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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흔들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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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흔들릴때
장경태목사 [성경본문] 사33:13-24

지금 한국사회는 아프카니스탄에 의료봉사차 떠났던 샘물교회 23명의 봉사단원이 탈레반무장 세력들에게 붙잡혀서 급기야는 그팀의 리더인 배형규목사를 처참하게 살해하고 나머지를 계속 인질로 잡고 아프카니스탄 정부와 협상을 벌이고 있는 사건을 접하고 있습니다.
이 탈레반 세력들은 이슬람 학생조직으로 출발한 무장 세력입니다.
탈레반이라는 말은 “구도자”라는 뜻이 있고, 그들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입니다. 지난 1994년 구 소련군이 아프간에서 철수 한 뒤 남부 칸다하르주에서 물라 모하메드 오마르 라는 젊은 이슬람 원리주의자에게 의해서 조직되었고, 펜대신 총을 든 근본주의 학생 2만5천명으로 출발한 탈레반은 군벌 세력에 대항하면서 꾸준하게 영향력을 확장 하다가 결국 1996년 아프간의 실질적인 통치세력으로 등장을 했습니다.
탈레반은 집권 과정에서 오랜 내전에 시달린 아프간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집권 이후 그들은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앞세운 공포정치로 국제사회에서 비난을 받기 시작합니다.
여성들의 사회 활동을 일절 금지하고, 범죄자들에게는 그야말로 “이에는 이로, 눈에는 눈으로”의 신체 절단형과 공개처형을 실시하기에 이릅니다. 이런 탈레반 정권이 붕괴한 것은 지난 2001년 9,11테러가 직접적인 계기가 됩니다.
당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테러 배후로 당시 아프간에 은신하고 있던 “오사마 빈 라덴”을 지목한 뒤 탈레반정권에 신병을 요구하자, 탈레반이 이를 거부하고, 그후 미국은 영국과 함께 아프간을 공격하고 두 달만에 탈레반을 권좌에서 축출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후 탈레반 지도자 오마르를 비롯한 잔당 세력은 미국의 추적을 피해 파키스탄 접경의 파슈툰 부족 거주 산악지역에서 은신하면서 다시 세력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 근본주의자들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정당화시킬 수 있는 위험한 사상을 가지고 있는 이들입니다. 이들은 지금 우리인질을 붙잡고 아프간 정부와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우리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일 들을 보면서 믿음이 흔들릴 때도 있습니다.
저들이 다른 것을 하러간 것도 아니고, 봉사와 선교를 위한 것이었는데, 하나님은 무엇을 하시나!. 왜! 가만히 계시는가! 그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왜 듣지 않으시는 것인가! 하면서 우리의 믿음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온 국민이 아프간에 간 사실하나를 놓고 교회를 향한 비난의 소리를 외칠 때에 우리는 믿음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왜냐 하면 그들의 말이 일리가 있게 들려지기도 하기 때문이기에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때로 여러분의 신앙은 이런, 저런 이들로 흔들릴 때가 없습니까? 이렇게 흔들릴 때 중요한 것은 방향감각입니다. 흔들릴 때 방향감각을 잊어버리지 않고 있으면 중심을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방향 감각을 잡지 못하면 나도 모르게 엉뚱한 방향을 가고 맙니다.
일본에 호시노 도미히로 라는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있습니다. 그는 기계체조를 하는 운동선수이기도 했고 중학교의 선생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환난의 날이 왔습니다. 학생들에게 체조시범을 보이다가 그만 철봉대에서 떨어져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목 위의 부분밖에 없는 전신마비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절망했습니다. 그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는 삶을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모든 삶이 흔들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대학선배들이 어느 날 병문 안을 와서 성경책을 한 권 을 놔두고 갔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성경책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습니다. 날마다 실의의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도 심심하기도 해서 어머니에게 부탁을 해서 성경책을 천장 위에 붙여놓고 한 장, 한 장 넘겨달라고 하면서 성경을 읽는 중에 드디어 그는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고, 그는 그의 삶 전체를 흔들어놨던 그의 삶의 중심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그의 삶에서도 의미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입으로 붓을 물기 시작하여 한자 한자 글을 연습하다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그림 위에 자신의 신앙고백을 담은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시화를 가지고 전시회를 열기시작 했고, 지금은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시화전의 화가가 되었습니다. 그의 시화를 통하여 예수를 영접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의 시 중에서 좋아하는 것이 있는데,
“ いのちが一番 大切だと思っていたころ、生きるのが苦しかった。いのちより大切なものがあると知った日, 生きているのが嬉しかった。"
”목숨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을 때, 살아가는 것이 괴로웠다. 목숨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안 날, 살아있는 것이 즐거웠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던 그는, 삶의 전 방향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던 그에게 그의 삶의 방향을 잡아주고 삶의 의미를 부여해 주신 분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였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은 위기 상황 속에 놓여져 있는 이스라엘백성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앗수르라고 하는 나라의 침략을 앞두고 그 백성은 두려움에 떨며,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고 있을 때 이사야선지자가 하나님의 은혜만이 그 앗수르를 패망시킬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이스라엘에게 이제 그 죄악에서 돌아서서 하나님만을 바라보라고 외치고 있는 내용입니다.
