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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의 약속(창 2: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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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의 약속(창 2:4-14)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한 작은 나라를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는 아주 작은 초미니 국가였습니다. 영토라고 해봐야 작은 동산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작은 나라는 이 세상의 모든 운명을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나라였습니다.

본문 4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오늘 본문이 속해 있는 창 2장에는 창 1장과 대조적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창 1장에서는 “태초에 하나님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엘로힘’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 ‘엘로힘’이라는 하나님의 이름이 2장 3절까지 계속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4절부터 하나님의 이름이 ‘엘로힘’에서 ‘여호와’로 바뀌어 집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4절에 들어와서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로 바뀌는 것일까요? 그것은 곧 인간이 창조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엘로힘’이라는 하나님의 이름과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은 그 이름이 사용된 경우가 서로 다릅니다.
►‘엘로힘’은 하나님의 권위를 드러낼 때 주로 사용되는 이름입니다. 장엄하고 위대하고 높고 전능한 창조주 하나님을 가리킬 때는 엘로힘 하나님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주를 창조하는 창조주로서의 권위가 필요한 창세기 1장에서는 엘로힘이라는 이름이 사용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언약을 세우시고, 언약을 지키시고,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인간과 개인적으로 일대일 관계를 맺으시는 하나님을 말할 때는 반드시 여호와라는 이름이 사용되었습니다.

창조자 능력자를 말할 때는 <엘로힘>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지만, 이제 곧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을 실 것이기 때문에 4절부터는 여호와란 이름이 사용된 것입니다.

4절부터 사용되어진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관심이 많고,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과 관계를 맺고자 하시는 하나님을 강조하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 하나님으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본문 4절을 보면, 여기에 ‘대략’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 뜻은 ‘좀더 상세한 설명’이라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성경에서 설명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천지 창조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 것도 없는 혼돈과 무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천지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것이 천지 창조입니다.

지금까지 설명된 것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분명히 살아계실 뿐 아니라 능력이 있으며,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만드셨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이제까지는 창조의 서론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이 누구신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어떻게 만드셨는가? 는 서론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그 능력의 하나님과 우리가 어떤 상관이 있는가?’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4절에 나오는 ‘대략’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까지 설명한 창조의 내용을 다시 반복해서 상세하게 설명하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모세는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 모든 것을 창조하신 능력의 하나님과 우리가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하는 우리의 본질적인 문제에 들어가겠다는 의미로 ‘대략’이라는 말로 말씀을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Ⅰ. 본문이 말씀하고 있는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어떻게 만드셨는지 비교적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본문 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이것은 우리가 아주 잘 아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움직이며 돌아다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는 세상을 어떻게 창조하셨습니까?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창조하실 때는 그냥 말씀으로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그 모양을 빚어 만드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했는데 ‘지었다’는 단어는 조각가 또는 토기장이가 쓰는 단어입니다. 토기장이가 진흙을 가지고 정성들여 빚어내는 것을 묘사한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사랑과 정성과 재주와 지혜를 총동원하셨습니다. 따로 시간을 내시고, 정성을 내시고, 사랑을 쏟으시고, 관심을 쏟으셨습니다.

그냥 ‘엘로힘’으로 창조하지 않으시고 ‘여호와’ 하나님으로 나타나셔서 사람을 빚었습니다. 우리 인간의 가치와 권위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을 만드실 때는 짐승과 완전히 구별해서, 토기장이가 하나의 작품을 정성을 다해 만들듯이 따로 시간과 노력과 정력과 사랑과 관심을 쏟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엡 2;10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걸작품’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 개개인의 무한한 가치를 발견해야 합니다.
인간은 자기의 가치를 발견할 때 의미 있는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언제 불행합니까? 그것은 자기의 가치가 떨어질 때입니다. 인간의 가치가 저하될 때, 그때 인간은 불행해집니다.
인간은 반드시 자기의 초대의 가치를 발견해야 합니다.

목사인 제가 하는 일도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께서 성도 개개인들에게 주신 최대의 가치를 발견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은 죄로 인해서 비뚤어진 인간의 가치, 형편없이 떨어진 인간의 가치를 복음 안에서 다시 회복시켜야 합니다.

이 세상의 교육과 철학과 도덕과 환경은 우리의 가치를 밑바닥에 떨어 뜨려 놓았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 가치 있는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관심과 사랑으로 그들의 존재 가치를 회복시켜 주어야 합니다.

자기 가치를 아는 사람은 남의 가치를 인정해 줍니다.
자기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남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교회에서도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을 관찰해 보면, 자기의 정체성이 없습니다. 자기의 존재 가치를 모릅니다. 자기의 존재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 남의 존재 가치도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너무도 사람을 무시합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인간의 가치와 인간의 권위를 회복시키는 일입니다.
한 사람의 인간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셨고,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목숨을 버리기까지 하시지 않았습니까?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정성을 쏟아 빚으시면서 우리 하나 하나를 만드셨습니다.
세상에서 방황하는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의 눈으로 볼 때는 그 사람도 그렇게 존귀한 사람일 수 없습니다. 우리 성도들끼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런 찬양이 있지 않습니까?
“형제의 모습 속에 보이는 하나님 형상 아름다와라
존귀한 주의 자녀 됐으니 사랑하며 섬기리
우리의 모임 중에 임하신 하나님 영광 아름다와라
존귀한 왕이 여기 계시니 사랑하며 섬기리”

