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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을 돌이키는 자 (출 32: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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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을 돌이키는 자 (출 32:7~14)


들어가는 말

사람들은 때때로 자신의 일에 대해 후회하거나 한번 가졌던 뜻을 돌이켜 다른 결정을 내리곤 합니다. 이와 같이 뜻을 돌이키는 것은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잘못된 결정이나 결심에서 뜻을 돌이킨다면 그것은 긍정적인 일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오류가 없으신 분이신데 그 분이 뜻을 돌이키신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사실입니다. 그런데 분명히 오늘 본문에는 뜻을 돌이키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뜻은 하나님의 본래의 뜻에 부합하지 않은 진노의 뜻을 하나님의 사람이 해결해드리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출애굽기 32장의 이스라엘은 시내산 아래 도착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시무시한 하나님의 재앙이 애굽을 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벅찬 감동을 가지고 홍해를 건넜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시고, 아말렉의 침입에서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 있습니다. 지금 시내산에서는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런 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듭니다.

1. 배반의 세대 가운데 사는 자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세대의 대표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수많은 하나님의 은혜를 목도하고서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에게서 돌아섭니다.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섬기기를 시작합니다.

1) 하나님의 대체물을 섬기는 세대

이스라엘이 만든 금송아지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대신 자신들이 만든 하나님의 대체물을 섬기는 것을 보여줍니다.
범죄한 인간들은 수많은 하나님의 대체물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숱한 신들의 이야기들, 자연만물들, 영적 상상물들과 같은 인간의 숭배의 대상들이 바로 하나님의 대체물들입니다. 원래 가졌던 하나님을 예배하던 마음이 바로 이런 인간이 만든 대체물에게로 대상이 바뀌어 버렸습니다.
현대에도 수많은 하나님의 대체물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교묘한 것은 전혀 하나님의 대체물 같아 보이지 않는 대체물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런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불리는 우리들 사이에도 수없이 많이 널려 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섬긴 것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금송아지 신’을 섬긴 것이 아닙니다. 출애굽기 32장 4절을 보면,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하는지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버린 것은 아닌 것 같아 보입니다.
그렇지만 자신들의 눈에 보이는 신이 있어야 하겠기에 금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하면서 하나님과 상관없는 다른 대상을 섬기게 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과 금송아지 숭배의 미묘한 관계는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서 계속됩니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이스라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또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대체물을 섬기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목적이 자신의 평안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평안을 예배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예배하는 목적이 돈이나 명예나, 출세나, 자녀들에게 있다면 이미 우리의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이 아닌 그것들로 대체되어 버린 것입니다.

2) 자신을 섬기는 세대

이처럼 하나님의 대체물을 섬기는 세대의 대표적인 특징은 자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2장 1절을 보면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뜻과 계획을 가지고 일하시는 하나님’은 필요 없고, 자기의 목적에 따라 자신을 유익하게만 해 줄 ‘하나님의 대체물’이 필요한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2절 이하에 말세에 고통 하는 때의 모습에 대해 설명하면서 가장 먼저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는 모습에 대해 말씀합니다.

혹시, 우리 중에 이런 모습은 없습니까? 그리고 이 세대의 그런 모습들을 보십니까? 이 나라의 정치에 하나님을 섬김이 있습니까? 이 나라 경제에 하나님의 정의가 나타납니까? 이 나라의 교육에 하나님의 뜻에 대한 고민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관심과 애정을 민족주의라는 묘한 이념으로 대체해 버리는 이 땅의 문화들은 어떻습니까?
세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국익이라는 것으로 대체해 버린 이 세대의 정치들, 점점 더 하나님의 흔적을 지워버린 채 인류애라는 것만으로 포장하고 있는 이념들, 물질주의가 하나님의 공의나 하나님의 긍휼을 대체해 버리는 이 세대의 경제논리들…

여러분은 어떤 세대를 살아가고 계십니까? 하나님을 배반한 세대는 사회주의 국가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힌두교 사원, 이슬람 사원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 세대 속에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다른 것으로 대체해 버리는 현상은 가득 차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 속에도…….
이 모습을 보신 하나님은 진노하십니다. 그리고 그 백성들을 쓸어버리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때, 모세가 바로 그 하나님 앞을 감히 막아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모세로 인해 백성들을 쓸어버리려 했던 당신의 뜻을 돌이키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대는 바로 하나님을 배반한 세대입니다.

