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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자의 자세 (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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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자의 자세 (전 2:1-5)

우리 교회는 다음주일을 이웃초청축제주일로 지킵니다.
한 사람이 전도대상자인 태신자를 정하여 기도하다가 그날에 교회로 초청하여 지키는 것입니다. 해마다 우리는 봄 가을로 영혼을 추수하는 귀한 행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어린이들은 오늘 주일을 친구초청주일로 지키고 중고등부이상 청장년부는 다음 주를 구별하여 지키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 가장 필요하고 우선적인 과제 중에 하나가 바로 전도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전도되어진 영혼들을 잘 양육하고 훈련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이것은 단지 우리 교회만 해당되는 경우가 아니라고 봅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교회들이 가장 회복해야 할 과제 중에 하나가 바로 전도입니다.
무엇보다도 올해 우리 교회는 올해를 번식하는 교회라고 했습니다. 감사한 것은 올해 새주차장과 새교육관을 새롭게 장만하여서 외적으로 번식하게 될 것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초대 예루살렘교회처럼 사람이 더욱 번식하여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이 더해지고 제자의 수가 더해지는 은혜와 복을 경험하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전도와 번식에 가장 걸림돌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미국의 크리스챤 센츄리 매거진을 10년동안 모아서 한가지 통계를 조사했습니다. 목회자의 시간 사용에 따라서 보통 4가지 스타일이 드러났습니다. 첫 번째 스타일은 설교목회입니다. 이런 류의 목회자는 독서하고 성경연구하고 설교준비하는데 시간을 많이 보냅니다. 그리고 교회는 항상 말씀만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이런 교회의 성도 수는 약간 감소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평균나이가 높아가고 성도들은 수평이동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다음은 심방목회입니다. 목회자가 상담 입원환자 병원등을 중심적으로 심방하는 스타일입니다. 이런류의 교회도 성도수가 감소하더라는 것입니다. 이런류의 교회도 성도들의 나이가 점점 높아져 가더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행정목회입니다. 목회자가 행정 교회의 위원회들 많은 시간을 행정을 집행하는 데 시간을 보내는 목회의 경우입니다. 성도 수는 매우 감소하고 성도들의 나이는 매우 많아졌습니다.
넷째는 전도목회입니다. 목회자가 전도를 강조하고 교회가 전도하기 위해서 시간과 물질과 헌신을 많이 하는 교회입니다. 이렇게 전도하는 교회는 성도의 수가 늘어가고 성도들의 평균 연령이 젊어지더라는 것입니다.
번식하는 교회를 보면 전도에 관심을 갖고 전도에 시간과 물질과 정성을 투자합니다. 그냥 시간이 흐른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미국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목회가 전도지향적인가 교회가 전도지향적인가에 따라서 교회번식은 결정이 됩니다.
목회자로서 전도를 강조하고 교회가 전도를 하다보면 기종 성도들 중에는 불만이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꾸 새신자가 들어오면서 자신들에게 교회가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들어온 신자들만 잘 관리하고 먹이면 되는 것이지 왜 자꾸 전도하라고 하는가? 하면서 알게 모르게 거부감을 갖습니다.
왜냐하면 전도라는 것이 가장 치열한 영적전투입니다. 만약에 교회가 외적으로 에너지를 집중하지 않고 내적으로 집중하기 시작하면 교회는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문의 고린도교회는 전도가 없엇던 교회입니다.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전도한 교회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바울에게 들려온 소문은 교회가 파당을 지어 싸우고 심각한 여러 가지 죄의 문제로 교회가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당이 나뉘어졌습니다. 바울파 아볼로파 베드로파 그리스도파가 있었습니다.
교회의 에너지가 밖으로 집중되지 못하고 안으로 집중되면서 결국 서로 사람에게 집중되어지면서 서로 누가 옳고 그른가 누가 높고 낮은자 싸움하게 됩니다. 바울은 이런 교회를 향하신 주님의 뜻인 복음의 증인으로서 우리에게 자기의 삶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전도의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증인의 공동체입니다. 전도는 어떤 특별한 사람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전도자로 부름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증인이요 복음의 증인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힘있는 주님의 증인들의 수가 더해가는 교회야 말로 지금 이시대에 이 지역에 우리주님께서 가장 기대하시는 모습일 것입니다. 전도는 주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면서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한 최대의 명령입니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할 귀한 주님의 명령이요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실천해야 할 절대명령입니다. 교회의 우선 사명 그리스도인의 우선사명은 바로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구원하는 일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과연 바울은 어떻게 하나님의 증거를 전하였습니까? 오늘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증거를 전하여야 합니까?

