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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전쟁의 승리 삿 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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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전쟁의 승리
본문: 삿 7:1-8

본문은 기드온이 미디안 연합군과 싸울 정예용사들을 선발하는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절대적인 열세에 있는 이스라엘 군사들의 숫자를 대폭 줄일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전쟁의 승리가 오직 여호와 하나님에 의한 것임을 알게 하고, 또 승리한 후에는 이스라엘이 마치 자기들의 힘으로 승리한 것처럼 교만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우리의 영적 전쟁의 승리는 결코 우리 자신의 능력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에 달려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1. 영적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믿음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6장 16절에서 ‘믿음의 방패’로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 임하라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손 방패와 온 몸을 막는 큰 방패 등 두 종류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방패는 온 몸을 방어하는 큰 방패입니다. 이 방패는 사탄의 창과 칼은 물론 불화살을 막아주는 중요한 방어용 무기입니다.
믿음에는 형식적인 믿음과 지적인 믿음, 행함이 있는 믿음과 구원하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참된 믿음이란 무엇인가. 믿음이란 꼭 붙잡는다는 뜻입니다. 즉 그리스도를 놓으면 죽을 줄 알고 그를 꼭 붙잡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을 성경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참된 믿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내맡기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에는 지·정·의 세 가지가 구비돼야 합니다. 예수님과 삼위일체 하나님은 각각 어떤 분이신지, 구원이란 무엇이며 천국은 어떤 곳인지 등등 영적 문제에 대해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식만으로는 산 믿음이 될 수 없습니다. 성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정적인 면이 있어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전적으로 의뢰하며 순종하는 의지적인 면도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신념과 다른 의미를 가진다. 박정희 대통령이 강조했던 ‘하면 된다’는 것이나 ‘신앙의 전력화’라는 의미는 신념이기는 했으나 믿음은 아니었습니다. 믿음에는 반드시 인격적인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고 정의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하는가’라는 점입니다. 물론 성경에는 큰 믿음과 작은 믿음이 있으나 구원은 산 믿음만 있으면 받을 수 있습니다. 꼭 큰 믿음을 가져야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승리하는 삶을 위해서는 성장(Grow)해야 합니다. 성장은 복음의 말씀을 듣고(롬10:17), 쉬지 않고 기도하고 날마다 순종하며 주님을 증거함으로 이뤄집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히11:6)

2.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 보면 항상 있어야 할 것으로 믿음 소망 사랑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소망은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소망은 인간이 가진 마지막 끈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자살자가 속출하는 것도 한 마디로 말해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소망이 없을 때는 죽는 길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는 여러 가지 소망이 있습니다. 산 소망, 영원한 소망, 구원의 소망, 부르심의 소망, 하나님께 대한 소망, 부활의 소망, 천국의 소망, 상급의 소망 등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소망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소망들은 하나의 뿌리에 묶여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믿음이란 뿌리에 얽혀 있습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 대한 소망은 헛된 것뿐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믿음의 뿌리에 연결돼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탄 또한 많은 소망의 약속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탄은 행복과 쾌락, 번영, 출세의 약속 등 우리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사탄교회들이 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성 교회에 가면 예배시간에 조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탄교회에는 조는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너무나 재미있고 신나기 때문입니다. 범죄를 저지른 인간들이 좋아하는 모든 것이 동원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소망이면 다 좋은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살아 있는, 영원한 소망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참 소망이란 무엇입니까? 참 소망이란 믿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주님이 바로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 되십니다. 그에게 소망을 두는 자마다 은혜의 닻줄을 내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적어도 세 가지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첫째는 구원의 소망, 둘째는 부활의 소망, 셋째는 천국의 소망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소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연결돼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146편 5절에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소망을 가진 자마다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가. 그것은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란 중에 참을 수 있기”(롬 12:12) 때문입니다.
"악인은 그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잠14:32)

3.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사랑입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사랑의 사도인 요한은 요한일서 4장 7∼8절에서 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구약의 핵심 구절은 십계명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을 주님은 마태복음 22장 37∼40절에서 경천애인(敬天愛人)으로 요약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주님은 이 두 계명을 산상설교에서 황금률의 말씀으로 요약했습니다(마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주님의 이 황금률은 기독교의 사랑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간디는 이 황금률 하나만 있어도 기독교는 일어선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랑이 얼마나 강한지 이솝우화에서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이 됩니다. 그래서 사탄은 이 사랑을 기독교에서 배제하기 위해 유혹합니다. 믿음만 있으면 구원받는다. 그러므로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는 믿음은 야고보가 말한 대로 죽은 믿음입니다(약 2:17,26).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칭찬하면서 그들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를 들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믿음의 역사에는 사랑의 수고가 따른다고 했습니다. 특별히 사랑은 대인관계에 있어서 허다한 죄를 덮어주기 때문에 육신을 통해 들어오는 사탄의 유혹을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13:10)

