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기목사 -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행 1:8) > 설교자료실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Home > 설교자료실 > 설교자료실
설교자료실
설교자료실

이영기목사 -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행 1:8)

본문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행 1:8)

뒷마당 연못가에 나무 몇 그루 심겨 있습니다. 그 중, 저게 무슨 나무인가 싶은 게 있습니다. 그냥 굽고 휘어진 나무 작대기 하나 꽂아 놓은 것 같습니다. 그것 구해다 심은 박집사님은 굉장한 거라고, 이거 살기만 하면 굉장한 거라고 말합니다만, 도무지 굉장한 것 같지 않습니다.
어제, 백송가든 사장님이 건너오셔서 그것을 보셨습니다. 그리곤 눈이 둥그레 지는 겁니다. “이거 어디서 구했냐?”고. 백송가든 사장님도 엄지손가락만한 굵기의 나무를 대단한 것으로 자랑했는데, 저희 연못가에 심은 것은 그 다섯 배도 더 됩니다. 그 정도 크기면 아마 백 년은 되어야 할 거랍니다. 그러니 눈이 둥그레 질 수밖에요.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런 것 같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그렇게 소중한 줄 모르고 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대림교회에 있을 때, 거기 장로님의 누이 되시는 권사님이 중환자실에 입원했습니다. 완전히 의식을 잃고, 산소호흡기에 의해 그 생명을 이어가고 계셨습니다. 면회 시간에 맞추어서 병원에 갔습니다. 제가 목사라고 먼저 가운을 입고, 신발을 갈아 신고 들어가 기도해 주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이 면회하러 들어갔고, 전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환자를 면회하고 나온 어떤 가족들이 이런 말을 하면서 기뻐하는 겁니다. “손가락이 움직였다.”는 겁니다. 손가락이 움직였다고, 그것을 보고 나온 사람이나,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나 함께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내 손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중환자실에서 꼼짝도 못하고 누워있는 환자가 손가락을 움직여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었는데, 그런데 나는? 손가락 뿐 아니라 손, 발, 온 몸을 다 움직이면서,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기쁨을 주었던가? 내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얼마나 기쁨을 주었던가?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하나님께는 얼마나 기쁨을 드렸던가?

여러분!
여러분의 손을 보세요. 그 손으로 모든 사람에게, 그리고 주님께 얼마나 기쁨을 드렸습니까? 그리고, 손가락을 움직여 보세요. 신기하지 않아요? 감사하지 않아요? 소중하지 않아요?
그렇게, 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는 겁니다.
“난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나 같은 게 뭘?” 그리 생각하지도 마십시오. 여러분은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의 인생, 여러분의 삶 역시 소중한 겁니다. 하는 일이 굉장하지 않아, 그래서 이루어 놓은 것 역시 굉장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의 삶은 값진 삶이요, 소중한 삶인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으신다면, 그것은 여러분을 사랑하신 주님의 사랑을 우습게 만드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여러분의 삶을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여기신다면, 그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 죽음을 헛되게 만드는 겁니다.
기억나시지요? The Passion of the Christ. 왜 예수 그분이 그토록 고통 당하셨습니까? 바로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천하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죄인이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사랑하시는 겁니다.
뒷마당의 마삭 나무와 같이, 아무도 그 가치를 몰라도 아는 사람은 알듯이,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를, 세상은 대수롭니 않게 여길지 모르나, 우리 하나님은 누구보다도 우리를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시편 139편 1-6절에 시편 저자는 그 하나님을 이렇게 찬양합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나를 샅샅이 살펴보셨으니, 나를 훤히 알고 계십니다. 내가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주님께서는 다 아십니다. 멀리서도 내 생각을 다 알고 계십니다. 내가 길을 가거나 누워 있거나, 주님께서는 다 살피고 계시니, 내 모든 행실을 다 알고 계십니다. 내가 혀를 놀려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주님께서는 내가 하려는 말을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나의 앞뒤를 두루 감싸 주시고, 내게 주님의 손을 얹어 주셨습니다. 이 깨달음이 내게는 너무 놀랍고 너무 높아서, 내가 감히 측량할 수조차 없습니다.”

