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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물어 보셨나요? (수 9: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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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물어 보셨나요? (수 9:3-15)


여호수아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간 가나안 땅은 가나안 족속을 시작으로 히위족속, 여브스족속, 아모리족속, 브리스 족속, 기르가스 족속, 헷 족속 등 7개의 부족(신7:1)이 살고 있었습니다. 영적으로 볼 때 이 모든 족속은 믿음의 사람들이 주님과 함께 하며 이겨야할 사탄의 세력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서를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이 족속들은 견고한 성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견고한 성에서 살면서 때로 연합하거나, 때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속이면서 끊임없이 유혹의 낚시 줄을 던져 하나님의 백성을 미혹하여 결국은 믿음이 사람들에게 좌절하게 만들고, 낙심하게 만들과 허무주의에 빠지게 만들어 그리스도 예수를 떠나 멸망의 길로 가게하고 있습니다. 마귀의 권세에서 이기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점령하기 전까지 가나안 땅의 사람들은 여리고 성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 강력한 성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습니다. 누가 보아도 여리고 성은 아주 견고한 성이었습니다. 누가 보아도 완벽한 성이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백성들이 그 성을 향해 손을 뻗치게 되자, 그 성은 모래가 파도에 무너지듯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다윗 시대의 골리앗은 누가 보아도 완벽한 용사였습니다. 객관적으로 그를 무너뜨릴 수 있는 사람은 당시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이 믿음의 돌을 던지자 돌 한 방에 완벽하고 견고한 갑옷을 자랑하던 골리앗은 땅에 고꾸라지고 말았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역사가 바뀌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역사를 새롭게 기록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승리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호수아는 누가 보아도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할 때 오직 갈렙과 함께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주신 땅이요 그 땅의 족속들은 우리들의 밥이라고 선언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믿음의 사람 여호수아에게 무엇인가 잘 못된 일이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신명기 7:1-3절 말씀을 통해 “너보다 많고 힘이 센 일곱 족속을 쫓아 낼 때에 그들을 진멸할 것이며, 그들과 어떤 언약도 하지 말 것이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족속들과는 어떤 언약을 맺지 말고, 불쌍히도 여기지 말고, 혼인하지도 말고 모두 진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가나안 땅의 족속 중에서 히위 족속에 속한 기브온 사람들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언약을 맺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성경은 오직 한 가지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4절에는 그것은 바로 그들이 여호와께 묻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묻지 않았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자신들의 인생의 문제를 놓고 너무쉽게 생각하고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니까 당장에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되고, 하나님께 묻지 않으니까 마귀의 계략에 빠지게고, 기도하지 않으니 마귀에게 승리를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아무리 믿음의 사람이요, 하나님이 쓰는 사람이요, 하나님이 그를 불러 함께 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기도하지 않으면 영적인 눈이 감기는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와 같은 연약한 사람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기도하면 승리하는 인생이요 기도하지 않으면 실패하는 인생이라는 것을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따라해 봅시다. “기도는 인생이 승리하는 인생이요 기도하지 않는 인생은 실패하는 인생이다”

다윗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쓴 기도문이 시편에 얼마나 많습니까? 그는 어떤 일을 행하기 앞서 언제나 기도했고, 하나님의 뜻을 물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것처럼 인생에서 돌이킬 수 없는 가장 큰 실패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가 왕이 되고, 인생이 평안해지자 그는 기도하는 일을 멀리하게 되었고, 그 틈을 노려 마귀가 역사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시간이 점점 멀어지자 육신의 사람이 그 속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으로 지배를 받아야 할 믿음의 사람이 육신의 욕망과 자신이 가진 권력의 지배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자, 즉시로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우리아의 아내를 힘으로 제압하여 범하는 간음의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우리아를 죽이는 살인의 죄를 범한 것입니다. 다윗이 만일 하나님께 “우리아의 아내가 너무 멋있습니다. 하나님, 저 여인을 내 여자로 오늘밤 취해도 될까요?”라고 물었다면 과연 그가 범죄하였을까요? 그가 “하나님이 우리아로 인해 내 자신이 부끄러움을 당할 것 갔습니다. 제가 그를 죽여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었다면 과연 그가 살인자가 되었을까요? 여호수아도 오늘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인생의 모든 문제는 기도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앞에 놓고 “하나님, 이 선악과를 먹어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었다면 타락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무엇이든지 주님께 물어 보고 그 다음에 결정해야 합니다.“주님 오늘 술자리에 갑니다. 제가 술을 먹어도 될까요?” “주님, 네가 담배를 피우려고 합니다. 피워도 될까요?” “주님, 제가 이 여인을 유혹해서 호텔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들어가도 될까요?”“주님, 내가 이 회사 돈을 무단으로 사용해서 이익을 보려고 합니다. 이 돈을 사용해도 될까요?”“주님, 제가 남편과 오늘 한 판 붙으려고 합니다. 한 판 붙어도 되겠습니까??” “주님, 내가 시어머니가 너무 밉습니다. 시어머니를 뒤에서 욕해도 되겠습니까?” “내가 3.1절에 골프를 쳐도 될까요?”“주님, 제가 예배에 빠지려고 합니다. 예배에 빠져도 될까요?” “주님, 제가 십일조를 가지고 다른 일에 쓰려고 합니다. 십일조를 떼어 다른 일에 사용해도 되겠습니까?”“주님, 직장에 사표를 내려고 합니다. 사표를 내도 되겠습니까?” “주님, 교회를 그만 다니려고 합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무엇이든 물어 봐야 할 것이 아닙니까? 주님은 우리 인생의 주인입니다. 내 인생의 모든 기준입니다.

