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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열쇠를 주리니-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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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천국의 열쇠를 주리니         성 경: 마16:13-20절
  열쇠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내 집에 왔는데 문이 잠겨져 있고 열쇠마저 없다면 참으로 난감할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 안에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피곤한데 다리를 쭉 뻗고 누울 수도 없습니다. 여름에 목마르고 더운데 들어가서 시원한 물을 마실 수도 없고 정말 답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집안에 들어있는 것은 다 내 것인데 문은 잠겨 있고 열쇠가 없다면 하나도 내 것이 될 수가 없고 내가 누릴 수도 없는 것입니다.   열쇠의 기능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문을 닫아 안에 있는 것을 보호하는 것이고, 다른 기능은 문을 열어서 그 안에 있는 것들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모든 복을 주셨습니다. 에베소서1장 3절에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셨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단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전부 아낌없이 주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하늘 문을 여는 열쇠가 무엇일까요? 또한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우리에게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하신 열쇠가 무엇일까요?
        첫째로  예수님의 이름이 열쇠이다.   영어에 master key라는 것이 있는데 첫 번째 뜻은 ‘여러 자물쇠를 끄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열쇠’라는 의미이고 두 번째 뜻은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는 열쇠’라는 뜻입니다.  또 우리나라 말에도 이와 같은 기능을 가진 열쇠를 가리켜 ‘만능열쇠’라고 하는데 만능열쇠야 말로  ‘무엇이든지 열 수 있는 열쇠’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우리의 ‘마스터 키’가 되십니다. 어떤 막혀 있는 것도, 굳게 닫혀 있는 것도 끄르게 하는 마스터 키이십니다. 또 어떤 어려운 문제도 해결하시는 마스터 키이십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의 이름은 무엇이든지 열게 하는 만능열쇠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이 세상의 마스터 키가 여러 자물쇠를 끄르게 하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게 하는 열쇠라고 하고 만능 열쇠가 무엇이든지 열수 있는 열쇠라고 한다면 예수님의 이름이 바로 ‘천국열쇠’ 즉 ‘하늘왕국의 열쇠’인 것입니다.  성경 빌립보서2장 9-11절에는 예수님의 이름이 얼마나 위대한 이름인가를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요한복음14장 13,14절에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기를 당신의 이름이 ‘천국열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문제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아들로 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반드시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스터 키’이십니다. 우리의 ‘만능열쇠’가 되십니다. 또한 ‘천국열쇠’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흑암의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되셨습니다. 소경되고 눈먼 자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키셨습니다. 절망을 당한 자가 소망을 갖게 되고 간음 중에 잡힌 여자도 예수님 앞에서는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되었습니다. 아들이 죽어 슬픔을 억제 할 수 없던 여인에게 살려서 주었습니다. 12년 동안 혈루병으로 고통하던 여인이, 38년간 중풍병으로 고통하던 자가, 태어나면서부터 평생을 눈을 뜨지 못하던 자가 주님을 만나 치료되고 어떤 문제든지 해결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사용해야 합니다.   열쇠만 있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열쇠를 사용해야 되듯이 또한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사용할 때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경 사도행전19장에 보면 바울이 에베소에 있을 때에 예수님을 믿지도 않던 스와게 제사장의 일곱 아들이 바울의 흉내를 내면서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의 이름을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니 귀신아 물러가라’고 했더니 그 귀신들린 사람 속에 있던 귀신이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아는데 너희는 누구들이냐?” 라며 두 사람에게 뛰어올라 억제하여 이기니 그들이 상처를 입고 벗은 몸으로 줄행랑 쳤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반드시 예수님의 이름은 믿고 사용할 때 능력이 됩니다. 마가복음16장 17,18절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새 방언을 말하게 되고, 뱀과 마귀와 귀신의 세력을 내어 쫒고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로움을 받지 아니하고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어 낫게 하는 놀라운 역사도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사용할 때 일어나신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둘째로 말이 열쇠입니다.   말에는 가장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말은 하늘 문을 열게 하는 열쇠입니다. 