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그림을 그려라 (수 18:1-10)
본문
우리 인생에 있어서 밑그림도 중요합니다. 캔버스에 밑그림을 스케치하듯 자신의 인격,
지식, 실력, 세상을 보는 눈, 때를 읽는 감각, 사람과 인생을 경영하는 감각 등을 그립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Descartes)는 “믿어라. 당신의 인생은 당신이 생각하고 그린대로 이루어진다.”라고 말했습니다.
복 받는 비결도 그림을 잘 그리면 되는데 복 받을 사람은 복 받을 그림을 그리면 됩니다. 행복하기 원하는 사람은 행복의 그림을 그리고 성공하기 원하는 사람은 성공의 그림을 그리면 됩니다.
미국의 유명한 트리분이라는 잡지에 페기 풀이라는 여성이 암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죽음 직전에서 고침 받은 기적적인 사건을 간증으로 실었습니다. 낙심하고 있는 이 여성에게 어떤 사람이 쟁반에 물을 떠와서 마시라고 주었습니다. 그래서 물을 마시려고 컵을 드니까 그 컵 밑에 ‘포기하지마세요’라는 글이 쓰여진 종이가 한 장 있었습니다. 그는 그 글을 보고, ‘그렇다. 내가 죽을 때 죽더라도 끝까지 암과 싸워 투쟁하리라.’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창 밖을 보니 토끼 한 마리가 누군가 던져준 오렌지를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내 몸에 암 세포가 있는데 정상적인 세포, 백혈구가 암 세포를 갉아먹을 것을 믿습니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암세포가 하나씩 없어지고 정상세포가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종일 기도하면서 그 모습을 마음에 그렸습니다. 그랬더니 점점 병이 호전되면서 암세포는 사라지고 깨끗하게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는 암에 걸려 사형선고를 받고 절망하고 포기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잡지에 자신의 간증을 싣고 마지막에 “무엇이든지 당신이 상상한대로 믿고 진심으로 구하면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은 마음에 믿음을 가지고, 신념을 가지고 살고, 성공적인 장면을 그리면서 삽니다. 실패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실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 동편의 땅을 이미 정복하고 요단강을 건너서 하나님의 약속으로 주어진 가나안 땅으로 들어와서 여리고 성을 함락 사키고 여호수아의 지휘 아래 요단강 서편 땅을 정복해 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길 회막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일부 지파들 곧 유다와 요셉 두 지파, 그리고 요단 동편에 기업을 얻은 르우벤과 갓 지파는 이미 자신들이 차지할 땅을 분배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베냐민 지파, 시므온 지파, 스불론 지파, 잇사갈 지파, 아셀 지파, 납달리 지파, 그리고 단 지파 이렇게 모두 일곱 지파들은 아직껏 자신들이 차지할 땅을 분배받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땅을 차지할 생각을 하지 않고 머뭇거리고 지체를 했습니다. 그들은 땅을 정하면 마무리 전쟁을 해야 하는데, ‘전쟁에 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인해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짐작해 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일곱 지파들은 계속되는 전쟁에 지쳐 갔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냥 현실에 안주하게 되었고, 계속되어야할 정복 전쟁을 향한 목적과 의지가 점차 희미해져 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차일피일 미루면서 안일주의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가나안 족속들은 전쟁에 패했기 때문에 서로 힘을 합쳐 다시 한번 전쟁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그것을 알아 채리고 나머지 일곱 지파에게 빨리 땅을 차지하지 않으면 땅을 빼앗긴다고 책망을 하고 원하는 땅의 그림을 그려 가지고 오라고 말했습니다. 여호수아는 그 그림을 가지고 기도하고 제비를 뽑아 분배해주었습니다.
인생은 전쟁터처럼 험악하고 힘겨운 곳입니다. 하지만 사람들 중에는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되겠지하고 안일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긴장해야 합니다.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싸움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공하는 사람은 결단을 잘합니다. 신앙도 결단이 중요합니다. 교회 다닌 지 일년이 지나고, 삼년이 지나고, 오년이 지나고, 십년이 지나도 아직까지 복을 받지 못하고,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소원성취를 하지 못했습니까? 이유는 지체하기 때문입니다. 신1:21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얻으라 두려워 말라 주저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두려워하는 것이나 주저하는 것 모두 성공에 방해물입니다.
