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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선물- 희년(禧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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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선물- 희년(禧年)
레위기25:8-13
울산교회 / 최학정 목사




새해가 밝았습니다. 좋은 꿈들은 꾸셨는지요? 연말연시부터 서남아시아에 해일이 일어나 10만이 넘는 사람들이 죽고 수백만 백성들이 고통과 슬픔을 당하고 있는 소식이 우리를 맞았습니다.

사람들은 매년 새로운 해를 맞으며 평안의 좋은 소식을 기대하나 이 세상은 늘 험악한 소식을 들려줄 뿐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기쁨의 소식을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소망이 있음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2005년은 울산교회 설립49주년째 입니다. 내년은 설립50주년이라 어떤 기념비적인 축제의 해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기도해왔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기쁨의 소식이면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독특한 날의 개념을 주셨습니다.

매 7일은 안식일이요, 매 7년은 안식년이며, 7년을 일곱 번 한 50년째가 희년입니다.

6일은 일하고 7일째 쉬는 것이 안식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신약의 안식일,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안식년은 6년은 농사를 짓고 7년째는 씨를 뿌리지 말고 땅을 쉬게 하는 겁니다. 자연적으로 맺는 소산은 종들과 품군과 객들과 육축과 들짐승들이 먹게 했습니다.

이날들의 공통점은 안식하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가장 흥분되고 감격적인 것이 희년입니다. 희년은 ‘복된 해’ ‘기쁨의 해’ 란 의미입니다. 일곱 번째 맞는 안식년을 하나님은 희년(禧年)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희년에는 어떤 특별한 복이 있길래 복된 해요 기쁨의 해라고 했을까요?




1. 땅의 안식과 회복

이스라엘의 절기와 날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한 이후 가나안에 들어가서 지키도록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가나안은 이러한 절기와 날의 규례를 통해 주변의 땅들과 구별되었습니다.

세상 어디에도 안식의 날과 안식의 해에 대한 이야기나, 풍요롭고 부요한 안식의 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땅은 달랐습니다. 그곳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이 안식을 즐기기를 원하셨기에 하나님이 내리시는 풍성함과 부요로움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습니다.




레위기 25장 11절-12절에서 하나님은 명령하십니다.

“그 오십년은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다스리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너희가 밭의 소산을 먹으리라.”

안식이란 수고와 슬픔이 끝나는 때입니다. “이마의 땀”이 배고픔과 육체의 갈증을 위해 더 이상 필요치 않은 때를 말합니다.

사실 이스라엘이 약속 중에 받은 땅 가나안은 은혜의 땅이었습니다. 애굽에서 배운 농사 기술이 필요한 땅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비로 부해지고 하나님의 의의 빛으로 비옥해지는 땅이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땅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가 되는 땅이었습니다. 믿음으로 보고 순종할 때 바라는 그대로 이루어지는 믿음의 땅이란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창고와 포도주틀이 풍요로운 땅이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 입니다. 어떻게 돈 되는 안식일에 씨를 뿌리지 말란 말이야? 한 해 동안 씨를 뿌리지 않으면 우리가 어떻게 살 수 있어? 라고 물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너의 씨 뿌림 보다 내가 내려주는 복이 훨씬 좋은 것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은 안식일과 안식년에 그들을 굶어 죽도록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더 풍성한 하나님의 복의 결실들을 마음껏 먹게 되었습니다. 쉼을 통해 땅이 기력을 회복하고 땅이 없는 사람들과 짐승들도 땅의 소산을 마음껏 먹게 되는 것이 희년의 복입니다.




2.종들이 돌아옴.

두 번째의 축복은 종되었던 사람들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종으로 430년을 종노릇 했습니다. 애굽의 억압과 압제속에 그들은 얼마나 많은 고통을 느끼며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정착 후 50년이 될 때마다 그 해 7월10일 대 속죄일에 전국에서 나팔을 크게 불라고 하셨습니다.

희년(히, 요벨)이란 말도 “수양의 뿔로 만든 나팔”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희년 나팔이 가나안 땅의 언덕과 골짜기를 울려 퍼지는 순간은 백성들의 모든 죄를 대속할 희생 제물의 피가 흘려졌을 때입니다.




희년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깊은 영적 각성과 회복의 순간에 온 땅과 모든 사람에게 흘러가는 거룩하고 감격적인 기쁨의 강물이었습니다. 기쁨의 소리가 찾아가지 않는 언덕은 단 한군데도 없었으며, 기쁨의 강물이 흘러가지 않는 골짜기도 단 한군데도 없었습니다.