우리의 말에 하늘 문이 열리게 할 수도 있고, 하늘 문을 닫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의 죽고 사는 권세가 혀에 달려 있나니 혀를 쓰기를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1. 신앙고백은 천국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베드로가 예수님께로부터 ‘천국열쇠’를 받게 되었을 때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하는 신앙고백이 있은 후에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구원하소서’이 고백만 해도 천국이 여러분의 영혼을 뚫고 들어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과 몸을 천국으로 바꾸어 놓으십니다. 요한계시록3장 20절에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고 주님이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또 고백하기를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습니다’라고 시인하게 되면 천국의 운명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입에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시인하며 부인하는 그 말로 인하여 천국과 지옥의 운명이 갈라진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로마서10장 9,10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 한편에 있는 강도는 예수님을 끝까지 저주했으나 다른 한 편의 강도는 입으로 예수님을 고백합니다. ‘주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라는 고백에 예수님께로부터 천국에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을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2. 축복하는 말이 하늘 문을 열게 하는 열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의 삶과 가정과 자녀들에게 복이 임하고 남은 생애 동안에 좋은 날 보기를 원하십니까? 그것의 모든 결정은 여러분의 입의 말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열쇠와 같습니다. 전에서 말씀드렸듯이 열쇠의 역할은 두 가지인데 ‘문을 열기도 하고 닫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입의 말도 열쇠와 같아서 ‘하늘의 문을 열기도 하고 모든 좋은 것이 오는 것’을 닫아버리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시편34편 12,13절에 “생명을 사모하고 장수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궤사한 말에서 금할지어다"라고 하셨고, 잠언11장 25절에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고 하셨습니다. 남을 축복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내가 말로 심는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남이 나에게 저주의 말을 뿌린다고 해서 같이 대응한다고 한다면 결국에는 그 결과를 나도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누가복음6장 28절에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축복하는 언어생활을 할 때 성령님이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를 가지고 오십니다. 남을 축복하고 감사하는 말을 하고 찬양의 말을 하고 입술에서 진리의 말씀이 끊임없이 풍성할 때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한량없이 부어주시고 여러분의 삶을 천국의 삶으로 바꾸어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3장 34절에도 분명히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우리의 삶의 전반에 걸쳐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는 삶을 살아갈 때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로마서14장 17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또 잘못된 언어생활은 자기의 생애 전체를 태워버릴 수 있는 지옥불이라고 했습니다. 야고보서3장 5,6절에 “이와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천국과 지옥의 삶이 바로 우리 입에서 나오는 언어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하면 성령님이 역사하시고 원망하면 마귀가 옵니다. 늘 감사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말을 함으로 성령님과 끊임없이 동행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3. 간절한 기도는 하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성경 야고보서5장 17,18절에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능력의 선지자 엘리야도 우리와 다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간절히 기도하면 하늘 문이 3년 반 동안 닫히기도 했고, 그가 간절히 기도한 즉 3년 반 동안 닫혔던 하늘 문이 열려 비를 내리고 열매를 맺게 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간절한 기도가 여러분을 절망과 좌절로부터 묶고 있는 어두움의 세력과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입니다. 지금은 기도할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깨어서 기도할 때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예레미야29장 11-13절에 “나 야웨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 하면 우리를 찾아와 만나주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4. 말의 선포에 하늘 문이 열립니다.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믿고 담대히 선포하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조용기 목사님도 울며 기도할 때보다 선포할 때 훨씬 더 많은 역사가 일어났더라고 증언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마가복음11장 23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그 문제를 향하여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가지고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삼킬 듯한 태풍을 향해 ‘잠잠하라’고 선포하시자 잠잠해졌습니다. 