추운 북반구에 가면, 바다 오리과에 속하는 작은 새들이 서식합니다. 영어로는 이 새를 ‘길러마트’라고 하는데, 이 새들은 해안의 좁고 험한 절벽에 무리를 지어 삽니다. 수 천, 수 만 마리가 절벽에 모여 떼를 지어 살면서 고기를 잡아먹습니다. 그 좁은 해안 절벽에 수 천, 수 만 마리가 떼를 지어 있으니 얼마나 좁겠습니까? 그래서 암컷이 새끼를 낳을 때, 다른 새들처럼 둥우리를 치고, 조용한 데를 찾아서 낳지 못하고, 그저, 선 자리에서 알을 낳습니다. 암컷들이 전부 선 자리에서 그대로 알을 낳으니 수 천 개의 똑같은 알들이 쫙 깔리게 되는 겁니다. 새박사라고 하는 조류학자들도 그 알을 구별할 수 없답니다. 그런데, 어미 새는 자기가 낳은 알을 정확하게 구별한답니다. 조류학자들이 일부러 그 알을 섞어 놓아도, 어미 새들은 적확하게 자가 낳은 알을 구별한답니다.
너무 신기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오리는 누가 만드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오리가 자기 알을 알아내는 것도 우리들 보기에는 신비로운 일입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창조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아시는 영역은 어느 정도이겠습니까?
“이 깨달음이 내게는 너무 놀랍고, 너무 높아서, 내가 감히 측량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냥(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서 하나라도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놓고 계신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마 10:29-31)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알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머리카락까지 세셔서 당신의 소유로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하나님의 소중한 사람들인 겁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나를 알고 계신다는 것은 소중합니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 생각하면 부담스럽습니다. 아마 믿음이 좀 없는 분이나, 하나님에 대하여 잘 모르시는 분은 속으로 “야, 끔찍하다. 끔찍해” 그럴지도 모릅니다.

생각해 보세요. 너무나 나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24시간 내내 여러분의 곁을 졸졸 따라다닌다고 생각해보세요. 더욱이 하나님이십니다. 마음의 생각까지도 다 아시는 분이, 24시간 내내 함께 하십니다. 사랑도 많으시지만, 죄에 대해서는 아주 엄격하신, 그래서 눈곱만한 죄도 그냥 넘어가실 수 없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지나 간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남편이나 아내도 모르고, 아이들도 부모도 모르고, 친한 친구조차도 모르는 그 비밀스러운 일들. 그런데 누군가 그 일들을 알고 있다고 생가해보세요. 그것도 낱낱이 알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럴 때 누군가 날 알아준다고 기뻐하겠습니까? 오히려 나의 그 모든 비밀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소름 끼칠 정도 아닙니까?

