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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없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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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없으면
강정태목사 [성경본문] 고전 13:1-3
1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자식입장에서 하는 것과 부모입장에서 하는 것이 있습니다. 자식입장에서 하는 것은 엄밀히 말해서 진정한 효도일 수가 없습니다. 자기중심적인 효도는 부모보다 먼저 자신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자신의 지위와 주변의 환경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효도는 부모입장에서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나 주변의 환경보다 부모를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자녀는 부모를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도 효도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떤 자녀는 부모에게서 재산을 가지고 가면서도 효도하는 자가 있습니다. 이들의 차이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부모의 마음입니다. 부모의 마음을 얻는 자가 진정한 효도를 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유명한 ‘사랑장’입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헬라어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네 가지의 뜻으로 사용됩니다. 남녀 간의 사랑을 표할 때에는 ‘에로스’이고, 가족이나 부모에 대한 사랑을 ‘스트로게’이며, 친구와의 우정이 있는 사랑을 말할 때에는 ‘필리아’라고 하며, 하나님의 사랑 즉 조건 없는 사랑을 ‘아가페’라고 합니다. 에로스나 스트로게, 필리아의 사랑은 조건적인 사랑이지만, 아가페의 사랑은 조건 없는 사랑을 말합니다. 요 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무조건의 사랑, 이것이 오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하나님만의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실천해야하는 사랑의 모델입니다. 그것이 진정 주님께서 기뻐하는 우리의 아름다운 삶이요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교회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누렸던 교회입니다. 특별히 이 교회는 다양한 은사가 많았던 교회로 영성이 풍부했습니다. 방언은 기본이었고, 예언, 투시, 영분별, 병고침, 능력행함 등등의 은사로 영적으로 성숙한 교회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많은 은사를 소유하고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사랑이 부족했습니다. 은사는 사랑이 없으면 생명력을 상실하여 진정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보내어 사랑의 소중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은사는 사랑을 위해 존재합니다.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 예언의 능력,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산을 옮길 만한 믿음과 자신의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헌신하였을 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그것은 울리는 꽹꽈리가 되고, 하나님 앞에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며, 자신에겐 유익을 전혀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에게 은사를 주십니다. 은사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도구로 사용하라고 주신 선물입니다. 이것은 마치 청소를 해야 하는 사람에게 청소도구를 주는 것과 같습니다. 청소도구 없이 일하는 것과 도구로 일하는 것의 차이는 엄청남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은사는 간절히 구하는 자에게도 주시는 것입니다. 은사는 받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방언을 받은 사람은 기도생활을 많이 하라는 것이고, 예언은 교회에 덕을 세우는 일에 사용되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영광이나 자랑을 위해 은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유익이 항상 전제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유익이라 함은 믿음이 연약한 자를 돕고, 지체들을 섬기며, 교회에 덕을 세우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는 다양한 은사를 가지고 있었지만 교회에 덕을 세우기보다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은사가 사용됨을 바울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다양한 은사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은사를 증폭시키는 사랑이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 없는 은사는 자신뿐만 아니라 교회에도 아무런 유익을 줄 수 없습니다. 결국 고린도교회는 분쟁의 소용돌이 휩싸이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다양한 은사를 주어 교회를 부흥케 합니다. 은사를 주신 하나님의 의도는 교회를 온전히 세우는데 있습니다. 교회가 온전히 세워져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사실 은사를 활용함에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은 은사를 주신 하나님이며, 은사를 활용하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이라 함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사랑이라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서 끈이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끈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길은 하나님의 사랑의 끈을 꼭 붙들어야 합니다. 은사의 출발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의 끈을 붙듦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생명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우리가 그 사랑을 은사를 통해 나눌 때에 엄청나게 증폭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14:1절에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을 사모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사를 주신 궁극적인 이유는 자신의 사랑을 모든 사람들에게 부어주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줄 수 있는 길은 사랑을 받은 우리가 그들에게 실천하는 것입니다. 은사는 이들을 더욱 쉽게 마음의 문을 열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결여된 은사는 그들을 주께로 인도하는 일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도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이 결여된 은사는 교회를 유익하게 하기보다 교회 분쟁의 도구로 전락할 것입니다. 실제로 고린도교회가 그랬습니다. 한국의 여러 교회가 은사문제로 아픔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은사는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 존재합니다. 사랑을 가지고 실천하는 자가 최고의 은사를 가진 자입니다. 이 사랑을 가지며 교회와 이웃에게 실천하여 교회를 온전히 세우고, 이웃을 주께로 인도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신실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사랑은 하나님을 닮아가는 도구입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모든 은사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도구로서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져야할 사랑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희생이며 낮아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셨고, 인간이 질 수 있는 최고의 형벌인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사랑이 오늘 우리에게 천국을 소망하고 이 땅에서 천국의 삶을 누리게 합니다. 결국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날마다 입는다는 것은 우리의 존재가 하나님을 향해 닮아 감을 의미합니다.


마5:43-45에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라고 했습니다. 세상이 하는 사랑은 일반적인 사랑입니다. 나를 좋아하고 나와 뜻이 같은 사람만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원수를 사랑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넓은 사랑입니다. 우리가 원수를 사랑할 정도로 사랑의 강도를 높일 때 그것이 이웃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48절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가장 오래 살았던 요한을 가리켜 ‘사랑의 사도’라고 합니다. 원래 요한은 성격이 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을 체험하고 성령을 받은 후 여러 곳에서 복음을 전하며 수많은 핍박과 고난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가 믿음의 사람들에게 보낸 서신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1서4:7-8)고 권면했습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신구약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말했고, 그 사랑을 실제로 실천해 보였습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그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율법의 핵심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닮는다는 것은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의 모습이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원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이 형상은 곧 사랑하는 우리의 마음과 실천하는 우리의 삶입니다. 영생을 사모했던 한 청년에게 주님은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려주면서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눅10:37)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땅에 공기가 없으면 사람은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공기의 소중함을 알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 없이는 인간의 노력으로는 천국은 꿈도 꿀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그 사랑을 깨달은 자들로 하여금 그 사랑을 실천하기를 원합니다. 사랑을 먼저 실천하는 자가 영적으로 먼저 된 자들입니다. 교회에서도 직분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랑을 먼저 실천하는 자들을 하나님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랑을 가정과 교회에, 직장과 이웃에게 올바르게 실천할 때 그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이 날마다 넘쳐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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