1. 하나님의 증인은 사람을 의뢰하지 않습니다.

1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노니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때에 자기의 모습을 소개합니다. 여기 복음을 증거할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노니”라고 합니다.바울은 자기를 의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바울은 많은 철학적인 지식과 세상적인 지혜의 소유자입니다. 당대에 학문적으로는 굉장히 수준에 올라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복음을 전할때에 바울은 그것을 의뢰하지 않았습니다.바울은 증거할 때 사람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왜 바울이 이 말씀을 하는 것입니까?
본래 2장 1절의 말씀은 1장 31절의 말씀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원어의 문맥에서 보면 “따라서 내가”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전도하여 개척하였습니다.바울이 그렇게 복음을 증거하고 개척한 이유는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를 추종하는 사람들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의 지식과 지혜로 전도하지 않았고 목회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복음을 전한 것은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소명과 맡은 사명자로서 순종하여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만약에 바울이 유창한 말솜씨와 세상적인 철학의 지헤로 전도하였다면 아마도 바울 자신이 높임을 받고 인기를 얻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의 지혜로 전도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전 3:5-6에서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그러면서 고전3:7에서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라고 합니다.
여기 바울은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도 바울은 3절에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고 합니다. 이렇게 한 것은 오직 주님만이 자랑되어지기 위함입니다.철저하게 복음의 종으로서 사람들에게 자기가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를 소개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닫는 것은 내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드러나도록 전도해야 한다느 것입니다. 2가지로 나에 대한 문제가 드러납니다. 나를 너무 높이는 경우입니다.나의 학벌 나의 가정 나의 자녀 나의 지식이 드러나서는 안됩니다. 또 반대로 나를 너무 낮추는 것도 문제입니다.“나같은 사람이 전도한다고 될까?”“나는 배우지 못했고 나는 변변하게 말을 하지도 못한 사람이야”“나는 말을 잘 하지 못해”라고 자신을 바라보면서 함정에 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복음을 이땅에 증거하기 위해서 좀 세련되고 말잘하고 많이 배운 지식인들을 우선적으로 구원하면 전도가 더 빨리 효율적으로 될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복음을 어떤 사람들에게 적용하십니까?

고전1장26절에 보십시오.“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좋은자가 많지 아니하도다”라고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육체를 따라 세상적으로 지혜없는 자,문벌이 좋지 못한 사람을 먼저 구원하셨습니까? 바로 고전1장27절에 이유를 소개합니다.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고전1장29절에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누가 전도할 수 있습니까?
고린도교회의 경우 전도가 없었던 교회였습니다. 모든 교인들이 자신을 높였습니다. 자신을 그리스도 안에서 왕으로 인식했습니다.그러나 바울은 복음 안에서 구원받은 자신을 복음을 위해서는 철저하게 고전4:13에 보면 만물의 찌끼같이 여겼습니다.
누가 전도를 잘하는 줄 아십니까? 자기를 만물의 찌끼같이 여기는 사람입니다. 자기에 대해서 죽은 사람이 전도할 수 있습니다. 자손심이 센 사람은 전도하기 어렵습니다. 나에 대해서 죽은 사람이 전도할 수 있습니다.
저희 교회는 전도를 3가지 방법으로 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전도소그룹이 있습니다. 3명이 한팀을 이루어서 12주의 전략을 갖고 매주 전도를 하는 방법입니다. 3명이 정한 전도대상자를 함께 서로 기도하고 관계를 맺으면서 접촉을 합니다. 선물도 하고 그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면서 관계를 하면서 먼저 전도 소그룹 모임에 초청을 하여 복음을 듣게 하고 관계를 맺게 합니다. 그러다가 모든 전도소그룹팀 12주가 될 때에 교회에 초청을 합니다. 이렇게 전도되어 교회에 등록한 사람은 교회를 떠나지 않고 잘 정착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다음은 태신자초청축제를 통한 전도행사입니다.전교인이 봄가을에 1사람이 1명이상 전도대상자를 정하여 기도하다가 일정한 주일에 초청하는 태신자초청의 날을 총해서 전도하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전도학교를 통한 축호전도입니다. 매주 목요일마다 전도대원들이 모여서 전도지와 전도선물을 갖고 가정마다 전도를 나갑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명심하고 기억할 것은 사람을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나를 자랑하거나 사람을 자랑하여서는 우리가 전도할 수없습니다.그러나 어떤 전도방법이든지 자기를 의뢰하는 자존심을 내세우면 전도할 수 없습니다. 언제나 낮아져서 높이고 겸손할 때 우리가 전도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자랑하거나 의뢰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전도소그룹의 전도이든 태신자초청행사이든 축호전도이든 전도의 최대의 적은 바로 나입니다. 전도는 영적인 전쟁입니다. 사람이 나타나서는 전도가 어렵습니다. 인간의 지혜로는 할 수 없습니다. 철저하게 나는 약한 자요 부족한 자임을 알고 겸손하게 주님을 높이고 자랑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자랑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있는 돈, 명예, 직책이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도구로 드리시기 바랍니다. 십자가를 높이는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고 우리에게 지혜와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시는 예수님을 자랑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오직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전도합니다.

