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창조하는 사람들 (출 17:8-16)
본문
사람들은 기적을 바라며 삽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눈으로 똑똑히 본 것만 믿으려 합니다. 로또의 기적은 은근히 바라면서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기적은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있다는 것을 믿습니까? 다 믿을 겁니다. ‘희망’이 있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모두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믿습니다. 만약에 없는 것들이라면 ‘사랑’이라는 말이 사라졌을 것입니다. ‘희망’이라는 말도 사라졌을 것입니다. ‘기적’이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적은 믿는 자에게만 나타납니다. 기적을 바라는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 기적이 일어납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에게도, 공부를 하는 학생에게도,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 .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기적의 종교입니다. 그 이유는 성경은 처음부터 기적으로 시작되고 내용도 대부분이 기적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으며 성경의 마지막 부분도 예수님의 재림과 믿는 자의 천국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다는 것은 기적중의 기적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어떤 분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성경에서 만일 기적을 제외한다면 성경은 표지 두장만 남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모두 기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기적은 지나간 과거에만 있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기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분,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에는 하나님의 기적이 따르는 신비함이 있습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막연하게 기적을 바라는 것은 미친 짓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몸부림치며 기적을 바라는 것은 믿음의 역사를 낳고야 말 것입니다.
믿음은 상식을 초월합니다. 상식적인 태도로 신앙생활하는 사람에게는 결코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이 엿새 동안 천지만물과 인간들을 창조하신 기록이 나옵니다. 기적 가운데 제일 큰 기적입니다. 이것이 상식적으로 가능한 것입니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기적의 주인공입니다. 아브라함이 상식적으로 신앙생활 했나요?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롬4:18-20)
여러분!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생각만 해서는 절대로 기적을 맛볼 수 없습니다. 때로는 위험스럽고, 모험스럽긴 해도, 믿음으로 돌진할 때, 우리 하나님은 기적을 일으키고,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만드실 수 있는 것입니다.
모세가 믿음으로 홍해를 가른 것은 상식적인 것입니까? 너무나 비상식적 행동입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가지고 바다 위를 뻗었습니다. 그랬더니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말씀대로 순종하니까 일어난 결과이지 모세의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요단강을 건널 때에도 열두 제사장이 출렁이며 흐르는 강물에 발을 먼저 밟으니까 갈라졌습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까?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무조건 하루에 1바퀴씩 돌고, 마지막 일곱 번째 날에 7바퀴 돌고 함성을 지르니까 그 철벽과 같은 여리고성이 폭삭 내려앉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상식적으로 가능한 것입니까?
예수님이 남자를 전혀 알지 못하는 동정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되어 오심도 기적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3일 만에 부활하셨고, 40일 계시다가 승천하셨습니다. 이런 기적은 어떻게 상식적으로 설명할 수가 있겠습니까? 기적중의 기적입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키셨고, 소경을 보게 하셨으며, 중풍병자를 걷게도 하셨고 문둥병자를 깨끗케 하셨습니다. 귀신을 쫓아내셨으며 죽은 자도 살리셨습니다. 주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신 것 외에도 수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바람 부는 바다의 풍랑을 잔잔케도 하셨으며 물 위를 걷기도 하셨습니다.
2,000년 기독교의 역사도 기적의 역사입니다. 지금도 그런 기적들은 계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실 때에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더라도 믿음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은 기적을 믿고 사모하는 사람들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기적을 통하여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살아 계심을 증거 하시길 원합니다.
우리 교회에, 우리의 가정에, 우리의 사업장에 기적이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지난 IMF때 우리나라는 참으로 힘든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조건에서도 성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실패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떤 학자가 실패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조사해서 5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보았는데
첫째, 종래의 방법이 제일 좋다고 고집 하는 유형의 사람들이 실패하더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시대는 변화하고 새로운 기술은 자꾸 개발되는데, 종래의 방법이 좋다고 고집을 피우고 새로운 방법을 찾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그 완고성 때문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완고함을 버리십시오.
둘째, 자기 계발을 게을리 하는 현실 만족형의 사람들이 실패하더라는 것입니다. ‘이것도 괜찮다, 이만큼이면 됐다’고 생각하며 현실에 지나치게 만족하는 사람들도 실패하더라는 것입니다.
