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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 (렘 29: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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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 (렘 29:11~13)

이따금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생각하고 계실까?” 또는 “하나님께서 과연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까?” 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생각은 대체로 무슨 일로 인해서 우리 마음에 하나님께서 나를 멀리 떠나 계시다는 느낌이 들거나, 여러 가지 시련으로 인해 마음이 약해졌을 때 하게 됩니다.

욥은 중첩되는 고난 중에서 “내가 포학을 당한다고 부르짖으나 응답이 없고 간구할찌라도 신원함이 없구나”(욥 19:7)라고 탄식했습니다. 욥은 그가 당하는 고난의 이유를 알기만 한다면 어떠한 고난도 견뎌낼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께 부르짖고 간구했어도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셨습니다.

아삽이라는 성도 역시 극심한 환난 중에 처했을 때 이 같이 탄식했습니다. “7)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8)그 인자하심이 길이 다하였는가, 그 허락을 영구히 폐하셨는가, 9)하나님이 은혜 베푸심을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 긍휼을 막으셨는가 하였나이다”(시 77:)

우리의 경험으로 알 수 있듯이, 고난의 이유를 알고 당하는 것과 모르고 당하는 것은 천양지차가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에는 인내를 발휘할 수 있으나, 후자의 경우에는 쉬 지치고 맙니다. 비단 고난의 시기 뿐 아니라, 평소에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생각을 아는 것은 은혜롭고 활기찬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오늘 저는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통해서 성도님들과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생각이 어떠한가를 알기 전에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행사가 모두 다 선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이는 기독교 신앙의 기초이기도 합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은 무엇이든지 다 선합니다. 이 사실을 믿을 때, 우리는 모든 일이 순탄할 때 뿐 아니라 역경에 처했을 때에도 실족하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욥은 우리에게 귀한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욥은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의인이었습니다. 욥기 1장 1절에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욥을 인정하셨습니다. 하루는 천상에서 회합이 열렸습니다. 하나님 앞에 천사들이 늘어섰는데, 사단도 그곳에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어디서 왔느냐” 하시니, 사단이 대답하기를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왔나이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내 종 욥을 눈여겨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사단이 대답하기를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고 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리하여 사단은 하나님의 허락 아래서 욥의 소유를 쳤습니다.

욥기 1장에 보면, 욥은 일곱 아들과 세 딸을 두었으며, 그 소유물은 양이 칠천이요 약대가 삼천이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이며 종도 많았습니다. 그는 동방에서 으뜸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재산을 하루아침에 다 잃어버렸습니다. 강도떼가 달려들어 목자들을 죽이고 가축 떼를 약탈해 갔는가 하면,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양과 종을 살라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뿐입니까? 열 자녀가 맏형의 집에 모여서 음식을 먹고 즐기는데 그만 대풍이 불어와 집이 무너지는 바람에 열 자녀가 다 죽고 말았습니다.

한번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십시오. 너무나 큰 충격에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욥을 보세요. 욥기에 보니 “20)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21)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하고 22)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이 같이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욥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욥은 그가 당한 엄청난 비극에 대하여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었기에 원망 대신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인즉, 유한한 인간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다 이해하기란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욥기 11장 7절로 9절에는 “7)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 8)하늘보다 높으시니 네가 어찌 하겠으며 음부보다 깊으시니 네가 어찌 알겠느냐 9)그 도량은 땅보다 크고 바다보다 넓으니라” 하였고, 로마서 11장 33절에는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좁은 생각으로 우주보다 넓으신 하나님의 생각을 판단하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가 붙들어야 할 진리는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선하신 분이시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욥의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어느 날 천상에서 회합이 열렸을 때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내 종 욥을 눈여겨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오히려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켰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사단이 대답하기를 “가죽으로 가죽을 바꿉니다. 사람이란 제 목숨 하나 건지기 위해 내놓지 못할 것이 없는 법입니다. 이제 손을 들어 그의 뼈와 살을 쳐 보십시오. 그리하시면 반드시 주를 욕하리이다."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찌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사단이 욥을 쳐서 그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게 하니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기와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었습니다.

욥의 아내가 보니 너무나 기가 막힙니다.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대답하기를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입술로 범죄치 아니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굳건한 욥이었지만 고난이 끝없이 지속되자 그만 지쳤습니다. 드디어 욥은 자기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어찌하여 하나님께서 곤고한 자에게 빛을 주셨으며 마음이 번뇌한 자에게 생명을 주셨는가 라고 탄식합니다(욥 3:20).

그러나 욥이 불신앙으로 하나님을 원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 23:10)고 하나님의 뜻이 선하심을 고백했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욥의 믿음을 인정하시고 건강을 회복시켜 주셨을 뿐 아니라 이전보다 갑절의 복을 내려주셨습니다.