4절 “내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라고 합니다.
전도자 바울의 전도방법은 성령의 방법이었습니다.
바울이 전도할때에 성령이 나타났습니다.바울이 성령의 전도할때에 성령님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오직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전도할 수 있는줄 믿습니다.

여러분 성령님이 나타나시고 성령님이 능력으로 함께 하시는 역사를 경험하고 있습니까?
오늘 교회 속에 전도가 회복되기 위해서 먼저 필요한 것은 성령님의 회복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여러분들은 성령받으셨음을 믿으십니까? 오늘 교회 속에 성령님이 나타나지 않고 능력이 사라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우리가 육신에 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중에 두종류의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고린도교회에 보면 육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성령의 능력과 지혜로 살지 않고 구원은 받았지만 자신의 육신을 따라서 사는 어린아이의 신앙입니다.이분들은 전도에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내가 구원받은 것에 만족하면서 성령의 능력을 따라 살지 않고 그냥 자기가 왕같이 높아지는 삶을 추구하면서 자기 안위만을 좇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믿고 인도함을 받는 그리스도인들은 신령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분들은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면서 그 능력으로 전도하고 그 뜻대로 사시는 분들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따라 사시는 분들을 보면 우선 자기 안에 성령님이 있음을 확신하고 의식하면서 살아갑니다. 고전3:16에 “바울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합니다.바울같이 신령한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안에 성령을 의식하고 그 능력의 인도를 받으면서 살아갑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가장 외적으로 나타나시는 모습은 전도를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어떻게 전도를 할 수 있도록 나타나십니까? 우선 성령님은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보여주시는 능력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십니다. 바울은 고전2:10절에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라고 합니다.여러분 성령님께서 전도자를 통해서 가장 드러내어 알게 하는 비밀은 바로 십자가의 비밀이요 하나님의 지혜인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의 지혜를 깨달을 수 있도록 또 증거할 수 있도록 우리들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이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여주십니다. 우리를 증거할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지혜의 영이신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지혜를 보여주시고 증거하도록 도우십니다.복음의 현장에서 우리에게 많은 지혜가 요구됩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땅에서 전도하실 때 보면 얼마나 지혜로우십니까?

사복음서에서 우리 주님이 전도할 때 보면 상황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형편에 맞는 지혜로운 질문과 접근을 통하여 전도하셨습니다. 가령 남편을 6명이나 교체한 여인에게 전도하실 때 보십시오. 주님은 그 여인이 우물물을 길러온 시간에 물을 중심으로 하여 그 여자에게 접근합니다. 사마리아여인에 ‘물을 좀달라’고 질문합니다. 그러나 여인은 자기에게 관심을 갖고 접근하는 예수님에 대해서 호감을 갖지요.그때 주님은 의아하게 여기는 그녀에게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여인이 나에게 그 물을 달라고 합니다. 그때 주님께서 죄가 있으면 그 물을 마실 수 없음을 지적하기 위해서 그 여인의 숨겨진 죄의 문제를 지적합니다.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합니다. 그때 여자는 예수님이 선지자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영적으로 곤고한 이 여인에게 신령한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이 찾으시는 인생을 말하자 예수님을 메시아요 그리스도로 고백합니다. 그렇게 주님으로 인하여 구원받은 이 여인은 새로운 인생을 출발합니다.