4.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말씀입니다.
영적 전쟁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예수님의 시험과 전신갑주의 비유에서(엡 6:10∼20)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3대 시험(마 4:1∼11)을 보면 세 번 모두 사탄을 말씀으로 물리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씀을 성령의 검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전신갑주에서 다른 모든 무기는 방어용인데 반해 검만이 공격용 무기라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묵상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탄이 이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영적 전쟁에서 이 말씀을 이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단들을 보면 정통적인 교회보다 말씀을 더 많이 인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외모만 보면 이단 여부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는 언젠가 어떤 이단 종파 사람과 논쟁을 한 적이 있는데 본인보다 성경을 더 많이 인용하는데 놀란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훈련이 되어서 성경 가운데 문제되는 구절만 달달 외우면서 공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성경을 인용은 하지만 그 말씀의 뜻은 변질시킵니다. 즉 성경의 텍스트(text)를 인용할 때에 문맥을 떠나서 자기 마음대로 인용하기 때문에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사탄의 하수인인 이단에게 승리하려면 그들의 전술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이단들은 말합니다. 성도들은 성경을 잘 모른다. 그러므로 성경만 인용하면 성도들은 두 손든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알되 그 배경과 내용을 정확하게 알아야 하며 최소한의 신학적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말씀의 능력에 대해서는 히브리서 4장 12절에 잘 언급돼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그러면 말씀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첫째는 인격으로서의 말씀인 그리스도, 둘째는 기록된 말씀인 성경, 셋째는 선포된 말씀인 설교가 있습니다. 어떤 형태든 말씀으로 싸울 때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얻느니라"(잠13:13)

5.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순종입니다.
믿음의 동의어는 순종입니다. 그러나 믿음보다 순종이란 말이 더 동적인 의미를 풍깁니다. 성경에는 순종함으로써 승리한 경우뿐만 아니라 불순종함으로써 실패한 사례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은데서 비롯됐습니다. 반대로 제2의 아담인 그리스도께서 승리한 것은 그가 죽기까지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2장에는 예수님의 유명한 케노시스(Kenosis)의 말씀이 나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였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 그러면 순종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순종과 불순종의 대표적 예는 사울 왕을 들 수 있습니다(삼상 15장). 하나님께서 아말렉과 그의 소유들을 다 멸절하라고 명령했을 때 사울 왕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사무엘이 그에게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 사울 왕에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는 말씀을 주었습니다. 왜 사울 왕이 버림을 받았는가? 그가 못난 것도 아니고 인간적으로 보면 모든 면에서 뛰어난 사람이었으나 문제는 하나님께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순종의 경우는 또 다른 사울인 바울 사도를 들 수 있습니다(행 9장). 하나님께서 바울을 크게 쓰신 것은 그가 지식이 많고 열성적이라서가 아니라 그가 순종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데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연구하고 묵상해서 그의 뜻을 아는데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은 우리가 그의 말씀을 순종할 때 일어납니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도 순종할 때 이루어집니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히5:8)

6.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기도입니다.
영적 전쟁에서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에베소서 6장 18절에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언급하는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현대의 전쟁은 정보전쟁이라고 할 만큼 전쟁에서 정보는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손자병법에서도 “지피지기자(知彼知己者)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라마다 정보수집에 혈안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산업스파이가 다른 회사의 정보를 빼내는 수법이 횡행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단순히 전능하신 주님께 정보를 수집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영적 대화로 동행하며 교통하는데 근본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도들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의 인도하심에 따라 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모든 기도는 이루어집니다. 이뤄지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그래(Yes), 둘째는 기다리라(Wait), 셋째는 안 된다(No)고 응답하십니다. 여기서 기억할 것은 안 된다고 하시는 것도 응답이란 점을 깨닫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게 해가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때 하나님께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보면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알게 됩니다. 저는 기도에서 성경의 세 구절을 붙잡고 기도합니다. 첫째는 요한복음 14장 14절입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둘째는 예레미야 33장 3절 말씀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셋째는 마태복음 7장 7∼11절 말씀입니다. 여기서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말씀은 기도의 세 단계를 뜻합니다. 또한 우리가 흔히 기도를 호흡에 비유하는데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호흡이 중지되면 산소 부족으로 뇌가 썩고 마침내는 죽고 말듯 기도도 영적 생명을 유지하는 젖줄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승리한 성도들은 모두 기도의 사람들이었고 기도하기를 쉴 때 실패했던 것입니다.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4:2)

