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는 나의 목자 (시 23:1-6)
본문
오늘도 목자 되신 우리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23편은 시편 1편과 함께 많이 애송하는 시편입니다. 이 시를 쓴지가 벌써 삼천년의 세월이 흘러 다윗이 사용하던 칼과 창은 다 녹슬어서 사라졌는데도 불구하고 이 한편의 시는 남아서 성도들의 가슴속에 큰 위안을 주고 있습니다. 파란만장한 인생의 굴곡을 경험한 성도의 신앙고백이기에 더 큰 위로가 됩니다. 본문의 시작을 “다윗의 시”라고 붙여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 이 시가 쓰였는가에 대해서는 침묵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의 시라고 하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다윗이 사울과 그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 다닐 때에 이 시를 썼다고 합니다. 또 어떤 이는 다윗이 노년에 이 시를 썼다고 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시기는 모릅니다.
오늘 본문은 1절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합니다. 신자가 누구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신자인 줄 믿습니다. 여호와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하나님” 하면 그것은 일반명사이고 “여호와”하면 그건 하나님의 이름, 고유명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입니다. 물론 유대인들이 한동안, 아주 오랫동안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입에 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부모의 이름을 “무슨 자 무슨 자 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담을 수 없다고 생각해서 여호와 대신에 “나의 주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관계성입니다. 다윗은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목자와 양과의 관계로 보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몇 가지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1. 여호와 하나님은 풍족한 은혜 주시는 분이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모자라지 않습니다. 항상 넘칩니다. 예수님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이시기 대문입니다.(요1:14-17) 인생의 행복은 만남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를 잘 만나야 하고 스승을 잘 만나야 합니다. 여자는 남편을, 남편은 여자를 잘 만나야 하는 것과 같이 백성은 왕을, 양은 목자를 잘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말하기를 인생이 행복하려면 세 가지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첫째로 배우자, 둘째로 직업, 셋째로 종교를 잘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의지의 선택과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부모요, 둘째는 종교요, 셋째는 목자입니다. 아무도 부모를 선택해서 나온 사람 한 사람도 없습니다. 내가 나와 보니 부자 아버지입니다. 내가 나와 보니 가난한 아버지입니다. 선택하여 나온 사람 한 사람도 없습니다. 종교도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기독교를 선택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여러분들을 예정하시고 기쁘신 뜻을 따라 부르셨기에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내 뜻이 아닙니다. 내 의지의 결정이 아닙니다.
그래서 한스 카르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15:16)하신 말씀을 인용하면서 “목자가 양을 선택한 것이지 양이 목자를 선택한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은 선한 목자이십니다. 선한 목자 되시는 주님은 모든 것이 가능하십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갖추고 계십니다. 우리의 요구를 얼마든지 충족시켜 주실 수 있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능히 주실 수 있는 주님이십니다. 약1:5절에 보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십니다. 또 빌4:13절에서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빌4:19절에 보면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하셨습니다. 풍성한 대로 여러분들의 쓸 것을 채우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분이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만족하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은혜를 주시는 분이 목자이신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여호와께서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십니다. 양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풀과 물입니다. 그런데 목자되신 여호와께서 이것을 아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시들어 가는 초장이 아니라 푸른 초장입니다. 그리고 평온한 넓은 초장입니다. 파도치고 넘실거리는 위험한 물가가 아니라 쉴만한 물가 또는 잔잔한 물가!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그런 곳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요10:10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목자 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때를 따라 합당한 은혜! 족한 은혜를 주시는 분이신 줄 믿습니다.
3절에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푸른 초장에서, 쉴만한 물가에서 쉬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아니 왜 우리를 하나님께서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겠습니까?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이 사명을 잘 감당하고 주님 앞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감당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내 영혼이 힘을 얻어야 합니다. 그래야 천성을 향하여 순례의 길을 힘차게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듣는 것은 내 영혼이 새 힘을 얻기 위함이요, 주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그 힘으로 사명을 감당 할 수 있고, 순례의 길을 힘차게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인도하신 길로만 가게 되면 영원한 천국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까지 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주님은 주님의 이름의 명예를 걸고 약속하십니다.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예수님이 우리를 은혜로운 안식처로 인도해 주시는 인도자이신 줄 믿습니다.(요14:6)
2. 여호와가 우리의 목자가 되시면 모든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4절 말씀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야곱은 그의 인생길이 험악하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창47:9) 다윗은 그의 생애가 마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것과 같았음을 시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녔으나 아무런 해도 받지 아니하였고, 두려워하지도 않았다고 했습니다. 왜 두려워하지 않았습니까?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저와 여러분들도 그렇게 고백하실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여러분들과 함께 하심을 믿으시고 확신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목동으로 살았을 때에 맹수가 올 때 맹수를 지팡이와 막대기로 못된 짐승을 물리쳤습니다. 그리고 그의 양들을 보호하였습니다. 요10:14절에 보면 주님은 선한 목자로서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것입니다. 양들은 음침한 길을 갈 때도 있습니다. 의의 길, 곧 곧은길을 갈려면 위험한 일도 있습니다. 시련도 있습니다. 고난과 죽음에 직면할 때도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에게는 목자가 필요하고 우리의 목자가 되신 하나님께서 위로하시고 은혜와 희락과 소망과 용기를 주시는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이 인생길을 걸어가다 보면 더위도 만나고 추위도 만납니다. 그러나 렘17:8절에서처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길에 더위도 만나고 추위도 만납니다. 그래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딤후1:7)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목자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결실이 끊어지지 않게 됩니다. 롬8:28절의 말씀처럼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조금도 두려워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사실 양은 어디에 풀밭이 있는지, 어디에 시냇물이 있는지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일은 목자가 다 알아서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목자만 따라가면 되는 줄 믿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3. 우리의 모든 소원을 성취하여 주시는 목자이신 줄 믿습니다.
5,6절을 함께 읽도록 하시겠습니다. “5)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근동지방에서는 자기를 죽이려는 원수에게 쫓기게 될 때 자기가 보호를 받고자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면 아무도 그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주인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법이 있습니다. 아무리 원수라도 집밖에서 바라만 볼 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여호와의 집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품으로 피하기만 하면 되는 줄 믿습니다. 여호와께서 집 주인으로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잔치를 베푸시고 향유를 머리에 발라 주십니다.(눅7:46)
아까움이 없이 흡족하게 철철 넘치는 잔으로 대접을 해 주시며, 축배의 잔을 준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나를 친구로 대접한다는 의미요, 나의 사랑하는 친구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요2:27,엡5:18,시104:15)
그리고 우리는 여호와의 집에서 잠시 동안이 아니라 영원토록 거하게 될 줄 믿습니다. 천사의 호위를 받으면서 말입니다. 양으로서 최상의 즐거움은 이 같은 환대를 받으면서 여호와의 집에서 길이 사는 것입니다.
모쪼록 저와 여러분들이 목자 되신 우리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기만 하신다면 여러분들 앞에 무슨 어려운 일이 발생되었다 할지라도 조금도 걱정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목자 되신 우리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양육하실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부디 이 사실을 믿으시고 다윗처럼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도다.”라고 고백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윤정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