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있는 믿음의 사랑 (왕상 18:3-4)
본문
우리는 왜 하나님을 믿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왜 그렇게도 중요합니까? 이 세상에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왜 믿음입니까? 우리의 생명보다도 더 귀하고 이 세상에 어떤 것보다 더 귀한 것이 믿음 아닙니까? 성가대에서도 찬송을 했습니다. “금보다 귀한 믿음은 참 보배 되도다 이 진리 믿는 사람들 다 복을 받겠네.” 믿음은 금보다 귀합니다. 귀한 것보다 더 귀합니다.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도록 귀한 것이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믿는 믿음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귀한 것은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찬송가에 있는 대로 우리 모두를 복되게 합니다. 우리 모두를 좋게 합니다. 우리 모두를 무한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보면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라고 나옵니다. 저를 믿는 사람은 멸망치 않습니다. 좋은 것을 얻습니다. 양으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모든 일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주 예수를 믿는 믿음이 왜 중요합니까? 우리에게 이런 놀라운 축복을 받게 할 뿐만 아니라, 또한 불행한 일은 하나도 없게 합니다. 멸망치 아니하리라, 불행이 없으리라, 여기는 저주, 멸망, 부끄러움, 불행, 파멸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파멸이 없는 길, 불행과 저주와 죽음이 없는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믿음의 길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믿음으로 살면 그런 모든 일에 우리는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모두 다 그런 말을 합니다. “안 믿어도 잘 되는데, 뭐 잘 사는데...” 아닙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시편 129편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지붕위에 풀과 같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잠깐의 풀처럼 무성하지만, 시편 1편에 있는 것처럼 “바람에 나는 겨”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영광, 인기, 믿음을 떠난 모든 성공은 바람에 나는 겨, 지붕위에 풀과 같습니다. 그것을 축복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잠깐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축복, 은혜, 성공은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자녀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믿음을 잃지 않도록 끊임없는 믿음을 지키는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오바댜에 대한 말씀을 들으면서 용기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며 오바댜같이 용기 있는 믿음의 성도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천국 가는 사람은 용기가 있어야 됩니다. 지옥 가는 사람, 실패하는 사람은 용기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불행의 길로 죄악의 길로 가는 사람은 어떤 결단과 용기가 전혀 필요 없습니다. 술 먹는데, 죄 짓는데 무슨 용기가 필요합니까? 이 세상으로 가는 길은 아무 용기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생활은 용기, 결단이 필요합니다. 요령껏 살고 적당하게 살면 되는 것이 세상입니다. 어느 편에도 설 필요가 없습니다. 손해나고 자기에게 불리한 길은 안가면 됩니다. 그때그때 알아서 요리조리 움
직이면 되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그렇게 해서는 못 들어갑니다. 요리 조리 가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적당하게 사는 사람은 천국에 절대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한 길로 가야 됩니다. 한 믿음을 지켜야만 갈 수 있습니다. 멸망의 길을 믿음의 사람은 가지 않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믿음의 길만 좇아갑니다. 마귀와 타협하는 사람은 영생이 없습니다.
모두 다 가는 길입니까? 우리는 그런 길로 갈 수 없습니다. 모두가 다 좋아하는 길입니까? 모두 다 욕한다고 욕을 하며, 모두 다 넓은 길로 간다고 넓은 길로 가십니까? 그것은 믿음의 길이 아닙니다. 악에서 떠나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불의와 싸워서 이겨야 하며, 내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는 사람에게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선한 일, 믿음의 길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며칠 전에 어떤 장로님이 저와 식사를 하면서 그럽니다. “목사님! 제가 목욕탕에 갔었는데 그 분은 국정원장, 서울시장, 국회의원도 많이 하셨는데, 때를 밀면서 찬송을 부르는 것입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를 목욕탕 안에 다 들리도록 부르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용기가 필요합니다.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 이 구원의 은총을 입은 사람이 목욕탕 안에서 찬송을 부르는 일은 놀랍습니다. 그러나 용기가 없는 사람은 모두 다 숨기고 적당하게 살아갑니다. 지난번에 하인즈 워드가 왔었는데 얼마나 용기가 있습니까? “우리 어머니는 그런데 살았지만, 우리 어머니는 기도의 어머니입니다. 어머니의 기도 때문에 제가 이렇게 복을 받았습니다. 저도 늘 기도합니다.” 여러분! 인기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인기에 집착하지 이런 일을 경홀히 여기는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인기를 주신 분도, 성공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중요한 기회에 하나님을 높이고, 영화롭게 하는 자의 길은 열려질 줄로 믿습니다.
