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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을 가르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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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을 가르치라
신명기 11:18-21; 26-2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가정에 어린 아이가 부주의로 방바닥에 두었던 유리컵을 깼습니다.
이것을 그 어머니가 “너는 눈도 없느냐”고 야단을 칩니다.
그것을 본 아버지는 그것을 치우지 않은 아내를 꾸짖습니다.
옆에서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시어머니가 시끄럽다며 며느리의 평소 게으름을 나무랍니다.
그 날 저녁 그 가정에는 유리컵 하나 때문에 심각한 불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웃집에도 똑같이 어린 아이가 부주의로 방바닥에 두었던 유리컵을 깼습니다.
이것을 본 아이의 어머니와 아버지, 할머니는 한꺼번에 아이에게 달려들더니 다친 곳이 없는 지부터 살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어머니가 깨진 접시를 조심스럽게 치우는데 옆에서 할머니가 말합니다.
“아이가 다치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이니. 이 늙은 것이 집에서 빈둥빈둥 놀면서도 방바닥에 놓인 접시 하나 치우질 못했구나. 얘야, 미안하다.”

이 말을 들은 며느리가 송구스러워 하며 말하는 것입니다.
“아녜요 어머니! 제가 게을러서 그만….”

접시를 깬 아이도 퍽 미안한 듯 말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주의를 했어야 했는데….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이 얼마나 부러운 모습을 담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간은 배우고 가르치기에 인간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6절과 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자녀교육에 대하여 힘주어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 우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이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얼마나 자녀들을 실망시키고 있습니까?
자녀들을 위한답시고 부정입학을 서슴지 않습니다.
일생토록 어디 가서 고개 한번 떳떳이 들고 다닐 수 없도록 절망적인 인간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것이 이 정도인데 드러나지 않은 채 감추어진 일들은 얼마나 많겠습니까?
이렇듯 그릇된 자녀사랑이 우리의 자녀들을 세상에 더없이 부끄러운 사람들로 만들고, 씻을 수 없는 무서운 죄를 범하는 사람들로 만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절대 놓치지 마십시오.
자녀를 실망시키고 실족케 하는 일이 있을 바에는 차라리 연자맷돌을 목에 달고 깊은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낫다고 엄하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교훈을 기억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나무에 가위질을 합니까?
나무에 가위질을 하는 것은 나무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교육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즘 교육에 대하여 교육학이니 교육심리학이니 해서 연구가 꽤나 활발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많은 교육 이론들을 제가 다 알지는 못하지만 ‘교육’을 몇 가지로 정의해본다면 이렇습니다.
첫째는 생물학적 교육이 있습니다.
이는 ‘교육’이 아니라 ‘길들이기 운동’입니다.
한마디로 노예교육입니다.
이러한 교육의 결과는 사람을 훌륭한 도구를 만들어 냅니다.
생산도구를 만드는 것입니다.
단순한 모방을 통한 기술 전수일 뿐입니다.

생물학적 교육은 인간교육이라기보다 한낱 편리한 기구 하나 만드는 수단일 뿐입니다.
길들이기입니다.
옛날 어린아이들은 “너 장차 어떤 사람이 되겠느냐”라고 물어보면 그저 “착한 사람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필요한 사람이 될래요”하고 대답합니다.
대답은 그럴듯한데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 뉘앙스가 이상합니다.
필요하다는 말의 의미가 도대체 무엇이겠습니까?
필요한 사람, 돈 잘 버는 사람이 되겠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필요치 않으면 죽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렇듯 사람이면서 생산의 수단이 되어버리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입니다.
길들이기 운동은 곧 말 잘 듣고 유용한 생산 도구로 훈련시키는 일입니다.
이는 결코 교육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을 비인간화시키는 수단일 뿐입니다.

둘째는 철학적 교육이 있습니다.
이는 생각하는 존재로 양육하는 것입니다.
지성을 주고․지식을 주고․정보를 공급하고․합리주의적 논리성을 키워서 그로 하여금 생각할 줄 아는 존재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성은 상당히 수준이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인간성은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더 못되어졌습니다.

