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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체험이 주는 교훈 (삼상 22:1, 시 14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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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체험이 주는 교훈 (삼상 22:1, 시 142:1-7)


할렐루야!!
오늘도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성령의 역사가 충만하게 임하실 줄로 믿습니다.<아 멘>

지난주간에도 서울과 중부 지역에 게릴라식의 폭우로 인하여 많은 인명 사고가 발생을 하였고 또 많은 가구가 침수를 당했으며 농지의 침수로 인하여 1년 내 땀흘리며 지은 농사가 모두 수포로 돌아가는 안타까운 한 주간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남부 지역은 폭염과 열대야 현상으로 인하여 고통을 겪은 한 주간이었습니다.

코리 텐 붐(Corrie Ten Boom)이 쓴 '피난처'라는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와 그의 언니 벳시(Betsy)가 라벤스부르크(Ravensbruck)라는 나치의 수용소에 갇히게 되었는데, 그곳은 그들이 거쳐 간 수용소 가운데 가장 견디기 힘든 열악한 곳이었습니다.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수용하였는가 하면 사방에 이들이 득실거렸습니다.

그곳에 들어간 첫날, 그들은 늘 그래 왔듯이, 몰래 숨겨 간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 날의 말씀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이었습니다. 거기에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언니 벳시는 그 말씀대로 새로운 환경의 모든 것에 대해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자고 했습니다. 코리는 한 마디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이렇게 이들이 득실거리는 환경에 대해 어떻게 감사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언니의 고집에 못 이겨 마침내는 그것에 대해서도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몇 달을 지냈습니다. 이상한 것은 그들이 성경공부를 하고 기도를 하는데 간수들이 들여다보지도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안전하고 충실한 성경공부와 기도모임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곳에 이들이 득실거리기 때문에 간수들이 오기를 꺼려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열악한 환경이 오히려 하나님과 가까워지는데 가장 좋은 것이 되었습니다. 이들의 열악한 환경이 비록 육신적으로는 고통스러운 것이었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고 그들로 하여금 충실한 신앙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입니다.

다윗의 생애에도 이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영웅이었고, 골리앗을 때려눕혀 사울의 군대장관이 되었으며, 왕의 사위가 되고 왕세자의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던 그가 사울 왕의 미움과 시기를 받아 쫓기는 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적으로 의지할 만한 것들, 지위를 잃어버리고 아내와 영적 스승, 친구도 잃어버리고 심지어는 인간적인 품위마저 잃어버린 채 목숨을 건지기 위하여 도망쳐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간신히 몸을 피한 곳이 바로 아둘람 굴이었습니다.

본문 삼상 22:1을 봅시다.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아둘람이라는 곳은 가드와 베들레헴의 중간 곧 가드 남동쪽 약 14km 지점으로, 본래는 유다의 영토였는데 그 당시에는 블레셋의 지배하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지역은 약 800m 높이의 언덕으로 되어 있는데 여러 개의 동굴들이 뚫려 있었습니다. 최근 성서 고고학자들은 그곳을 탐사하던 중 아둘람 성의 한 산 중턱에서 약 400명 정도가 살기에 충분한 동굴 하나를 발견했다고 하는데 그곳이 다윗이 가서 숨은 굴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동굴이란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곳이 아닙니다. 거기는 공기도 잘 안통하고 빛도 없으며 먹을 것과 마실 것은 물론 화장실 문제도 해결이 안 되는 열악한 곳입니다. 말하자면 사람으로서는 살 곳이 못 됩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곳에 숨어 자기의 생명을 보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에 궁에 거하던 다윗의 환경에 비하면 너무 대조적인 환경입니다. 왕실에서 좋은 음식과 따뜻한 잠을 자며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으며 살던 다윗이 이제는 어두침침한, 동물이나 살기에 좋은 동굴에 살게 된 것입니다. 이가 득실거리는 수용소의 삶을 감사히 받을 수밖에 없던 코리 텐 붐과 같이, 이런 동굴이라도 있는 것을 감사히 여기면서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곳 동굴생활을 통해서 다윗이 얻은 것이 많습니다. 그는 동굴 밖에서는 체험할 수 없는 많은 신앙의 유익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그가 지은 시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동굴에서 지은 많은 시 가운데 시편 142편을 읽어봅시다. (p. 903)