도대체 이 기쁨의 나팔이 울려 퍼지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레위기 25장 10절 말씀입니다. “제 오십 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각 그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우리는 IMF 이후 국가나 개인이 경제적으로 힘든 세월을 지나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빚지고 도산을 했습니다.

과거 경제적으로 넉넉한 시절에는 넘치는 풍요속에 물질의 노예가 되었다면, 그 이후에는 많은 사람들이 가난해져서 돈으로부터 자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전에는 지역간의 차별이나 갈등이 심각한 사회문제였지만, 오늘날 훨씬 심각한 문제는 빈부의 격차입니다. 권력의 세습이나 교회의 세습에 대해 말들을 많이 하지만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빈부의 세습입니다. 부자는 계속 부하여지고 가난한자는 계속 가난을 자손들에게 물려주고 더욱 가난해져 갑니다. 이것이 훨씬 큰 사회 문제입니다.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도 세월이 갈수록 이러한 문제가 발생할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고 희년이란 제도를 주셨습니다.

희년은 자유와 사면과 회복을 공포하는 해입니다. 그리하여 이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는 그날 축출 당한 자가 돌아오고, 포로가 석방되고 빚진 자가 자유를 얻게 됩니다.

예수님도 첫 설교에서 이사야 61장 2-3절의 말씀을 인용하며 희년을 선포하셨습니다.

“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사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사61:2-3)




이것은 희년의 규례가 단순한 과거의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이며 하나님 나라를 향한 전진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 땅위에 실천되어야 할 기독교 정신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번 해일로 10만 아니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고, 슬픔과 고통을 당했습니다. 이 소식에 가슴 아파하고 그들의 눈물이 우리의 눈물이 되었습니다. 그 슬픔 중에 하나님께서 이도성에 100만의 내 백성이 죽어가고 있다고 하시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이도성에 우리의 가족과 친지와 이웃이 백만이요, 이 땅에 3천만의 영적 죽음과 그들의 고통과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매일매일 죽어가는 영혼과 매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소리없이 죽어 가고 있습니까? 아직도 하나님이 기다리는 자녀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희년이 선포되면 집들은 문을 엽니다. 닫혔던 문들을 열고 잔치준비를 합니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가족을 다시 맞이하기 위해서 입니다. 돈이 없어 노예로 팔려갔던 가족을 환영하기 위해서 문을 활짝 열어놓는 것입니다.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나팔소리는 포로 된 자가 떠나도 되며, 쇠사슬에 묶인 노예가 속박의 쇠사슬을 끊어도 된다는 뜻이며, 살인자나 가산을 탕진한자가 집으로 옛 기업으로 돌아와도 된다는 환영의 나팔 소리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며 은총이었습니다.




3. 기업을 돌려 줌

세 번째로 희년은 자신의 기업을 찾을 수 있는 기회의 때였습니다. 모든 잃어버린 땅과 기업이 전 주인에게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희년은 땅을 사는 자와 파는 자에게 땅은 여호와의 것이란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레위기 25장 23절에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이 땅은 세상의 땅과는 다른 땅입니다. 팔긴 팔아도 영원히 팔수 없습니다.

땅의 원 소유주는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자신이 세우신 언약대로 주시기로 했던 그 사람들이 영원히 소유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눈은 항상 하나님의 땅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곳에 하나님은 자신의 보좌와 성전을 세우셨고, 이스라엘은 그 땅에 거했습니다. 제사장과 많은 예언자들과 선지자들이 그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복되신 주님도 그 땅에서 나셔서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치셨으며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또한 부활하시고 승천하사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성령께서 그 땅에 임하셨고 복음의 물결은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온 땅에 흘러 넘쳤습니다. 이제 다시 주님이 재림하셔서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임하게 될 것입니다.

안식일과 안식년과 희년이 있는 곳은 하나님의 구별된 땅입니다.

하나님은 그곳을 “내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희년이 하나님의 땅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땅은 그 누구도 앗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의 기업이 영원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 기업을 “하나님의 것”이라고 선언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땅을, 하나님의 기업을 빼앗아 갈 자가 이 세상 어디 있습니까? 아무도 앗아 갈 수 없습니다. 희년이 되면 모든 잃어버린 땅, 자신의 기업이 돌아옵니다. 우리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기에 우리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잘 잃어버리고 약하고 가난한 우리에게 하나님은 참 소망이 되십니다.




이런 희년을 맞는 우리 교회는 무엇을 준비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두 가지로 정리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돌아가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개인적으로 준비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세속에 묶여 살 때 하나님께서 자유를 선포하십니다. 희년은 죄로부터 권세로부터 물질로부터 해방시켜주시는 날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사람답게 살라고 하십니다. 억울한자도 가난한자도 묶인 모든 것으로 부터 자유 하라고 하십니다.




