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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

본문

이사야 52:1~15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봉독한 말씀 가운데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 행하시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희 뒤에 호위하시리니”(사 52:12)

여기서 하나님은 우리 앞에서 행하시며 우리 뒤에서 호위하신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보통 군대에서 사용하는 낱말입니다.
사실 교회는 언제나 그리스도의 군대로 표현되어 왔습니다.
사령관은 평화의 왕이신 그리스도입니다.
목적은 평화의 성취요, 군인들은 평화를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군대는 이 어두움의 세상과 악의 세력과 언제나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아마 이 전쟁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군대로서의 교회, 무장한 교회, 전쟁하는 교회, 정복하는 교회, 승리하는 교회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군대에는 명령과 복종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사령관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군대인 그리스도인을 향하여 거짓이 많은 세상에서 진리를 지키라고 명령하십니다.
부정과 불의가 가득한 사회에서 공의를 행하라고 명령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의와 불법이 함께 할 수 없고, 빛과 어두움이 사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조화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상관할 수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진리를 지키고 공의를 행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 명령에 복종해야 합니다.
또한 주님의 교회가 참되려면, 그리고 교회가 거룩하려면 반드시 무장을 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너무 거짓이 많고, 거룩하지 못한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언제나 신령한 검을 그 손에 쥐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믿는 사람 하나하나는 그리스도의 군사입니다.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의 교회는 군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 앞에 가시며 우리를 지키십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봉독한 성경은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 행하시며, 뒤를 호위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앞에 원수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뒤에는 언제나 위험이 따릅니다. 우리의 적은 우리 뒤를 따라오면서 공격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 행하시며, 뒤를 호위하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그리스도의 군대인 교회는 앞에 있는 원수로부터 하나님이 지켜 주십니다.
하나님은 원수들의 세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뒤에 따라오며 우리를 겨누는 적들에게서도 안전하게 지키십니다.
우리를 해치려는 적이 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문제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앞에서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 뒤에서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군대인 교회는 언제나 안전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손과 하나님 아버지의 손이 지키시기 때문에 그 어느 누구도 건드릴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우리를 지키시므로 주 안에 있는 사람은 언제나 승리합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37절의 말씀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우리가 힘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우리의 대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능력이 많으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을 준비하면서 시편 121편을 묵상 해 보았습니다.
시편 121편은 유명한 시편 중에 하나입니다.
여기서 시인은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는 자”라고 일곱 번씩이나 반복한 것을 봅니다.
과연 하나님은 그 택한 백성을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되 밤으로 낮으로 지키십니다.
물론 이것은 모든 사람을 가리켜 하신 말씀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군대, 하나님의 양에 한해서 특별히 이런 언약을 주신 것입니다.

시편 91편에 보면 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즉, 지극히 높으신 자와 은밀한 교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택함 받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총과 보호의 그늘이 항상 있겠다고 하는 약속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말씀을 들으면서 한 가지 이상하게 생각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앞에서 지켜 주시고 육신과 영혼을 보호해 주신다면 그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보시는 것과 우리가 보는 것이 다르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55장 8절에도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은 언제나 육신을 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영혼을 보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때는 우리 영혼에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육신에 큰 어려움이 오는 때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더 실한 과실을 맺게 하기 위해서 속아낼 때가 있습니다.
그 때는 아프고, 어렵고, 이해하기 힘이 들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로마서 8장 28절의 말씀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위로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실 하나님이 지켜 주시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사람의 눈에 재난으로 보이는 것이 심령에게 축복이 되는 것을 점차 발견하게 됩니다.
지금은 모르나 장차 알게 될 때가 올 것입니다.
더구나 사람은 항상 현재를 보고 미래를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현재와 미래를 같이 보십니다. 앞만 보시는 것이 아니라 뒤도 보십니다.

요셉이 그 형들에게 시기와 미움을 받아서 애굽에 종으로 팔려갈 때 “아, 하나님께서 요셉을 이렇게 지키시는가?”하고 불평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후에 된 일을 가만히 보면 요셉이 애굽에 종으로 팔려 갈 때도 하나님께서 꼭 같이 하시고, 앞에서 뒤에서 지켜 주신 것입니다.
모세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모세가 태어난 지 석 달만에 집에서는 더 키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 당시 바로가 이스라엘 사람 집에서 아들을 낳으면 죽여 버리라는 잔인한 명령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의 부모가 준수한 아들을 갈대 상자에 넣어 나일 강가에 던지게 될 때, 그 마음이 어떠하였겠습니까?
그러나 그 후의 일을 가만히 보면 하나님은 분명히 모세의 앞에서, 그리고 뒤에서 지켜 주셨습니다.