욥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말해 줍니다. 이 믿음을 가진 사람은 욥과 같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지만, 이 믿음이 없으면 결국 실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즉 성도님들께서는 욥과 같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변함없이 믿고 나아감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요 평안입니다.

앞에서 성도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생각이 항상 선하다는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니 하나님께서 이 사실을 우리가 알아듣기 쉽게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들도 역경을 만납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내가 하나님의 재앙을 당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그는 야곱의 열 두 아들 중에서 열한 번째 아들이었는데,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 했습니다. 그것은 요셉이 야곱의 사랑했던 아내 라헬이 낳은 첫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로 인해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사게 되었습니다. 요셉에 대한 형들의 미움은 요셉이 자기의 꿈 이야기를 형들에게 들려주었을 때 최고조에 이르렀습니다.

하루는 요셉이 매우 특별한 꿈을 꾸었습니다. 흔히, 꿈이란 잠을 깨면 잊어버리고 마는데 그 꿈은 너무나 선명하게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형들에게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형님들, 나의 꾼 꿈을 들어보세요 글쎄, 밭에서 우리가 곡식단을 묶고 있는데 내가 묶은 단이 우뚝 일어서고 형들이 묶은 단이 둘러서서 내가 묶은 단에게 절을 하지 않겠어요?" 그러자 형들이 노했습니다. 그들은 "네가 정말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고 하며 요셉을 더욱 미워했습니다.

그 얼마 후에, 요셉은 다시 꿈을 꾸고 형들에게 꿈 이야기를 했습니다. "글쎄, 내가 꿈을 또 꾸었는데 해와 달과 별 열 하나가 내게 절을 하더군요." 이번에는 아버지에게도 꿈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야곱이 요셉을 꾸짖었습니다. "네가 꾼 꿈이 대체 무엇이냐? 그래,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제들이 너에게 나아가 땅에 엎드려 절을 할 것이란 말이냐?" 그러나 야곱은 요셉의 말을 마음에 간직해 두었습니다.

그 후에, 요셉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먼 지방까지 가서 양을 치는 형들을 찾아갔습니다. 형들은 멀리서 요셉인 것을 알아보고 서로 말하기를 “저기, 꿈장이가 오는구나. 저 녀석을 죽여 아무 구덩이에나 처넣고는 들짐승이 잡아먹었다고 하자. 그리고 그 꿈이 어떻게 되어 가는가 보자."고 했습니다. 맏형 르우벤이 그들의 말을 듣고 있다가 "피를 흘리지 말라. 그 녀석을 광야에 있는 구덩이에 처넣고 손은 대지 말아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나중에 기회를 보아서 요셉을 살려 보낼 심산이었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자 그들은 요셉의 채색옷을 벗기고 그를 잡아 물이 없는 빈 구덩이에 던졌습니다. 잠시 르우벤이 자리를 뜬 사이에 앉아서 음식을 먹던 형들은 한 떼의 이스마엘 상인들이 낙타에 상품을 싣고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넷 째 형인 유다가 요셉을 살릴 생각으로 형제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래도 우리 동생인데 죽이고 그 피를 덮어 버린다고 해서 무슨 이득이 있겠니? 그러니 그 애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아 버리고 우리는 손을 대지 말자. 어쨌든 그는 우리 동생이고 혈육이 아니냐?" 형제들은 유다의 말을 듣고 은 스무 개를 받고 요셉을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아넘겼습니다.

여러분,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요셉을 산 이스마엘 상인은 그를 애굽으로 데리고 가서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팔았습니다. 이리하여 꿈 많던 열일곱 살의 소년 요셉은 머나먼 타국에서 종이 되었습니다. 만약에 요셉이 믿음이 없는 사람이었더라면 자기의 신세를 한탄하고 절망에 빠져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는 보디발의 집에서 최선을 다해 일했습니다. 종이 되었어도 늘 쾌활하게 생활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창세기 39장 2절에 그 해답이 나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을 주인인 보디발이 알았습니다.

보디발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전 재산을 다 관리하게 했습니다. 바로의 시위대장의 집의 집사가 되었으니까 이제는 생활에 여유도 생기고 상당한 권한도 행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또 다시 시련에 직면했습니다. 요셉의 준수한 용모에 반한 주인의 처가 유혹하는 것을 뿌리쳤다가 그만 누명을 쓰고 만 것입니다. 그 여자는 자기 남편에게 요셉이 그녀를 희롱하고 겁간하려고 했다고 하면서 요셉이 그 여자의 손을 뿌리치고 나가면서 벗어던진 외투를 증거물로 내놓았습니다. 진노한 보디발은 요셉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요셉의 삶은 참으로 기구합니다. 억울하게 젊은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게 되었으니 얼마나 낙심이 되었을까요? 우울증에 걸릴 만도 한데 요셉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감옥에서도 얼마나 일을 잘하던지, 감옥소장이 요셉에게 옥중 사무를 다 맡겼습니다. 요셉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요? 그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꿈을 통해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위대하신 계획이 현실로 이루어질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성도님들께서도 아시는 바와 같이, 요셉은 애굽 왕 바로의 꿈을 해석해 준 일로 일약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요셉은 칠년 풍년이 들었을 때 양식을 저장해 둠으로써 칠년 흉년에 천하의 백성을 살려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나안 땅에 거주하던 야곱과 그의 자손들의 생명을 기근으로부터 구해냈습니다.

