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주님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본문
성경 ; 행3:12-21, 요일3:1-8, 눅24:36-48.
제목 ; 부활의 주님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작성 방법 ; 한글 97 ( A4, 4쪽)
작성자 ; 정 수 환 목사(j3038@kornet.net)
홈페이지 주소 ; http://godislove.net/j3038
연락 전화 ; 영춘교회 ( 0444-423-3038 )
참고 ; 공개자료실에서는 A4 용지 4쪽으로 된 자료를 받을 수가 있 습니다. 이 설교자료는, 성서일과와 교회력에 따라 작성된 것입니다.
저는 지난주에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인격신이기 때문에, 그분은 섬김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사귐의 대상이기도 하다’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하나님은 인간처럼 지성(知性)과 감성(感性)과 의지(意志)를 지니신 분인 고로, 우리가 하나님께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서, 그 관계의 친밀도가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친 부모님을 섬기듯이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잘 모시고 받들어 섬기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친자식처럼 대해 주실 것입니다. 반면에,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처럼 형식적으로 믿음생활을 할 경우,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버린 자식처럼 상대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진리가 참으로 놀랍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더 기막힌 것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기독교 중심 교리인 하나님의 사랑을 설명하고, 하나님과 우리 관계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이보다 더 훌륭한 관계 설정은 없을 것입니다.
사실 그대로, 하나님과 우리는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입니다. 물론, 이런 관계는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하는 요1:12의 말씀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써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특권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그의 지극한 사랑 때문이라고, 요일3:1의 말씀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이 얼마나 지극합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받아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알 까닭이 없다(요일3:1)』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마치 부모가 없는 고아처럼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뿐만 아니라, 예수를 믿는 성도들 중에서도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버림받은 자식처럼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서울대 교수와 문민정부의 부총리를 지내셨고, 지금은 상지대학교 총장으로 계신 한완상 장로님이 ‘가이드포스트’ 5월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쓰셨습니다.
한 장로님이 미국의 어느 대학 교수로 있을 때라고 합니다. 어느 날 저녁 늦게, 둘째 딸이 칭얼거려서 머리에 손을 얹어봤더니 불덩이처럼 뜨거웠습니다. 겁이 나서 의사에게 전화했더니, “수건을 찬물에 적셔서 아기를 닦아주면 열이 내릴 것입니다”라고 사무적으로 말하곤 전화를 끊었습니다.
한 장로님은 정신을 가다듬은 뒤에 그대로 시행했습니다. 하지만, 열이 조금 내려가는 듯 싶다가 다시 불덩이가 되었습니다. 그런 상태가 밤 12시 넘도록 계속되니, 장로님은 아기가 안타까워 견딜 수 없었습니다. 말도 못하는 아기가 너무 안쓰러워 장로님은 이렇게 아기에게 속삭였습니다.
“아가야, 너의 고열 40도와 내 정상적인 체온 36.5도와 서로 바꾸자꾸나. 아가야 40도의 열을 나에게 다오. 대신 내 체온을 너에게 주마 …” 그리고, 이어서 “주님, 이 말 못하는 우리 아기에게 저의 정상적인 체온을 넣어주시고, 저에게는 아기의 고열을 주시옵소서”하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한 장로님은 그 글 말미에 ‘사랑은 주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하면서, 나의 소중한 것을 주고 남의 나쁜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사랑하는 사람의 아픔을 내 것으로 소유하고 싶은 마음, 남의 아픔을 함께 나누면서 기쁨을 갖게 해주는 것이 사랑의 본질임을 알게 되었다고 적었습니다.
바로 그러한 사랑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자녀인 우리에게 베푸셨습니다. 우리가 죄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자, 하나님께서 대신 그 죄를 짊어지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누리고 있던 모든 권세와 지위 체면을 다 버리고, 이 땅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마땅히 져야 할 죄 값을, 주께서 고스란히 다 당하셨습니다. 말할 수 없는 온갖 고초를 다 겪으시고 십자가를 지셨던 것입니다. 눈곱만큼도 죄가 없으신 주님이셨건만, 우리를 죄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시려고 그 수치스런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죽음의 세력에게 그냥 당하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 죽음의 세력을 물리치시고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따르던 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소망과 기쁨을 갖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예수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써 우리 죄를 벗겨주셨고, 그를 다시 살리심으로써 새 삶의 소망과 기쁨을 갖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죄나 죽음과는 상관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활의 소망과 영생의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예수를 가까이하면 할수록 많은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와 자녀라는 특별한 관계 속에서 누릴 수 있는 복입니다.
1.그런데도 불구하고, 부활의 예수를 확실히 믿는 사람들이 드물다는 사실입니다.