희년은 대사면의 날입니다. 50년간 남의 손에 넘어 갔던 토지와 종이 되었던 사람들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회복의 날입니다.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찾아야 되는 해입니다. 상한 마음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처음 주셨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용서와 화해의 자리로 돌아 가야합니다. 대 속죄일의 나팔소리와 더불어 시작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돌아가는 것” 이것이 우리가 이루어야할 희년의 가장 큰 주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땅이 자기의 자리로 돌아가고 기력을 회복하듯 여러분들도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십시오. 축복의 자리, 사랑의 자리, 은혜의 자리, 믿음의 자리가 여러분의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 서야 합니다.




대 속죄일의 희생과 동시에 시작되는 영적인 사건임을 기억하며 깊은 영적 통찰과 각성을 통해 희년의 기쁨과 복을 맞아야 합니다. 그럴 때 진정한 희년의 복이 우리에게 임할 것입니다.




둘째, 재림의 소망을 갖자.

이것은 우리가 세상과 서로서로의 관계 속에서 해야 할 일 입니다.

희년은 우리가 사는 이 삶의 현장에서 모든 것의 가치를 결정해 줍니다. 무슨 말일까요?

이스라엘에서 땅과 사람의 값은 희년의 남은 연수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었습니다.




희년이 되면 돌려주어야 하기 때문에, 희년이 가까우면 가격이 내리고 희년이 멀었으면 값이 올라갑니다. 희년이 50년 남은 땅과 10년 남은 땅의 가격이 달랐습니다. 당연한 일이겠죠? 희년이 되면 다 돌려주고 원상회복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맺은 모든 조건과 계약은 희년의 나팔이 울려 퍼지는 순간 끝이 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교훈을 주는지 모릅니다. 희년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사건과 같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예수님의 재림에 얼마나 비중을 두고 있느냐에 따라이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한 가치가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에게 진정 예수님의 재림이 우리의 소망이며 그날이 가까웠다면 땅의 모든 것들에 비중을 두지 않아야 합니다. 그 가치가 떨어지겠죠?

빌립보서 4장5절은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고 하십니다. 하늘로부터 예수께서 재림하실 것을 기다리면서 세상과 붙어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재림이 여러분의 마음에 얼마나 멀리 남았느냐에 따라 세상은 가치가 올라가기도하고 내려가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오시면 파멸될 세상과 밀착해 있으면 안 됩니다. 반드시 분리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이 가치 없고 허무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런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우리가 세상에 가치를 두지 않고 살아야 하는 이유는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주게서 가까우시기 때문입니다.

희년이 오면 이 땅의 모든 계약은 무효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이 땅에서 희년을 실제적으로 실천하며 살 수는 없지만 50년이 지나면 모든 것이 회복되고 제자리로 돌아갔던 것처럼, 한세대가 가면 우리는 부의 세습을 포기하고 원래의 자리로 돌려주는 일을 해야 합니다.

진정 하나님의 나라와 주권을 인정하신다면 여러분은 이 세상을 떠날 때 이 땅의 모든 물질에 대한 계약을 파기하십시오. 본래 왔던 모습, 적신으로 왔으니 적신으로 돌아가십시오.




희년과 희년 사이엔 사고 팔고 늘리고 모을 수 있어도 희년엔 모든 사람에게 기회가 돌아가야 합니다. 소망과 희망의 해가 되어야 합니다. 다시 원점에서 시작하는 것 이것이 행복입니다. 본전이 행복입니다. 본전이 행복인 사람들에게 희망과 행복을 돌려주십시오.




기독교인들이 희년운동을 자신의 삶에서 실천한다면 이 땅에 진정한 희년의 기쁨이 영적으로 물질적으로 흘러넘칠 것입니다.




우리는 2005년을 울산교회 설립50주년을 준비하는 한해로, 밝은 미래를 준비하는 해로 정하고 출발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공동체위에 희년의 모든 기쁨과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큰 기대와 소망을 갖고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소풍을 가는 아이보다 더 기대해야 합니다. 주일이 좋으면 토요일이 더좋고 토요일이 좋으니까 금요일이 그렇게 좋을수 없었습니다. 흥분되고 감격적인 희년을 준비하고 맞아야 합니다.

희년은 일회성 행사가 아닌 영적 각성이요 영적 자유요 영적 기쁨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삶의 원리입니다.

이런 삶이 이 땅에 흘러넘칠 때 실제적인 삶의 풍요로운 복이 우리의 손과 땀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으로 모든 성도들의 삶에 충만하게 부어 질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인 희년의 모든 축복이 여러분들의 것이 되도록 충분한 그릇을 준비하는 한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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