셋째는 우리가 이상적 교육이라고 생각하는바 인격적 교육이 있습니다.
이를 우리는 ‘전인교육’이라고도 합니다.
인간이 가진 본래의 잠재력을 계발해보겠다는 것입니다.
인격적 관계에서 가르쳐보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를 설득해야 할 때에는 논리적으로 설명을 하고, 친절하게 사랑을 베풀어서 가르쳐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인격 교육이란 무엇입니까?
인격교육이란 자녀들이 가지고 있는 지능과 잠재적인 능력을 잘 계발할 수 있도록 서로 협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많은 교육을 해왔는데도 세상은 점점 더 어지러워집니다.
공부도 많이들 하였습니다.
옛날보다 얼마나 많이 압니까?
얼마나 똑똑합니까?
얼마나 유능합니까?
하지만 사람은 점점 못돼가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교육이 손들었다, 도저히 어떻게 해볼 길이 없다”라고 탄식할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에 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가지 교육을 더 추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신학적 교육’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계율’이요 ‘계명’이요 ‘명령’입니다.
“가라, 먹지 말라, 오라, 행하라, 떠나라, 사랑하라”고 하는 명령입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는 등의 십계명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설명이 없습니다.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하면 살리라”고 말씀하실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신학적 교육이란 무엇입니까?
신학적 교육이란?
말씀으로 스스로를 다스리게 하고,
말씀과 성령 안에서 성장하게 하고,
말씀을 심고, 그리고 온유 겸손한 마음으로, 믿음으로 기다리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청교도 교육법에 관한 서적들을 몇 권 읽어보았습니다.
메이플라워(Mayflower)호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에 건너간 청교도가 미국을 건설하였는데, 도대체 이 청교도라고 하는 사람들은 자녀교육을 어떻게 하였을까?
궁금해져서 여러 권의 책들을 읽어보았습니다.
그래서 발견한 그들의 교육철학은 단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그들은 “자녀는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다”고 하는 자세입니다.
철저하게 ‘자녀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는 철학입니다.
내가 낳았으니 내 자식이고,
내 소원을 이루어야 하고,
내게 효도하고, 내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위하여 자식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끔 우리의 가정에서 문제되는 것들이 이런 유입니다.
“내 자식이니 내 마음대로 하겠다. 내가 공부하지 못했으니 너는 공부해야 한다”
내 마음대로 될 줄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처음부터 착각입니다.
자녀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요, 선물이요, 사명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맡아 내가 키워가고 봉사하고 있는 것일 뿐 내 생명도 아니요,
내 생명의 연장도 아니요,
내 소유가 아닌 것입니다.
철저하게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사람일뿐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둘째, 그들은 “자녀에게 있어 선생은 내가 아니고 성경이다”고 하는 정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녀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요, 선물이요, 사명이라면 우리가 무엇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능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가르쳐서 될 것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인 것입니다.

청교도 교육법 중에 아이들에게 거짓말하지 않는 것을 가르칠 때의 교육방법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교육방법은 대부분 “거짓말하지 말아라. 거짓말하면 벌받는다. 맞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청교도 교육법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성경을 가지고 오라 해서 어느 책 몇 장 몇 절을 펴 보라 해서 읽게 합니다.
아이는 “거짓말하지 말라. 어찌하여 성령을 속이느냐”라는 구절을 읽습니다.
“그래, 어떠냐?”
“거짓말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그제야 부모는 “그러면 거짓말하지 말아라”하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내가 명하노니……”가 아닙니다.
내 행복을 위해서도 아닙니다.
성경이 거짓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만이 선생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청교도의 교육입니다.

