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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1:24-26 빈집의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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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11:24-26 빈집의 위험 예수님 없는 집은 빈 집입니다. / 교회 다니는 것 - 선을 행하려는 의지 없는 물(성령)없는 집은 빈 집입니다. / 봉사하는 것 - 성령 없이 일하는 것 기도 없는 집은 빈 집입니다. / 직분 가진 것 - 하나님과 교제 없는 직분 
  얼마 전 저희 집에 도둑이 들었습니다. 월요일에 저는 공부를 하러 갔었고 아내는 잠깐 목욕을 하러 간 사이 그것도 대낮에 아주 담대하게 4시 되는 시간에 집에 들어와서 집안을 온통 뒤집어 놓았습니다. 평상시에 우리 집은 도둑놈이 와도 가져갈 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때로는 문을 열어두고 다니기도 했는데 그 날은 문을 잠가두었는데도 자물쇠를 부수고 집안을 온통 뒤집어 놓고 패물이라고는 결혼반지로 남겨둔 것과 십자가 금 뺏지 그 외에 돈 몇 푼 가져갈 만한 것은 몽땅 가져가고 말았습니다.   도둑을 맞고 나서 그렇게 잃어버릴 것 같으면 진작 그것마저 헌금을 하걸 하는 마음에 남편이라는 사람은 하는 소리가 그러기에 진작 건축헌금으로 하나님께 드리지 왜 놔두었느냐고 핀잔이나 하고 있으니. 여자하고 남자마음이 다른 것이 결혼하고 나서 선물하나 제대로 해준 것이 없어서 그것이 전부다 싶으니까 집사람은 비싸지도 않은 것이지만 잘 보관하고 있었는데 그런 소리하니 나름대로 얼마나 속이 상했겠습니까? 아마 도둑맞은 것 보다 그것이 더 서운 했는지도 모르지요. 도둑을 맞고 나서 그래도 마음엔 돈이 생기면 결혼한지 이제 20년이나 되었는데 반지 하나라도 다시 선물을 해 주어야 되겠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막상도둑을 맞고 나니 기분이 얼마나 나쁜지 집을 비워두어도 정말 조심 해야겠다 하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부서진 키 뭉치를 새것으로 바꾸었습니다.   도둑을 맞아본 적이 있습니까? 기뿐이 아주 나쁩니다. 그런데 도둑이 아니라 떼강도가 들어와 집을 점령하고 있다고 생각을 해보십시오. 요즘 쩐의 전쟁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더러는 채무를 진 사람들을 보십시오. 악덕 채권자들은 떼강도처럼 집에 들어와 돈을 줄때까지 가지 않겠다고 집을 점령하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떼강도 같은 사람들이 집에 들어와 점령을 하고 있으면 정말 괴롭습니다.   빈집은 얼마나 위험한지 예수님은 성령님은 인격적이시라 들어오십시오 하고 초청해야 들어오시는데 더러운 마귀들과 귀신들은 초청하지 않아도 몰래 들어오고 거부해도 강제로 들어오는 도둑과 같이 떼강도 같은 아주 못된 것들입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의 세계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는 현상세계 외에 현상세계 배후에서 현상세계를 조종하고 움직이는 영적인 세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세계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 존재합니다. 이 세계를 지배하고 통치하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인간세계를 끊임없이 유혹하는 사탄과 그의 졸개들인 마귀가 존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성경에 계시되어 있는 부분만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인간을 영적인 존재로 창조하셨기에 하나님은 성경에 기록된 교리로 존재로 영이시며,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실 뿐만 아니라 신실하시고 의롭고 거룩하신 분으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만나고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마귀 역시 존재하고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속해 있지 않으면 마귀에게 속해 있습니다. 하나님과 마귀의 존재가 신비적이고 환타지(fantasy)한 세계를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이 사실을 믿지 않으면 안됩니다.   실제로 우리는 스스로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던지 하나님의 지배를 받으며 살든지, 아니면 자기도 모르게 사탄의 지배를 받으며 살든지 두 영역 가운데 하나의 지배를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정신 그리고 행동에는 두가지 흐름이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영적 흐름과 다른 하나는 사단을 향한 더러운 악한 영적 흐름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이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사탄의 나라라는 두 흐름 사이에서 어느 것을 선택 할 것인지 치열한 선택의 싸움을 하고 있는데 이를 가리켜 영적인 전쟁이라고 부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가리켜 "공중의 권세잡은 자, 곧 지금도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엡2:2)에 따라 살아간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세 번씩이나 사탄이 이 세상의 '지배자'라고 하셨습니다(요12:31; 14:30; 16:11). 그리고 사도행전 26:17-18에 보면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신 목적을 설명하면서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세계와 마귀가 통치하는 세계를 이원화하여 설명하였습니다. "이스라엘과 이방인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이다."