(1)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2) 내가 내 원통함을 그 앞에 토하며 내 우환을 그 앞에 진술하는도다
(3)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 나의 행하는 길에 저희가 나를 잡으려고 올무를 숨겼나이다
(4) 내 우편을 살펴보소서 나를 아는 자도 없고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아보는 자도 없나이다
(5)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생존 세계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하였나이다
(6)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나는 심히 비천하니이다 나를 핍박하는 자에게서 건지소서 저희는 나보다 강하니이다
(7)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케 하소서 주께서 나를 후대하시리니 의인이 나를 두르리이다

이 시는 다윗이 굴에 있을 때 지은 것입니다. 무슨 굴인지는 밝히지 않고 있지만 필경 아둘람 굴이었을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이 시를 가리켜 마스길이라고 했습니다. 마스길이란 교훈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읽는 자에게 교훈을 주는 시라는 뜻입니다. 다윗이 동굴에서 지은 이 시가 사람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는 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다윗의 동굴의 체험이 우리에게 많은 교훈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러한 다윗의 시를 읽으면서 그의 동굴속에서의 삶이 어떤 유익을 주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다윗의 동굴체험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다윗처럼 동굴생활을 하지는 않는다 해도, 코리 텐 붐과 같이 수용소 생활은 하지 않는다 해도, 우리들의 환경이 원하는 것과는 영 다르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처지가 말할 수 없이 낮아질 수도 있고, 필요한 모든 것이 다 꽉 막혀 버릴 수도 있으며, 아무도 만날 수 없는 외로운 처지에 깊이 빠질 수도 있습니다. 앞길이 캄캄하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그런 때에는 우리도 다윗처럼 동굴에 갇혀 있는 것과 같아 한숨을 쉬며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처지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환경이 오히려 하나님을 더 가깝게 하고 우리의 신앙의 좋은 훈련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다윗이 동굴체험을 통해 얻은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동굴을 통해 주시려는 신앙의 유익이 무엇인지를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동굴 체험은 우리에게 기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음을 깨우쳐 줍니다.

(1)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2) 내가 내 원통함을 그 앞에 토하며 내 우환을 그 앞에 진술하는도다
.
다윗이 소리를 내어 부르짖고 여호와께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그의 마음을 쏟아놓고 간절히 간구하는 모습입니다. 물론 그가 아버지의 양을 돌보면서 급하면 기도를 했겠지만, 이렇게까지 간절한 기도를 드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동굴 속에 들어가 보니, 정말 아무 것도 없는 처지, 아무도 자신을 지켜주지 못하는 때에 앞길이 막막한 처지에 처하니 그곳에서 기도가 나옵니다. 기도도 그냥 기도가 아니라 부르짖는 기도, 간절히 드리는 기도, 자신의 마음을 쏟아놓는 기도가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기도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평상시에 그렇게 기도하는 자는 별로 많지 않습니다. 왜 그런지 압니까? 아직 살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급해야 기도가 나오고 어려워야 기도가 간절해집니다.

