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단 3:16~18)
본문
브룩스 쿡 목사의 "당신의 계획을 믿음으로 세우라" 는 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미국 남부지방에 사는 어느 청년이 한 겨울에 와이오밍에 사는 친구를 방문하였습니다. 날씨가 5도 가량 올라간 어느 날 두 사람은 차를 타고 시골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꽁꽁 언 호수를 보고 그들은 차를 세워 놓고 호수를 구경합니다. 와이오밍에 사는 친구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호수 한가운데로 뛰어 들어갔으나, 남부에서 온 친구는 조심스럽게 얼음 위를 걸으면서 호수 가운데로 가지 못하고 호숫가에 서 있습니다. 그것도 발끝을 세우고 조심스럽게 걸어다녔습니다. 그때 커다란 차 소리에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니 그 지방의 농부가 큰 트랙터를 몰고 호수 한 가운데로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그는 발끝을 세우고 있는 자신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농부가 큰 트랙터를 타고 있는 그 똑같은 얼음판 위에 발끝으로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이 한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런 차이가 생긴 것입니까? 그 지방의 농부는 호수의 얼음을 알고 있었고 그 남부 청년은 몰랐기 때문입니다. 이같이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을 모르기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발끝으로만 맺고 한심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른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본문에 다니엘의 세 친구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나옵니다. 이들은 느부갓네살 왕과 당당히 맞서고 있습니다. 16절 이하에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 할 줄을 아옵소서" 라고 말합니다. 조금도 위축되거나 비굴함이 없이 자신들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풀무불 속에 들어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조금도 흔들림이 없음을 강조합니다. 아니 풀무에서 건져내시지 않는다 해도 신앙은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의 신앙입니다. '그리 하시면' 의 신앙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어떤 이득이 없어도, 때로는 손해보고 억울하고 분해도, 오로지 주님 때문에 당하며 빼앗겨도 변치 않는 신앙이 바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의 신앙입니다. 기독교 의 역사를 보면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의 신앙을 고백하며 고난의 길과 순교의 길로 향했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의 신앙이 필요합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의 신앙이 되려면,
첫째로 하나님이 주관자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최수동목사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하던 중에 중장비 사고로 두 다리를 잃는 사고를 만나게 됩니다. 사경을 헤매던 중 38명의 수혈을 받습니다. 그리고 근로자들과 직원들의 진정으로 청와대를 움직여 한국의 병원으로 후송되어 12번의 대수술을 하게 됩니다. 그 결과 5년 밖에 살수 없는 시한부 인생이 되어 고혈압, 당뇨병, 위궤양 등 합병증으로 고생하게 됩니다. 모든 형제와 친척들이 외면하는 상황에서 그는 눈물로 기도하게 됩니다. 7번이나 의족을 바꾸어야 하는 고통 속에서도 믿음으로 중장비 운전사를 용서하고, 휠체어를 버리고 일어나는 기적을 체험합니다. 그리고 총회신학 수료 후 임상목회를 전공하여 병원 복음선교를 비롯한 많은 기관에서 사역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복음성가 가수로 활동하며 간증하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의 찬양가운데 "불 속에라도 들어가서" 를 다같이 불러봅니다.
"죄악된 세상을 방황하다가 천국과 지옥도 나는 몰랐네. 고집대로 영 죽을 험한 세상이 왜 그리 더러운지 이제야 아네. 불 속에라도 들어가서 불 속에라도 들어가서 세상에 널리 전하리 주의 사랑을. 탕자를 살려준 주님 말씀에 죄인의 두 다리 묻어두었네. 아들이여 일어나 내 손을 잡고 남은 몸 모든 영혼 바치라 하네. 불 속에라도 들어가서 불 속에라도 들어가서 세상에 널리 전하리 주의 사랑을. 골고다 언덕길 오르신 예수 추수할 일꾼들 찾아 부르네 거친 바다 험한 산 피가 맺혀도 십자가 내가 지고 끝내 이기리 불 속에라도 들어가서 불 속에라도 들어가서 세상에 널리 전하리 주의 사랑을". 최수동 목사 그는 자신의 삶의 주관자가 하나님 되심을 확실히 믿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헌신하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고, 하나님이 고쳐주시면,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시면 무엇이든지 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본문을 보면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 세 청년은 18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새 번역에 의하면, "왕이시여! 하나님은 우리를 풀무불 속에서나 왕의 손에서 건져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설사 하나님이 그렇게 우리를 구해 주시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왕이 세운 우상에게 절할 수 없습니다." 즉 죽으면 죽었지 하나님을 배반할 수 없으며, 죽으면 죽었지 우상에게 절하고 신앙의 절개를 버릴 수는 없다는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의 신앙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응답해 주셨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감사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삶의 주도권을 쥐고 계시는 주관자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응답하시든지 아니하시든지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삶을 주관하고 계심을 분명히 믿고 살아갈 때 흔들리지 않는 신앙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실낙원' 의 저자인 존 밀톤은 젊은 시절에 크롬웰의 비서로 일하였습니다. 그 때 시력이 나빠지기 시작하더니 44세 때 완전히 실명하여 소경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독실한 신앙의 사람인 밀톤은 그 일로 실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으며 하나님 앞으로 더 나가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밀톤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주께서 내 육의 눈을 어둡게 하시고 오직 주님만 볼 수 있는 영의 눈을 열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얼마나 위대한 신앙 고백입니까!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고 오히려 환경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언제나 소망의 이유를 찾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들이며 항상 평안해 하며 기뻐합니다.