미국의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은 “할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이 정복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성공과 승리는 용감하게 도전하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대개 실패의 원인은 너무 쉽게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공동체든지 많은 사람들 중에 도전하며 사는 사람들은 소수입니다. 다수의 사람들은 도전을 포기하며 삽니다.
이탈리아의 경제학자요, 사회학자인 파레토의 법칙 20:80의 법칙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상위 20% 사람들이 전체 부의 80%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상위 20% 고객이 매출의 80%를 창출한다는 것이죠.
실제로 만주에서 똑같은 조건에서 100명의 가족을 이주시켜 땅을 똑같이 나누어 주고 분배를 했다고 합니다. 3년, 5년, 10년이 지났습니다. 100명의 가족 중에서 20%가 나머지 80%의 땅을 다 차지하고 그 나머지는 소작인이 되어있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현실에 안주하려고 합니다. 새롭게 도전하는 것을 꺼립니다. 이미 익숙해진 것을 잘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또 다시 새롭게 도전하려면 고통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희생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익숙해지는 데까지 힘들고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향해 도전하는 사람을 좋아 하시고 그런 도전하는 사람을 쓰십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속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80’에 들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아니면 ‘20’에 속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도전하십시오. 책임은 하나님이 져 주십니다.
1. 이미 주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1절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거기 회막을 세웠으니 그 땅이 이미 그들의 앞에 돌아와 복종하였음이나” 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직 가나안땅을 정복하지 못하였는데 어떻게 가나안땅이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돌아와 복종하였다는 것입니까? 이 말은 군사적, 정치적인 주도권이 이미 이스라엘에게 장악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미 그들을 무력화시켰다는 말입니다. 이미 실로에 회막을 세웠습니다. 그러고도 지체하다니 얼마나 답답한 일입니까?
여호수아 2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땅에 들어가기 전에 정탐꾼 2사람을 여리고 성에 보내었는데 두명의 정탐꾼이 기생 라합의 집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기생 라합은 정탐꾼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 라고 했습니다. (수2:9)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미 이루어 놓은 전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리고 성을 순종하는 마음으로, 믿음으로 걸어서 돌기만 해도 무너졌던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 앞서 가셔서 먼저 일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너희 앞서 행하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이 일에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너희 앞서 행하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의 행할 길을 지시하신 자니라” (신1:30-33)
우리의 앞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불투명함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려워합니다. 또 낙심하고, 좌절하고, 절망하고 . . 그래서 자포자기합니다. 게으름병에 빠집니다. 안일주의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우리보다 항상 먼저 가셔서 길을 준비하시는 분, 예비하시는 여호와 이레 하나님이십니다. 또 우리 보다 앞서 가셔서 싸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다 이겨 놓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2. 게으름은 내적인 적입니다.
3절을 보면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너희가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땅을 취하러 가기를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여호수아는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음에 질책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체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크신 경륜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그 좋으신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 않겠는습니까? 하나님은 일찍이 그 땅을 주시겠다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고 그리고 몇몇지파들은 벌써 땅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남아 있는 지파들은 뭐하느냐고 여호수아가 질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누가 답답하고 필요한 사람입니까? 여호수아가 답답한 사람입니까? 아니면 백성들이 답답한 사람입니까? 그런데 비젼이 없다보니 주는 떡도 먹지 못하는 것입니다. 귀찮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 어떠한 역경 가운데서도 언제나 적극적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적극적인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도 그 믿음을 바탕으로 해서 적극적으로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적극적인 사람은 기회를 붙잡는 사람입니다. 다윗도 하나님이 기회를 준다는 믿음이 올 때 형들이 말리거나 사람들이 비웃거나 담대히 골리앗을 향해 나갑니다. 그러한 산 믿음을 보일 때 기적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마귀가 제일 좋아하는 전술이 ‘내일 하지’라고 합니다. 히말리야 산 속에 가면 야맹조(夜盲鳥)가 있는 데 낮이면 신나게 놀다가 밤이면 잘 둥지가 없어서 다른 새의 둥지에 가서 거하며 밤새 구박을 받습니다. 그 때마다 그 새는 너무나 서러워서 ‘내일이면 집 지으리. 내일이면 집 지으리’라고 노래한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아침이 오면 다시 신나게 노는 데 정신을 뺏기고 집 짓지 않습니다. 그 새는 일생이 다 가도록 집을 짓지 못한다고 합니다.