흉년 기간에 양식을 사러 온 형들은 애굽의 총리대신이 그들이 팔아먹은 요셉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두려워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형들에게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요셉이 당한 고난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을 위한 준비과정이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형들에게 이같이 말합니다. “5)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6)이 땅에 이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년은 기경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찌라 7)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8)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창 45:)

물론, 우리는 우리의 범죄와 허물로 인해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에도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생각은 변함이 없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징계와 심판은 그 성격이 다릅니다. 징계는 사랑에 의한 것이고 잘못을 고치기 위한 것이지만, 심판은 형벌을 주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못된 길로 행할 때 부모가 자식을 매로 때리듯이 징계하십니다. 부모의 매가 자녀의 파멸을 막아주듯이, 하나님의 징계는 우리가 더 큰 죄에 빠지는 것을 막아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 낙심하지 말고 오히려 징계를 통해서 새롭게 변화되어 하나님의 평안을 누리는 기회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세 번째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입니다.

사람은 그가 가진 소망에 따라서 그의 삶의 내용이 결정됩니다. 하찮은 것을 소망하는 사람은 하찮은 인생을 살아가게 되고, 거룩한 것을 소망하는 사람은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 땅에 속한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성공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소망의 전부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가진 소망은 세상 사람들과 다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주신 소망이므로 그 성격이 거룩하고 위대하고 영속적입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생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고 하셨습니다. 도적은 마귀를 가리킵니다. 마귀의 목적은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입니다. 마귀는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마귀의 목적은 인간들을 죽게 하는 데 있습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는 마귀의 꾐에 넘어간 결과 죽게 되었습니다.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한 뱀의 말은 거짓으로 판명 났습니다. 마귀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입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말은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신뢰하면 안 됩니다.

마귀에게 속아 넘어가면 죽고 파멸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귀는 죽이는 일은 해도 살리는 일은 못합니다. 파괴는 해도 창조는 못합니다. 그것은 마귀는 피조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생명과 창조는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마귀에 대하여 상당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월드컵 축구의 한국 응원단의 이름이 ‘붉은 악마’입니다. 그러나 이야기책에 나오는 것과 같은 친근감을 주고 능력은 있지만 어리석어서 사람들에게 이용당하는 그런 마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마귀에게는 아량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마귀는 악 그 자체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마귀를 ‘우는 사자’에 비유했습니다. “8)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벧전 5:)고 했습니다. 마귀의 지배 아래 있는 사람은 소망이 없습니다. 오늘날 마귀는 인간들의 정신을 공격합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정신에 각 가지 질병이 생겨납니다. 겉모습은 멀쩡한데 정신이 병든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은 마귀의 종노릇하는 인생들을 해방시키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요한일서 3장 8절에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아담이 범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후손을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수많은 귀신들린 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지 못했으나 귀신들은 먼저 알고 떨었습니다. 이제 예수 믿는 성도들은 마귀의 권세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부활과 영생에 대한 소망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마귀를 물리칠 수 있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17)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 16:)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영원한 상급에 대한 소망을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신앙생활을 육상경주에 비유해서 이같이 말씀합니다. “24)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찌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전 9:) 우리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영원한 상급을 소망할 때 우리는 활기찬 신앙생활을 할 수 있고 주님을 위해 충성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응답에 대한 소망을 주셨습니다.

“12)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13)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하셨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신 위대한 특권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뽑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뽑은 대통령이지만 한번 만나기가 하늘에 별따기처럼 어렵습니다. 무슨 어려운 일을 만나도 대통령에게 해결해 달라고 부탁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천지의 주재시며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성도들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언제든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히4:).

사랑하는 성도님들, 기도는 만능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야고보 선생은 우리에게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약 4:2)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13)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14)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기도할 수 있는 한 우리는 절망할 이유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그러시다면 주님을 믿는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향하신 하나님의 생각이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우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으며 기도할 때 하나님을 만나고 위대한 응답을 받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사단은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는 믿는 자들을 넘어뜨리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님들께서는 선하신 하나님을 믿고 나아감으로 순전한 자라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으며 평안과 소망을 누리면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양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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