은 받습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살기는 원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말씀을 찾아 헤매는 영적인 떠돌이들이 많습니다. 어디 새로운 말씀이 있다고 하면 우~하고 몰려갑니다. 어디 새로운 설교자가 뜬다고 하면 우~하고 몰려갑니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나를 살펴야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인가? 설고를 통해서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는가?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간다면 나는 망하는 리더는 아닙니다. 사무엘처럼 흥하는 리더입니다.

3. 망해가는 리더의 눈에는 비전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다고 했는데 여기서 이상은 비전을 말하는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의 눈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미래에 대한 그림이 없었던 것입니다. 리더의 생명은 다른 사람들에게 비전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리더인 그가 비전이 없으니 백성들에게 비전을 선포할 수 없었고, 백성들도 비전을 보지 못했던 그런 시대입니다.
망해가는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비전이 없다는 것입니다. 망해가는 리더, 망해가는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비전이 없다는 것입니다.
잠언서 29장 18절은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묵시는 비전을 말합니다. 비전이 없으면 성은 교만해집니다. 마음대로 행합니다. 방자히 행합니다. 그리고 결국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징기스칸의 리더십의 비밀 열 가지를 정리해 놓은 글을 읽어보니 그 첫 번째가 오늘 설교의 주제에 맞는 내용이었다. 첫째가 충분히 몽골족을 동기부여 시킬만한 "웅대한 비전"이라고 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몽고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비전이 없다는 말은 엘리제사장의 영적인 상태가 얼마나 심각했는가를 말해줍니다.
첫째, 믿음이 없다는 말입니다. 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라고 했는데 바라는 것 비전이 없다는 말은 믿음이 없다는 말입니다. 엘리는 제사장이었지만 믿음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둘째, 성령의 역사가 없다는 말입니다. 행 2:17에 보면 성령이 임하시면 주어지는 특징은 비전입니다. 예언을 하고, 환상을 보고, 꿈을 꾸게 됩니다. 엘리는 제사장이었지만 성령의 역사를 몰랐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빌 2:13에 보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에 소원 즉 비전을 두고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비전을 주시고 그 비전을 따라서 움직이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인데 비전을 받지 못하니 하나님의 일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확실한 비전이 있습니다. 지역복음화와 세계와 열방을 향한 확실한 비전이 있습니다.
이번 선교여행 중에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새로운 비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내가 전부터 말했던 중국의 젊은이들을 일으켜서 백투예루살렘의 비전을 성취를 위해서 주신 새로운 비전입니다. - 중국에 선교사 훈련원을 세우는 비전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바라보는 비전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위해서 사느냐? 왜 사느냐에 대한 질문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정확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은 그 비전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습니까? 아니면 내가 만들어낸 것입니까?


[비전교회] 경기도 하남시 감이동 361-4
(02) 443-9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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