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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존중하라 (삼상 2: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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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존중하라 (삼상 2:21-26)


▣ 우리나라의 부모들은 높은 교육열로 유명합니다. 높은 교육열과 교육에 대한 불신으로 조기 유학생이 늘고 있습니다.
온 가족이 해외로 갈 형편이 안되는 가족은 아빠 혼자 남아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생활을 하는 가족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가정의 아빠를 기러기 아빠라고 부릅니다.

▣ 최근에 40대 주부가 ‘기러기 아빠’를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썼습니다.
그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만 있는 현상인 기러기 아빠가 생기게 된 원인을 이렇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어떤 댓가를 치르더라도 내 자식을 잘 키워야 한다는 생각,
자식을 부모의 분신으로 바라보는 문화,
아버지가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해버린 현실이 기러기 아빠를 낳았다고 합니다.
이 논문은 기러기 아빠 20명을 면접하고 그들의 생활을 추적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로 드러나는 것은 아버지의 자리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아빠들이 열심히 벌어서 돈을 보내주면 교육은 엄마가 알아서 합니다.
가정에서 아버지의 역할이 사라져 버리니까 아버지는 돈을 버는 기계가 되어 버리고
가정이 잘 깨지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랜 만에 가족이 만나면 자식들에게 ‘왜 아빠처럼 구느냐’는 말을 듣기도 한다고 합니다.
부부간의 의사소통 단절로 인해 이혼위기에 놓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혼자 작은 방에서 소주한 잔하며 달래고 있습니다.
외도하는 아내와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어 자살을 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습니다.

▣ (그림)을 하나 보시겠습니다.
북극의 신사로 알려진 펭귄입니다.
펭귄은 차가운 얼음으로 된 지역에 살기 때문에 엄마가 알을 낳을 때 아빠 펭귄의 두 발위에 낳는다고 합니다.
펭귄의 발에 보드라운 털이 있기 때문에 차가운 얼음으로부터 알을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알을 받은 아빠는 알이 부화될 때까지 60일 동안 꼼짝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눈보라가 쳐도 그 자리를 지킵니다.

엄마 펭귄은 바다를 다니며 아빠에게 눈길한 번 주지 않습니다. 알에서 깨어날 새끼를 위해 먹이를 비축합니다.

새끼가 깨어나면 엄마는 그 동안 뱃속에 저장해 둔 먹이를 되새김질하여 새끼에게 먹입니다. 다 죽어가는 아빠는 거들떠 보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나서 아빠 펭귄은 굶주리고 지친 몸을 이끌고 먹이를 찾아 바다로 갑니다.
넘어지고 일어나고 그러다 쓰러져 죽어간다고 합니다.

가족에게 버림받은 기러기 아빠를 펭귄 아빠라고 부릅니다.
기러기는 날개가 있어 날아서 가족에게 갈 수도 있지만 펭귄 아빠는 열심히 번 돈을 송금하면
남는 것이 없어 가족에게 갈 수도 없다고 합니다.
우울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부모들은 이렇게 자식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이런 종류 사랑은 잘못된 사랑입니다. 다행히 잘 커주면 다행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 사랑 때문에 또 다른 어려움이 생깁니다.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빗나갑니다.
부모가 원하는 방향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인생을 살게 됩니다.
부모들은 또 다른 가슴앓이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대조되는 두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시 종교적인 지도자였던 엘리 대제사장의 가정과 시골 레위인 엘가나의 가정입니다.
엘리의 가정은 완전히 망하였고 엘가나의 가정은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1. 엘리의 가문
① 엘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12)
2:12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을 알지 아니하였습니다. 이 말은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음)
둘째는 하나님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셋째는 하나님께 순종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대적하는 행동)
하나님을 알지 아니하였다는 말은 이 세 가지를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두려워하지도 않았고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순종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신앙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믿음의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도 않았고 두려워하지도 않았고 순종하지도 않았습니다.

② 그들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를 무시했습니다.(17절)
2:17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그들은 하나님 앞에 성도들이 나와서 드리는 예물을 도적질하고 자기 맘대로 빼앗았습니다.
이것은 예배를 무시하고 파괴하는 행동이었습니다.

1) 하나님의 제사규칙을 어기고 남의 것을 빼앗음.
고기를 삶을 때에 갈고리로 걸려 나오는 것을 자기의 것으로 가져갔습니다. (삼상2:13-14)
제사 드릴 고기의 기름을 먼저 하나님께 태워 제사 드린 후에 삶은 고기를 제사장과 제사 드리는 사람이 나누어 가지도록 하나님께서 규칙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레위기에 의하면 제사장은 제물의 가슴과 오른쪽 넓적다리를 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의 두 아들은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을 무조건 자신의 몫으로 취하였습니다.
이 일은 제사 드리는 사람에게 돌아가야 할 정당한 몫을 침범하는 행동이었습니다.
제사를 통해서 욕심을 채우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율법을 무시하고 범하는 행위였습니다.