여러분 바울의 경우에도 지혜의 전도를 했습니다. 고전9장에 대표적인 예입니다. 바울의 전도법을 보면 상황에 맞는 지혜의 전도법입니다. 고전9장에 보면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고 합니다. 마치 변신의 귀재인 카멜레온처럼 바울은 상황에 맞는 지혜로운 모습으로 유대인도 이방인도 모든 사람들을 전도하였습니다.

성령님은 전도할 때 우리에게 지혜를 주십니다.성령님께서 담대한 마음을 주셔서 전도할 수 있게 하십니다.그래서 우리가 먼저 해야 할 것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성령님께서 지혜로 역사하십니다. 전도하기 전에도 기도해야 하고 전도하면서도 기도해야 하고 전도하고나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성령안에서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주시는 것은 지혜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의 사람은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잇지 않고 능력에 있습니다. 그 능력은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를 잘하는 사람은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은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은 사람은 한 영혼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대하고 접촉하면서 관계합니다.그 마음은 마치 아비가 자식을 대하는 것같고 목자가 양을 대하는 것같이 철저하게 희생하고 주는 사랑의 마음입니다.두려움없는 마음입니다.진실한 마음입니다.오늘 성령의 능력에 사로잡힘바 되어진 지혜의 사람으로 바울같은 전도자로서 우리 모두가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3. 믿음의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증거해야 합니다.