1968년에 미국 뉴욕으로 향하던 한 비행기에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출발지에서 무사히 이륙을 하고 목적지까지 잘 날아온 이 비행기가 막상 착륙을 하려고 하니 랜딩기어(착륙할 때 작동하는 기어)가 작동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몇 번이고 시도를 해 보았지만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공중을 빙빙 돌다가 마침내 관제탑에 보고를 하고 동체착륙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행장에서는 비상이 걸렸습니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착륙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비행기 안에서도 승무원들이 바삐 움직였습니다. 기장의 기내 방송이 들립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제 동체착륙을 시도합니다. 안전벨트를 꼭 매주시고 모두다 머리를 무릎사이에 넣으십시오. 그리고 임팩트가 나는 순간 발목을 굳게 잡아 주십시오." 모두들 두려움에 사로잡혀 어떤 이는 울기도 했고 어떤 이는 소리를 지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기장이 또 말합니다. "이제 우리는 마지막 강하를 시작합니다. 이 순간 저는 제네바 국제 항공 규약에 따라서 여러분들이 신을 믿는다면 지금이야말로 여러분들이 기도해야 할 때라는 사실을 알려드리는 바입니다." 사람들이 제각기 자기들이 믿는 신에게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물론 기독교인이라면 하나님께 기도했겠지요. 그렇게 간절히 기도한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다행히 비행기는 동체착륙에 성공했습니다. 아무 다친 사람이 없이 또 기체에도 큰 손상이 없이 무사히 착륙을 했습니다. 그 다음날 승객의 가족 중에 한 사람이 그 기장이 인용했던 기도의 규약에 대해서 비행기 회사에 물어 보았습니다. 그랬을 때 아무도 거기에 대해서 관심을 표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막상 위급할 때는 그렇게 심각하게 인용되던 기도의 규약이, 사고가 없을 때에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문구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기도에 관한 말씀을 여러 번 듣습니다. 적어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기도에 관한 말씀 몇 마디 정도는 다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과연 기도합니까? 전심을 기울여 기도합니까? 그러지 못합니다. 왜입니까? 비상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비상사태가 벌어지면 그 때는 우리가 기도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제가 아는 미국 목사님 몇 분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미국에서 지진이 몇 번 일어나면 그 주일에 교회에 모이는 사람의 숫자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헌금액수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새벽기도회 참석하는 사람의 숫자가 달라지고 새벽기도회때 드리는 기도의 소리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것은 그 후에 몇 주, 몇 달이 지나고 나면 이것이 다시 원상복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들끼리 하는 말이 하나님이 너무 심하게 흔드시면 곤란하고, 가끔 가다 적당히 흔들어주시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2년전에 IMF가 터졌을 때, 성도들이 교회에 몰려와서 예배를 드리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 때 기도가 얼마나 간절했습니까? 그 때 우리가 나라를 위해서 특별 기도를 가진 적이 있습니다. 새벽기도에 나와서도 간절한 기도를 드리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그런데 이 때가 지나고 나니 벌써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점차 우리의 모임과 기도의 열심이 약해지는 것을 봅니다. 우리 사람은 모두 동굴 속에 들어가 봐야 간절한 기도가 나옵니다. 평탄한 위치, 따뜻한 잠자리, 왕궁과 같은 곳에서는 이런 기도가 안 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를 동굴 속에 집어넣고 동굴과 같은 그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부르짖고 간절히 기도하도록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이 동굴에 들어간 것처럼 만일 여러분들이 곤고한 처지에 빠져 근심하고 걱정하며 두려워하는 입장에 있다면 너무 낙심하지 말고, 이때야말로 하나님과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 더 간절히 기도할 수 있는 기회인 줄 알고, 다윗처럼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기 바랍니다. 새벽에 나와 열심히 기도하고 금요 철야예배에도 나와 열심히 기도하여 이 어려운 시기가 오히려 우리를 더 하나님께 무릎꿇게 만들고 더 가까이 나가게 만드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동굴체험은 우리로 하여금 겸손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평소에 기도하지 않는 근본적인 원인은 쓸데없는 자만심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없이도 스스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줄로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움을 별로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굴의 체험을 하게 되면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 하나님이 아니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절감케 됩니다. 다윗도 그랬습니다. 어쩌면 다윗은 승승장구 잘 나갈 때, 자기 힘으로 그렇게 되는 줄로 착각하기 쉬웠을 것입니다. 자기가 잘 싸워서 그렇게 된 줄로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굴에 들어 와 보니 정말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기는 무력한 존재인 것을 안 것입니다.
본문 4절을 보십시오.
(4) 내 우편을 살펴보소서 나를 아는 자도 없고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아보는 자도 없나이다
또 6절을 보십시오.
(6)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나는 심히 비천하니이다 나를 핍박하는 자에게서 건지소서 저희는 나보다 강하니이다