셋째, 나는 잘하는데 상대가 나쁘다고 하는 형입니다. 자기중심적인 교만한 사람은 실패하더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통해서 자기의 부족한 점을 깨닫고 최선을 다하는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넷째, 쉽게 부정하는 형입니다. 무슨 말을 해도 ‘No!’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실패하더라는 것입니다.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무엇을 하든 안 됩니다. ‘예스 형’ ‘아멘’의 사람이 될 때 성공적인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다섯째, 시야가 좁은 형입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자기 분야만 고집하거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폭넓게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은 실패하더라는 것입니다. 편협성은 발전을 저해하는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성공하는 사람이 되려면 더 넓고 광대한 세계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시야를 좁게 가지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눈을 크게 뜨고 동서남북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새 시대에는 새 시대에 걸 맞는 생각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정적이고 편협한 사고를 버려야 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큰 역사와 능력을 힘입어 기적을 창조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광야를 지나갈 때 모두 기적으로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홍해를 하나님의 기적으로 건너고, 3일을 걸어서 수르 광야에 가서는 물이 없어서 고생을 하다가 쓴 물을 달게 해주어서 마음껏 먹었으며(출15:2). 매일 만나를 주어서 먹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만나가 지겨우니 고기를 달라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메추라기로 한달이나 코에서 냄새가 나도록 먹게 했습니다(민11:18).
그런데 르비딤(출17:)에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아말렉 군대들이 이스라엘의 행렬을 가로막고 방해를 했습니다. 그래서 순조롭게 행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아말렉이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모세가 산 위에 올라가서 손을 높이 들고 기도하고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하는 동안은 여호수아가 앞장서고 이스라엘이 사기충천하여 아말렉을 이기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손이 내려오면 반대로 아말렉이 이기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아론과 훌이 돌을 가져다가 단을 쌓고 모세를 그 위에 앉게 한 후 양편에서 팔을 붙들어 주었더니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승리했다는 기록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우리의 가는 행렬을 가로막고 방해하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아말렉 족속들입니다. 그러면 이 아말렉 족속은 누구입니까? 창36:15-16절에서 보면 에서의 후손이 아말렉 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말렉 족은 장자 명분을 팥죽 한 그릇과 바꾼 에서의 후손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 출세 때문에 믿음을 떠난 불신자들이 모두 아말렉입니다. 야곱에게 장자의 복을 뺏기고 나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계속 미워하였습니다. 조상적부터 가지고 있었던 좋지 않은 감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전쟁을 끝까지 부추겨 왔습니다. 그 아말렉 사람들은 야곱의 후손이 잘 되는 것을 눈뜨고 봐주지 못합니다. 남이 잘 되는 것을 못 봐줍니다. 그래서 트집을 잡아 훼방하려는 것입니다.
아말렉은 한마디로 하나님과 원수 된 자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막고 훼방하고 도전했던 것입니다. 출17:16에 보면 "가로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아말렉은 곧 하나님의 원수인 마귀, 사단입니다. 이 사단은 우리를 끝까지 넘어뜨리려는 영적인 원수인 것입니다. 이 아말렉은 그때도 있었고 오늘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주변에는 무수한 아말렉 사람들이 우리의 행진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이 아말렉을 이긴 것은 모세 혼자로서 만은 불가능했습니다. 아론과 훌이 잘 협조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와 여러 젊은이들이 힘을 합해서 싸웠을 때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입니다. 놀라운 기적입니다.
이 사건은 오늘 가나안을 향해 가는 우리 성도들이 어떻게 할 때 하나님의 기적을 맛볼 수 있는 지를 잘 가르쳐 주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기도의 팔이 들려져 있어야 합니다.
이 모든 방해와 도전을 이기면서 새 예루살렘까지 잘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기도의 손을 높이 들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손을 든다는 것은 바로 기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도의 손을 들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손을 들었다는 것은 기도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주의 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짓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시28:2)
손을 높이 들었다는 것은 하나님께 온전하게 복종하는 표식입니다. 내 고집, 내 생각, 내 욕심, 내 힘 가지고 살아온 모든 삶을 포기하고 이제부터는 나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린다는 표식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기도에 즉각 응답하십니다. 여러분 기도의 손을 드십시오.
또 그것은 충성의 서약을 의미합니다. “내 모든 삶을 오직 주의 영광을 위하여 살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기도의 손을 드는 것은 축복을 의미합니다. 모세의 손은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축복의 손이었습니다. 예배마치는 시간, 목사가 손을 드는 축복의 기도입니다. 주의 종의 기도의 손은 축복의 손입니다. 이삭은 야곱에게 손을 얹고 기도했습니다. 야곱은 그 기도대로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아말렉과의 싸움은 호락호락한 싸움이 아닙니다. 매우 치열합니다. 이런 싸움에서 결정적인 요소는 직접 나아가 싸우기 전에 손을 드는 것이었습니다.
모세의 손이 높이 올라가면 기세당당한 아말렉 군대들이 추풍낙엽처럼 넘어졌습니다. 희한한 사건입니다. 문제는 모세의 손이 내려오지 않아야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손 자체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하는 손을 통해서 능력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모세의 손이 계속 들려 있었기 때문이라면 주의 종의 손이 내려오지 않고 계속 들려 있어야 합니다.
만일 모세 혼자 그 손을 하루종일 들고 있어야 했다면 그는 결코 감당키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협력으로 인하여 모세는 이 어려운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아론과 훌이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옆에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모세의 기도의 손을 붙잡고 협동했던 것입니다. 그 손들은 협동하는 손입니다.