이번에 2005년 2006년 겨울 농구 결승전에 삼성이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우리 안준호 집사님이 감독인데 모든 분들 앞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첫 마디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용기입니까? 모두 다 그러지 말라고 하는데도 집사님은 “삼성에는 얼마나 훌륭한 선수들이 있는지 모릅니다. 이것은 위대하신 우리 이 회장님 덕택이고 끊임없이 우리를 밀어주시고 격려하신 덕택입니다.” 이렇게 삼성 회장님을 높이면 좋지 않습니까? 그러면 뒤로 봉투가 두둑하게 들어 올 텐데 그 말은 안하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하며,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이 축복해 주셨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믿음은 순간순간 용기가 필요하고, 이 용기가 우리를 복되게 합니다. 용기 있는 사람이 믿음의 복을 유업으로 받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천국은 그냥 못갑니다. 상처가 있어야 갑니다. 아픔을 통과한 사람이 갑니다. 하나님 나라의 면류관은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지키는 자에게는 땀, 피, 눈물, 아픔, 고통이 있습니다. 그 열매로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면류관을 쓰게 됩니다.
미국에 가면 우리나라의 국립묘지와 같은 국립묘지가 알링턴, 워싱턴에 있습니다. 이 국립묘지는 미국 사람들과 지도자들이 끊임없이 찾아 가는 곳입니다. 여기에는 유명한 문구가 있습니다. "FREEDOM IS NOT FREE."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자유는 그냥 공짜로 쉽게 얻는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많은 누워있는 젊은이 덕분에 지금 미국의 인구가 세계적인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피를 흘리지 않으며 자유를 지킬 수 있습니까? 자유를 위해 싸움하지 않는 나라는 자유를 누릴 수는 없습니다. 자유를 위하여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나라는 자유가 소중한 줄 모릅니다. 오늘 우리는 남이 가져다 준 이 엄청난 희생 때문에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것을 감사히 생각하고 지키는 용기 있는 민족이,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이렇게 어느 나라보다도 힘이 있게 성장한 것은 설교를 잘하고, 목회를 잘하며 요사이 목사님이 훌륭해서가 아닙니다. 일제 시대 때 공산주의와 싸웠던 그리고 수많은 우리 믿음의 선배들, 얼마나 용기가 있었는지 모릅니다. 엄청난 고문, 감옥에서 말할 수 없는 핍박, 죽임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켰습니다. 우리나라의 권력자들, 학자들, 모든 종교들이 모두 다 일본에 싹싹 빌고 일본이 하라는 대로 했지만, 끝까지 이 믿음 지키기 위해서 피 흘린 분들은 한국의 크리스챤들이었습니다. 유명한 언론들도 모두 다 일본 편에 서서 글 쓰고, 모든 학자들, 힘 있는 사람들이 모두 다 넘어갔지만, 교인들은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엄청난 고난이 왔습니다. 수많은 순교자들이 생겼습니다. 피 흘렸습니다. 어떤 분은 일본 국회에 가서 “너희들 망한다. 하나님 없는 너희들! 하나님 교회 핍박하는 너희들은 망한다.”를 뿌리고 감옥에 들어간 분도 있습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능력 있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신앙을 지키고 엄청난 매를 맞으며 고통당하므로, 오늘 우리 한국교회가 자유로운 예배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유는, 축복은 그냥 얻는 것이 아닙니다. 시시한 면류관도 그냥 얻는 것이 아닌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모든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영적 싸움을 싸울 때만이 그 대가를 우리가 얻는 줄로 믿습니다.
저는 농촌에서 목회를 40년 전에 하면서 주일마다 설교를 하는데도 교인들이 예배드리는 사이에 많이 끌려 나갔고, 어머니들을 남자들이 와서 그냥 자기 부인 머리채를 붙잡으며 나가는 것도 예배드리면서 많이 경험했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믿음 지킵니다. 아무리 맞고 쫓겨나도 그렇게 해도 믿음을 지킵니다. 수많은 종손들이 친척들 앞에서 비참하게 두들겨 맞아도, 자기 믿음 지켜서 그 집안을 구원했습니다. 여러분! 믿는 증손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안국동 윤보선 대통령도 종손이지 않습니까? 온 집안에 종손에게 주는 혜택을 모두 다 포기하고 ‘나는 예수 믿어 구원 받겠다.’라고 결단한 사람과 용기 있는 사람이 영생을 누리고, 자유를 누리며 자자손손 복을 받는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은 누가 지켜주는 것이 아닙니다. 내 믿음은 내가 지키는 것입니다.