다니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신앙을 따라 살기 위하여 이방의 우상을 섬기지 않으므로 다니엘은 사자 굴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자의 입을 막으셨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풀무에 들어가는 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의 앞에서, 그리고 뒤에서 지키심으로 결국 그들은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언제나 지키십니다.
평안할 때도 지키시고, 어려운 때도 지키십니다.
순경에도 지키시고 역경에도 지키십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지킨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행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자세히 살핀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 대상을 언제나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 택한 백성을 어떻게 지키십니까?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언제나 택한 백성을 살피시고 잊지 아니하신다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어린애를 지키듯이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고 지키십니다.
우리가 괴로워할 때도 지키십니다.
우리가 외로워하고 유혹을 받을 때에도 하나님은 지키시는 것입니다.

한편 “우리 앞에 행하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는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뜻입니다.
시편 23편에서 시편 기자는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목자가 양을 지킬 때 그냥 보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살피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자는 양 앞에 가면서 양을 인도합니다.
인도할 때는 푸른 초장으로만 인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잔잔한 물가로만 인도하는 것도 아닙니다.
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인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확실히 인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는 길은 광야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날 때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낮에도 인도하시고 밤에도 인도하셨습니다.

계속해서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 뒤에서 호위하신다”고 증거합니다.
여기서 ‘호위한다’는 것은 ‘보호한다’는 뜻입니다.
목자가 양을 지키는 것은 양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원수가 올 때는 생명을 내걸고 양을 보호하기 위해서 원수를 물리칩니다.
이리가 다가올 때 목자는 그 이리와 싸워서 물리칩니다.
이처럼 ‘지킨다,’ ‘호위한다’는 말은 이렇게 원수에게서 ‘방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명을 보존하여 준다는 뜻입니다.

시편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신다’는 뜻을 여러 가지로 표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산성이시다․피난처시다․반석이시다․방패시다․구원의 뿔이시다․그늘이시다”

이 모든 표현은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보호하여 주시는가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이에 성경은 이러한 모든 말을 통틀어 하나님께서 우리를 눈동자같이 지키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킨다”는 것은 우리의 필요한 것을 뒤에서 공급하여 주신다는 뜻이 있습니다.
목자가 왜 양을 풀밭으로 인도합니까?
양은 풀을 먹어야 살이 찝니다.
무엇 하러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합니까?
양이 물을 마셔야 자라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이렇게 공급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인도하실 때 불기둥, 구름기둥으로만 인도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배가 고플 때는 만나와 메추라기로, 그리고 생수로 공급하여 주셨습니다.
엘리야가 이세벨에게 쫓겨 광야 로뎀나무 아래 기진맥진하여 쓰러져 있을 때도 하나님께서 떡과 물을 주어 먹고 마셔 힘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믿는 사람들이 괴로운 광야 같은 인생 길을 걸어갈 때에 어떤 때는 우리의 심령이 기갈하여지고, 어떤 때는 우리의 심령이 기진하여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때에 그의 백성에게 생명의 양식과 생명수를 마실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빌립보 4장 19절의 말씀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 영광 가운데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은 단순히 성경의 교훈만이 아닙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모든 성도들의 경험이 이와 같습니다.

가령 아브라함이 우리 앞에 있다 생각하고 물어 보십시오.
“아브라함이여, 과연 당신을 하나님께서 일생 동안 지켜 주셨습니까?”
그러면 아브라함은 분명히 대답할 것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내가 나의 일생을 돌아볼 때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 주셨습니다.”
또 이삭에게 물어 보십시오.
야곱에게, 요셉에게, 모세에게, 다윗에게, 엘리야에게, 엘리사에게, 이사야에게, 예레미야에게, 다니엘에게,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물어 보십시오.
그들은 이구 동성으로 대답할 것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내가 나의 일생을 돌아볼 때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 주셨습니다.”

구약의 성도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신약 시대의 모든 성도들도 같은 대답을 할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물어 보십시오.
요한에게, 야고보에게, 사도 바울에게 물어 보아도 똑같은 대답을 할 것입니다.

신약의 성도들뿐만 아닙니다.
2천년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 과연 참된 신앙 생활을 한 모든 성도들에게 물어 보십시오.
어거스틴, 루터, 칼빈, 요한 웨슬레, 토마스 아켐피스,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분들도 이구 동성으로 대답할 것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내가 지나온 일생을 돌아보면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 주셨습니다”

역사적인 인물까지 갈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신앙 생활을 오늘까지 하신 분에게 물어 보면 그 분들도 똑같은 대답을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교회를 지키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그의 사람들과 함께하십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사 43:1-2)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사 41:9)
“너의 평생에 너를 당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수 1:5)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하느니라”(수 1:9)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은 언제나 승리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교회는 영원히 빛납니다.
교회를 없앨 어떤 힘도 세상에는 없습니다.
물론 일시적으로 악의 세력에 의하여 어려움을 당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일어날 날이 멀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를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성도를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할 때 지금까지 지켜 주시고, 도와 주시고, 인도하여 주시고, 부족함이 없이 공급하여 주시고, 자라게 하신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같이 하시고 지켜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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