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버려야 구원을 이룰 수 있습니다.
본문
성경 ; 창17:1-7,15-16, 롬4:13-25, 막8:31-38.
제목 ; 자기를 버려야 구원을 이룰 수 있습니다.
작성 방법 ; 한글 97 ( A4, 4쪽)
작성자 ; 정 수 환 목사(j3038@kornet.net)
홈페이지 주소 ; http://godislove.net/j3038
연락 전화 ; 영춘교회 ( 0444-423-3038 )
참고 ; 공개자료실에서는 A4 용지 4쪽으로 된 자료를 받을 수가 있 습니다. 이 설교자료는, 성서일과와 교회력에 따라 작성된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참으로 복잡하고 미묘한 일들이 참 많습니다. 주님은 그 당시 세상을 가리켜서 ‘죄가 많은 이 세대(막8:38)’라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사셨던 그 당시만 죄가 많았던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오히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그 당시보다 더욱 죄가 많은 세대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세상의 여러 가지 모습을 투영해 보여주는 것 중에는, 소설과 드라마, 또는 연극이나 영화 등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가까이 접하고 있는 것이 TV드라마입니다. 제가 즐겨 보는 드라마는 ‘허준’이고, 아내는 ‘누나의 거울’을 자주 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드라마에서는 서로 대비되는 인물들이 등장하게 마련입니다. 선하고 아름다운 사람과, 악하고 추한 인물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허준’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인물입니다. 자기를 희생하면서 헌신할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유의태의 아들인 유도지는 허준과 아주 다른 사람입니다. 마치 오늘날 우리나라 정치인들을 보는 듯합니다. 입신양명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자기보다 우월한 허준을 계속 모함하고 시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즐겨보는 ‘누나의 거울’에서도 유도지와 같은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남자 주인공 선우의 장인 되는 조성구입니다. 자수성가한 사람으로서, 10원짜리 동전 하나 허투루 쓰지 않을 정도로 아주 지독한 구두쇠입니다. 상처한 후에도, 돈이 아까워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뿐인 딸 인주한테는 뭐든지 해 주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이 사람은 딸과 돈만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식을 위한 일이나 돈버는 일을 위해서는 무슨 방법이든지 다 동원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손해를 입혔거나 자존심을 상하게 한 사람은 가만 두지 않습니다. 그는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믿는 철저한 배금주의자입니다.
지금 전개되는 상황으로 봐서는, 그런 조성구가 아주 잘난 사람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자기 마음먹은 대로 세상을 맘껏 요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세상을 향해서 ‘나처럼 살아야 한다’고 뽐내면서 으스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습니다. 그는 머지않아 완전히 패가망신할 게 틀림없습니다.
조성구가 등장할라 치면, 아내는 아주 속상해 합니다. 그가 하는 짓이 못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아침부터 악하고 철면피한 조성구의 얼굴을 보는 것이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비록 드라마 속의 인물이기는 하지만, 정말 얄밉기 짝이 없다고 말합니다.
어떻습니까? 오늘 우리는 허준 쪽에 가깝습니까? 아니면, 조성구라는 사람을 더 닮았습니까? 물론, 허준의 모습을 더 닮았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조성구와는 아주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허준과 같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에게 조성구와 닮은 점이 있다면, 그 부분을 고쳐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허준처럼 자기를 희생하고 헌신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아브라함이 누렸던 그 복을 베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기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막8:34)』고 하셨습니다. ‘자기를 버려야 한다’는 것은, 바로 조성구가 취하고 있는 이기적인 모습을 버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반면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는 것은, 허준이 보여주고 있는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삶을 말합니다.
물론, 우리의 진정한 스승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께서 보여주신 십자가 정신이야말로, 우리가 죽을 때까지 본받고 따라가야 할 삶의 지표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나와 복음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리는 사람은 생명을 얻을 것이다(막35)』라고 하셨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신 생명이란 영생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태초에 하나님이 인간을 처음 만드셨을 때, 그 본래의 목적대로 사는 것을 영생이라 합니다. 예수님처럼 사는 것을 말합니다. 허준처럼,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을 가리켜서 ‘영생’이라 말합니다.
요컨대, 영생 그 자체가 복입니다. 즉,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 정말 복된 것입니다. 그런고로, 아브라함이 모든 사람에게 복의 근원이 된다고 말한 것은, 누구든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믿으면, 아브라함이 누렸던 그 복을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결과적으로, 아브라함이 누렸던 복은, 그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 덕분입니다. 그는 하나님 말씀대로만 살면 복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 말씀대로 올바른 삶을 살고자 애썼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복을 얻고자 올바른 삶을 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올바른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지켜 살아야 할 몇 가지를 일러주셨습니다.