제 친구 목사님이 한 분 계시는데 지금 시내 연동교회라고 하는 큰 교회에서 목회를 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저하고 같이 신학교를 다녔습니다. 이 목사님은 아버님이 목사님이십니다. 훌륭한 목사님이십니다. 그런데 군에 입대를 했는데 헌병대에 헌병이 되었습니다. 헌병은 군기가 얼마나 센지 주일날 전부 순찰을 해야 하는데 첫 부대에 배치를 받아 가서 첫 번째 이야기를 이렇게 했습니다. “저는 교회에 가야 합니다.” 그러니까 “창조 이후로 헌병이 교회에 갔던 일은 없느니라.” 그렇게 선포를 하더랍니다. 그래서 이분이 “그러나 그것은 높은 분의 선포이고 저는 교회에 나가야 됩니다.” 그래서 그냥 비참할 정도로 맞았지만 그러나 또한 갔습니다. 그 다음 주일에 또한 갔습니다. 나중에는 자유를 주더랍니다. 아버지가 목사지만 아버지가 믿음을 지켜주는 게 아닙니다. 믿음은 부모님이, 친구가, 목사님이 지켜주는 게 아닙니다. 권사 믿음은 권사가, 집사 믿음은 집사가, 주일 학생 믿음은 자기가 지켜야지 믿음을 지켜 줄 이는 없습니다. 믿음은 내가 지키는 것입니다. 내 믿음은 내가 지키는 것입니다. 모든 악, 불의, 하나님이 없는 세상에서 이 모든 어두움의 세력과 끊임없이 싸워야 믿음이 승리하는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승리자에게 주시는 하나님, 승리자에게 손을 들어 주시고, 승리자의 혈통과 승리자의 DNA를 축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의 용기를 보시고 용기 있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축복하시며, 모세의 용기를 보시고 모세의 용기 있는 그 믿음을 축복해 주신 것처럼 오늘도 우리의 믿음대로 이 나라를 축복하시며 여러분과 여러분의 길을 인도할 줄로 믿습니다.
아프리카에 가면 동물을 볼 수 있는 유명한 공원이 있습니다. 그 공원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케냐에 ‘마사이마라’ 라고 하는 유명한 공원입니다.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 공원은 자기 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워낙 커서 옆에 탄자니아까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같은 공원인데도 케냐에 있는 것은 ‘마사이마라’라고 하고 국경만 넘어서면 ‘세렝게티’라고 합니다. 두 공원이 모두 다 두 나라이지만 한 끈입니다. 공원 하나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큽니다. 우리 대한민국 몇 배나 됩니다. 몇 백만 마리의 짐승들이 이곳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워낙 크니까 우기도 다릅니다. 공원 하나에 여기가 여름이면 저기는 겨울이고 그렇게 다릅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짐승들이 계절과 우기를 따라서 이쪽 마사이마라에 있다가 세렝게티로 가고, 그 쪽에 육 개월 있다가 또한 세렝게티에서 마사이마라로 옮겨 옵니다. 얼룩말, 소, 사슴, 특별히 누우 떼들, 저도 보니까 10km를 주욱 이어져 있습니다. 그것도 한 떼입니다. 한 떼만 10킬로가 있습니다. 수많은 짐승들이 옮깁니다. 그런데 마사이마라에서 세렝게티로 가려면 무슨 강이 있느냐 하면 ‘마라’ 라고 하는 강이 있습니다. 이 강은 우기가 되면 강이 범람합니다. 악어 떼 수 백 만 마리가 이 짐승들이 이동할 때를 거기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수많은 누우 떼가 가는데 그 중에 대장이 있습니다. 리더가 있는데 거기 와서 악어 떼가 이글거리는 그 자리를 보면서 서 있습니다. 수많은 누우 떼들이 지금 그 대장이 결단하는 걸 보고 기다립니다. 대장의 움직임이 있기 전 까지는 전부 가만히 서 있습니다. 수 만 마리가 옆에 서 있을 때 드디어 대장되는 누우의 리더가 결단을 하고 물로 딱 뛰어 들면 수 십 만 마리가 그 강을 건넙니다. 급류를 건넙니다. 그 용기 그 결단으로 반드시 건너가야만 살 수 있습니다. 여기서 6개월 동안 안 먹고 살 수 있는 동물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 강을 건널 때만이 살 수 있습니다. 오늘 신앙은 결단과 용기 있는 사람이 자기도 살고 가정도 살리며 민족을 살립니다. 적당하게 살아가면 모두 다 죽는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믿음을 잃어버리고 살아보십시오. 그게 사는 것입니까?