그러나, 전에는 우리가 죄 아래 살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에 못 미치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롬 3:23)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직 약할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제때에, 경건하지 않는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롬 5:6)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들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실제로 나타내주셨습니다.”(롬 5:8)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가 되었습니다.(롬 6:3)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 되어, 그의 죽으심과 같은 죽음을 죽어서 그와 연합하는 사람이 되었으며, 그렇기에 부활에 있어서도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롬 6:5)
로마서 6장 6절부터 11절까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은, 죄의 몸을 멸하여서, 우리가 다시는 죄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임을 우리는 압니다. 죽은 사람은 이미 죄의 세력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그와 함께 우리도 또한 살아날 것임을 믿습니다. 우리가 알기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다시는 죽지 않으시며, 다시는 죽음이 그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죽음은 죄에 대해서 단번에 죽으신 것이요, 그분이 사시는 삶은 하나님을 위하여 사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죄에 대해서는 죽은 사람이요, 하나님을 위해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낱낱이 알고 계시다고 할 때 끔찍하게 생각 되는 것은 그분 앞에 나의 죄 됨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최첨단 의료기기 앞에 섰습니다. 그때 여러분의 질병이 하나하나 나타나기 시작하면, 그것은 끔찍한 일일 겁니다. 그러나 질병이 없다고, 깨끗하다고, 건강하다고, 그렇게 나타나면 말할 수 없이 기쁠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죄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죄를 씻어 주셨습니다.
보세요. 최첨단 의료기기 앞에 서서 나의 질병이 하나하나 나타나면 끔찍스러운 일이지만, 그것을 알아냈기에 그 질병을 또한 치유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 됨이 드러나, 한편으로는 창피하고, 한편으로는 끔찍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그 죄를 용서함 받게 된다면, 그 죄를 씻김 받게 된다면,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모든 죄는 그리스도 예수의 보혈로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낱낱이 알고 계신다는 사실은 끔찍한 일이 아니라, 기쁜 일입니다. 신나는 일입니다. 이제 우리는 죄에 대하여는 죽은 사람이요, 하나님을 위해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멘.
로마서 6장 12절부터 13절까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죄가 여러분의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해서, 여러분이 몸의 정욕에 굴복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지체를 죄에 내맡겨서 불의의 연장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여러분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난 사람답게, 여러분을 하나님께 바치고, 여러분의 지체를 의의 연장으로 하나님께 바치십시오.”
분명히 여러분과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이 씻김 받았음을 확신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번 씻겨지면 다시는 때가 끼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한번 목욕했다고 다시는 목욕 안 해도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마 12:43-45)
“악한 귀신이 어떤 사람에게서 나왔을 때에, 그는 쉴 곳을 찾느라고 물 없는 곳을 헤맸으나 찾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는 말하기를 ‘내가 나온 집으로 되돌아가겠다’ 하고 돌아와서 보니, 그 집은 비어 있고, 말끔히 치워져서 잘 정돈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는 가서,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와서, 그 집에 들어가 거기에 자리를 잡고 살았다. 그래서 그 사람은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비참하게 되었다. 이 악한 세대도 그렇게 될 것이다.”
죄 사함 받았다고 다 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악한 귀신이 나갔다고 다 된 것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내 심령, 내 영혼이 깨끗하게 되었다고 다 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병 고침 받으면 그만인가요?
술을 좋아해서 알코올 중독으로 병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서 그 병을 치료했습니다. 이제 건강해졌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건강해졌으니, 또 술을 마음껏 먹어도 되는 겁니까? 다시는 술 먹지 않고, 그 건강을 지키려고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가 깨끗해졌다면, 그 깨끗함을 유지하기 위해 힘써야 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죄가 여러분의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해서, 여러분이 몸의 정욕에 굴복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지체를 죄에 내맡겨서 불의의 연장, 곧 불의의 무기가 되게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여러분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난 사람답게, 여러분을 하나님께 바치고, 여러분의 지체를 의의 연장, 곧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바치십시오.
분명, 그리해야 합니다.
다시는 죄가 우리의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다시는 우리의 지체가 불의의 무기로 사용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젠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난 사람답게, 우리 자신과 삶을 하나님께 바치고, 여러분의 지체를 의의 무기로 사용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어디 그리 쉽습니까?
예수 믿은 지 몇 년이 지나도, 몇 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죄가 우리의 몸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주님을 위해 살겠다고 늘 그렇게 다짐하지만, 여전히 몸의 정욕에 굴복하며 삽니다.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는 의의 도구가 아니라, 여전히 싸우고, 불평하고, 미워하고, 욕심스럽고…….그렇게 불의의 도구로 사용되는 내 자신을 봅니다.
사도 바울께서 안타까워 하셨던 게 뭡니까?
“여러분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으므로, 죄가 여러분을 다스릴 수 없을 것 입니다.” 그렇게 로마서 6장 14절에 말씀하셨던 그 분이,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로마서 7장 15절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여전히 악에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나는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내 지체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우며, 내 지체 있는 죄의 법에 나를 포로로 만드는 것을 봅니다.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롬 7:22-24)
누가 건져 주겠습니까? 누가 내 지체에 있는 죄의 법에서 나를 자유롭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사도바울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당신을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롬 8:1-2)