7.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감사입니다.
현대는 불평과 원망의 바이러스로 인해 사회 전체가 구름 낀 날처럼 암울합니다. 사탄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술과 마약, 성과 쾌락을 동원해 인간을 유혹하고 있고 더욱 무서운 것은 이단과 향락문화를 통해 인류를 사로잡으려고 합니다. 여기서 승리할 수 있는 것은 감사의 회복 외에는 없습니다. 본래 감사란 어떤 외적인 조건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데서 오는 것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라고 했습니다. 감사가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감사의 영적 분위기를 회복해야 합니다. 하박국서는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그는 3장 17∼18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당시 하박국 선지자는 주변의 고난과 불의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의로우시고 권능이 있다면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라고 절규하다가 마침내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는 비록 없을지라도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가 감사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호와로 인해,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신앙적 자세입니다. 사탄은 최근 사탄교회를 통해서 번영의 신학과 기복신앙을 전파해 교회들을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팔 복에서 보여준 대로 기독교에서 추구하는 복은 영적인 곳에 중심을 두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영화와 영광은 우리들이 감사할 때 가장 잘 나타납니다. 사실 우리의 불평과 원망은 우리의 건망증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주신 축복은 물에 기록하고 욕심은 돌에 기록해서 불평하고 원망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불평하는 곳에 안주해 그의 왕국을 넓혀갑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저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118:1)

8.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찬송입니다.
찬송은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제사입니다(히 13:15). 하나님께서는 세 가지 취미를 갖고 계십니다. 첫째는 창조하는 일이요, 둘째는 찬송을 듣는 것이요, 셋째는 드라마를 연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를 얼마나 좋아하시는지는 꽃을 만들 때에도 크기가 다르고 색깔도 다른 수많은 꽃을 만들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게 하신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또 모든 만물을 창조하기 전에 먼저 찬송을 부를 천군과 천사들을 창조하신 것에서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찬송을 좋아하시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지으실 때에도 모두 악기로 창조하셨습니다. 가장 좋은 악기가 바로 사람입니다. 소리도 각양 각색이어서 아름다운 꾀꼬리 울음소리는 물론 바다의 파도소리와 산에서 내려오는 물소리, 문풍지를 스치는 바람소리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다음에는 드라마 연출입니다. 아마도 역사의 가장 멋진 드라마는 십자가를 통한 드라마입니다. 외형적으로는 사탄이 승리한 것처럼 보였으나 결국 인류의 구원을 위한 주님의 승리를 가져온 것이 바로 ‘십자가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찬송이 얼마나 놀라운 이적을 가져왔는지 잘 나타나 있습니다. 먼저 역대하 20장 22절에 보면 암몬의 연합군이 쳐들어왔을 때에 여호사밧이 성가대를 조직해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할 때 적을 진멸시켰습니다. 또 다윗이 사울 왕을 위해 수금을 탈 때 악신이 떠났고(삼상 16:213), 바울이 감옥에서 찬양할 때 옥문이 열리는 이적이 일어났습니다(행 16:26). 이처럼 찬송은 놀라운 이적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사탄은 찬양을 무서워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 때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에베소서 5장 19절에 그 해답이 나옵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라고 했습니다. 시란 구약에 나오는 시편을 의미합니다. 옛날에는 시편만을 노래했습니다. 다음에는 찬미라고 했는데 성경에는 찬송 찬양 찬미 등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오늘날의 찬송가를 의미합니다. 끝으로 신령한 노래라고 했는데 이는 성가대원들이 부르는 성가곡을 의미합니다. 이 찬송들은 하나님께는 영광, 성도들에게는 은혜, 사탄에게는 악령을 쫓아내는 하나님의 능력의 소리가 됩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9.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간증입니다.
성도 중에는 간증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간증이 없는 사람들을 보면 겸손해서 ‘나 같은 것이 뭐 자랑할 것이 있나’하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간증이 일종의 자랑이 될 수도 있지만 사실은 내 자랑이 아니라 나를 구원해주신 주님에 대한 자랑입니다. 바울은 자신에게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자랑했는데 모든 공로를 주님께 돌렸기 때문입니다. 또 간증이 없는 사람들 중에는 체험이 없기 때문에 간증이 없는 경우도 있고 믿는 가정에서 자라나 극적인 사건이 없어서 간증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에 대한 자랑인 간증은 반드시 천국에 갔다 온 체험이나 죽음에서 극적으로 살아난 사람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주 평범한 생활을 한 사람도 일상생활에서 많은 간증거리가 있습니다. 간증이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극적인 체험을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나 간증은 평범한 생활 속에서도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거기에서 감사할 것을 찾으면 우리가 숨쉬고 매일 살아가는 삶 자체가 간증거리요 감사의 조건인 것입니다. 그런데 간증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체험이란 점입니다. 물론 체험이 성경처럼 하나의 표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주관적이기 때문입니다. 즉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증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간증을 표준으로 삼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 간증은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확신의 근거가 돼 의심의 구름이 다가올 때 우리에게 큰 힘이 됩니다. 간증은 사탄이 사용하는 의심을 막는 무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간증이 없는 사람은 신앙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믿는다는 것이 하나의 지식이며 관습에서 끝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전도를 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간증의 연장입니다. 간증이 없이는 절대로 전도할 수가 없습니다.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간증이 있으면 전도를 하게 되기 때문에 계속해서 기도하게 됩니다. 또 간증이 있으면 가르치게 되기 때문에 말씀을 연구하고 묵상하는 기회가 많아집니다. 그래서 간증은 큰 힘이 되어 살아 움직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매일의 삶 속에서 새로운 간증을 찾는 일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딤전6:12)

