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받고 사는 비결 (창 12:1-5)
본문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아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세 였더라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람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창12:1-5) 아멘!
오늘은 복받는 비결에 대해서 같이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사람이 복을 받는 것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고 태도에 있습니다. 그러니 복이라고 하는 것이 잘생겼다거나, 많이 배웠다거나, 예쁘다고 해서 받고 그렇지 못하다고 복을 못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쁘게 생겼어도 복되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많이 배워도 복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복 받는 비결은 태도에 있기 때문입니다.
행복학을 강의하는 강사 최윤희씨는 사람들을 4가지 스타일로 구분합니다. 이 4가지 스타일에 따라서 행복해지기도 하고 불행해 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 4가지 스타일 중에서 첫 번째는 친구따라 강남가는 형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 주관이 없고 남이 하는 대로 따라하는 스타일입니다. 자기가 느끼고 생각하기 보다는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더 관심을 둡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면서 남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너무 남을 의식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자꾸 비교를 하잖아요.
이런 사람은 또 유행에도 민감합니다
그러니까 남에게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옷도, 먹는 것도, 집까지도 명품, 좋은 것을 선호하게 됩니다. 이것은 남에게 보여주려고 하니까 힘든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만족도 없고 불평이 아주 많아지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두 번째는 배째라는 형입니다.
‘친구따라 강남가는 형’의 사람과는 정반대의 사람입니다. 너무나 자기주장이 강해서 남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개성시대라 해도 지나치게 남을 생각하지 않으니까 민폐를 끼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되는대로 막사는 그런 사람입니다. 계획도 없고, 남도 의식하지 않는, 나만 좋으면 됐다라는 사람입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고도 오히려 큰소리치는 겁니다. 요즘에 우리 사회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아서 개인적으로는 참 가슴이 아픕니다.
남에게 잘못을 하고,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해 놓고도 “미안하다, 잘못했다.”라는 말 한마디를 안합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잘못을 지적하면, 그때야 조그맣게 잘못했다고 마지못해서 사과를 합니다. 이게 방송만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들 삶 속에서도 많습니다. 이런 사람도 결코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세 번째는 아무생각 없는 형입니다.
자포자기 형입니다. 될 대로 되라는 식입니다. 그냥 그날그날, 대충대충, 적당히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 무슨 계획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하루살이처럼 오늘만 있습니다. 내일도 없고, 미래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은 노숙자가 되기가 쉽습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네 번째는 깃발을 펄럭이는 형입니다.
목표지점에 깃발을 딱 꽂아 놓고, 그 깃발을 향해서 앞으로 가는 것입니다. 뚜렷한 목표와 철학과 주관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아주 괜찮은 사람입니다. 사람이 자기 주관이 있고, 인생의 꿈과 목표가 있고, 그를 위해서 헌신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의 형편이 어떻든지 간에, 이 사람은 ‘된 사람’이고 ‘철이 든 사람’이고 ‘비전이 있는 사람’입니다. 바로 테레사 수녀같은 사람 아닙니까?
그는 누가 뭐래도 자기 갈 길을 갑니다. 돈이 없거나 미모가 없거나 무슨 권력이나 뚜렷한 뭐가 없어도 이런 사람은 존경을 받고, 높임을 받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가 자기 인생을 만족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기억될 만한 감동을 줍니다.
여러분 이런 4가지의 스타일 중에 어디에 해당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친구따라 강남가는 스타일? 배째라! - 자기만 아는 스타일? 아무 생각없이 사는 스타일? 깃발을 펄럭이며 자기의 길을 가는 스타일?
가장 행복한 사람은 깃발을 펄럭이며 자기 인생을 사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의 목표는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성공을 위한 것도 아닙니다. 삶의 의미와 보람과 가치를 추구하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오늘 성경에는 행복을 찾아 나섰고 그 행복한 삶을 산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아브라함, 즉 믿음의 조상입니다. 아브라함의 축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의 나이 75세,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이루어 놓은 것이 없다고 해도 이 사람의 축복은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옵니다. 모든 능력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2-3절을 같이 봅시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메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3가지 복을 약속하십니다.
첫째는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십니다. 숫자만 많은 것이 아닙니다. 영향력이 있고 영적으로도 큰 민족이 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름을 창대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위대한 사람이 되게 하겠다는 겁니다.