우리 가까운 예로 1.4후퇴 때 북한에 있는 교인들이 용기를 가지고 돈 많은데 재산을 모두 다 버리고 빈 손 들고 여기에 내려온 사람은 자기도, 자녀들도 살고 모두 다 이 나라에서 복 받았는데, ‘아이고~ 우리 땅 저 3천 5백 평, 아이고~ 저 논, 저 기와집, 이런 사람은 지금도 그의 자녀들하고 그의 삶이 자자손손 비참함, 고통, 저주를 누리고 있습니다. 신앙은 결단입니다. 믿음 없는 곳은 살 수가 없습니다. 믿음 있는 곳으로, 내 영혼이 사는 곳으로 뛰어 나가야 합니다. 신앙은 엑소더스(exodus)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을,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는 것처럼 우리는 믿음으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한국 교회의 문제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한국 교회는 많은 부흥도 가져 왔고 엄청난 축복이 있지만 너무 현실적입니다. 세상과 너무 타협합니다. 적당하게 삽니다. 앞으로 갈 생각, 저 마사이마라를 향하여 나갈 생각을 안 하고, 오늘 여기를 버틸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는데 믿음이 없는 곳에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믿는 자는 믿음의 길로 나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저도 명성교회를 개척해서 목회를 하고 보니까 재미가 있습니다. 교인들이 저를 대접 잘하고 먹을 것 잘 가져오며, 좋은 차, 사택, 좋은 옷 해 주는 분도 계시고 주례를 해 드려도 감사하다고 하며, 심방을 해줘도 사주고 이걸 잘 챙겨 넣으면 저는 괜찮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면 저는 죽는 것입니다. 초기부터 오늘날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절대로 저는 그렇게 살 수 없는 것은 저의 믿음이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항상 주님만을 바라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제가 목회를 잘 해서 우리 아들에게 여기를 맡기고 이렇게 해서 짭짤하게 우리 집이 명성교회 가지고 먹고 살아야 되겠다하면 안됩니다. 제가 사는 길은 믿음으로, 앞으로 나아가는데 있습니다. 끊임없는 용기와 결단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갈 때 우리 교회도 살고 저도 살며, 우리 민족이 모두 다 함께 살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심히 짧습니다. 짧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보람되게 사는 길이, 후회함이 없이 사는 길, 영생을 얻는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아합 시대에 궁내대신 오바댜라는 분이 있습니다. 별로 잘 알려지지 않은 분이지만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모릅니다. 때에 따라서는 이 세상 권력도 하나님의 나라를 핍박하고, 한 순간에 바뀌어 집니다. 하나님을 믿던 이 나라에 7대 왕인 아합 왕 때에는 그의 부인이 저 엘바알의 딸 이세벨이라는 우상 숭배하는 여자가 와서, 서서히 남자를 움직이고 법을 바꾸어서 하나님 믿는 제사장들 선지자들을 모두 다 죽입니다. 모두 다 핍박합니다. 법을 만들어서 요리조리 교인들이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종들이 이 산 저 산으로 피하고 있을 때, 오바댜는 하나님을 잘 경외합니다. 워낙 믿음이 있고 흠이 없으니까, 이세벨도 아합도 죽이지를 못합니다. 오바댜를 못 죽이고 궁내대신 장관 자리에 그대로 둡니다. 그래서 이 오바댜는 자기만 살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보내어서 고통당하는, 이 굴 저 굴로, 이 산 저 산으로 헤매는 주의 종들을 오십명씩 자기가 아는 토굴 속에 숨겨 놓고 먹을 것을 가져다주며, 물을 주었다는 말씀이 여기에 나옵니다. 백 명의 선지자를 계속해서 오바댜가 보호해 줍니다. 들키면 어떻게 됩니까? 적당하게 “각하 뜻대로 하옵소서. 예수쟁이들 없애야 합니다. 큰 교회들 손 좀 봐야합니다.” “맞습니다. 각하! 옳습니다. 만수무강 하옵소서. 길이길이 영광을 누리옵소서.” 그러면 자기가 높은 자리라도 하나 올라 갈 수 있을 텐데.. 아닙니다. 믿음 있는 사람은 그 시대를 따라가지 않습니다. 어디서 살든지 비즈니스든지, 정치이든, 과학자든, 누구든 간에 하나님의 뜻대로 믿음으로 사는 결단을 가지고 행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항상 용기를 가져야 됩니다. 이런 것 뿐 만 아니라 범사에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새벽기도 나오는 것도 용기입니다. ‘주여! 나는 내일부터 새벽기도 나가겠습니다.’ 주님이 도와주십니다.