셋째, 그들은 “자녀에게 있어 교육은 설득이 아니고 계율이요 훈련이다”고 하는 자세입니다.
“교육은 철저한 훈련이다.
생각하는 것, 마음먹은 것, 뜻하는 것, 행하는 것 모두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훈련받는 것이다.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훈련받는 것이다.”
이렇게 가르치는 것이 청교도의 교육철학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금식하셨습니다.
성경은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마 4:2)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40일 금식하시고 배가 고픈 바로 그 시각에도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로 여기에 기독교 교육이 있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때때로 우리는 어떤 처지에 부딪히게 되면 ‘할 수 없지’라고 체념하는 일이 많습니까?
요사이 부의 부정한 축적 문제로 온 나라가 참 시끄럽습니다.
그런데 신문을 보시는 분마다 “아니, 이럴 수가 있나”하고 말하지 않고 “아, 권력 있고 돈 있고 길이 있
으면 나도 하겠다”라고 말합니다.
전부 그 마음입니다.
다 같은 마음이더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40일을 굶으셨습니다.
그 절박한 처지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셨습니다.
말씀이 먼저입니다.
“굶었으니 도둑질해도 된다.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
절대로 안될 말입니다.
어떤 형편에서도 말씀이 먼저입니다.
진리가 먼저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봉독한 성경은 증거합니다.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 마음과 뜻에 두고”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과 뜻에 두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나서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내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내 뜻이 곧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합니까?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항상 보게 하고 항상 느끼게 하고 항상 생각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경건한 분위기 속에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에 대하여 스펄젼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가정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지배될 때에 천사들이 그들과 동거하며 그들의 가족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 때에 천사가 그 일원이 될 것이다.”

경건한 가정 분위기를 먼저 만들어야 교육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가르치라고 합니다.
계속해서 성경은 증거합니다.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는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우리 한번 구체적으로 생각해봅시다.
누가 가르치는 것입니까? 부모님이 가르칩니다.
부모님이 가르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가르칩니까? 가정에서 가르칩니다.
무엇을 가르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칩니다.
어떻게 가르칩니까? 먼저 행하고 본을 보여주며 가르치는 것입니다.

잠든 자녀의 머리맡에 앉아 성경을 읽어주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혹 자녀들이 물을 것입니다.
“어머니, 그 성경말씀 알고 읽는 거예요, 모르고 읽는 거예요?”
그때 여러분은 말씀하십시오.
“성경은 알고 읽는 것이 아니라 읽어야 되니까 읽는 것이란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 알려고 하지 마십시오.
너무 따지려고만 하지 마십시오.
입에서 말씀이 떠나지 않게 읽으십시오.
자녀들로 하여금 잠들 때에는 성경을 듣고 잠들게 하십시오.
일어날 때에는 어머님의 기도소리를 들으면서 눈을 뜨게 하십시오.

어떤 것을 많이 듣느냐에 따라서 사람은 달라집니다.
보고들은 대로 행동합니다.
여러분은 자식에게 무엇을 보이고 무엇을 듣게 하고 싶습니까?
그리고 무엇이 되기를 바랍니까?
여러분이 본을 보여 주며 가르치는 대로 자녀들은 되어 질 것입니다.

계속해서 오늘 성경은 증거합니다.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여호수아 1장 7절로 8절은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미국의 작가 어빙(Irving, washington)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어린이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보금자리는 나의 집이라는 인상을 심어주는 어버이는 훌륭한 어버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자녀들에게 “가정이 가장 따뜻하고 가장 아름다운 보금자리”라고 하는 인상을 심어주었다면
여러분의 자녀교육은 성공한 교육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아이들은 구원을 상속받은 것이 아니라 구원의 약속을 상속받았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자녀들 자신이 믿음을 가지고 지켜 행할 때에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장수하는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형통하는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강대해지는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성공하는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행복할 수 있는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것 뿐이요, 말씀 주도적인 인간이 되는 것뿐입니다.
이것이 바른 길일진대 우리는 자녀들에게 그것 외에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주어서는 안되고, 줄 필요도 없고 무엇을 기대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에 성경은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너는 이 말씀을 강론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능히 당할 사람이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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