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영적인 세계를 올바르게 이해할 때 어떻게 이 영적인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본문의 주제는 하나님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사탄을 따를 것인가? 어느 한편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립지역은 없다는 것입니다. 중립지역을 빈집이라고 말하고 그 빈집은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빈 집은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던지 아니면 사단이 주인이 되던지 하게 될 것인데 하나님이 주인이 되지 못하면 더러운 귀신들 떼강도 같은 귀신이 들어와서 형편이 전보다 더 나빠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악한 영에게 사로잡힌 벙어리 귀신들린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에게서 귀신을 내어 쫓음으로 치료하셨습니다. 그래서 정상적으로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현상을 보고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사람 참 신기하다. 어떻게 귀신을 내어 좇아내지? 아마도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빌어서 쫓아내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논리의 부당성을 지적하였습니다.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곧 나라가 망할 것이고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역시 그 가정은 온전히 설 수 없고 무너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벙어리 귀신이 들린 사람을 고쳤는데, 귀신의 왕인 바알세불의 힘을 의지하여 고쳤다면 귀신의 세계가 무너지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알세불의 힘을 빌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으로 귀신을 쫓아내었다고 하셨습니다(눅11:20).     그리고 예수님은 벙어리 귀신을 쫓아내신 이 사건을 배경으로 하나님께 속할 것이냐, 아니면 귀신에게 속할 것인지를, 하나님께 속한다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귀신에게 속해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에게 속해 있습니까? 당연히 하나님께 속해 있다고 생각하시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속해 있다면 그 증거를 보여줄 수 있겠습니까? 저는 저 자신이나 여러분의 말과 행동에 나타난 현상과 그 배후를 볼 때 귀신에게 속한 자가 의외로 더러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귀신에게 속할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에게 속해야 할 것인지 누구나 알 수 있는 상식에 속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 논의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1:21-22을 보면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더 강한 자가 와서 저를 이길 때에는 저의 믿던 무장을 빼앗고 저의 재물을 나누느니라." 어떤 사람이 호신술이나 보디가드를 많이 거느리고 있거나 정치적인 권력이나 돈이나 총으로 무장해 있을 때 그 소유와 지위가 안전합니다. 그러나 만약에 더 강한 자나 나타나 그와 싸워서 이길 때에는 믿었던 권력이나 돈을 빼앗기고 심지어 생명까지 잃게 됩니다.   예수님이 왜 이 말씀을 하셨습니까? 귀신이 어떤 사람을 사로잡고 벙어리가 되게 하여 고통스럽게 하였습니다. 귀신이 그 사람을 꽉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귀신을 쫓아내었습니다. 그러면 악한 영인 귀신이 셀까요? 아니면 예수님이 셀까요? 예수님이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예수님은 악한 영인 귀신보다 강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에 줄을 서야 할까요? 예수님입니까? 아니면 사탄입니까? 아마도 다 마음속으로 예수님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때에 예수님에게 속해 있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아주 의미있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1:23을 보면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이 말씀은 주님을 따르는 일에 보다 적극적인 성격을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반대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더 적극적으로 주님과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의도적으로 주님을 지지하고 따르지 아니하는 자는 주님을 반대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더 적극적으로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도 주님이 양을 치거나 모으는 일, 직접적인 표현으로 바꾸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 나라로 불러 모으는 일에 참여하지 않으면 주님을 반대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인도하고 양육하는 교회의 사역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자가 아니면 교회를 분열시키고 양들을 흩어버리는 자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우리는 주님이 말씀하고 있는 위험한 빈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는 집입니다. 우리의 육체는 정신의 집입니다. 정신은 마음은 영의 집입니다. 그런데 그 영에는 반드시 주인이 있습니다. 그 주인이 하나님이든지 아니면 더러운 귀신이든지 그 집에 거하는 주인이 있습니다. 