세 번째는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는 겁니다. 어떻게 복을 주겠느냐? 나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축복을 주고, 나를 저주한 사람에게는 저주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늘 이런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습니다.
- 노아홍수 후에 노아에게도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습니다.
- 오늘 아브라함에게도 이런 축복을 약속하신 겁니다. 그런데 사람은 어떻습니까?
-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을 멀리 합니다. 불행이 시작이 되는 겁니다.
- 노아홍수 후에 바벨탑을 쌓고 ‘하나님 없이 살겠다.’고 하더니 망하는 겁니다.
-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 가나안 땅에 갔지만 소돔과 고모라 성을 향해 갔을 때에 그 또한 유황불로 멸망을 받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렇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데 사람들의 마음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죄인들을 사랑하셔서 아담에게 가죽옷을 입히시고 부끄러움을 가려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탄식할 정도로 죄를 범하지만 노아를 부르셔서 구원의 방주를 만들라고 하셔서 사람들을 구원해 주시고 그리고 오늘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또 축복을 약속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절대 떠나지 아니하시고 이 복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우리 인생의 행복과 불행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에 어떻게 응답하느냐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면 그게 복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잘 되는 것 같아 보여도 잘 되는 게 아닙니다.
오늘 성경 말씀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 주신 2가지 명령이 있습니다. 여러분 1절 말씀을 같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2가지 명령을 하시는데 하나는 ‘떠나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가라’는 것입니다.
1. 떠나라.
「떠나라」는 말은 현재에 안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세계를 위해서 나아가라는 뜻입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사람의 해외여행자수가 1,036만명이라고 합니다. 천만명을 넘어 섰습니다. 인구 4.5명중에 한명이 외국에 간 것이 됩니다. 해외에 나간 사람은 유학도 가고 관광도 갑니다. 요즘 조기 유학이 붐입니다. 초등학교도 모자라 아예 유치 아동들까지 간다고 하니 그 열기가 대단합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뱃속에 아기까지 데리고 가서 유학을 시킵니다.
그러니 사회적인 문제도 많습니다. 기러기 아빠, 기러기 엄마..... 가정이 깨어지고 유학간 아이들은 탈선을 한다고 합니다. 유학갔다 와서 탈선하지 않고 교회에 나오는 사람은 기특한 사람입니다. 얼마나 귀합니까?
그런데 유학의 가치를 논하기 전에 왜 유학을 가려고 합니까?
한국에도 공부할 곳이 많은데, 왜 구지 유학을 가려고 합니까? 그 이유는 오직 한 가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해 보려는 것입니다. 우물 안의 개구리 삶을 사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삶을 향해서 나아가보라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떠나라고 하는 것은 네가 지금 경험한 축복보다 더 큰 축복을, 새로운 은혜가 준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더 나은 삶을 향해서 떠나라는 것입니다. 사실 아브라함은 75세가 되도록 고향을 떠나본 일이 없습니다. 당연히 고향이 좋으니까 말입니다.
아브라함시대는 갈대아 우르, 바벨로니아 사회는 유명한 함무라비 왕이 다스리던 시대입니다. 함무라비왕은 중동 지역을 통일한 유명한 왕입니다. 그리고 함무라비 법전을 제정하고 바벨로니아 대제국을 건설했습니다. 갈대아 우르는 유명한 지대입니다. 우리나라 자이툰 부대가 가기 전에 이라크의 공병대가 갔었는데 그 공병대가 갔던 그 장소, 나시리아가 바로 갈대아 우르입니다.
갈대아 우르는 당대에 최대의 도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인간이 세운 최고의 도시에 아브라함이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활발한 경제 활동으로 사람들은 돈이 많은 부자들이었습니다. 든든한 성에 안전했습니다.
1848년에 영국, 미국의 고고학자들이 ‘우르’에 가서 발굴을 했는데 그 안에서 설형, 쐐기문자들이 있었는데 이것은 기원전 3,200년경부터 사용한 수메르문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이 장소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입니다. 당대로는 최고입니다. 이 도시에는 금으로 만든 신상이 있고 단신 ‘난냐’의 18층 높이의 신전과 탑이 우뚝서 있는... 그야말로 최고의 도시, 최고의 삶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그 당시의 사람들, 그 도시의 사람들의 삶과 같은 삶, 보통사람이 보면 2층집에 벽돌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얼마나 잘살았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의 위대한 힘이 드러나는 그런 삶입니다. 그런데 이런 아브라함보고 떠나라고 하십니다. 망하고, 망하고, 망하고 실패해고 떠나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최고의 삶을 살고 있는데 떠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떠나라고 했을까요?