주님께 물어 봐야 합니다. 묻고 행하면 승리하지만, 묻지 않으면 영도 망하고, 육도 망하게 됩니다. 기도는 범사에 하는 것입니다. 큰 일이 일어나면 하고, 작은 일은 내 마음대로 처리하는 것이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사람들의 삶이 아닙니다. 크든 작든 주님의 사람은 주님의 뜻에 순종하여 사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늘 실패했습니다. 그 원인이 무엇입니까? 주님께 묻지 않고, 외모로 그들을 판단하고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이성을 더 믿은 것입니다. 자신들의 종합적인 판단력을 더 신뢰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실패의 원인이었습니다. 기도 없는 이성의 판단은 죽은 판단입니다. 주님의 뜻이 반영되지 않는 선택은 실패하는 선택입니다. 분명히 잠언서 3:5-7절에는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고 했습니다. 실패는 기도를 멀리하고, 외모와 자신의 판단과 이성을 더 소중히 여기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영적 통찰은 기도에서부터 시작되고, 내 지혜와 지식보다는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교묘히 우리의 이성을 하나님보다 신뢰하게 만듭니다. 오늘 기브온 족속과 손을 잡고 믿음에 실패한 여호수아의 문제는 바로 기브온 백성들을 자신들의 보이는 이성에 의해서 판단한 것에 있었습니다. 여러분 마귀에게 속아서는 안 됩니다. 마귀의 술수에 눈이 가려져 서는 안 됩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몰라서 이들과 계약을 맺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말씀을 몰라서, 이단에 빠지고, 속이는 귀신들에게 속고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믿음에서 멀어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거짓된 영으로 상징되는 기브온 사람들을 보십시오. 이들은 거짓의 옷을 입고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사람들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나안 땅에 사는 족속들이 아닌 것처럼 거짓의 옷을 입었습니다. 그들은 대표를 몇 명을 뽑아 사신의 모양을 꾸미고, 헤어진 전대와 헤어지고 찢어져서 꿰맨 가죽 포도주 부대를 나귀에 싣고, 먼 길을 걸어서 온 것처럼 그 발에는 낡아서 기운 신을 신고 낡은 옷을 입고 다 마른 곰팡이가난 떡을 준비하고 여호수아를 찾아 온 것입니다. 왜 이 사람들이 이런 모양으로 온 줄 아십니까? 그들은 놀랍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20:10절 이하의 말씀에 보면 하나님은 가나안에 있는 7개 부족은 멸하지만, 멀리 있는 성읍 사람들과는 서로 화친할 수 있다면 화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놀랍게도 이 구절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귀는 말씀을 모르는 영들이 아닙니다. 이단들이 말씀을 몰라 이단이 아닙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시험할 때도 성경을 인용했습니다. 하와를 유혹 할 때도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나왔습니다. 마귀는 오히려 성경 말씀을 통해 성도들을 유혹하고, 죄에 빠지게 하고,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전략을 세우는 것입니다.

마귀에 대해 여러분은 잘 알아야 합니다. 요한 계시록 12:9절에는 마귀를 가리켜 “온 천하를 꾀는 영”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는 것이 마귀입니다. 마귀는 언제나 우리를 넘어뜨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 앞에 올가미와 인생의 그물을 쳐놓고 기다립니다. 걸리며 죽는 것입니다.