우리 교회는 형사들, 경찰 서장이 많습니다. 그런데 한 형사가 저한테 편지를 했습니다. 자기는 형사 수사과에서 나쁜 강도들만 잡는데 우리나라에서 일 등하는 사람이랍니다. 최고로 많이 잡습니다. 그런데 집에는 한 시에 들어올 때가 많답니다. 그래도 새벽기도에 결석한 날이 없습니다. 꼭 나온답니다. 이것이 용기입니다. 경찰관이 그러기가 쉽지 않습니다. 용기 있으면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기도의 용기를 가지고 기도하시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축복하십니다. 주일 지키는 것, 죄를 짓지 않는 것, 회개하는 것, 선한 일을 하는 것, 성가대 하는 것도 용기입니다. 용기 있는 사람과 그의 자손은 오바댜와 같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후손 다윗과 같이, 하나님 앞에 새벽 별같이 빛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저주 받지 않고, 불행도 당하지 않으며,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어 길이 길이 잘 되려면 믿음으로 사는 용기 있는 크리스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미국에 청교도들이 있지 않습니까? 굉장한 용기입니다. 그 분들은 고국이 잘 사는데도 영국을 버렸습니다. 자기 살던 나라를 모두 다 버렸습니다. 그래서 102명이 똘똘 뭉쳐서 ‘믿음으로 살자! 믿음의 용기!’ 어떤 사람은 싸우는 용기도 필요하다는데, 그런 용기는 좋지 않습니다. 헛된 용기가 현대인들에게는 많습니다. 막 돌 던지고 포악한 용기, 그런 용기는 패망의 용기입니다. 좋은 일에 용기를 가지십시오. 미움도 용기입니다. 부부간에 싸우는 것도 용기이지만, 사랑하는 것은 더 큰 용기입니다. 저도 결혼하기 전에는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결혼하고 나니까 그 말 할 여가도 없고, 그 말이 또한 안 나옵니다. 한 십 여 년 동안 사랑한다는 말을 한마디도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싶은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가 안 나옵니다. 그래서 부산에 집회를 갔다가 전화를 했습니다. 오늘은 그 말을 해야 되겠다 그래서 40분 동안 전화를 하는데도 그 말이 안 나옵니다. 사는데 사랑한다는 말을 새롭게 한다는 것이 너무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40분 되었을 때 제가 용기를 가지고 “여보! 사랑해요” 그러니까 처음 듣는 말이니까 한참을 듣고 생각하더니 “나도요” 그럽니다. 자기도 용기가 없어서 그 말을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용기 있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모든 좋은 일에 용기를 가지십시오. 청교도들은 용기를 가지고 고향을 떠났습니다. 바다를 건넜습니다. 102명이 많이 희생을 당하고 미국 보스턴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 후 10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민을 왔느냐하면 1만 8천명 되는 인원이 그 뒤를 이어서 계속 옵니다. 영국에서 계속 오는데 누구만 받아들였느냐하면 하나님 제일,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을 가진 사람만 이민을 받았습니다. 용기 있는 사람들만 미국 땅에 받아들여서 그 민족이, 그 조상들이 지금 세계의 복의 근원이 되고 인류를 위해서 큰일을 하는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청교도의 용기를 우리 성도들이 가지기를 바랍니다. 세계의 복의 근원이 되는 위대한 민족은 용기 있는 민족입니다. 사망과 어두움의 세력과 싸우고, 고통당하는 내 모든 민족을 불의에서 죄악에서 건져내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용기 있게 싸워야 할 오늘 우리의 영적 싸움의 대상들을 열 가지로 말씀을 드릴 텐데 잘 기억하셨다가 영적 싸움에서 하나 하나 승리하고 적당하게 적을 향하여 타협하지 말며, 성도는 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끊임없는 영적 싸움에서 승리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첫째, 이단입니다. 이단은 우리나라 뿐 만 아니라 기독교가 시작된 그때부터 이미 성경 베드로서나 유다서에도 등장했습니다. 