게으름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게으름은 죄악입니다. 낙담한 사람, 절망 속에 있는 사람, 권태로운 사람, 우울한 사람, 고독한 사람, 이런 사람의 밑바닥에는 바로 게으름이라는 죄악이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게으른 사람은 기뻐하지도 않습니다. 게으른 사람은 흥분하지도 않습니다. 게으른 사람은 감격하지도 않습니다. 게으른 사람에게는 의욕도 없습니다.
게으른 자는 주는 기회도 잡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공이 없습니다. 잠20:4 “게으른 자는 가을에 밭 갈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거둘 때에는 구걸할지라도 얻지 못하리라”
잠12:27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하나니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니라” 만사가 때가 있는데 게으른 자는 그 기회를 놓칩니다.
열심히 살지 않으면 기회와 때를 놓치고 만다. 그러므로 게으름은 죄인 것입니다.
그런데 게으른 자는 만사에 핑계와 이유가 많습니다. 불평, 불만이 많습니다. 그래서 되는 게 없습니다. 잠22:13 “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
어느 신자는 하나님이 기회를 주셔도 ‘내일 하지’ ‘직장이 안정되면 충성하지’ ‘빚이나 갚고 십일조하지’라고 계속 연기만 하다가 아무 것도 못하는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깨달음이 왔을 때 적극적인 믿음으로 행하십시오. 겨자씨만한 믿음을 주실 때 산을 옮기려고 시도 하십시오. 하나님은 게으른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부지런하고 적극적인 사람의 하나님이십니다.
3. 구체적인 꿈을 그리라
“너희는 매 지파에 삼인씩 선정하라 내가 그들을 보내리니 그들은 일어나서 그 땅에 두루 다니며 그 기업에 상당하게 그려 가지고 내게로 돌아올 것이라”(수18:4)
여호수아는 현실에 안주하며 앞으로 나아가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각 지파에서 세 명의 대표를 선발해서 그들이 아직 정복하지 못한 가나안 땅을 두루 다니면서 그들이 차지할 땅의 지도를 그려 가지고 오라는 것입니다.(수18:4-8)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기업을 주실 때 먼저, 약속을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약속한 땅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약속한 땅에 들어갔다고 즉시 주시지 않습니다. 그곳에서 힘을 기르도록 하십니다. 그곳 사정을 밟아 알라고 명령하십니다.
본문에 하나님은 무기력하고, 게으르고 지친 그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려는 땅을 눈으로 직접 보게 하고, 현장을 발로 밟고 그 규모를 조사하고 지도를 그리게 하십니다.
또 자신들이 차지할 땅을 발로 밟으며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주시려는 뜻을 현장감 넘치게 바라보게 함으로써 정복에 대한 적극적인 동기를 다시 불러일으키십니다. 그 결과가 18-19장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그 땅을 밟으면서 적지에 들어간 그들은 얼마나 긴장되었을까요? 정신이 번쩍 들었을 것입니다. 또 얼마나 마음이 설랬겠습니까? 이 땅을 우리에게 주신다는데 . . 흥분이 되었을 것입니다.
