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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에 만난 하나님 (창 28: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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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에 만난 하나님 (창 28:10~22)


한 남자가 너무 괴로운 일이 많아서 유명한 카운슬러를 찾아갔습니다. 그는 죽을상을 한 채 하소연을 합니다. “너무 괴로워서 죽을 지경입니다. 한 가지 걱정거리가 해결되면 또 한 가지 걱정거리가 생기고 ... 정말 못살겠습니다. 어디 걱정 없는 곳은 없을까요?” 카운슬러는 그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합니다. “딱 한 군데 있기는 한데 ... ” “거기가 어딘가요? 가르쳐 주십시오.” “아~, 공동묘지입니다. 거기 가서 누워있으면 세상 의 근심 걱정거리 하나도 없습니다.” “아니, 그럼 저더러 죽으라는 건가요?” “그게 아니라, 세상사는 동안 다 그러려니 하고 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치고 걱정 근심이 없는 사람이 과연 누구이겠습니까? 이 세상에 근심 걱정의 무풍지대가 과연 어디이겠습니까? 문제는 걱정과 근심이 많은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잘 이겨내며 살 수 있는가 하는 겁니다. 걱정 근심 자체를 없앨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세상의 온갖 걱정 근심을 이겨낼 수 있을까요? 나보다 능력이 많은 분이 도와주면 됩니다. 아주 간단한 원리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다 거기서 거기이므로, 오직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만이 우리 인생을 온전히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복된 인생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면 하나님이 그 인생의 일거수일투족을 책임져주십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간단히 원리를 놓쳐버린 채 살아갑니다. 심지어 믿노라 하는 신앙인들조차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쓸데없는 걱정과 근심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 항상 와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자신이 잊어버리고,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 왔던 한 사람이 소개됩니다. 그런데 그는 위험한 여행길에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 큰 용기를 얻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 그리고 그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통해 그는 일생동안 세상의 걱정 근심을 극복하고 승리하게 됩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야곱’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늘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근심과 걱정 많은 이 세상에서 늘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1] 야곱이 만난 하나님 : 뜻밖에 만난 하나님

야곱은 이삭과 리브가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쌍둥이 형 에서가 있었습니다. 그는 욕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속임수를 써서 형 에서의 장자권을 차지합니다. 한번은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권을 샀고, 또 한번은 눈이 어두워진 아버지 이삭을 속여 축복 기도를 받아냅니다.

그런데 이게 탈이 된 겁니다. 속은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에서는 야곱을 죽일 듯이 달려듭니다. 사태가 심각해지는 것을 파악한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급히 피신시킵니다. 이렇게 해서 야곱은 갑작스럽게 집을 떠나 멀리 외가댁이 있는 하란 땅(브엘세바에서 800km 지점)으로 떠나게 됩니다. 황급히 떠났으니 어디 사람들과 인사나 제대로 했겠으며, 짐이나 제대로 챙겼겠습니까? 그저 보따리 하나 달랑 들고 쓸쓸히 길을 떠났을 겁니다. 그것도 형 에서가 추격할까봐 혼비백산하면서 떠났을 겁니다.

얼마나 갔을까? 한참을 가다 들판에 쓰려져서 잠을 잡니다. 이제는 더 이상 추격하지 못하겠지 하는 생각을 했지만, 혹시 하는 마음에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강도의 위험도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지쳐서 쓰러진 야곱의 모습! 얼마나 외롭고, 불안하고, 두렵고 고달팠을까요? 10절~11절을 읽어보면 상상이 됩니다. 겉옷을 이불 삼고, 돌을 베개 삼고 ... 차디찬 땅바닥에서 새우잠을 청하며 노숙하는 야곱의 모습!

