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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없이, 값없이 와서 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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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없이, 값없이 와서 사라!
이사야 55:1-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인류에게 주신 유명한 메시지를 읽었습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히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1-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든 사람은 누구나 다 목이 말라 있습니다.
이것을 사모하는 마음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혹은 추구하는 마음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구하고 사모하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의 본색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은 언제나 구하고 사모하기를 쉬지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이나 넉넉한 사람이나, 무식한 사람이나 유식한 사람이나, 권세 없는 이나, 권세 있는 이나 한 가지로 찾고 사모하고 목말라하는 것이 있습니다.

물론 그 목말라하는 것은 사람에 따라 같지 않고,
사람의 처지에 따라 또 그 취미와 성격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어떤 이는 재물을 구하고, 어떤 이는 이성의 사랑을 찾고, 어떤 이는 자식을 구하고 또 어떤 이는 권세와 지위와 영광을 찾습니다.
어떤 이는 재물도 지식도 명예도 다 그만두고 먹어라 마셔라 하고 그 날 그 날의 향락을 찾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말하자면 ‘본능 만족주의자’요, ‘찰라주의자’입니다.
오직 먹는 것과 애욕을 구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이는 지혜도 말고 학문도 말고 명예나 부도 초개같이 여기고 육신의 쾌락도 돌아보지 않고 혹은 시로 미술로 음악으로 예술의 화려한 궁전을 사모합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은 어떤 방면으로든지 간절히 요구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온 마음 온 힘을 다하고 나중에는 목숨까지 바쳐서 바라고 사모하는 것을 찾고 있습니다.
물론 목말라 애타게 찾는다고 해서,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고 해서 다 찾는 것도 얻는 것도 아닙니다.

대부분의 경우 아무리 애타게 찾고 얻으려 해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학생이 푸른 꿈을 품고 열심히 공부를 한다고 해서 다 학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장사하는 사람이 부지런히 장사를 한다고 해서 다 이를 보아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어떤 지위를 목마르게 사모한다고 해서 그 지위를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또 혹시 바라는 것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에게 참 해갈을 주지는 못합니다.
참 만족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돈을 많이 벌기 원하는 사람이 어떻게 사업이 잘 되어서 많은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는 부족함이 없을까요?
자기가 이룬 부를 인하여 만족할까요? 다시 목마르지 아니할까요?
뿐만 아니라 여기 어떤 사람이 깊은 학문을 닦아 가지고,
혹은 예술의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예술의 깊은 경지에 들어가고,
혹은 명예와 지위, 권세와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세상에서 흔히 성공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얻은 사람들은 과연 행복할까요?
자기가 이룬 학문의 성취와 명예와 지위를 인하여 만족할까요?
이제는 목말라 하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거기에도 참 만족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바다 속에 있는 풀이 밖에서 들여다 볼 때는 싱싱하고 아름다운데 막상 그것을 바다 속에 들어가 뜯어내어 놓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니더라.”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의 것을 얻고자 할 때 얻고 나면 허무해 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문자 그대로 광야와 같습니다.
목마른 인생이 허덕이며 걸어가고 있습니다.
저 멀리 바라보이는 신기루에 속아서 호수인 줄로만 알고 달리고 또 달려도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쓰러지는 인생이 얼마나 많습니까? 혹 물을 한 모금 마셨지만 오히려 더 목이 말라 애타하는 인생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한 가지를 얻으면 또 한 가지가 부족하여 고통스러워합니다.
세상에서 세상의 욕망을 다 채운다 해도 그래도 우리는 번민과 비애와 고통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괴테의 마지막 말이 무엇이었습니까?
“나의 전 생애 중에 내가 진정으로 즐거웠던 날은 하루도 없었다”였습니다.