2.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자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는 자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입니다. 모세의 시대나, 선지자의 시대나, 오늘의 시대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1) 하나님의 진노를 가진 자

먼저는 하나님의 진노를 아는 사람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진노를 알고 그 마음속에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자신의 노함으로 나타났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받아 내려온 돌판을 들어 깨어 버릴 정도로 분노했습니다. 백성들의 범죄함에 대해, 특별히 하나님을 배반한 그 행태에 대해 분노했습니다.
민수기 25장에는 제사장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발휘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푸시게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뜻을 돌이킬 수 있는 사람은 진정한 하나님의 마음과 공의에서 나온 하나님의 의분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 조심해야 할 것은 이 진노의 대상이 사람들의 행동들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사람들이 주일에 교회에 빠지지?’, ‘왜 성경을 읽지 않지?’, ‘왜 교회의 사역에 헌신하지 않지?’ 등등. 이런 것들만이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공동체의 중심이 되어야 하고, 내가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야 하고, 나의 헌신이 다른 이들에게서 칭찬 받아야 하는 것들.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쉽게 정죄하고 판단하고 미워하고, 따돌리고 사랑하지 못하고 품지 못하는 모든 마음들 또한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에서 빠지는 것들이 아닙니다. 행동만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가진 동기들 또한 하나님의 진노의 이유가 됩니다. 이 마음의 동기들이야 말로 더 근원적인 죄의 뿌리이고 하나님의 진노의 이유입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금송아지’에 대해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아픔을 가진 자

단지 하나님의 진노만 가진 사람은 자기 의에 사로잡히고 다른 이들을 판단하는 정죄감만 가질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돌이킬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픔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아픔을 머리로 이해하고 개념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픔으로 가지는 사람입니다.
모세는 이 하나님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에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이 백성들을 향한 진정한 하나님의 마음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마음에 품어진 그 마음은 아픔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모세 자신의 마음에 대해 하나님의 그 아픔이 함께 품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아픔을 안다는 것은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에스겔 24장 15-24절에는 하나님의 이 아픔을 알아주길 원하는 마음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 시대를 향한 하나님 당신의 아픔을 아내를 잃은 에스겔의 아픔으로 공유하길 원하십니다.
우리들 또한 하나님을 배반한 이 세대에 대해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려면 하나님의 아픔을 함께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선교 현장에 대한 아픔을 품어야 합니다. 우리 시대의 지극히 작은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아픔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체한 죄를 향한 하나님의 아픔을 가져야 합니다.

3.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지는 자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는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지는 자입니다. 오늘 본문 이후 31-32절을 보면 모세는 자신의 이름이 대신 생명책에서 지워지더라도 백성들을 구원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자신이 대신 지는 자의 모습입니다.

1) 제사장의 역할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지는 것은 제사장들의 일이었습니다. 물론 자신들이 직접 그 진노를 지지 못하기 때문에 제사장들은 제물들을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제물에게 죄를 전가시키고 백성들을 죄의 영향력에서 놓여지게 했습니다.

2) 그리스도의 역할

그런데, 이 제사장 직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성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었습니다. 세상과 범죄한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지시고 하나님 앞을 막아서는 자가 되셨습니다. 그 분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는 긍휼로 바뀌어졌고, 그 분 안에서 하나님의 심판은 은혜와 하나님의 나라라는 복으로 돌이켜졌습니다.
이제, 그 분을 따르는 모든 이들에게 이와 같은 그 분의 사역이 맡겨졌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 말씀에서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하심이라”고 합니다. 바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세상을 중보 하는 제사장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영원한 중보자는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 분께서 세상을 그분께로 이끌어오는 또 다른 중보의 역할을 우리에게 맡기셨다고 말합니다. 그 일을 위해서 우리는 때때로 병드는 것도 대신 질 수 있어야 합니다. 때때로 가난도 질 수 있어야 합니다. 수치도 질 수 있어야 합니다. 자존심 상하는 것도 질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중심이 되지 못하는 것도 짊어 질 수 있어야 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진노를 통한 심판도 대신 질 수 있어야 합니다. 생명의 값도 대신 질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는 자의 모습입니다.

4.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자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는 자는 진정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는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갖고 계시는 참 뜻을 바르게 이루어가는 자입니다.

1) 하나님의 비전을 보는 자(13절)

모세는 하나님의 비전을 정확하게 보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비전은 이스라엘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이런 비전을 분명하게 알았고, 그랬기에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는 일도 가능했습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분명하게 알 때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어가는 자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는 사람은 하나님의 비전을 위해 자기의 역할을 이루어 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을 가지고, 그 마음을 대변하는 자들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사용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훈련시키시고, 민족의 틀을 갖추는 데까지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각자의 분량에 맞는 사역과 역할을 맡기시고 이루어 가십니다. 그런데 그 비전을 온전히 이루어 갈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의 진노의 뜻을 돌이키게 할 수 있는 자입니다. 자신의 능력이 엄청나게 많아서 아무리 큰일을 했다 해도 하나님의 마음을 품지 않았다면 그것은 금송아지를 향한 예배 밖에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나오는 말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아무리 똑똑해도, 아무리 재물이 많아도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뜻이 그 가운데 품어져 있지 않다면 그 사람들은 사용될 수 없습니다. 이 민족과 나라를 향한 하나님의 아픔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이 세대를 향한 하나님의 진정한 마음을 품으시길 바랍니다. 교회와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아버지의 참 사랑의 마음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이 시대의 작은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눈물과 긍휼이 우리 마음 가운데 부어지시길 바랍니다. 선교 현장을 향한 하나님의 기대와 안타까움이 우리 가운데 있길 바랍니다. 그들을 위해 하나님 앞에 설 때, 우리는 이 세대 가운데 참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내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김태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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