ㄱ.너는 언제나 내 앞에서 살아가라. ㄴ.내가 항상 너를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야 한다. ㄷ.너는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생각하면서 살아야 한다. ㄹ.너는 바른 길만 걷도록 하라(이상, 창17:1).
그대로 살 경우, 아브라함은 ‘수많은 무리의 조상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확실하게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행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인류의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면에서 모든 인류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올바르게 산다는 것보다 더 귀한 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을 전적으로 믿고 따르는 아브라함에게 그 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로 하여금 모든 사람의 모범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께서 직접 이 땅에 내려오셔서 십자가의 모범을 보여주심으로써 올바른 인생의 기초를 놓으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주님의 제자로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 부탁하셨던 것처럼,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늘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혹시, 예수님과 허준에게 가깝기보다는 조성구의 모습을 더 많이 닮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1.오늘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서 올바르지 못한 부분을 찾아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위해 피 흘려 돌아가신 주의 공로에 배반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만일 믿음이 온전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허물을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아직도 미숙한 점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요? 오늘 말씀에 비추어 볼 것 같으면,
①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말하기를『하나님은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 다 받아들이신다(4:17)』고 했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믿는 사람에게 믿음의 표준입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만 갖게 된다면, 우리는 자기를 버리고 주님을 신실하게 따를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까지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 참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조성구와 같은 사람이 신봉하고 있는 ‘돈과 자식에 대한 믿음’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바로 서 있을 때, 비로소 돈과 자식이 우리에게 참 의미가 있습니다. 그 믿음이 올바르지 못한 사람에게는 자식이나 돈이 결코 행복의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올바른 사람이라야, 그 자식도 부모의 올바른 삶을 본받아서 부모님 마음에 드는 생활을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사람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②우리에게 주어진 자기 몫의 십자가를 지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지려면 먼저 자기를 버려야 합니다. 주님은 베드로를 책망하실 때,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인간의 일만 생각한다(막8:31)』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붙잡고서 ‘선생님께서 돌아가시면 안 된다’고 말한 것은, 그가 진정 주를 위해서 한 말이 아니라 자신의 앞날을 염려해서 말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아직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살려고 하기보다는 자신의 이익과 안전을 먼저 생각할 때가 더 많습니다. 자기를 버릴 수 있어야 십자가를 질 수 있는데도, 우리는 그 이기심을 잘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 줄 아십니까? 자신의 믿음이 성장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의 성장을 방해합니다. 결국은 사탄의 종노릇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갖가지 그럴 듯한 이유를 들어서, 다른 사람이 주의 일을 하고자 하는 것을 못하도록 막습니다.
우리는 결코 그렇게 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믿음이 더욱 온전하게 되어서, 하나님의 일에 적극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2.우리가 그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가 항상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생각하면서 바른 길로만 걷도록 하라(창17:1) 그러면, 너는 물론이요, 네 후손들과도 반드시 약속을 지키리라(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그 약속을 믿고, 주님이 일러주신 대로 살아야 합니다. 주께서는 『나를 따르려는 자는 자기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막8:34)』고 말씀하셨습니다.
①그런고로, 우리는 자기를 버리고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나의 모든 것을 버려야 합니다. 나의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식까지도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모든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그 모든 것을 사용해야 합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허준을 칭찬할 것입니다. 조성구를 좋다고 말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선택해야 합니다. 허준처럼 자신을 바쳐 헌신하는 삶을 살 것인지, 조성구처럼 자신만을 위해서 살 것인지, 우리는 분명한 선택을 해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하나님의 일과 자신의 일 중에서 무엇을 먼저 선택할 것인지, 우리는 분명한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②자기를 희생함으로써 십자가를 지는 것이 구원받은 자의 삶입니다.
주께서 『나와 복음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리는 자는 생명을 얻을 것이다(막8:35)』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헌신해야 할지, 이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돈은 아무리 많아도 우리 생명을 구하지 못합니다. 주의 뜻을 이루고자 애쓰게 될 때에만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의 뜻을 이루고자 한다면,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항상 생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물론, 성경을 잘 배워서 그 말씀에 비추어 올바른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대로 사는 것이 힘들어도, 십자가를 지는 마음으로 그 일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회피하지 않는 한, 우리는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생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③우리는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고 살면서 영생의 복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십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가 변덕을 부리지 않아야 합니다. 은혜 받을 때 결심한 그대로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 이끌려 가는 노예가 되지 말고, 자신의 신앙 양심이 옳다고 하는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주께서 우리를 위해 짊어지신 그 십자가를 외면하거나 회피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 결과는 비참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 결과는, 자신과 후손들에게 크게 복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 영생의 복을 다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