나폴레옹이 마지막 센트헤레나 섬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탄식한 말이 무엇이었습니까?
“칼과 권세 위에 세웠던 나의 제국이 이제 다 어디 갔느냐?”였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선지자 이사야는 이와 같은 인생의 깊은 면을 보았기 때문에 목말라 애타하고 있는 인생들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그리고 포도주와 젖을 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에서 말씀한 세 가지는 목이 마른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입니다.
‘물’은 우리의 기운을 새롭게 하고 더러운 것을 깨끗케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생명의 물’을 마시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의 물은 마시면 다시 목마르지마는 주님께서 주시는 물은 다시 목마르지 않도록 배에서 생수가 솟아난다고 하는 언제나 만족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포도주’는 기쁨과 위로를 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이 충만할 때 마음속에는 기쁨으로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젖’은 사람의 몸에 필요한 모든 영양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인간 심령에 참 만족을 줄 수 있는 복음으로 상징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갈을 주지 못하고 배부르게 못하는 것 즉 참된 만족을 주지 못하는 것을 위하여 수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 이사야는 말씀합니다.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우리의 몸이 마실 물이 없이 살 수 없습니다.
밥은 며칠 굶어도 살 수 있지만 물을 마시지 아니하면 살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혼은 세상의 것이 없이는 살 수 있어도 하나님 없이는 참 만족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심령의 갈급함을 채워주실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도 우리의 심령 깊은 곳을 향하여 쟁쟁하게 들려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영혼의 갈급함을 해갈하기 위해서,
참 만족한 생활을 위해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구했지만 종래 성공하지 못하고,
결국 하나님께 돌아와 회개하고 예수를 우리의 구주로 영접할 때 참 만족을 얻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영혼의 만족을 주지 못하는 단순한 세상적인 것의 번영은 오히려 고통만 더할 뿐입니다.
참 만족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는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습니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 잔이 넘치나입니다.”

이것은 시편 기자인 다윗만의 고백은 아닙니다.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기만 하면 이 행복, 이 만족을 약속하셨습니다.
다음은 어거스틴의 참회록 첫 페이지에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얻을 때까지 다른 데서 안식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겉으로 보면 물질입니다.
생리적으로 보면 짐승과 별로 다른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속에는 불멸의 영혼이 있어서 이 영혼은 결국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때까지 참 만족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끝으로 참 만족은 값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성경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세 번째 중요한 진리를 말씀해줍니다.
“너희는 돈 없이, 값없이 와서 …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은, 그 큰 구원은 값이 없습니다.
정가가 없습니다. 돈을 내고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최대의 선물, 영혼의 구원, 참된 만족과 행복은 나의 행한 의로 값을 지불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적인 명성이 그것을 얻는데 도움이 되지도 못합니다.
이사야의 말씀대로 돈 없이, 값없이 주시는 선물인 것입니다.

사실 가장 귀한 것은 값을 정할 수가 없습니다.
가령 신선한 공기는 값이 없습니다.
시원한 물은 값이 없습니다.
아름다운 태양 빛도 값이 없습니다.
사랑도, 믿음도, 소망도 공짜입니다. 값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너무 귀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가장 귀한 것은 돈으로 살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사라고 합니까?
산다는 것은 자기 것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면 믿음도 내 믿음, 소망도 내 소망, 사랑도 내 사랑, 주님도 내 주님, 하나님도 내 하나님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돈 없이, 값없이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이에 대하여 오늘 성경은 “와서”라고 말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돈 없이, 값없이 주님께 빈손 들고, 무엇 가지고 말고, 몸이 아니라 마음이 오면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면 내 것이 됩니다.

계속해서 성경은 증거합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목마른 사람은 누구든지 나아오기만 하면 얼마든지 주시기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에 성경은 “여호와께 돌아 오라. 하나님께로 돌아 오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인종의 차별이 없습니다.
유무식(有無識)의 상관이 없습니다.
빈부를 가리지 아니합니다.
누구든지 나아오기만 하면 이 귀한 선물을 돈 없이, 값없이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에 가셨을 때 두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하나는 삭개오란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바디메오란 사람이었습니다.
삭개오는 부자요,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디메오는 소경이요, 거지요, 아무런 지위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두 사람을 보실 때 사람들이 보는 것처럼 부자와 거지로 보신 것이 아닙니다.
인생에 환멸을 느끼고 있는 가련한 인간들을 보셨습니다.
속 사람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두 사람에게 아낌없이 은혜를 부어 주시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다 만족을 얻고 기쁨 충만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사회적으로 최고의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만 은혜를 주신다면 우리는 다 불행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돈 많은 사람, 지식 많은 사람에게만 은혜를 주신다면 이 선물을 받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돈으로 값을 내라면 낼 수 있는 사람이 몇 분이나 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은 돈 없이, 값없이 그저 입니다.
아무 공로 없이 두 손들고 나아오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이 은혜의 선물 받지 않으시겠습니까?
이 은혜의 선물을 내 부모 형제와 이웃에게 전하지 않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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