아론은 모세의 형이고 훌은 모세의 여동생 미리암의 남편입니다. 형과 매부가 잘 협동하여 잘 붙들어 주었습니다. 서로 협동해야 사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론이나 훌의 손은 모세의 손처럼 능력 있는 손은 아니고 신비의 손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협력할 때 역사가 일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협동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막2;에 한 중풍병자를 네 친구가 침상에 매고 왔을 때 기뻐하시고 그들의 믿음으로 칭찬하시고 중풍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모세의 손이 피곤하여 내려갈 때 좌우에서 붙들어 주는 손입니다. 기도와 축복의 손이 내려가지 않아야 이스라엘 백성이 승리하고 내려가면 전쟁에서 지기 때문입니다. 공동 운명체(함께 살고 함께 죽는) 였습니다. 교회의 승리는 함께 할 때 승리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담임목사 부교역자,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속장, 교사 그리고 전 성도가 협력하여야 합니다. 그래야만 아말렉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로 협력하고 마음으로 협력하고 물질로도 협력할 줄 알아야 합니다.
빌립보 교회에는 에바브로 디도라는 교인이 있었는데 사도 바울을 위해서 모든 필요를 다 제공해 준 훌륭한 교인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복음을 증거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에바브로 디도는 자기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바울을 섬겼습니다.
바울이 대 사도로 사명을 수행할 수 있었던 배후에는 에바브로 디도와 같은 숨은 봉사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대 뒤에서 협력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존귀한 사람입니다. 세상에는 보는데서는 협력하는 것 같으면서도 뒤에서는 비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결코 쓰시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아론과 훌 같은 사람들이 되시고 에바브로디도와 같은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일선에서 싸우는 여호수아와 열정적인 백성들이 있어야 합니다.
기적은 헌신을 요청합니다. 헌신이란 무엇입니까?
주님의 요구에 응답하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시대에 헌신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나 물질로 표현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을 지을 때 마음이 감동 된 자와 자원하는 자가 성막을 짓기에 필요한 모든 재료를 그리고 성막에서 쓸 기물들을 가져다가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자원하는 예물, 자원하는 헌신이었습니다. 나중에 백성들이 너무 많이 가져오므로 일하던 일군들이 감당치 못하게 되어 모세가 그만 가져오라고 광고했을 정도였습니다.(출36:3-6)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원하는 헌신이지 억지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자원하는 헌신이 왜 점점 없어질까요?
죄 때문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습니다. 성도들이 남모르는 죄를 범하면 믿음이 병이 들게 되고 병이 들면 교회가 등한히 되어지고 말씀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문제는 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또 주님과 멀어지면 헌신이 식어집니다.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주님과의 관계를 맺어야 할 것입니다. 예배드릴 때만 주님과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과 관계가 멀어지면 주님을 두려워 하는 마음부터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함부로 합니다. 안하무인이 됩니다.
헌신의 사람이 기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엘리야 시대에 사르밧 과부 집에서 기적은 먼저 엘리야를 위하여 떡을 구워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먼저 주님 앞에 우리의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날 때에도 빌립과 안드레의 헌신을 통하여 일어났던 것을 압니다. 우리의 달란트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물질을 드려야 합니다.
모세가 기도의 손을 높이 들고 있을 때 전쟁터에서는 칼을 들고 목숨을 걸고 아말렉과 싸우는 여호수아와 백성들이 있었습니다.
싸우는 여호수아가 있어야합니다. 한마디로 뒤에서 기도로, 영적으로 후원해 주는 사람도 있어야하지만 여호수아와 같이 실제적으로 총대를 메고 앞장서서 일하는 사람도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만약 여호수아가 왜, 나만 이렇게 위험한데서 해야 하느냐고 했더라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실천하는 성도들의 손, 싸우는 손, 순종하는 손, 봉사하는 손을 원하십니다. 이 손들은 복 받는 손입니다. 이 손은 명령에 따라 순종하며 말하지 않고 행하는 손입니다.
영적인 것은 영적으로 대비를 하고 육적인 것은 육적으로 대비를 해야 합니다. 기도는 많이 하는데 실천하는 것이 없다면 무의미한 것이고, 열심히 일하지만 기도, 영적인 것이 뒷받침이 되지 않으면 그것 또한 모래성을 쌓고, 바람을 잡으려는 것에 불과합니다.
교인들이 일사불란하게 땀 흘리고 봉사할 때 교회는 부흥하며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앞에 있는 아말렉을 쳐부수고 이기기 위해서는 교역자로부터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기도하며 봉사하며 땀 흘리기를 즐겁게 자원하여 감당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적을 믿고 사모하며 기도하며 봉사할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기적이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기적은 반드시 일어납니다.
기적의 해가 될 줄 믿습니다.
(임경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