그 집은 계속 영적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강한자가 아예 그 집을 차지하고 있으면 약한자는 감히 그 집을 빼앗을 수가 없습니다.   사도바울을 이것을 표현하기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 내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생각하고 선을 따르려하지만 나를 사로잡아가는 악한 것을 본다고 탄식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그를 이기게 하시고 그를 강하게 하셔서 승리할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우선은 그 집이 얼마나 큰 집이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집이 비어있는지 아니면 누군가 살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어떤 집이 빈집이고 어떤 집이 귀신들이 살고 있는 집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어디에 속해 있는지 내가 어떻게 해야 그 집을 다시 하나님의 집으로 돌려 드릴 수있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빈집의 첫째는 교회는 다니고 있지만 예수님이 계시지 않은 집은 빈집입니다.   더러는 사람들은 열심히 교회에 다닙니다. 그러나 통계학자이자 목회자인 조지 바너에 의하면 그들 중의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벤치워머라고 합니다. 이 말은 벤치를 따뜻하게 데우고 가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미국교회의 벤치 워머가 90-95%나 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한국교회에 교회의 의자만 따뜻하게 데우고 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 가운데 오늘도 앉아있는 의자만 데우고 가는 사람들이 왜 없겠습니까?   예배에 나왔지만 예배의 감사도 없고 예배의 감격도 없고 예배가운데 하나님을 만남도 없고 그렇다면 그 사람은 벤치워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빈집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다녀도 그 영혼 속에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에 그는 빈집입니다. 오늘도 빈집인 사람들은 이교회 저 교회로 옮겨 다닙니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의 만족이 없는 이유는 영혼의 주인이 없는 빈집으로 다니기 때문입니다.   케이스 밀러가 쓴 주님께서 우리 교회에 오신다면 이라는 책을 보면 예수님이 게이트를 데리고 어떤 교회에 찾아가십니다. 그 교회는 아름다운 스텐드그라스로 잘되어 있는 교회입니다. 사람들은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그리는 예배를 보시면서 부르는 찬양을 보면서 장성곡을 부르는 것 같은 찬양을 부르는 이유를 두 가지로 이야기 하십니다. 하나는 그들이 전혀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며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죄 사함을 받고 새로운 소망을 품어야 하는데 죄 사함을 위한 죄를 고백하지 않고 의례적으로 죄를 고백하고 있기 때문에 감사가 없기 때문이며 또 다른 하나는 기쁘게 나를 경배하는 일 보다도 다른 사람들에게 점잖고 고상한 사람으로 보는데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기에 오히려 열심으로 찬송을 부르는 사람을 향한 눈을 흘리며 불쾌감을 보인다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이 예수님이 계십니까? 예배에 감사가 있습니까? 은혜가 있습니까? 감격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만나는 만남이 있습니까? 아니면 형식만 있습니까? 형식만 남아 있다면 그는 이미 빈집입니다. 멍하니 앉아있는 커다란 빈 집에 불과합니다.      둘째는 물 없는 사람 성령없는 사람은 빈집입니다.   성령없는 신앙생활은 빈집입니다. 더러운 귀신이 나가서 이리저리 물 없는 곳으로 자기가 들어갈 곳을 찾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들어갈 곳을 찾지 못하니까 다시 예 사람에게 와보지 청소는 되어있는데 물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는 곳에 일곱 귀신을 데리고 들어오게 됩니다.  도덕적인 종교적인 교회 생활을 하고 성령없이 일하는 사람은 다 빈집입니다. 교회 봉사를 해도 자기 힘으로 자기 힘으로 하는 사람은 빈집입니다. 그 빈집에 더러운 귀신이 들어오면 이제는 자기를 내세우기 위해서 일합니다. 일을 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일을 만드는 자들이 됩니다. 모든 일들이 하나님에게 유익한 것이 아니라 마귀에게 유익한 것이 되기 시작하면 하나님의 일에 방해꾼이 되기 시작하면 그 집의 주인이 바뀐 것입니다.
  셋째로 빈집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없는 교회의 직분들입니다.   교회의 직분들은 집과 같습니다. 그 직분의 집은 무엇인가를 위하여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들이 거창한 직분만 가지고 있을 뿐이지 하나님과의 교제는 없습니다. 교회의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고 항존직 직분자가 되고 교회의 부장이 되고 무슨 위원회의 위원장이 되고 성가대의 대장이 되고 구역장 목자가 되고 여전도회 남선교회 회장이 되어도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은 다 빈집니다.     직분은 집일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기도하지 않는 교제하지 않는 직분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커다란 직분일수록 흉물스런 텅 빈 빈 집일뿐입니다. 교회의 권사가 되어서 금요기도회 한번 안 나오는 권사는 빈집입니다. 권사는 기도하라고 교회에서 세워진 것인데 기도하지 않는 권사는 빈집입니다. 항존직 직분자가 교회의 남녀선교회 회장이 부장이 되어도 일 년에 새벽 예배 한번 안 나오는 사람들은 분명히 빈집입니다. 그래도 빈 집이면 다행입니다. 