수요일에 자연 다큐멘터리에 보니 중국 사람들이 모피를 얻기 살아 잇는 짐승들의 가죽을 벗기는 장면을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5만원을 받기 위해 목에다가 올가미를 걸고 살아 있는 여우의 혀와 항문에 전기 충격기를 대고 전기 충격을 가하였습니다. 잠시 기절한 상태에 있는 은빛 여우를 매달고 산채로 가죽을 벗기었습니다. 그들의 눈빛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시장에서는 살아 있는 너구리를 개구리 잡듯이 땅에 패대기쳐서는 다리를 벌벌 떨고 있는 상태에서 가죽을 벗기었고, 심지어 고양이나 개들이 죽지 않은 상태에서도 마구 벗겼습니다. 그 장면이 너무나도 끔찍했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인간보다 더 악하고 잔인한 것이 있으니 바로 마귀입니다. 마귀에게 한번 잘 못 걸리며, 가죽이 벗겨지는 정도가 아닙니다.

마귀에게 걸렸던 다윗을 보십시오. 그의 영광과 영화가 하루아침에 딸에 떨어졌고, 자식은 그를 모두 떠났고, 백성들조차 그를 등지고 말았습니다. 마귀에게 걸렸던 가룟 유다를 보십시오. 자신은 목을 매어 죽어야 했고, 그것도 모자라 땅에 떨어져 창자가 터져 죽었습니다. 오늘날 가룟 유다는 저주 받은 인생의 대표자가 되었습니다. 무너지는 것은 순간이지만, 져야 할 인생의 짐은 영원한 것입니다. 등산가가 땀을 흘리며 산을 오르지만 떨어지는 것은 순간입니다. 명예를 쌓는 것은 참으로 어렵지만, 명예가 땅에 떨어지고, 멸망의 길을 가는 것은 순간입니다. 따라서, 인생들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그분의 뜻을 묻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귀신들린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를 고치기 위해 무려 9명의 제자들이 달려들었습니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귀신은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갈 기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실패한 제자들은 주님께 와서 물었습니다.“왜 우리들은 능히 그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고 그 아이를 치료할 수 없었습니까?”이 때 예수님의 대답은 아주 간명했습니다. 주님의 대답은 “기도 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9:29)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귀와의 타협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영적인 능력이 없어 세상에서 세상 사람들과 타협하고, 함께 하는 순간부터 고통이 임하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온갖 세상의 지혜나 외적인 판단보다 먼저 하나님의 영적인 지혜를 구하기 위해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모든 인생의 판단 기준은 하나님께 묻는 것에 두어야 합니다.

초대 교회의 시작은 기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사랑 교회의 시작 역시 기도로 시작되었습니다. 종교개혁도 기도로 시작되었습니다. 기도로 시작되지 않은 역사는 없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묻지 않았고, 그는 즉시로 마귀의 올무에 걸려 평생 동안 고통의 씨앗을 담고 살아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둘째 부인 하갈을 취함으로 인해 오늘날도 이스라엘과 아랍 부족 간에 싸움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 번 더 기도하고, 한 번 더 주님께 물어야 합니다.

천로역정을 쓴 존 번연이 영국 왕의 미움을 받아 감옥에 갇혔을 때였습니다. 번연을 불쌍히 여긴 간수장이 옥문을 열어주면서 식구들을 잠깐 보고 오시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감옥을 떠난 지 몇 분 후에 다시 숨 가쁘게 감옥으로 돌아왔습니다. 간수장은 그가 이렇게 빨리 다시 돌아 온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번연은 말하기를 “당신의 호의는 감사하지만 기도하니 성령님께서 내 마음에 가서는 안된다 는 마음을 주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한 시간 후에 엄청난 일이 그 감옥에서 일어났습니다. 영국 국왕이 직접 감옥으로 존 번연이 잘 있는지 확인하기 위에 찾아 온 것이었습니다. 왕이 간 후에 간수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목사님께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행동하셨기에 목사님도 살고 나도 살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제가 목사님께 언제 가시라 오시라 하지 않을 테니 목사님을 인도하시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가시고 싶을 때 가셨다가 오시고 싶을 때 오십시오.“

사랑하는 여려분,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물어 그분의 인도함을 받아야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기브온 백성들과 언약을 맺는 어리석은 인생의 실패가 없습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오직 나는 하나님만을 나의 인생의 카운슬러로 삼겠다. 오직 하나님만을 나의 영적인 파트너로 삼겠다. 이제부터 나는 하나님께 물어 보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야겠다”라고 결심하는 인생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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