창세기 11장을 보게 되면 사람들이 힘을 모아서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우리의 힘을 모아 이룩하자! 흩어지지 말고 힘을 합치자! 그래서 큰 민족을 만들자! 잘살아 보자!” 사람의 힘으로 복을 만들어 보자고 한 것이 이 바벨탑입니다. 그런데 12장에는 하나님께서 “내가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11장에는 “우리가 하자”라는 말이 세 번이나 나옵니다. 12장에는 “내가 하리라”는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똑같이 3번이 나옵니다.
「떠나라」는 말은 사람의 힘으로 사는 세상, 사람이 자랑하는 세상을 떠나서 하나님이 이루실 세상을 경험해서 「떠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현대 문화의 특징은 “즐거움의 추구(Entertainment)”라고 합니다. 뉴욕대학에 닐 토스트만 박사의 정의입니다. 즐거움의 추구, 노는 문화가 발전을 합니다. 그러니까 다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영화구경을 가도 과거에는 의미와 뜻이 무엇인지를 중요시 했는데 지금은 재미가 있어야 순위가 올라가고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습니다. 개그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에는 “딸랑딸랑”하면서 세상의 모든 사람이 아부를 한다는 것을 풍자적으로 했는데 요즘은 때리고 끌어 내리고 어떻게 해서라도 못생기게 만들고 해서 그냥 사람들을 웃기게만 하면 됩니다. 의미는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이 최고 인기가 있는 프로그램이 되는 것입니다.
목사님도 그냥 웃겨야 합니다. 나는 아무리 웃기는 얘기를 해도 얘기는 안 웃겨도 웃기려고 하는 모습이 웃겨서 웃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웃기는 얘기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재미난 얘기를 해드리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시내에 갔습니다. 주차를 하려고 하는데 주차장에는 차가 가득합니다. 그래서 한 바퀴 돌고 두 바퀴 돌고 세 바퀴를 돌았는데 주차할 데가 없는 것입니다. 약속시간은 다 되고 말입니다. 큰일이 났습니다. 그래서 불법주차를 하고 난후에 종이에 이렇게 글을 썼습니다.
“경찰관님 제가 주차자리를 얻으려고 이 지역을 한바퀴, 두 바퀴, 세 바퀴를 돌았지만 도저히 주차자리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약속시간이 되어서 불법인줄 알지만 여기다 주차를 합니다. 이 약속을 안 지키면 저는 직장을 잃게 됩니다. 그러니 제발 봐 주세요.” 그러고는 맨 마지막에 “내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말을 했습니다. 어디서 많이 들은 성경 말씀을 써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일을 다 보고 오니까 웬걸요, 주차금지 범칙금 딱지가 붙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 경찰관이 이렇게 써 놓은 글이 있었습니다.
“나는 이 거리를 20년 동안이나 뱅뱅 돌았습니다. 그런데 나는 불법주차한 차에다 범칙금 딱지를 붙이지 않으면 내 경찰관 직업을 잃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소서”라고 했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나를 위해서 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 간에 나를 만족시키고, 내가 좋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에 우리들이 더 많이 물들어 있다는 겁니다.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향해서 도전입니다. 내 힘으로, 사람의 힘으로 사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힘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복으로 사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세계적인 부호 록펠러를 자주 말씀드리는데 53세때 불치의 병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1년밖에 못산다는 겁니다. 그는 이미 세계적인 부호의 자리에 오른 자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교회에 신앙생활을 아주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주일 성수하죠, 십일조 생활 철저하게 하죠, 주의 종도 잘 섬기죠.... 이 록펠러 어머니의 유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분에게는 아주 인색한 사업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아주 부끄러운 불명예도 그에게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어서 복 받았다고는 하지만은 다른 한편으로는 가난한 노동자, 힘없는 노동자를 착취해서, 기업합병을 잘해서 부자가 된 사람이라고 비난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 불치의 병에 사형선고를 받습니다. 그는 생각을 합니다.