다윗이 전에는 정말 잘나가던 사람입니다. 그는 하는 일마다 형통했습니다. 그가 나가서 싸우기만 하면 이기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랬을 때, 다윗의 마음속에는 자기가 잘나서 그런 것으로 착각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지혜롭고 힘이 세서 전쟁에서 이기는 것으로 착각했을 것입니다. 이 상태대로 그가 왕이 되었다면 아마 자기 눈앞에 보이는 자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다윗을 사랑하셔서 그가 착각하고 자만하는 대로 왕이 되지 않게 하시고 그로 하여금 동굴체험을 갖게 합니다. 그는 동굴속에 들어가서 자신이 얼마나 연약하고 무력한 존재인지를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디를 봐도 자신을 도울 자가 없이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자입니다. 이것을 철저히 깨닫는 다윗, 다윗은 자기 자신을 제대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이 왕이 된 후에도 자기 주체를 바로 알았습니다. 자기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자신이 왕이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았습니다. 이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다윗으로 하여금 동굴체험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는 교만입니다. 교만이라는 것은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가 어디 있는지 압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도 자기 힘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줄로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교만입니다. 이 세상에 자기 힘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성경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구원받을 수 있을 정도로 의로운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기 의로 구원받으려고 합니다. 그 사람은 마치 수영해서 태평양을 건너려는 사람과 같습니다. 아무리 수영을 잘 해도 태평양을 건널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배를 타야하고 구조선을 타야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구원받으려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여러분, 혹시 이 자리에 좋은 가정에서 아무 걱정없이 순탄하게만 자라난 사람이 있다면,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이 내가 잘나서 혹은 그럴만한 자격이 있어서 그런 것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여기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려움을 겪게 하시고 곤고한 처지에 빠지게 하실 때에, 실패를 경험하게 하고 좌절을 경험하게 하실 때에, 이는 우리로 하여금 자신을 바로 알도록 하기 위한 훈련임을 알아야 합니다. 지난번 대학입시에서 낙방을 본 사람이 있습니까? 내가 원하는 대로 되어지지 않아서 마음 아파하는 분이 있습니까? 어떤 면에서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을 바로 깨닫고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하는 좋은 경험이 됩니다. 이 실패의 경험없이, 동굴의 체험없이 승승장구 잘 나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누구냐고 말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를 낮추시는 훈련을 하십니다. 동굴과 같은 어려운 여건과 열악한 환경 속에 빠뜨려서 그곳에서 자기 자신을 바로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 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 환경이 어떠냐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 내가 얼마나 겸손해지느냐가 문제입니다. 겸손해지기만 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마음껏 쓰십니다. 하나님이 쓰시면 그 사람은 성공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동굴에서 바로 이런 체험을 한 것입니다.

세 번째로, 동굴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합니다.

본문 3절을 보십시오.
(3)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

다윗은 비록 마음이 상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자기 길을 알고 선하게 인도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계속해서 하나님을 의지한 것입니다. 그러한 그의 신앙은 적중했습니다. 나중에 보니 그의 동굴의 생활은 잠시 잠깐 동안의 하나님의 훈련이었습니다. 그런 훈련이 없었다면 그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왕이 될 수 없었던 것도 깨달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를 더 귀하게 쓰시기 위해서 동굴훈련을 시키신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과정을 통해 그를 훈련시키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왕으로 사용하시기 위해 잠깐 동안 어려운 환경에 놓아두셨지만, 이것마저도 선을 이루시는 결과였음을 동굴속에서 체험한 것입니다. 만일 동굴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이런 능력의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시 119:71에 보면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동굴이라는 환경이 당장에는 괴롭고 고통스럽지만,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체험하는 좋은 교육장이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특별히 다윗처럼 동굴과 같은 환경에 처해 있는 분들이여, 여러분의 환경 때문에 너무 실망하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다윗처럼 하나님의 섭리를 배우는 좋은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롬 8:28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여기 '모든 것'이라는 말은 우리 보기에 좋은 것뿐만 아니라 나쁘게 여겨지는 일까지도 포함하는 말입니다. 코리 텐 붐이 나치 수용소에서 겪었던 득실거리는 이마저도 자신들이 안전하게 기도하고 말씀을 읽을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의 섭리의 과정이었음을 깨달은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모든 여건가운데 보기에 좋지 못한 것들까지도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을 깨닫는 데에 동굴보다 더 좋은 교육장은 없다는 말입니다. 다윗이 바로 이것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중국에 문화혁명이 일어났을 때 말을 잘 그리는 화가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그가 문화혁명을 만나 그림은 못 그리고 대신 말을 좋아했다고 해서 마구간을 치우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불평과 원망이 가득 차서 화를 내면서 일을 하다가 차츰 말들과 정이 들어 기쁨으로 그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사이에 어언 7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고 문화혁명도 그치게 되었습니다. 그는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데, 이상한 것은 7년 동안 붓을 놓았는데도 그의 그림은 여전히 힘이 있고 특별히 말의 모습에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생동감이 넘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비결이 어디 있었는가 생각해 보니 그가 문화혁명 동안에 그림을 그리지는 못했어도 말들과 가깝게 지낼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지면서 말들의 생리를 피부로 느끼게 된 것입니다. 이전에는 이론적으로만 알고 말을 그렸는데, 이제는 체험하고 말을 그리니 더 뛰어난 그림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환경들은 결코 불평할 것이 없습니다. 그 환경을 주장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고, 또 그 분은 뜻을 따라 우리를 부르셨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환경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려운 환경을 주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낙망하고 잘못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더 성장시키고 발전시키는 은혜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다윗은 그것을 동굴 안에서 체험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어려운 환경 속에서 낙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그 능력을 의지하며 그 하나님이 장차 나를 훈련시키셔서 아름답게 쓰실 것을 바라볼 수 있는 이런 눈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동굴은 우리에게 자족하는 것과 감사를 가르쳐 줍니다.