여러분, 야곱의 모습은 어쩌면 모든 인생의 모습일지 모릅니다. 그렇죠. 일일이 말은 안 하지만 불안하고, 쓸쓸하고, 고달프고 ... 다 그렇게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럴 때 크게 도와줄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인생을 살면 살수록 우리에게 도움이 절실할수록 도울 이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외롭고 힘든 야곱에게 하나님이 그 밤에 찾아오셨습니다. 12절~15절의 내용입니다. 사닥다리가 보이고 그 위에 하나님이 서서 말씀하십니다. 사닥다리를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요1:51, 요14:6 참조) 하나님과 사람을 이어주는 중보자는 오직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그 위로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합니다. 자기는 혼자인 줄 알았는데,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말씀으로 위로하시고, 용기를 주시는 겁니다. 더 나아가 아브라함, 이삭에게 약속했던 모든 것을 이뤄주시겠다는 겁니다. 가나안땅을 줄 것이고, 장차 큰 민족을 이뤄주실 것이며, 무엇보다 야곱이 가는 곳마다 항상 동행해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정말 뜻밖이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겁니다. 그래서 그는 놀라서 외칩니다. 16절.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 !” 그는 전혀 예상하지 못 하다가 ‘뜻밖에 만난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실로 위대한 만남이었습니다. 야곱이 이전에 신앙생활을 안 했던 게 아니죠. 그러나 그는 착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고향에만 계신 줄로 오해한 겁니다. 당시 고대인들의 지방신(Local God) 사상에 물든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해봅니다. 지방신 사상은 우상 신을 섬기는 사람들의 왜곡된 신앙관인데, 어느 지방에는 특정한 신이 지배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다른 지방에 가면 기존에 섬기던 신이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신이 아니죠. 그분은 무소부재하신 하나님(Omni-present God)입니다. 야곱은 이걸 몰랐던 겁니다. 그런데 이번에 그 하나님을 생생하게 만난 것입니다. 이것은 위대한 발견이요 위대한 체험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이게 필요합니다. 신앙은 머리 지식(Head Knowledge)이 아닙니다. 가슴 지식(Heart Knowledge)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임재를 체험하고 굳게 믿어야 합니다. 이게 신앙의 진수요, 인생에서 가장 큰 자산입니다.

야곱은 그 들판에서 그런 체험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그 지역의 이름을 벧엘(하나님의 집)로 명명하게 됩니다. 이것은 야곱 인생에 있어서 분수령이 되는 사건입니다. 그 후에도 물론 신앙의 굴곡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님을 의지하며 승리하는 인생 살았습니다. 그날 밤 그 들판에서 뜻밖에 하나님을 만났지만, 그 후로는 항상 자기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으로 믿었던 겁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큰 자산이 바로 이겁니다. 하나님이 나와 동행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는 신앙이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감리교 창설자인 존 웨슬리가 운명하기 전 세 마디의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세계는 나의 교구다” “하나님은 일꾼을 땅에 묻으시나 그 후에도 당신의 일을 계속 하신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이다” 등입니다. 이 중에서 세 번째가 바로 그겁니다. 우리 모두 이런 신앙으로 험한 세상 승리하며 살아가기를 소원합니다.

[2] 하나님의 임재 : 언제나, 어디서나 동행해 주시는 하나님

야곱은 벧엘 사건 이후로 신앙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멀리 계신 분 아니고, 특정한 장소, 특정한 시간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 항상 동행해 주시는 하나님으로 믿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無所不在)의 하나님이시며 무시부재(無時不在)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속성을 가리켜 흔히 ‘편재성’(遍在性, Omnipresence)이라 부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정말 장소와 시간을 초월해서 임재하시고 동행해 주십니다.

① 어디서나 동행하시는 하나님 :
하나님은 광야에서도 함께 해 주십니다. 야곱이 그랬고, 이스라엘이 40년 동안 그랬습니다. 광야는 아무도 도와주는 이가 없는 곳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해 주셨습니다. 다윗은 시편에서 하나님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시23:4), 웅덩이와 수렁에서도(시40:2), 하늘 꼭대기와 바다 끝에서도(시139:8~10) 동행해 주심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요나가 배 밑창에 숨어들어갔지만 거기서도, 바다 깊은 곳으로 떨어져 물고기 뱃속까지 떨어졌지만 거기서도 함께 해 주셨습니다. 그뿐 인가요? 풀부물 가운데서도(다니엘 3장 - 다니엘의 세 친구), 사자굴에서도(다니엘 6장 - 다니엘), 풍랑에서도(사도행전 27장 - 바울), 감옥에서도(사도행전 12장 - 베드로) 하나님은 함께 해 주셨습니다.