여러분 우리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모양은 다르지만 이와 비슷한 갈등과, 흔들림을 경험해보지는 않으셨습니까? 어렵고 힘든 일이 다가 올 때, 환난이 다가 올 때, 여러분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현실로 눈앞에 올 때는 없었습니까?
오늘 이 본문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이 함께 어떻게 하면 우리의 흔들릴 때를 극복 할 수 있을 것인가를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1. 흔들릴 때는 방향을 잡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14절에 보면 우리 중에 누가 삼키는 불과 함께 거하겠으며 우리 중에 누가 영영히 타는 것과 함께 거하리요,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 어떻게 하여야 불과 같이 우리의 모든 것을 불태워버릴 환난의 날을 견딜 수 가 있겠느냐고 질문을 합니다.
우리의 인생 속에서 불과 같은 고난의 날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은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서는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15절입니다. "오직 의롭게 행하는 자, 정직히 말하는 자, 토색한 재물을 가증히 여기는 자, 손을 흔들어 뇌물을 받지 아니 하는 자,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아니하는 자,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자,"라고 합니다.
즉 모든 불의가 가득 할 때에 오직 믿음으로 돌아가서 그 믿음을 철저하게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요 세상이 타락하면 할수록 우리는 바보같이 보일지라도 의로움을 행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의로움은 무엇이 기준입니까?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의 의의 기준입니다. 도둑들도 도둑 나름대로의 의의 기준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마다 각자의 기준으로 의로움의 척도를 삼고 이 정도는 괜챦겠지 하면서 나름대로 “나도 정직하게 살고 있노라” 고 말들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의로움은 예수그리스도의 의로움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의 기준은 성경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 행하는 모든 것들이 의로움입니다. 이것이 곧 정직이기도 합니다. 우리 정직하게 세상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어떤 선교사님이 구약소에 가서 전입 신고할 일이 있어서 갔는데, 신고해야할 날자가 보름정도가 지났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 구약소 직원이 그럼 전입해온 날자를 보름 안으로 정해서 쓰면 되니까 그렇게 하라고 했더니 그 선교사님이 아니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내가 잘못을 했으니 나는 그 댓가를 받아야 합니다. 여기에 거짓을 쓸 수는 없습니다, 라고 대답을 했더니 그 일로 구청장을 만나게 되고 결국 그 구청장은 그 선교사님의 말하는 것이라면 모든 것을 신용하고 보증이 되 주었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간단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불법을 행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했던 그일 들이 우리에게 신앙의 위기를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토색한 재물 즉 정당하지 않은 재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남의 피를 흘리는 소리들을 아무렇지도 안게 우리는 듣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은 말하기를 우리의 신앙의 위기가 올 때에 이러한 모든 것에서부터 돌아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철저하게 신앙의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의 위기를 극복 할 수 있는 지름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죄를 지은 즉시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결국 우리의 삶을 무너뜨리는 것은 죄악입니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지었던 죄들뿐만 아니라, 아무감각 없이 보고, 듣고 있었던 모든 죄악의 소식들이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이 그 위험한 아프간에 왜 갔냐고 하면서 온갖 비난을 하고 있을 때 우리도 휩싸여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이럴 때 우리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죄악을 회개하고, 더욱 지금 슬픔을 당한 유족들과 또 가족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은 이런 것에서 우리가 돌아서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디모데 후서 3:1-5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 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 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 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여러분 그렇습니다. 경건의 모양 만 있고 그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세상의 죄악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성경은 그 사람들에게서 돌아서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2. 방향을 잡으면 주님이 보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믿음으로 돌아서는 모습을 통하여 볼 때 우리의 눈이 영광의 왕을 볼 것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봐야 할 것은 세상의 썩어져 가는 죄악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보아야 합니다.