‘내가 앞으로 1년밖에 못사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어리석은 부자는 되지 말아야지... ’ 그래서 자기의 제산을 다 끄집어내서 가난한 사람을 돕습니다. 학교를 세웁니다. 교회를 자그마치 5천여개를 짓습니다. 주를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1년밖에 못산다는 그가 1년후에 죽은 것이 아니라 그는 그로부터 10년, 20년, 30년, 40년하고도 4년을 더 살아 97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똑같이 하나님을 믿어도 한편을 믿을 때는 하나님을 나를 위해서 믿었고 그의 53세 이후에는 나를 하나님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우리에게는 어려움을 주셔서 우리의 삶을 떠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나를 위해서 쓰지 말고, 나를 하나님께 바치기 위해서 떠나라는 것입니다. 신앙은 도전입니다. 모험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을 히브리인이라고 합니다.
히브리인의 뜻은 ‘건너온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강 건너편에서 온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강을 건너올 때 그 땅의 가치관, 그 땅의 생활양식이나 그 땅에서 가진 소망도 다 버리고 온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강 건너편에서 그야말로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살아 보려고 했던 사람이 바로 히브리인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을 성도라고 합니다. ‘거룩한 사람’ ‘거룩한 무리’라고 합니다. 거룩하다라고 하는 말은 히브리어로 ‘카도쉬’, 헬라어로 ‘하기오스’라고 합니다. 이 말은 다르다는 말입니다. 세상과 내가 분리가 됐습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세상으로 분리가 되서 새로운 하나님의 세상으로 가는 삶이 거룩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떠나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과연 히브리인이며 성도입니까? 이론뿐, 명목상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떠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행복의 축복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떠나라‘는 명령이 여러분에게 축복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2. “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땅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스타일을 살라”는 말입니다.
미국의 메사추세추주의 작은 마을 인구 3만 5천명의 뉴 샴프톤이라고 하는 곳에 유명한 오두막집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그 집 앞 간판에 이런 글이 써있습니다.
“이 집은 비록 자그마하지만 미국 역사를 새로 만들어 낸 위대한 집입니다.”
그러면서 그 아래에 그 집에서 나온 인물들을 1대 2대 3대 4대 5대에 거쳐서 죽 기록해 놓았습니다.
이 집은 200년 전에 남편 조나단과 그 아내 사라가 부부가 14명의 자녀를 낳고 키우며 살았던 곳입니다. 너무 가난 했기에 내 세울 것이 하나도 없는 그런 가족입니다. 그러나 이 부부에게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열심히 믿었고,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거기에 희망을 두고 살았습니다. 이들이 12명의 자녀를 낳아서 3대 4대 5대를 걸쳐 수많은 후손들에게까지 하나님을 믿고 신앙안에서 살게 했습니다. 이 가정이 남겨 주는 것이 돈이 아니라 신앙의 유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신앙의 유산이 주는 축복이 얼마나 놀라웠는지.................
-부통령이 1명
-대학총장이 13명
-주지사가 3명
-시장이 3명
-변호사가 149명
-판검사가 48명
-목사가 116명, (그런데 목사가 왜 이렇게 중간에 들어가서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사업가가 75명
-발명가가 25명
-교수가 66명
-차관급 공무원이 82명
-의사가 68명 이 배출됐습니다.
신앙의 유산이 주는 축복의 결과입니다. 그 신앙의 집을 보려고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매세추세추주의 뉴 샴프톤 오두막집을 찾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신앙을 주십시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 앞에 드려라” “하나님의 교회를 잘 섬기고 주의 종들에게 잘해라” 하나님을 힘써 알게 한 것이 이 집의 축복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저도 이글을 보면서 생각해 봅니다. 이 오창우 목사도 제가 살았던 집에 「1대 오창우 김영신 2대 오선영 오대영이었더라」하면서 이렇게 쭉 3개 4대 해서 하나님을 믿는 자손이 축복받았다는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그런 간판이 걸려지기를 기대하고 원합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멀리하고 사람의 힘으로 믿는 나라는 망하게 됩니다.
소련의 3대 기적이 있는데
“나무는 많은데 종이가 없다. 원유는 많은데 휘발유가 없다. 땅이 넓은데 식량이 없다. ”
모든 것이 다 있어도 하나님이 없으면 다 없는 것입니다. 러시아 공산 혁명을 일으키고 제일먼저 교회를 파괴하고 예수 믿는 사람을 죽게 했습니다. 말씀대로입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종들을 귀하게 여기면 하나님의 복이 오는 것입니다.