5절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하였노라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사람들이 믿음의 결과는 자신들의 노력과 지혜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있다는 것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전도하면 주의 복음을 증거하면 그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입니다.
농부가 이른 봄에 씨를 뿌리고 나서는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기다리는 것입니다. 위에서 비를 주시고 바람과 햇빛을 주어서 열매맺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전도하고 나서 결과는 하나님께 밭기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사람이 열매를 거두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씨를 뿌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물을 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도움이 있어야 합니다.그래서 바울은 고전3:7에서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랴”고 합니다. 전도자는 오직 하나님이 주신 사명대로 일하는 일꾼일 뿐입니다. 그 열매,그 결과는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열매맺게 하십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는 때를 따라 심고 물을 주는 것이 우리의 일입니다. 때를 따라 심고 물을 줄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게 될줄 믿습니다.
우리들 중에는 누군가 인도하고 전도하여서 복음을 믿고 구원받고 교회 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이 아내일 수도 있고 남편일수도 있습니다.또 어떤 장로님일수도 있고 집사님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도 하나님이시오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전도자나 증거자 목회자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로 그 사명을 감당한 하나님의 일꾼일 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교회 생활을 할때 목회자에 대해서 오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한국교회에서 목회자에 대한 2가지 오해가 있습니다.
한국교회에 목사에 대한 큰 오해 2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목사는 신의 대리자라고 생각합니다.
로마 카톨릭적인 견해입니다.카톨릭에서는 신부를 제사장으로 이해합니다.구약에서는 특별한 제사장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특권이 있었습니다.그래서 모든 백성들은 모든 문제와 어려움을 제사장에게 위임하엿습니다.제사장은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가서 중보의 사역을 감당해야 했습니다.이렇듯 성직자를 신의 대리자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그러나 신약성경은 이제 모든 성도들이 왕같은 제사장으로 당당히 하나님께 직접 나갈 수 잇는 영광을 우리에게 선포하고 있습니다.이제는 신부 앞에 나가서 죄를 고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직접 하나님께 나가서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사죄받도록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목사가 신의 대리자라고 생각하여 목사가 기도하여야 되고 목사가 모든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런데 어느날 목사가 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부터는 실망하기 시작합니다. 분명한 것은 목사는 하나님의 동역자요 일꾼일 뿐이지 신이 아닙니다.
어떤 잡지에 수많은 성도들의 목사에 대한 의식구조를 담은 글을 적어놓은 것을 본적이 잇습니다.
" 목사의 나이가 어리면 경험이 부족하다고 하고 목사의 나이가 많으면 시대에 뒤떨어진 목사라고 한다. 목사의 식구가 많으면 너무 많다고 하고 식구가 없으면 그래서 가정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목사가 노트 설교를 하면 은혜가 없고 능력이 없다 하고 노트없이 하면 준비성이 없다고 말한다. 목사가 예화를 많이 들어 설교하면 성경 실력이 없다고 하고 예화를 사용하지 않으면 설교가 딱딱하고 어렵다고 말한다.
목사가 죄에 대하여 설교하면 인신공격한다고 하고 죄에 대하여 설교를 안하면 정의감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목사가 교인들의 비위를 맞추지 않으면 사랑이 없는 목사라 하고 비위를 맞추지 않으면 줏대가 없는 목사라고 한다. 목사가 옷을 잘 입고 다니면 너무 사치한다고 하고 옷을 잘 입고 다니지 않으면 교회의 위신과 명예를 떨어뜨린다고 한다.
목사가 심방을 많이 하면 주책없이 남의 집만 돌아다닌다고 하고 심방을 안하면 교인들의 상태를 돌아보는 관심과 열성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여러분 이런 오해로 인해서 교회 속에서 주님의 사역이 제한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음에 목사 제도를 부인하고 목사의 권위를 부인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무교회주의자들의 주장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많은 성도들을 부르셨고 그 성도들을 섬기도록 목회자를 부르셨습니다.
특별히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고 교훈하여 가르침으로 성도들을 하나님이 사람으로 자라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하나님 앞에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는 전문가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것입니다.그래서 바울은 딤전5:17에서 "말씀을 가르치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고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하여 영적인 권위를 인정해 주고 순종해야 합니다.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하여 육적인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안됩니다.서로 존경하고 서로 높이면서 섬길떄 교회가 영적으로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이렇게 목회자를 불러서 일군으로 사용합니다.그러므로 목사 제도를 부인해서도 안되고 권위를 부인해서도 안됩니다.그러나 이렇게 목회자와 같은 일꾼들을 하나님이 세우시는 이유는 바로 복음을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일을 하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통로입니다. 목사를 통해서 또 모든 하나님의 일꾼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일을 하시면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때와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종종 우리가 전도할 때 범하는 실수가 한가기 있습니다.
사람을 우리의 생각과 기준으로 결과를 판단합니다. 저 사람은 되고 이사람은 되고 우리의 생각으로 판단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가끔 그런 것을 경험할때가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저 사람은 우리 이웃이지만 전도될 사람이 아니다라고 단정지어서 전도하지 않았는데 어느날 보면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전도하였습니다. 전도하면 누구보다도 반대하고 강하게 부정하던 사람이 전도되어진 것을 보면서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결과를 믿음으로 맡기고 우리는 사명대로 전도하면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거두게 하실 것입니다.

의외로 우리 주변에 보면 예비된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저희가 지난 주간에 교회으 새교육관 책상과 의자를 준비하느라고 가구점에 갔었습니다. 그런게 가구점의 주인 여자분이 아주 인상이 좋았습니다.그래서 가구를 사고 나서 혹시 믿음 생활을 하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습니다. 40대 후반의 이 여자분은 지난 주간에 모교회를 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과거에 교회를 다니다가 자기를 인도한 사람과 헤어지면서 믿음생활을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지는 않았지만 그 마음에 “누가 나를 좀 인도하여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자기 주변에 교회를 다니는 사람은 많은데 아무도 자기에게 교회가자는 말을 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전에 자기가 아는 사람이 교회로 자기를 초청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꺼히 시간을 내어서 교회를 갔다왔다고 하면서 자기 간증을 하였습니다.

여러분 이런 분이 과연 이 한 사람 밖에 없을까요? 아니 그렇지않습니다. 분명히 예비된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우리가 열심히 기회를 만들어서 전도해야 합니다.
전도자는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고 최선을 다해서 씨를 심는 농부처럼 열심히 복음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그리고 결국은 하나님께서 결실을 맺게 하시는 것입니다.나는 씨를 뿌리고 나는 물을 주지만 결국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마치는 말)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전도자 바울처럼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우리 평생에 주님이 인정하시는 전도자로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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