주의 제자들도 예수의 부활을 좀처럼 믿을 수 없었던가 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시자, 제자들은 유령인 줄 알고 겁에 질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 손과 발을 보라. 너희 눈으로 나를 보고 있지 않느냐? 나를 만져 보고 내가 유령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라. 유령은 몸이 없으나 너희가 보는 대로 나는 몸을 갖고 있다』고 하면서 제자들에게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의 부활을 기뻐하면서도 의심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구운 생선 한 조각을 잡수셨습니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예언자들이 내게 대하여 기록한 모든 것이 반드시 다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눅24:45)』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 말씀들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주님과 함께 생활했던 제자들도 의심했던 부활이니, 오늘 우리가 부활을 확신하기란 그리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부활의 확신도 없이 예수를 믿는 것은 허공을 치는 것처럼 참으로 헛된 일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마음을 열어 성경 말씀을 깨닫고 부활의 믿음을 확고히 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부활에 대한 확신도 없이
①예수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매해 부활절 때마다 듣는 말씀이 부활에 대한 설교이고, 또한 때때로 주의 부활에 대해서 배우고 있지만, 과연 얼마나 주님의 부활을 확신하고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만일 예수의 부활을 확신하고 있다면, 지금의 신앙태도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주일을 마지못해 지키는 일도 없을 것이고, 성가대 활동이나 교회학교 교사 활동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열심히 하게 될 것입니다. 부활에 대한 믿음이 조금만이라도 있다면, 주일 저녁이나 수요저녁에도 열심히 참석하게 될 것입니다.
②그러나, 부활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주를 더 가까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가까이한다는 말은 진리 안에서 살려고 애쓴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세상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회 중심으로 산다는 말입니다. 다른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주의 일을 먼저 행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인격신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우리가 어디에다가 더 신경을 쓰고 마음을 기울이고 있는지 다 아십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확신한다면, 우선적으로 하나님 마음에 들도록 사는 일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죽음에 직면하자, 대부분의 제자들이 주님을 등지고 도망갔습니다. 만일 예수의 부활을 믿었더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부활하신 주께서 그들을 용서하셨기에 망정이지, 그 얼마나 부끄러운 짓입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 날에 주님이 오시면, 오늘 우리가 주님 앞에서 행한 그대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주의 일에 열심을 낸 사람과 세상일에 파묻혀 지낸 사람들의 행위가 그대로 드러날 것입니다. 더군다나, 사탄의 유혹을 받아, 믿는 자로서 행해서는 안 될 죄에 빠져 산 사람들은 정말 큰 창피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요일3:7 말씀에 『너희가 죄 짓는 짓을 그치지 못한다면, 너희는 사탄에게 속해 있다는 증거다』라고 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를 확실히 믿고,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그 아들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 사랑에 덧입 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과 그 은혜를 결코 잊어버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어느 유명한 목사님이 죽기 전에 사랑하는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나는 내 생명이 몇 날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네. 이 편지가 당신 손에 도착하기 전에, 나는 벌써 천국에 가 있을지도 모르네. 회답을 써 보내지 말게나. 부활의 새 아침에 우리 천국에서 만나기로 하세!’
우리도 언젠가는 죽습니다. 불신자는 죽는 것으로 모든 게 끝난다고 믿겠지만, 우리는 부활을 믿습니다. 부활을 믿는다면, 불신자들처럼 세상 중심으로 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천국에서 부활의 아침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감으로써
2.부활의 주님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그의 자녀가 되는 이 특권을, 우리는 정말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충분히 누리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①우선, 우리는 부활의 주님을 의심하지 말고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 말씀을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달리 해석하거나 주석을 달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문자에 얽매여서도 안 될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예수의 부활을 사실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생활을 반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의 제자들도 부활 이전의 생활을 철저하게 회개하고 새롭게 주님을 믿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부활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지금까지 미적지근하게 신앙생활 했던 것을, 우리는 반성해야 합니다.
②그래서, 이제부터는 세상 쪽으로 치우쳤던 몸과 마음을 주께로 기울여야 합니다.
이 때, 정신차리고 주의해야 할 것은 사탄의 유혹입니다. 맘먹고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면, 사탄이 가만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틀림없이 시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요일3:8을 보면, 『우리로 계속 죄를 짓게 하는 사탄을 파멸시키려고 주님께서 오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바르게 살려고 애쓸 경우, 주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셔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③우리는 오직 주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애써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 품안에 꼭 껴안아 주실 것입니다. 사랑스러워서 품어주실 것이고, 또한 악한 세력으로부터 보호하시려고 품어주실 것입니다. 지켜 보호하실 만한 가치 있는 인생이라면, 하나님께서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을만한 참된 성도가 되도록 합시다. 하나님의 복을 받기에 합당한 주님의 거룩한 백성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