다음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만드셨다고 하는 것은 사람의 본질이 흙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어떻게 흙을 빚어서 사람을 만들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본질입니다.
사람의 본질은 흙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은 하나님 앞에 참으로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고 하나님의 지혜가 있고 하나님께서 주신 여러 가지의 성품들이 있다고 해서 우리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흙입니다. 티끌입니다. 땅에 속한 자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도 흙이 우리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본질은 우리가 밟고 다니는 흙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지혜가 있고 능력이 있고 권세가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본질은 우리가 밟고 다니는 흙과 다를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곧,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보잘것없는 티끌입니다.
사람이 흙으로 만들어졌다는 이 사실은 우리의 생명을 하나님께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면 언제든지 티끌처럼 날아가 버리는 존재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가 살아 숨쉬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있기 때문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오늘 내가 살아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됐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육신의 부모님을 통해서 태어나지만,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생령이 된지라’

여기에서 ‘생령’이라는 말이 아주 중요합니다.
생령이라고 하는 것은 살아서 움직이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생명을 주심으로써 살아 움직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혼자 숨을 쉬고 생각도 하고 활동도 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성도여러분!
육체를 자랑하지 마십시오. 인물을 자랑하지 마십시오. 직업을 자랑하지 마십시오. 돈이 많은 것을 자랑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다 티끌 같은 존재들입니다. 우리를 살리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티끌과 같은 존재이며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다는 이 사실을 인정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생명을 주십니다.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이는 복되고 귀한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Ⅱ. 본문이 말씀하고 있는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에덴에 동산을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본문 8절-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가운데 아주 작은 하나님의 나라를 만드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아주 작은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동산’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영토가 아주 작다는 뜻입니다.
사람이라고 해봐야 두 명 밖에 없었습니다. 그것도 한 사람은 남자고 한 사람은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작은 나라에는 법이 있었고, 언약이 있었습니다. 에덴동산은 하나님의 나라였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법을 두 그루의 나무로 표현하셨습니다.

본문 9절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이 말씀은 대단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이것 때문에 인간의 운명이 결정되었습니다.
또한 믿지 않는 사람들이 기독교에 가장 불만을 표시하는 부분도 바로 이 부분입니다.

a. 본문에 먼저 나타나는 것은 ‘생명나무’입니다.

우리는 이 생명나무가 구체적으로 어떤 나무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 나무를 통하여 흙에 불과한 우리 인간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나무의 이름이 생명나무인 것은, 인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고 하나님이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나무 자체를 무슨 효력을 가진 나무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 나무 자체에 무슨 신비한 힘이 있어서 그 열매를 먹기만 하면 천년만년 죽지 않고 살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은 이 나무 열매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옵니다. 이 나무는 하나님이 약속을 새겨놓으신 법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하나님과 맺은 최초의 언약입니다. 곧, 에덴의 언약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만약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신 선한 뜻에 충실하게 살기만 하면, 우리가 흙임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생각, 고집,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만 하면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고난이 오고, 어려움이 오고, 유혹이 오고, 가난이 오고, 질병이 온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철저하게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b. 또 다른 나무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생명의 언약의 또 다른 한 측면을 보여주는 나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나무의 이름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고 하시고, 이 나무와 이 나무의 열매를 따먹는 행위를 통하여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의도를 드러내고자 하셨습니다.

성도여러분!
16절과 17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성도여러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어떤 힘이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생명나무처럼 이 나무도 평범한 나무였습니다. 그냥 보기에 좋고 먹음직한 열매를 맺는 나무였을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나무를 통하여 우리 인간 마음속에 있는 의도를 드러내기를 원하셨습니다.

생각하는 것이 선한 것이냐 악한 것이냐,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원하느냐 거역하느냐 하는 그 의도를 나무 열매를 따먹는 행위를 통해서 드러내시겠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처음에 이 작은 나라의 청지기로 만족했습니다.
모든 것이 기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속에 교만과 욕심이 찾아왔습니다.
이제는 청지기로 사는 것이 불만족스럽습니다.
이 나라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 나라에서 하나님을 몰아내고, 이 나라를 아담과 하와의 나라로 만들고자 하는 욕심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귀의 유혹을 받아들여서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행동을 한 것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는 것은 의도적인 반역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면 반드시 죽는다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목숨을 잃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생명력 있는 교제가 영원히 끊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앞에서 겸손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망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에덴의 언약이며,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입니다.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무엇입니까?
내 생각과 느낌을 의지 하지 않고, 참으로 내가 하나님 앞에 티끌 같으며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임을 오늘 고백하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 주신 인생을 허망하게 살지 마십시오.
내 정욕, 내 생각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모든 일을 예수님 마음으로 하십시오.

성도여러분!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말씀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창조주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흙으로 만들었습니다.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 주고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면 반드시 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앞에서 겸손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망할 수가 없습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여러분의 인생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온전히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을 지키십시오.

아무 거나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사람, 기분 나는 대로 떠드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유혹이 오고 어려움이 와도 내 마음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어려움이 온다고 해서 원망하지 마십시오. 이길 수 있습니다.
어렵고 힘이 들 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씀드리십시오.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저는 이 어려움을 이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겠습니다. 저는 분명히 이길 수 있습니다. 저에게 힘을 주세요”라고 말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짧은 인생을 멋지고 아름답게 살아야 합니다.
이제 다시 쓸데없이 방황하고 탕진하고 하나님이 싫어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면 반드시 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앞에서 겸손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에덴의 언약이며,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입니다.

에덴의 언약을 기억하여 겸손과 순종으로 복된 삶을 누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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