바로 그 곳은 그들이 가야하고, 정복하고, 차지할 하나님이 주신 목표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신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이렇게 나태하고 안일하게 살고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지치고, 무기력하고, 나태해질 때, 일어나야합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다리만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정신도 병이 듭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일이 잘 안될수록 일어나서 저 멀리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땅을 바라보고 현장을 향해 움직이고 걸어야 합니다. 밟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림을 잘 그려야 합니다. 믿음의 발걸음으로 밟으면서 그림을 그리고 그 약속대로 이루실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그냥 막연하게 그림을 그리지 말고 가서 두루두루 다녀보고 나서 그림을 그리라는 것입니다. 확인을 하고, 조사도 하고 난 뒤에 구체적으로, 현장감 있게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 기도할 때, 또 우리가 인생의 설계를 할 때, 막연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구체적으로 목적을 가지고 계획을 세워서 하나님께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목자와 조카 롯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그 후에 조카 롯이 아브라함을 떠났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신 말씀입니다.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창13:17)고 했습니다.
바라보고 밟고 다닌 그 곳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곳에 가서 그 땅을 밟아서 종과 횡으로 행하고 그것을 확인하고 체험하고 나서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해서 축복하시고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히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이 왜 지치고, 왜 나태해지고, 왜 나약한 지 아십니까? 그것은 비전의 사람들인 그리스도인들이 그 비전을 상실한 채, 그저 현실에 안주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앞을 향해 달려 가야할 그리스도인들이 앞을 보지 못하고 제 자리만을 맴돌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전거는 세워놓으면 자빠집니다. 그러나 앞으로 나갈 때 넘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가 기억나십니까? 얼마나 재미있는지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어둑어둑할 때까지 탑니다. 왜 그렇습니까? 페달을 구르기만 하면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하고 재미있습니까? 그렇게 자전거를 타고 나면 다리근육이 얼마나 당기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피곤함도 모릅니다.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머물러 있으면 타락하고 죄에 빠지도록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안주하는 것, 안일한 삶을 사는 것, 게으른 것은 미덕이 아닙니다. 죄입니다. 왜 안일에 빠지겠습니까? 비젼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비젼을 보는 사람들은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이 즐겁고 재미있습니다. 큰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일의 재미 때문에 한다고 합니다. 그것을 하지 않으면 굶어 죽기 때문이 아닙니다. 일의 재미 때문에 . . . 현장에 나가서 일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비전의 큰 그림을 그려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반드시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날마다 큰 그림을 그리고 큰 복을 받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4. 그 그림을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여호수아는 각 지파의 대표들이 차지할 땅을 두루 다니며 그려온 지도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제비를 뽑아서 각 지파에게 그 땅을 분배했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가서 그 땅으로 두루 다니며 성읍들을 따라서 일곱 부분으로 책에 그리고 실로 진에 돌아와 여호수아에게 나아오니 여호수아가 그들을 위하여 실로 여호와 앞에서 제비 뽑고 그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의 분파대로 땅을 분배하였더라”(수18:9-10)
당시 제비를 뽑는 일은 사람의 뜻대로 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기를 원하는 거룩한 헌신과 위탁의 상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잠16:3)고 말씀했고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잠16:9)고 말씀합니다. 아무리 우리가 그림을 잘 그릴 지라도 하나님께서 개입하시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아무리 농부가 씨를 뿌리고, 잘 개간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비를 주시고 태양을 주시고 벌레가 없게 해주셔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역사하도록 끝까지 하나님 앞에 순종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림을 그렸을지라도 그 그림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도록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일곱 지파 사람들은 여호수아의 말대로 순종했습니다. 그 명령에 순종해서 그 땅을 정탐하고 두루 다니면서 더 자세하게 구체적으로 지도책을 만들어서 가져왔습니다.
여호수아가 그들을 위해서 여호와 앞에서 제비뽑고 이스라엘 분파대로 땅을 분배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나머지 전쟁들도 모두 이기게 하시고 일곱 지파도 좋은 땅을 차지해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가나안 땅을 전부 점령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마음속에 하나님이 복 주실 그림을 그리시기 바랍니다. 은혜받을 그림, 성공할 그림, 승리할 그림을 그리십시오. 모두 그 믿음의 그림대로 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임경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