나폴레옹은 유럽대륙을 평정한 사람입니다. 그가 황제로 오를 때에 로마 교황청이 그에게 황제의 모자를 씌워주려고 하자 “내 놔라 내가 쓴다.”하고 뺏어 가지고는 자기가 썼습니다. 내 위에는 하나님도 없다고 했던 사람입니다.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말이 없다고 했던 사람입니다. 인기가 하늘을 찔렀던 사람입니다. 그러던 그가 육십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를 향해서 진군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전쟁에서 실패를 하고 몇 남지 않은 병사들을 데리고 초라하게 돌아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에 모든 것을 다 가져도 하나님이 없으면 다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셔야 우리가 복을 받는 줄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11장에 바벨탑은 무너졌습니다. 18장에 소돔과 고모라성은 유황불에 멸망을 당했습니다.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 속에는 하나님의 은혜, 은총이 들어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소망입니다.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메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나님의 명령 속에는 하나님의 은총의 약속이 들어 있습니다. 말라기 3장 10절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것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나를 따르라”라고 명령하시고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을 하시고 위대한 일꾼이 되게 하셨습니다. 모세에게는 ‘바로에게 가라“로 명령을 하셔서 ”내가 무엇이관대 어찌하오리까하니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출애굽의 위대한 지도자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갑니다. 건너가니까 강물이 열리고 가나안 땅을 축복으로 주시지 않습니까? 하나님 명령에는 하나님의 약속과 은총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가는 것이 바로 믿음이요, 신앙이라는 사실을 깨닫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교회가 잘 되면 나라가 잘되는 법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계획을 믿고 거기에 맞춰서 사는 것입니다. 나를 하나님의 계획에 맞춰서 사는 것입니다. 신명기 1장10절의 말씀처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번성하게 하셨으므로 너희가 오늘날 하늘의 별과 같이 많거니와 ”
여러분 지구상의 나라들을 보세요. 하나님을 믿는 나라는 다 잘삽니다. 바이킹 해적의 섬이 영국에 복음이 들어가니 신사의 나라가 되고 전 세계를 지배하지 않습니까?
게르만 독일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해지니까, 교회가 부흥하니까 야만이 소리를 듣는 독일 역시 세계적으로 강한 나라가 되고 반대로 히틀러가 교회를 핍박하니까 그 강한 독일도 2차대전의 패전국이 되는 겁니다.
미국역시 청교도 신앙으로 복음화되니 세계적인 강국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조선 왕조가 무너지고 일제의 침약으로 식민지 백성이 됐지만 죽음을 각오하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북한 공산당이 쳐들어 와 6․25 전쟁으로 온 나라가 전쟁터가 됐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순교를 각오하고 믿음을 지켰을 때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고 기도했기 때문에 오늘과 같은 복된 나라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교회가 살면 나라가 살고 신앙이 살면 내가 살고 가정이 산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사학법 개정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것은 악법입니다. 우리 장로회 신학대학에, 목사님을 키우는 신학대학에 전교조가 들어오고 전노조가 들어오면 학교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이것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건은 현상입니다. 본질은 그 안에 하나님의 어떤 계획이 들어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좀 바르게 믿어야 합니다. ‘남이 투명하네. 투명하지 않네.’를 말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투명하게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하나님을 믿지 말고 하나님을 위해 우리가 사는 그런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예수믿는 사람이 바로 서면 법을 넘어 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우리를 이런 법으로, 저런 법으로 억눌러 와도 우리는 승리합니다. 일제식민지 속에서도 살았습니다. 공산 치하 속에서도 승리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우리는 승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지난번 중직자 수련회를 통해서 교회가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느냐? 건강한 교회가 성장한다? 병든 교회가 되면 안된다? 병든 교회는 특징은 무엇이냐?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인구 감소증 - 지역의 인구가 주는 것이다. 고령화증 - 교인의 50세 이상의 비율이 많다. 상호 오해증, 친교 과잉증. 열정 감퇴증, 등 이런 현상을 보면 얼마나 교회가 병들어 있습니까? 시설 협소증에서 교인이 교회 시설의 80% 이상을 차지하면 그 교회를 다시 지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현상학적으로나 외형적으로 보면 우리교회가 병든 교회가 맞습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교회가 병만 든 교회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교회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여러분은 아십니까? 