이 천년 동안 교회가 있는 곳에는 이단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단은 패가망신합니다. 이단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모릅니다. 병이 있는 것은 병원에 가서 진단하면 그 진단을 통하여 전문 의료진에 의해서 병을 알 수 있듯이, 이단은 스스로 이단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단을 알 수 있습니까? 모든 건전한 학자들과 기성교회에서 ‘이단이다’라고 하면 그건 이단입니다. 우리나라에 이단이 어느 나라보다 많습니다. 세계에서 ‘내가 예수다.’라고 하는 분이 38명이 있는데, 우리나라에만 30명이 있다고 하니 세상에 왜 이렇게 이단이 많습니까? 예
수님이라고 하는 이단도 그렇게 많은데 그 밑에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넘어가지 말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내 개인만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이단은 여러분이 모두 다 못 이기니깐 이단과 싸우는 기독교 기구에도 지원을 해 주어야 합니다. 이단과 싸우는 사람을 박수 해주고 밀어주며, 기도해주고 재정적으로 뒷받침해서 이 어두움의 세력을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우리나라가 건전한 믿음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 다음, 자유주의 신학입니다. 신학이라고 모두 다 신학이 아닙니다. 잘못된 신학이 있습니다. 교회를 파멸하는, 말씀을 믿지 아니하는, 성 삼위 일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아니하는, 성경 하나도 인정 안하는, 예수님이 우리 구주라고 하는 것을 전혀 인정 안하는 이런 신학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나라에도 신학교마다 깊이 깊이 들어와 있습니다. 어느 신학교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이런 일에도 여러분이 끊임없이 신학자라 하니까 모두 다 그냥 받아들이고 읽으면 안 됩니다. 잘 분별해서 대적하고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끊임없이 있습니다. 어두움의 세력은 성도를 넘어뜨리고 교회에 침투하고 우리 교계를 침투하며, 모든 일에 동서남북으로 침투합니다. 선이 악을 공격합니까? 악이 선을 공격합니다. 넘어뜨리려 합니다. 이 땅에 있는 모든 어두움의 세력이 참 빛, 생명, 구원, 영생, 축복, 은혜가 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넘어뜨리려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세상은 그런 게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넘어뜨리려 합니다.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셋째 사상적으로도 침투합니다. 잘못된 사상, 하나님이 없는 사상이 많습니다. 공산주의는 하나님이 없는 사상입니다. 기독교 국가가 이것을 지키지 못한 나라가 러시아입니다. 폴란드, 헝가리 백 퍼센트 믿던 나라가 공산주의를 받아 들였다가 홀랑 망해가지고 70년 만에 돌아 와 보니 거지가 되어 돌아온 것입니다. 여러분! 어두움의 사상에 넘어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용기 있게 말을 하고 지켜야 자기를 지키는 것이지, “글쎄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안 같기도 하고...” 그러면 안 됩니다. 용각산 같이 살면 안 됩니다. 이 소리도 아니고 저 소리도 아니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면 안 됩니다.
네 번째, 때에 따라서는 어떤 힘으로 교회와 성도를 넘어뜨리려 합니다. 권력이나 언론이나 이 세상에 있는 다양한 힘을 통하여 교회를 공격할 때가 기독교 역사에 너무 많이 있었습니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어떤 힘도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습니다. 다니엘을 힘으로 넘어뜨리려 했지만 다니엘이 이기지 않았습니까? 모르드개는 그 큰 힘, 바벨론 힘으로 넘어뜨리려 해도 문지기가 이겨내지 않습니까? 이겨내야 됩니다. 신앙을 가지고 이겨야 됩니다.