2) 하나님의 것도 빼앗음.
기름을 태우기 전에도 고기를 가져갔습니다 (삼상2:15-16)
제사장에게 금지된 음식은 짐승의 피와 기름이었습니다. 백성들도 이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님께 드릴 부분까지 빼앗아 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기름기 없는 고기에 질렸을 것입니다. 항상 삶은 고기만 먹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구운 고기가 먹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고기를 삶기 전에 날고기를 자기들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요구를 거절할 때는 폭력이라도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제사장이었지만 하나님의 것도/ 성도의 것도 자기 맘대로 빼앗아 가졌습니다. 하나님이 안중에도 없는 악한 모습입니다.

3) 회막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했습니다.
그들은 결혼을 하여 아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정욕을 채우기 위해 이방신전에서
행하는 음란한 행동을 했습니다.
창녀를 찾은 것도 아니고 성전에서 제사장이라는 직권을 이용하여 여인들을 범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예배를 무시하는 것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전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모욕하는 죄악입니다.

③ 그들의 아버지는 무책임했습니다.(23~24)
자녀들이 아버지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권위가 전혀 없습니다.
나이 든 아버지가 꾸짖었지만 아들들은 무시하고 자기 맘대로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의 분위기에서 자란 엘리의 두 아들은 불량자가 되었습니다.
엘리는 실로에서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으로 사사로 40년동안 다스린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을 성공적으로 잘 양육한 것으로 보아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의 자녀 교육에는 실패했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나면서부터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들의 신분은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명예로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불량자였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이방신을 섬기듯이 섬겼습니다. 매우 안타까운 현상입니다.

불량자라는 원어적 의미는 벨리알의 아들들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사악한 자들, 나쁜 녀석들, 쓸모없는 자들으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말은 과격하게 표현하면 마귀 자식이라는 뜻입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마귀자식들이라는 표현이다.
믿음의 부모에게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녀가 자라고 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요?
▶ 엘리는 자녀에게 믿음을 심어주지 못하였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의 악행의 근본 원인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위치에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제사장입니다. 성전에서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믿음이 없었습니다.
믿음이 없으니 믿음이 없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은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믿음을 심어주지 못했습니다.
자기의 믿음을 계승시키지 못했습니다.

▶ 엘리는 자녀에게 순종을 가르쳐 주지 못하였습니다.
엘리는 아들들의 악행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범죄하지 말라고 간곡히 당부했습니다.
그들은 아비의 책망을 듣지 않았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자녀를 순종하는 자녀로 키우는데 실패하였습니다.
그는 자녀들에게 믿음을 심어주지도 못하였고 순종하는 삶도 가르쳐 주지 못했습니다.

▶ 엘리는 아이들을 엄하게 징계하지 못하였습니다
엘리는 이스라엘 최고 종교지도자입니다. 백성들의 잘못을 책망하고 바른 길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래도 징계하고 고쳐야 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음에도 강하게 징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자식을 사랑했을 것입니다.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한다고 해서 너무 관대하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잘못되었을 때는 강하게 책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 엘리의 가정은 자녀들이 죽고 엘리도 죽고 비참하게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2. 엘가나의 가문이 잘되는 이유
사무엘을 훌륭하게 잘 길러 낸 한나라는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① 그는 사무엘이 어려서부터 하나님 앞에 섬기게 하였습니다.
한나는 독한 여인입니다. 젖을 뗀 아이를 하나님의 전에 바쳤습니다.
가슴이 아팠지만 한나는 하나님과 맺은 약속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사무엘은 어려서부터 이 신앙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성전에서 어머니 한나의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는 항상 하나님 앞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② 한나는 아들에게 좋은 신앙의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부모는 자식의 선생님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하는대로 따라 갑니다.
한나는 사사로운 감정이 아니라 믿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아들을 드렸기 때문에 예배에 소홀히 해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매년 실로에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아들을 위해 겉옷을 지어주었습니다. 제사장으로 섬겼습니다.
한나의 이런 신앙은 아들이 올바르게 하나님을 섬기게 하였습니다.
③ 사무엘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게 됩니다. (26절)
영적으로 흥하는 가문, 흥하는 사람은 바로 하나님의 은총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고 반드시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족한 것이 많다고 꼭 실패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귀중히 여김과 은총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사무엘과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신앙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녀에게 나처럼 하나님을 섬겨라 하고 말할 수 있습니까?
자녀에게 “나의 신앙을 본받아” 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까?
부모는 자녀의 영적인 스승입니다.
부모가 말하는 것, 기도하는 것, 헌금 드리는 것, 예배하는 것, 모두를 배우게 됩니다.