또 귀신들린 아들을 향해서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고 선포하시자 그렇게 되었습니다. 죽은 나인성의 과부의 아들을 향해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선포하시자 죽은 청년이 일어나고 죽은지 4일이나 되어 썩은 나사로를 향해 ‘나사로야 나오라’고 선포하시자 그렇게 되었습니다.   에스겔37장에는 마른 뼈와 흩어진 절망적인 뼈를 향해 하나님을 대신하여 선포할 때 뼈가 맞아들어 붙고, 힘줄이 오르고, 살이 덮이고 가죽이 덮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방에서 생기야 불어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 살게하라’고 선포하자 진짜로 생기의 성령이 불어와서 그들이 살아나게 되고 일어서게 되는데 극히 큰 군대를 이루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아무리 환경이 어렵고 절망적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희망을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절망적이고 죽게 되었을지라도 부정적이고 불신앙의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성경 열왕기하7장에 보면 북이스라엘에 얼마나 극심한 흉년이 들었든지 심지어 자기의 자식을 삶아 먹을 지경이 되었고 모든 상황은 절망적이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내일 이맘 때에 야웨 하나님께서 한 세겔의 돈을 가지고 밀가루 7.3리터를 또 한 세겔을 가지고 보리 15리터를 사게 되리라고 하셨습니다’라고 했을 때 국왕의 오른팔과 같은 장관이 말합니다. “야웨 하나님께서 하늘의 문을 여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라며 믿지 않습니다. 그러자 엘리사가 말합니다. ‘네 눈으로는 그 기적을 볼 것이나 그러나 그것을 네가 먹지 못할 것이다’라고 했는데 다음날 기적으로 곡식이 생겨 곡식을 가지러 가는데 성문을 지키다가 서로 나가려는 백성들에게 밟혀 죽게 되었던 것입니다.                                                  셋째로 용서하는 것이 열쇠이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감옥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감옥이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감옥이 있습니다. 감옥의 기능은 사람을 옭아매고 가두어 두고 인생을 고통스럽게 하는 곳입니다. 눈에 보이는 철창의 감옥이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창살 없는 감옥이 있습니다.   철창의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도 불행하지만 더 불행한 것은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 빌립보 감옥에 갇혔지만 거기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 기도하며 감옥에 갇히지 않는 것처럼 살았고 로마의 감옥에서도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많은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혀서 스스로 고통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람을 보이지 않게 하는 감옥에 가두는 것이 바로 ‘미움’입니다. 이 미움은 스스로를 창살 없는 감옥에 가두어버리고 스스로를 불행하게 할 뿐만 아니라, 자기의 가족들과 그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 사람의 인생을 파멸로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이 감옥에서 탈출하는 것은 오직 ‘용서’라는 열쇠를 사용할 때인 것입니다.   용서는 남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직접적으로는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미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창살 없는 감옥에서 나올 수 없게 할 뿐만 아니라 하늘의 문을 닫아버리게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문을 닫아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문이 열리게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용서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을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서 모든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용서하는 것이 내가 사는 길입니다. 용서할 때 하늘의 문이 열립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고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늘 함께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18장에 일만 달란트 지금으로 치면 7000억이 넘는 빚진 자가 있어 왕이 그 빚을 다 탕감해 주었는데 이 사람이 길을 가다 자기에게 100데나리온 약700-1천만원 빚진 자가 빚을 갚지 않자 감옥에 넣어버리고 맙니다. 이 소식이 왕의 귀에 들어가자 왕이 그 사람을 감옥에 집어 넣으며 말하기를 ‘네가 빌기에 네 빚을 다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그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냐?’라며 그를 감옥에 가두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결론의 말씀이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요셉은 형제들로부터 인신매매를 당하게 되고 강간치사범이라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갑니다. 요셉이 그들을 용서하지 않고 복수의 칼을 갈고만 있었더라고 한다면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히고 술주정뱅이가 되었던지 분노의 한을 품고 살다가 인생을 마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다 용서해 버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그가 무엇을 하든지 형통케 되고 존귀케 되었던 것입니다.   (순복음해남교회 송태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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