우리교회가 지역의 중심이 되어 달라고 기도를 했더니 하나님이 우리교회를 중심으로 만드시잖아요? 뉴타운 지역과 뉴타운 지역이 아닌 지역 중심에 위치해 주시고, 우리교회 옆에 공영 주차장을 만들어 주셔서 주일에 교회 오는 모든 성도들이 마음 놓고 주차를 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마련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많은 교회들이 문화 센터를 져서 복음 전해야 한다들 합니다. 많이들 사회복지관을 짓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는 바로 옆에 1분도 안되는 거리의 길옆에 동사무소를 이전하여 문화센터를 마련해 주시고 뜻이 같으면 복음을 전하는 장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통장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장소는 비탈이 너무 심해서 짓다가 무너지고 위험수위가 높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안된다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제가 여기다 지어야 한다고 해서 지은 것이라고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그런데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지역에 우리교회를 중심으로 만드시려고 하나님께서 해주신 것이다. 안된다고 모든 사람들이 그래도 끌어다가 여기다 놓으신 것이다.’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우리교회가 얼마나 영향력이 있습니까? 지난해에는 쌀100포대가 교회에 왔습니다. 올해는 엊그제 40포대가 왔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용산구에 상희원이라고 있는데 구에서 나눠 주는 것보다 교회에서 목사님 나누어 주면 어떻겠냐고 해서 주신 것입니다. 내 것을 남의 이름으로 나눠주라고 어떻게 말을 합니까?
우리교회를 인정하고 얼마나 귀하고 사랑하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우리교회가 저 벧엘 교육관 486평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평당 천만원씩만 해도 50억입니다. 조금 더 있으면 60억, 70억의 재산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가난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부끄러울 정도의 교회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데요.
문제는 우리가 과연 이것을 제대로 보고 있느냐는 겁니다. 너무나 우리 자신을 부끄럽게만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왜 그렇게 낙심하고 좌절을 하냐는 말입니다. 여러분 이 은혜를 어떻게 다 갚고 증거하려고 하십니까? 어떻게 이 사실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겠습니까? 그런데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본질적인 은혜가 강물처럼 흐르고 있는데 이것은 보지 아니하고 형상학적으로 외형적으로 이것 보면서 우리들이 우리 자신을 부끄럽게 여긴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부끄럽게 여기시겠습니까?
혹시라도 우리가 밖에 나가서 이 은혜를 자랑해야지 오히려 이것을 부끄럽게 생각을 하고 교회와 교회 종들을 비난한다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축복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교회를 축복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하나님의 교회를 비난하면 나 역시 비난 받는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외형을 보는 것이 아니고 형상을 보는 것이 아니고 우리 내심과 본질을 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 가운데 살아 가냐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창세기 22장에서 100에세 얻은 아들을 제물로 바칩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탐내서 그러시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에게 자식보다 하나님을 더 믿느냐?하는 것을 시험해 보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시험에 합격을 합니다. “이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는 줄을 아노라 ...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주셨습니다. 창대한 이름도 주셨습니다.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떠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땅으로, 하나님의 스타일로 바뀌어 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우리를 축복하시고 은혜주실 줄을 믿습니다.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시험들이 있습니다. 이 마귀의 시험에 넘어가서 불평, 불만의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항상 감사하며 기뻐하는 그런 삶을 살면서 여러분의 가정이 천국이 되고 우리교회가 천국이 되고, 내 마음이 천국이 되고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로 든든히 서 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일 일은 난 몰라요*
1.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불행이나 요행함도 내 뜻대로 못해요
험한 이길 가고 가도 끝은 없고 곤해요 우리 주님 팔내미사 내 손 잡아주소서
(후렴)내일 일은 난 몰라요 장래 일도 몰라요 어머니여 날 붙드사 평탄한 길 주옵소서
2. 좁은 이 길 진리의 길 주님 오신 그 옛 길 힘이 들고 어려워도 맡기면서 옵니다
주님이여 그 음성을 항상 들려주소서 내 마음은 정했어요, 변치말게 하소서
(후렴)내일 일은 난 몰라요 장래 일도 몰라요 어머니여 날 붙드사 주신 소명 이루소서
3. 만왕의 왕 구주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만백성을 구속하니 창조주가 되시네
이긴 자의 본을 받아 나를 항상 버리고 이긴 자의 신앙 따라 이 복음을 전하세
(후렴)이슬 같은 성령이여 내 맘에 항상 계서 승리하는 그 날까지 주여 지켜 주옵소서
(오창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