본문 7절을 보십시오.
(7)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케 하소서 주께서 나를 후대하시리니 의인이 나를 두르리이다

다윗은 만일 하나님이 이 동굴에서 나가게 하면 진정으로 감사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을 다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항상 그 이상의 것을 바라는 고질병이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불평하고 불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동굴의 생활을 해 보면 그런 불평 불만들은 다 사라집니다. 어려워져봐야 자기가 그동안 누려온 것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오히려 감사와 자족이 삶이 이루어집니다. 다윗이 동굴에서 체득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동굴의 삶, 옥과 같은 삶에서 이끌어 내시면 이제는 다른 것 없어도 하나님께 감사하겠다는 고백이 나옵니다. 실제로 다윗은 그 후 왕이 된 다음에 늘 감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감사 시들이 이것을 증명합니다. 그의 이런 감사와 찬양하는 마음이 어디서 훈련되었습니까? 바로 동굴에 갇혀있는 어려움속에서 하나님의 고마움을 알았습니다.

이것은 우리들 삶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이번에 중부지방에 큰 수해로 많은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남부 지방에는 연일 불볕 더위가 기승을 부렸지만, 큰 피해가 없이 장마를 보냈습니다. 이런 어려운 일을 당할때면,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동굴체험이 없는 사람들, 좋은 환경에만 익숙하고 나쁜 환경에 접해 보지 못한 사람들은 불평 불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감사할 줄 모르게 됩니다.

터키 사람들은 지난번에 그들이 겪은 지진을 땅에 내는 세금이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그 동안 그들이 땅의 고마움을 모르고 지냈기 때문에 땅이 노해서 그런 재난을 겪은 것이라고 하면서, 땅의 고마움을 상기시키는데 그들은 막대한 세금을 지불하였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찌 보면 무식한 말 같이 들리기도 하지만, 큰 교훈을 주는 말입니다. 우리는 지진이 안나는 땅에 사니 땅에 대한 고마움을 모릅니다. 평상시에는 고마움을 모르다가 지진을 겪는다든지 동굴체험 같은 것을 할 때에 자족하는 것을 배우게 되고 감사를 하게 됩니다.

매튜 헨리라는 유명한 주석가가 있습니다. 그가 한번은 길에서 강도를 만나 지갑을 빼앗겼습니다. 그 날 그의 일기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나는 오늘 강도를 만났음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첫째로, 이제까지는 한번도 이렇게 강도들 만나지 않았던 것 때문에 감사하고, 두 번째로, 비록 지갑은 강탈당했어도 나의 생명은 빼앗기지 않았음을 감사하며, 세 번째로, 내 돈을 다 빼앗아 갔어도 그렇게 많지 않은 것이었음을 인해서 감사하고, 네 번째로는, 내가 강도를 당했지만 남을 강도한 사람이 되지 않았음을 인하여 감사합니다." 강도 만나기 전까지는 생각지 못한 감사를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집니다. 병들어보아야 건강의 고마움을 알게 됩니다. 파산을 해보아야 물질의 귀함과 고마움을 알게 됩니다. 가족들과 떨어져있어 봐야 가족들과 함께 사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남편과 아내와 사별해보아야 부부가 같이 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고맙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동굴이라는 것은 우리의 모든 자유를 잃어버리고 기본적인 의식주의 필요마저도 해결되지 않고 나 홀로 한숨쉬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런 환경을 뜻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다윗은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는 귀한 체험을 했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을 살다 보면 다윗처럼 동굴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진 것 다 떨어지고 있을 곳도 없으며 사람들 마저 내 곁을 떠나버리고 마는 순간, 인생으로는 좌절하고 낙심할 수밖에 없는 처절한 환경이 내게 닥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우리 곁에 계십니다. 이를 믿는 사람은 모든 환경과 여건들이 결코 손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를 통해 주시려는 유익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먼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더 간절히 기도하게 합니다. 또 내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훈련시켜 줍니다. 진정으로 겸손해지게 하고,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심을 체험케 해 주십니다. 그리고 이 환경 속에서 진정한 고마움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능히 감당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바라기는, 우리들 가운데 동굴 속에 처해있는 분이 있다면 한탄하고 낙심만 할 것이 아니라 다윗처럼 이 가운데 좋은 교훈을 받으며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는 신앙의 유익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다윗처럼 기도하고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며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감사하고 자족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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