왜냐 아직은 더러운 떼강도 같은 일곱 귀신들이 들어가 자리를 잡고 있지 않으니까? 마음으로는 나가야지 기도해야하는데 하는 영적 갈등을 격고 있는 영적 전쟁중이니까?   그러나 더러운 떼강도 같은 귀신이 들어가고 나면 그의 상황은 교회의 방해꾼이 됩니다. 자기의 직분을 내세워 교회를 좌지우지 하려고 하고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 없는 일에 고집을 부리고 당을 짖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악한 일을 꾀하고 온갖 더러운 일을 자행합니다.   정신 차리십시오 기도하지 않는 빈집들이여. 이런 설교를 들으면서 내가 죄인 이구나 잘 해야지 하는 사람은 아직 영적 싸움에 하나님이 주인 사람이고, 늘 하는 설교지 오늘도 혼 좀 나고 가네 하는 사람은 빈집인데, 기분 나쁜 사람, 기분이 팍 상하는 사람은 귀신들린 사람입니다. 귀신의 역사가 있는 사람입니다. 귀신은 자기 정체가 드러나면 기분 나빠 합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   얼마나 큰 집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은 주인이 결정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매우 위험합니다. 외형주의 형식주의 감투주의 율법주의의 신앙생활은 빈집입니다. 오늘날 덩그러니 큰 집만 차지하고 있는 신앙생활은 결코 옳지 않습니다. 큰 감투의 큰 집을 가지고 있지만 빈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들의 위기는 주인을 누구로 받아들이느냐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의 집에 지금 그리스도께서 거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빈집으로 비워두고 있습니까? 이것은 참으로 위험합니다. 예전에 그 집에서 예수 믿을 때 쫓겨나갔던 마귀가 더 악한 마귀를 데리고 들어와 처참한 상태로 바꿀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사시느냐, 아니면 마귀가 사느냐? 이 외에 다른 선택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마음의 집을 주님이 주인이 되어 성령이 거하시게 하며, 그 분에게 복종하고, 그 분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여러분의 몸과 마음과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며 헌신해야합니다. 아니면 그냥 빈집이 되어 얼마가지 않아 마귀들의 소굴이 되어 마귀에게 우리의 삶이 이끌어가 마지막에는 멸망으로 길로 가게 됩니다.    로버트 멍어(Robert B. Munger)가 쓴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이라는 책을  보십시오. 여러분의 집에 안방이 있고, 주방이 있고, 거실이 있고, 서재가 있는 것처럼 여러분의 마음에도 여러 방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서재실에 들어가 보셨습니다. 그 서재에는 정결한 눈으로는 차마 볼 수 없는 책들이 있었고, 그리스도인으로 관심을 가지고 읽을 필요가 없는 잡지들이 탁자에 놓여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집에 들어가셔서 그 책들을 다 치우시고 성경을 놓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서재에 예수님의 초상화를 걸어두셨습니다. 그러자 그리스도께서 그 서재에 임재하시고 불결하고 잘못된 상념을 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은 식욕과 욕구의 방인 주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 방에 들어가신 예수님은 오늘 메뉴가 뭐지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 때에 "예, 제가 좋아하는 메뉴는 돈과 학위와 증권 등이 주식이고, 명성과 행운에 관한 기사가 반찬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때에 예수님은 "네가 모르는 양식이 있다고 하시면서 그 야망이나 욕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희생하고 봉사하는 것이다. 이 양식은 진정으로 너를 배부르게 할 것이고 만족하게 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그 집에는 자기 혼자만 간직하고 싶었던 방도 있었습니다. 그 방은 친구들과 술집에 가고, 여러 교제모임에 참여하여 자신의 삶을 은밀히 즐기는 방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방을 완전히 바꾸어 주었습니다. 예전에 은밀히 즐기던 술과 도박과 여자와 쾌락이 아니라 진정한 기쁨과 만족과 우정이 있는 방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영접하고 성령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기도생활로 하나님과 교제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더러운 귀신은 내가 원하지 않아도 내 속을 밀고 들어 올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하십시오. 내 안의 더러운 귀신들아 떠나가라. 내 안에 사단의 권세들아 떠나가라.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오늘 이 시간 우리의 마음의 주인이 다시 확실하게 정해지는 시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이냐? 성령님이냐 하나님과의 교제냐? 아니면 사단의 졸개들과의 놀음이냐?    내 안에 채운다는 것이 겨우 예수로 채워진 것이 아니라 돈으로 채워진 빈껍데기뿐이 아닌지 더러운 냄새나는 돈 귀신들로 가득 채워진 것은 아닌지 빈집의 위기가운데 무엇으로 채울지 고민해야 합니다.  세상이냐?  직분이냐? 자기자랑이냐? 껍데기로 살것인가? 세상은 결코 껍데기로 놔두지 않을 것이다 사단은 껍데기로 놔두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졸개로 가득 채워질것이다 더이상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지 말고 이제는 오직 하나님으로 채워야 한다. 예수님으로 채워야 한다 성령님으로 채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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