10.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성령의 충만입니다.
성경에는 성령에 관한 많은 말씀이 나옵니다. 성령을 받음, 성령의 인치심, 성령 세례, 성령 충만 등 여러 표현이 혼동스럽기도 합니다. 성령론에 대해서는 교파마다 약간씩 다르기 때문에 여기서는 일반적 견해만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는다고 했을 때 구약과 신약의 해석이 약간 다릅니다. 구약에서는 성령 받는 것을 직분과 연관시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울 왕이 초반에는 성령을 받아 왕으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했으나 후반에는 악령을 받아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사사들 역시 모두 성령을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오순절 이후에 성령을 받는 것과 구원이 동일시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을 받지 않고서는 예수를 주라고 시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에베소서에서는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는다고 했습니다(1:13). ‘인치심’은 흔히 말하는 성령을 받는다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인을 친다는 말은 도장을 찍는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집이나 땅을 사고 팔 때 혹은 중요한 서류에 도장을 찍는 것처럼 성령께서 우리가 믿음을 가졌을 때 인을 쳐서 우리를 그의 소유물로 삼으시고 보호하시며 인도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성령 세례는 무엇인가? 이 교리는 제2의 축복으로 보는 오순절 계통의 견해, 중생과 동일시하는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에서의 견해로 나뉩니다. 이것을 어떻게 보든 중요한 것은 성령 세례를 받지 않고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끝으로 성령 충만이 있습니다. 이것은 선택적인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에게 주시는 명령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에 분명히 말씀하기를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원문에 보면 플레룻세(pleruthe)라는 현재명령형으로 돼 있습니다. 그것은 계속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다시 말해 모든 성도는 성령 충만을 계속적으로 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하며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입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면 성령의 은사를 받게 되고 확신 속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을 뿐만 아니라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깨어있어 신앙생활에 전념하고 소수의 준비된 기드온의 300명의 용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십자가 군대의 대장 되신 주님, 우리가 대적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소서. 우리가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 말씀, 순종, 기도, 감사, 찬송, 간증, 성령 충만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 카톨릭 300년, 개신교 100년의 역사를 지난 오늘날 그리스도 복음의 씨앗은 실로 기적적이라 할만큼 성장되어 왔다. 우리 나라 전체 인구의 25%에 달하는 기독교인의 수적 증가는 앞으로 100년 후에는 전체 인구의 80%이상을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태를 기대할 만큼 놀라운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인구가 25%에서 80%가 된다고 해서 우리 나라가 자유와 평등과 정의가 실현되는 평화롭고 살기 좋은 나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나라가 될 수 있을까? 교회가 개혁되지 않고, 크리스천이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면 한국사회는 변화되지 않을 것이다. 한국사회를 개혁하고 생명의 빛을 비추는 하나교회는 당신을 기다립니다.

1. 하나교회는 초대교회(사도행전2:42-47)와 같이 모든 성도가 서로 사랑과 교제와 나눔이 있는 교회입니다. 즉 하나님도 한 분, 지구도 하나, 진리도 하나,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는 교회입니다. (사도행전4: 32)
2. 매일 예배를 드리는 교회입니다.(히브리서 10:25, 행17:11)
3. 하나교회는 예수님이 주인이신 예수공동체이며, 모든 성도가 영육간에 주림이 없는 풍요로운 삶과 꿈(비전)을 보장하는 교회입니다.
4. 모든 성도가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헌신, 충성하는 교회입니다.(막8:35)
5. 교회 예산(선교, 구제비)을 헌금(십일조)에만 의존하지 않고 교회 직영의 사업체를 두어 성도(신자)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사를 마음껏 발휘하고 자아실현의 기회를 주는 교회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종교와 교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진리와 생명이 있고, 사랑이 있는 교회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본인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를 개척하고자 합니다. 예수님과 복음을 땅끝까지, 세상 끝날까지 함께 전하며 당신을 믿음의 형제, 자매로 모시고 의(義)와 평강(平康)과 희락(喜樂)과 사랑이 넘치는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고저 합니다. 연락바랍니다.

하나 교회 한 태 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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