스테반집사가 믿음으로 살려고 몸부림치다가 사람들에게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 복음을 전하다가 너희가 예수를 죽였다고 하는 소리에 사람들이 분하여 폭도로 변해서 돌을 집어 던질 때 스테반은 행7:55"스테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다가 고난을 당하면 그 고난의 자리에게 영광의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악을 회개하고 우리의 마음을 청결하게 하면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청결한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
그렇습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현실 속의 고난이 아니라 그 뒤에 계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바다 위를 걸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서 믿음으로 예수님처럼 바다 위를 걸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지는 큰 파도 때문에 그는 바다 속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 속에서도 어떤 때는 베드로가 물위를 걸었던 것 같은 훌륭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기적을 경험하고, 병을 고쳐내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도 넘어졌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불어닥친 큰 파도가 예수님을 가로막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우리 분명히 알아야 하는 사실은 아무리 눈앞에 엄청난 일 이 벌어진다 할지라도 우리의 주님은 여전히 그 자리에 계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나를 여전히 그 인자하신 눈으로 처다 보시고 우리를 지켜주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그 사실을 잃어버리면 방향감각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큰 환란이 와도 그 뒤에 서 계시는 예수님을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방향감각을 바로잡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가 있습니다.
주님은 한번도 여러분에게 한눈을 판 적이 없습니다. 주님은 한번도 여러분을 떠난 적이 없으십니다. 그 주님이 저와 여러분을 오늘도 지켜주시고 계십니다. 주님이 서 계신 곳으로 방향을 잡으시길 바랍니다. 방향을 바로 잡으면 주님이 바로 여러분의 손을 잡아 주십니다.

3.주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곳을 주십니다.
10절에 "우리의 절기 지키는 시온성을 보라 네 눈에 안정한 처소 된 예루살렘이 보이리니 그것은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이라 그 말뚝이 영영히 뽑히지 아니할 것이요 그 줄이 하나도 끊치지 아니할 것이며"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은 움직이지 않는 나라 세상의 어떤 요동이 와도 지진이 와도 그 장막의 말뚝이 뽑히지 아니하는 나라를 우리를 위하여 예비해 놓으셨다고 합니다. 할렐루야.
여기에 우리의 삶의 소망이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에게 놀라운 축복이 있습니다. 시 16: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항상 하나님을 우리의 앞에 모시고 살아가면 우리는 요동치 아니하게 됩니다. 흔들리지 아니하게 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나라는 이세상의 것과 같지 아니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천국을 약속해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거룩한 나라에 들어가야 합니다. 계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 이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나라에 대한 믿음은 우리의 어떤 상황 속에서도, 담대하게 만듭니다. 흔들리지 않는 나라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을 때에, 스데반 집사는 날아오는 돌맹이 속에서도 그 얼굴이 천사와 같이 빛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순교자들의 죽음은 바로 이런 흔들리지 않는 나라에 대한 믿음과 소망이 있었기에 갈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한국에 어떤 홀어머니 한 분이 부산에 살고 계십니다. 그분은 행랑을 하시고 콩나물 장사를 하시면서 자식들을 교육시키셨습니다. 자식들이 다 성공하고 장성했는데도 자식들과 같이 살지 않으시고 혼자 자그마한 오두막집에서 사셨습니다. 자식들이 “어머니, 이제는 아파트로 이사 가시지요. 아니면 단독 주택으로 옮겨가시게 해 드릴게요”하며 졸라대자 어느 날 어머니는 자식들을 불러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이 정 원한다면 나를 위해 집을 한 채 지어라. 내가 원하는 집은 바닥을 반드시 유리로 지어야 하느니라. 유리뿐만 아니라 기둥을 꼭 12개를 세워야 한다. 그리고 그 기둥의 밑바닥은 반드시 보석을 박아야 하는데, 그 보석의 색깔이 다 달라야 하고 문은 12개 만들어야 한다.” 자식들은 “어머니, 농담하지 마세요. 그런 집이 어디 있어요?” 하자, “없으면 그만둬라. 나는 그 집을 하늘 나라에 갖고 있으니…”라고 했다고 합니다.
가난하게 살면서도 당당하게 사시는 그 어머니의 삶의 비밀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영원한 천국에 대한 소망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나라에 대한 소망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이런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간 다면, 이 땅에서 일어나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흔들리십니까. 삶의 흔들림은 신앙의 흔들림을 가져다 주고 결국 하나님과의 모든 관계들이 엉망이 되어버리게 만듭니다. 예수그리스도로 방향의 감각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오늘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오직 믿음으로 되돌아오시길 바랍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고 은혜주십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의 삶의 자리 중심에 들어오실 때, 우리는 방향을 잡을 수 있고, 흔들리던 모든 것은 잠잠해지고 여러분의 삶의 모습 속에는 다시는 흔들림이나 요동함이 없는 영원히 옮겨지지 않는 뽑히지 않는 영원한 천국이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사실 앞에 희망과 용기를 가지시길 축원합니다.
여러분 반드시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예수님은 아무리 커다란 환난이 와도 늘 그곳에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 믿음이 여러분을 살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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