이제는 우리가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육신에 속한 것을 생각하나,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육신에 속한 생각은 죽음입니다. 그러나 성령에 속한 생각은 생명과 평화입니다.”(롬8:5-6)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모든 죄를 사함 받았다 하더라도 성령이 아니고서는 우리 자신의 거룩함을 지킬 수 없습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생명과 평화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온 집안은 확실히 알아 두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님을 주님과 그리스도가 되라 하셨습니다.”
그런 사도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마음이 찔려서 묻습니다.
“형제들이여,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회개 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각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용서를 받으십시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보세요.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용서 받으면 다 되는 것 아닙니까? 물론, 저는 그래도 구원 받는다고 확신합니다. 성령은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됩니다.
그러나 성령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 하고 말 할 수 없습니다.(고전12:3 하) 그 말은, 성령이 아니고서는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롬 8:9 하)
“예수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살아계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신 자기의 영으로 여러분의 죽을 몸도 살리실 것입니다.”(롬8:1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여러분은 죄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 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어둠의 자녀가 아니라 빛이 자녀 입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어둠이었으나, 지금은 주님 안에서 빛 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사십시오.”(엡5:8)
그렇게 살아가게 하는 것이 성령의 능력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보혜사가 너희에게 오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면,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 주겠다. 그가 오시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의 잘못을 깨우치게 하실 것이다. 죄에 대하여 깨우친다고 함은 세상 사람들이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요, 의에 대하여 깨우친다고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고 너희가 나를 더 이상 못 볼 것이기 때문이요, 심판에 대하여 깨우친다고 함은 이 세상의 통치자가 심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지금은 감당하지 못 한다.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다.”(요16:7-13)
“그러나,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심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며,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요14:26)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수많은 말씀, 그리고 그 분의 삶,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이 모든 것들이 비로소 능력이 되게 하심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께서 무엇이 죄인지, 무엇이 의인지, 무엇이 심판인지 깨우쳐 주시고, 성령께서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며, 또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그러니 성령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시면, 듣기는 들어도 읽기는 읽어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조용한 자리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 대해 다시 말씀해 주시기 원했습니다. 듣는 것은 듣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들었으면 그 들은 말씀이 능력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늘 깨닫고, 그 말씀이 능력으로 나타나도록 역사하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세상에서 들려오는 많은 말이 있습니다. 심지어 여기저기서 “여기에 구원이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 행복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진정한 구원, 진정한 행복인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 하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그분이 계셔야 하나님의 일이 온전히 이루어지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사도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려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여러 날이 되지 않아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우리 알다시피,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3년 동안 따라 다니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직접 보았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귀신 내쫓는 권세를 받고 나가서 귀신을 쫓아내기도 했습니다. 그 정도면 지금이라도 당장 나가서 얼마든지 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그들은 지금 마가의 다락방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유대 사람들이 무서워서 문을 모두 닫아걸고 있었습니다. 두려워서 문 밖에도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까?
그렇기에 그들에게는 성령의 능력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시면, 모든 일이 두렵습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시면 모든 일에 실패하고 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전도해 보셔서 아시잖아요? 전도하기 힘들지요? 실패도 많이 했지요? 아예 두려워서 말도 못 꺼내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성령으로 세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사람들이 무서워서 문을 모두 닫아걸고 있는 겁니다.

봉사나 헌신도 그렇습니다. 하기 싫지요? 일하면서도 짜증나지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그게 두렵지요? 하고 나면 늘 피곤하고 힘들지요? 왜 그렇습니까? 성령으로 세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내 힘으로 뭔가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주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땅 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는 피곤을 느끼지 않으시며, 지칠 줄을 모르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신 분이시다. 피곤한 사람에게 힘을 주시며, 기운을 잃은 사람에게 기력을 주시는 분이시다. 비록 젊은이들이 피곤하여 지치고, 장정들이 맥없이 비틀거려도,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삶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솟아오르듯 올라갈 것이요,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사 40:28-31)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그렇게,
성령이 임하시면, 그래서 여러분은 소중한 사람들 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그래서 여러분은 빛의 자녀답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그래서 여러분은 능력주시는 주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고객센터 개인정보취급방침 서비스이용약관 기독정보넷공식트위터 Copyright © cjob.co.kr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