본문의 세 청년은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어려움을 받아들이며 극복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것만큼 하나님의 섭리를 수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 청년들은 18절에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라며 왕이 자기들을 풀무불 속에 집어넣어도 그 속에서 자신들을 건져내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건져 주시지 않는다 해도, 아니 불에 타서 죽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라 해도 구차히 목숨을 구걸하지는 않겠노라고 선포합니다. 이들이 가진 신앙의 크라이막스는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의 신앙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버리면서까지 타협하는 일이라면 풀무 불의 상황도 수용하겠다는 뜻입니다.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불 속에서 하나님을 위해 죽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언제나 이러한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임재를 깨달아야 합니다
초대교회의 교부 크리소스톰이 복음을 전했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는 감옥에서 "주님! 감옥에 갇힌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이곳으로 보내 주심을 감사합니다" 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감옥에서 쉬지 않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결국 그는 사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다시 기도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성도의 가장 아름다운 죽음이 순교라고 했는데, 저 같은 사람을 순교의 반열에 동참케 하시니 감사합니다" 라고 기도한 후 사형장으로 끌려갑니다. 그런데 사형을 집행하기 직전에 사형중지령이 내립니다. 그때 그는 또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직도 종에게 할 일이 남았다면 죽도록 충성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고통스러운 환경을 바꾸어 우리들을 지키시기도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고통스러운 환경을 바꾸기보다 그 환경을 그대로 허용하시고 그 대신 고통받는 현장에 함께 하심으로 고통들을 이기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세 청년을 풀무 불 속에 집어넣은 후, 느부갓네살 왕은 풀무 불 속에 또 다른 사람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의 백성들이 고난을 당할 때 그 가운데 들어오셔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풀무 불 속에서 함께 하신 하나님을 통해 그들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지켜보던 느부갓네살 왕은 결국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었고 그들을 나라의 통치자로 세웠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고 요한일서 2장 17절은 증거합니다. 지금의 어려움 가운데도 주님이 함께 하시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편안할 때는 귓속말로 말씀하시지만 우리가 고통 당할 때에는 큰소리로 말씀하시며 함께 역사 하십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풀무불에 던져지지 않고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따로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풀무불에 던져지지 않아야 응답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크고 위대한 일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본문 19절을 보니 세 청년들은 풀무 불에 들어가지 않는 것은 고사하고 7배나 뜨거워진 풀무 불에 던져졌습니다. 얼핏 보면 실패한 것 같습니다. 그들의 믿음이 헛된 것처럼 보입니다. 응답 받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속에서 그들을 살려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하나님은 일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서 어떠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재를 보여 주셨습니다.
스펄전목사(C. H. Spurgeon)는 말합니다. "당신의 의무는 옳은 일을 행하는 것이고, 그 결과는 하나님이 감당할 일입니다. 비록 하늘이 무너져도 옳은 일을 행하고 어떤 결과가 오더라도 주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당신의 할 일입니다. 결과에 신경을 쓰지 마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결과는 하나님의 일이지 당신의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디 하나님이 삶의 주관자임을 아시고 모든 일에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깨달아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의 신앙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언제나 불 속에 들어가는 어려움이 임한다 해도, 아니 불 속에 들어가서라도 승리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