옛날 미국에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림에 소질이 있었지만 취직이 안 되서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만화나 삽화를 그려서 신문사나 출판사의 문을 두드려 봤지만 번번이 거절당하고 말았습니다. 오갈 데조차 없었던 그 청년은 교회를 찾아갑니다. 다행히 목사님이 당분간 창고에 머물도록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는 용기를 내서 창고에서 기도하며 지냈습니다. 그 창고는 어두컴컴하고,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서 쥐가 들락거렸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은 거기서 하나님을 만났고, 아이디어를 얻어 쥐를 소재로 그림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마키 마우스’입니다. 그 청년의 이름은 월트 디즈니! 세계적으로 그 사람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성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쥐가 나오는 창고에서도 동행해 주셨던 겁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곳에서라도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디서 무얼 하든 함께 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 믿음 가지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② 언제나 동행해 주시는 하나님 :
하나님은 낮에도 밤에도, 항상 순간마다 성도들과 함께 해 주십니다. 1년 365일 하루 24시간 분초마다 함께 해 주십니다. 시121:4,6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 하시리로다 ...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 하리로다” 그리고 지금부터 영원무궁토록 함께 해 주십니다. 시121: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예수님도 약속해 주셨습니다. 마28:20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부활 승천하실 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몸으로는 하나님 보좌 우편으로 올라가 계시지만, 성령을 보내심으로 우리와 함께 해 주십니다. 그것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부터 약속하셨던 내용입니다. 요14:16~18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이처럼 어디서나 언제나 우리와 동행해 주십니다. 이 사실을 확실히 믿을 수만 있다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간다 할지라도 무슨 걱정과 근심이 있겠습니까? 우리의 문제는 문제 자체가 아니라 바로 그 믿음이 없는 그것입니다.

[3] 하나님의 동행으로 얻는 축복 : 위로, 보호, 인도, 공급

하나님은 전부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동행하면 모든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까, 하나님이 자기와 늘 동행해 주실 것을 믿게 되니까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용기 있게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18절을 보면, 야곱이 일어나 베개 하였던 돌을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습니다. 어쩌면 그 기름은 노자였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과감하게 하나님 앞에 부어드렸던 것은 용기 있는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용기를 얻은 야곱은 담대하게 하란 땅을 향합니다. 길을 가는 동안, 그 후 20년 타향살이를 하면서도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아무 것도 없는 빈털터리의 모습으로 떠났지만 20년 후에 가나안 땅으로 귀향할 때는 거부가 되어 있었습니다. 창30:43 “이에 그 사람(=야곱)이 심히 풍부하여 양 떼와 노비와 약대와 나귀가 많았더라”

우리는 여기서 야곱이 뜻 밖에 만난 하나님을 통해 큰 용기를 얻고 승리한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움이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신앙적으로 큰 체험이었고, 그로 인해서 그의 신앙이 성숙해지고 그 후에 승리하게 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야곱이 평소에도 살아계신 하나님, 늘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았었다 어땠을까 상상해 봅니다. 하나님을 매일 의식하던 그가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여먹었을까요? 하나님이 순리적으로 장자권을 주실 것을 믿고 기다릴 수 없었을까요? 아마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다면 타향살이 20년은 불필요한 기간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결과적으로 그 20년을 통해 야곱을 연단하시고 나름대로 축복해 주신 것도 감사하지만, 평소부터 하나님을 잘 의지하는 신앙을 갖고 있었다면 야곱의 인생이 과연 어땠을까 상상해 봅니다.

우리가 흔히 간증을 들을 때 아주 드라마틱한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까? 좋은 겁니다. 뜻밖에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한 간증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도전이 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매일의 삶 속에서,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한 평범한 이야기들이 더 큰 간증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뜻밖에 만나주시는 하나님도 체험하되, 매일의 삶 속에서 동일하게 그 놀라운 능력과 은혜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일평생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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