믿음의 부모된 여러분
자녀들에게 꼭 가르쳐야 할 것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을 알게 하라
엘리의 아들과 사무엘의 차이는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살았느냐 하는 관점의 차이입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했습니다.
항상 예배를 드렸지만 예배를 멸시했습니다.
예배를 우습게 아니까 예배를 맘대로 드리고 해서는 안되는 행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의 가족은 모든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는 엄격했습니다. 내용도 그랬습니다.
사무엘 가족의 예배는 생활 속에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예배가 삶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하나님 앞에서 잘되고 크게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도록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 한미준이라는 모임이 있습니다. 한국 교회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입니다.
이 모임에서 최초로 겔럽에 의뢰해서 우리 나라 국민의 신앙의식을 조사한적이 있습니다.
1998년에 처음 조사를 하고 5년뒤에 다시 조사를 했습니다.
특별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기독교인들에게 언제 예수님을 영접했는지를 물었는데 대답자 중 51.5%가 고등학교 졸업이전이었습니다. 그 대답은 5년전보다 10% 높아진 비율이었습니다.
5년만에 10%가 높아진 것은 엄청난 수치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어릴 때일수록 좋고 나이 들수록 예수님을 영접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여러분 자녀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나면 예수님을 영접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있는 부모님 가운데도 공부를 위해 신앙을 희생하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야 교회 생활은 좀 줄이고 나중에 대학 들어가서 열심히 해라 이렇게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 사이에 믿음에서 탈선하고 대학에 들어가면 교회를 아예 가지 않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나중에 우리 아이 좋은 대학 갔어요. 좋은 데 취직했어요
그런데 그 아이가 하나님을 모르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금 내 품에 있을 때 하나님을 섬기도록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지금 하지 못하면 나중에는 훨씬 더 어렵습니다. 눈물 콧물 다 쏟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심판받게 됩니다.

이런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자녀가 학교에 안 간다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교회에 안 간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설득해야 합니다. 말 안들면 때려서 라도 보내야 합니다.

네 맘대로 해라/ 네가 알아서 해라/ 이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세상 물결이 그 심령 속에 채워지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 놓아야 합니다.
어려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러면 그 아이는 평생 하나님의 임재의식 속에서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의지하며 살게 됩니다.

자식을 위해 금식기도 하십시오. 예수 믿는 것은 장난이 아닙니다. 댓가를 치루어야 합니다.
거져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불량자가 된다고 오늘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2. 자기 신앙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교회 옆에 살고 있는 여자 집사님이 외출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교회 사모님에게 아이 셋을 맡아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사모님은 아이들을 맡아 주었습니다. 식사 때가 되어 아이들을 위하여 밥상을 차렸습니다.
그리고 사모님이 말합니다.
“얘들아! 밥 먹자. 근데 너희 집에서 밥 차려 놓고 매일 하는 대로 해봐!”
내심 사모님은 아이들에게 감사 기도를 드리자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눈만 껌뻑거리고 가만히 있는 겁니다.
“얘들아! 밥 차려 놓고 엄마가 하는 대로 해보라니까.”
사모님이 독촉하였더니 둘째 아이가 기어가는 소리로 말했습니다.

“이 새끼들아! 싸우지 말고 빨리빨리 쳐 먹어!”
아이들은 부모의 거울입니다. 어린아이들을 실족하게 하는 것은 부모의 책임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본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의 본, 말씀의 본, 경건 생활의 본))
▣ 어떤 신앙잡지에서 "부모의 3대 바보짓"이란 기사가 실렸습니다.
① 자녀들 앞에서 목회자를 욕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목회자를 욕하고 흉을 본다면 그 자녀는 목회자에게 은혜를 받지 못하고 영혼은 병들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자녀가 받아야 할 하나님의 축복을 가로막고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무기입니다.
② 자녀들 앞에서 선생님을 욕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선생님을 욕하고 흉을 본다면 그 자녀는 배우기를 거절하고, 반항하며, 말썽을 피우고, 문제아가 될 것입니다.
③ 자녀들 앞에서 부모님(시부모, 처부모)을 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자녀가 부모를 공경할까요? 효도할까요?
우리는 너무 쉽게 자녀들 앞에서 목회자 흉을 보거나 선생님 흉을, 그리고 부모님 흉을 봅니다. 이것은 자녀들이 훌륭하게 성장하는데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자녀를 실족하게 하지 마십시오.
자식의 눈에 보이는 내 신앙은 어떤 지 살펴보십시오.
난 안 그런데 쟤는 왜 저러나 몰라 이런 말 하지 마십시오.
내게 잘못된 것이 있으면 잘라내고 찢어 버리십시오.
내 못된 모습이 자녀에게 전달되지 않도록 힘쓰시기 바랍니다.

3. 눈물로 기도하라
부모의 중보 기도입니다. 그냥 기도가 아닌 눈물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한나가 눈물의 기도로 아들을 구하여 얻은 것처럼 자식을 위해 눈물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 눈물의 기도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합니다.
자식을 살리는 것은 보약이 아니라 눈물의 기도입니다.
신앙 교육은 교회에서만 교회학교 선생님들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만 잘 다닌다고 안심하지 마십시오.
주일날 예배 시간에 교회에 있었다고 안심하지 마십시오.
지금은 제대로 못해도 때가 되면 회개하고 돌아오겠지?
다 큰 놈을 어떻게 하냐? 야단을 쳐도 안 듣는데 어쩌나?
이런 생각을 버리십시오.
아이들이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늘 살펴보아야 합니다.
믿음이 좋은 부모 밑에서 하나님을 모르는 자녀가 나올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식은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맡기신 기업입니다.
기업이란 나중에 책임이 따르는 것입니다. 잘 양육하였으면 상급이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 길렀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지어야 합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가 다 사무엘과 같이 귀하게 여김받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는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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