다섯 번째는 우상 숭배입니다. 갖가지 우상숭배입니다. 우리나라는 미신이 없다가 요사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점쟁이가 얼마나 많아졌는지 모릅니다. 무당 굿하는 일이 대학에도 모두 다 침투합니다. 교회라고 침투 안하는 줄 아십니까? 교인들도 많이 간다고 합니다. 어제 어떤 유명한 코미디언을 만났는데, 연예계에도 그렇게 그쪽으로 가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일 인기가 불안하니까 자꾸 그 쪽으로 가는 것입니다. ‘아유~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 그래서 점하는데 앉아 있었더니, 점쟁이가 그러더랍니다. “당신 집에 감나무가 있지요?” 그래서 “감나무 없는되요.” 그러니까 “참 없기를 잘했습니다. 있었으면 큰 일 날 뻔 했는데...” 하면서 말 할 때마다 이러면 요리 갖다 붙이고, 저러면 조리 갖다 붙이며 그래서 “야~ 이렇게 새빨갛게 거짓말 하는구나”했답니다. 여러분! 이런 어두움의 세력에 넘어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대학에도 지금 점하고 굿하는 것이 얼마나 들어와 있는지, 문화라고 하면서 들어와 있고 학생들끼리도 그러며 온갖 우상숭배에 넘어가는 일이 많습니다.
여섯 번째, 죄악에 대한 유혹입니다. 모든 죄에 대해서 타협하면 안 됩니다. 죄를 멀리하고 떠나며, 이겨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좁은 길을 갑니다.
일곱 번째, 물질주의, 현실주의, 이기주의, 출세주의, 권력만능주의, 인기주의 이런 주의에 늘 조심해야 합니다. 인기가 있고 출세만 하면 최고가 아닙니다. 돈만 벌면 최고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길은 가져서는 안 됩니다. 버려야 됩니다.
여덟 번째, 문화적으로도 너무 많은 어두움의 세력은 교회와 성도들과 우리를 넘어뜨리려 합니다. 음악이라고 모두 다 좋아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없는 음악, 영화, 인터넷, 문학, 오페라, 미술 수많은 문화의 미명으로 전통이라고 해서 우리를 넘어뜨리려 합니다. 우상숭배는 영적으로 우리를 흐리게 하지만 물질이나 이런 것들은 문화적으로 우리의 삶을 파괴합니다.
그 다음에는 쾌락주의입니다. 온갖 이 세상에 술 취하고 방탕하며, 음란하고, 오락과 도박, 하나님이 없는데서 즐기려고 하는 것은 그건 즐거움이 아닙니다. 고통입니다. 술의 즐거움을 가지려고 하다가 알코올 중독자가 지금 300 만 명이나 되고 인터넷 중독자가 488 만 명이며, 도박 중독자가 300 만 명입니다. 이래서 우리의 모든 가정이 파괴되고 사회가 파괴되며, 청소년이 길을 잃고 일 년에 길거리에 버려진 아이가 1 만 명, 해마다 1 만 명 입니다. 1997년에 8,268명 이었는데 2001년에는 10,586명 2002년에는 10,057명, 가면 갈수록 더 많아집니다. 애들을 길에다 막 버립니다.
그 다음에는 정신적으로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어두움의 세력이 있습니다. 미움, 분열, 원망, 불평, 의심, 염려, 걱정, 두려움, 낙심, 시기, 질투가 정신적으로 우리를 침투합니다. 오늘도 제가 주일마다 기도해 주는데, 보면 애들이 정신이 옳지 않습니다. 요사이 젊은이들이 정신이 옳지 않습니다. 정신이 돌았습니다. 치료해도 안 됩니다. 공연히 걱정하고 예수 믿으면 믿음으로 걱정을 물리쳐야 됩니다. 따라 하십시오. “나는 걱정하지 아니하리라!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라! 낙심하지 아니하리라! 염려하지 아니하리라! 미워하지 아니하리라! 할렐루야!” 그런 고민되는 시간 있으면 찬송을 부르십시오. 저도 잠이 안 올 때가 있습니다. 걱정이 될 때, 잠이 안 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일어나서 기도합니다. “네 염려를 다 주님께 맡겨버리라 했는데 주여 염려를 맡깁니다. 이 모든 문제를 맡깁니다.” 그러면 잠이 한 순간에 옵니다. 염려를 맡깁니다. 잠 잘 자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것은 누가 해 주는 게 아닙니다. 내가 해야 됩니다. 이 모든 영적 관리, 용기 있는 결단은 내가 하는 것이지 누가 도와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일에 승리자가 가는 곳이 천국이고, 이 모든 일에 승리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끊임없이 밀어주시고 도와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김삼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