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나를 깨끗케 하소서!
본문
Wash Me, Lord! (Asperges Me, Domine)
『가이드 포스트』라는 잡지에 패트리샤 훅크 스프링클(Patricia Houck Sprinkle)이라는 사람이 쓴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본래 1978년에 처음 발표가 되었는데 한 평범한 구두 만드는 사람의 '송곳'(awl)이 불란서 학술회관(French Academy of Science) 진열장에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공개된 내력을 말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송곳을 이렇게 특별하게 진열장에 전시하도록 만든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어느 날 한 구두 수선공이 구두를 만들려고 책상 위에 놓아두었던 작은 송곳이 그 당시 9살 먹은 아들의 눈에 떨어져 박히게 되었습니다. 얼마 있지 않아 이 아이는 두 눈을 모두 잃고 장님이 되어서 맹인학교에 다니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맹인학교에서 이 어린 아들은 그 때까지만 해도 아직 점자책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나무 조각에다 크게 글자를 파 새겨 놓은 것을 손으로 다룸으로서 글읽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구두수선공의 아들은 점점 자라나면서 맹인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더 좋고 새로운 방법이 없을까 하고 여러 가지를 생각해 내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이 사람이 새로 만들어 낸 점자책은 종이에다가 송곳으로 구멍을 뚫어 글자를 새겨넣는 방법이었는데 바로 이 새 점자책을 발명한 사람이 루이스 브래일(Louis Braille)로서 자기 눈에 떨어져 두 눈을 빼앗아 갔던 바로 그 송곳으로 맹인들에게 희망을 준 점자책을 만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 우리를 괴롭히는 송곳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송곳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것은 순전히 우리 자신의 선택의 문제입니다. 이 송곳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했던 스프링클 여사는 "송곳이 우리 눈에 떨어지게 될 때 우리 중에 어떤 사람은 '하나님, 왜 이런 고통이 하필 저에게 일어나게 만드십니까?'하면서 울부짖는데 반하여 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당신께서 제 눈을 상하게 한 이 송곳을 어떻게 사용하실 것입니까?'를 묻는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질병에 걸릴 때, 특히 불치병에 걸릴 때 던져야 할 질문은 "왜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불행이 일어납니까?"가 아니라 "하나님, 이 불행을 어떻게 쓰시렵니까?"하는 보다 더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자세를 가져야만 할 것입니다. 요한 복음 9장에 보면 나면서부터 소경된 사람을 주님께서 고쳐주신 이야기가 나오는데 제자들은 이 사람이 이렇게 된 것이 자기의 죄 때문인지 아니면 그 부모의 죄 때문인지에 대하여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이 사람이 소경이 된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즉 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소경이 되었다고 대답하십니다(요한 9: 3). 오늘 여러분들은 어떤 질병을 가지고 계시든지 하나님께서 그 질병을 고치시고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시기 위하여, 즉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질병에 걸리셨다는 보다 적극적인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라틴어로 'Asperges Me, Domine'라고 하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주여, 저를 깨끗케 하소서!"하는 뜻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 시대에 아주 흔히 사용되던 상투어였는데 거리에 먼지가 많이 나고 길을 걷는 사람의 발은 물론이고 몸 전체가 쉽게 더러워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주기적으로 주님께 찾아 나와 영혼과 육신을 성령의 물로 깨끗이 씻지 않으면 더러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이 아침에 "주님, 저의 영혼과 육신을 깨끗이 씻어 주소서!" 기도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지나가실 때에 갑자기 10명의 문둥병 환자가 나타나서 긍휼을 구했을 때 그들 모두의 병을 고쳐 주셨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같은 동족인 9명의 문둥병 환자들은 자신의 병이 나았다는 사실에만 도취한 나머지 각기 제 갈 길로 갔는데 오직 사마리아인 한 사람만이 주님께 다시 찾아와 감사를 표했다고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사마리아인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의 혼혈민족으로서 유대인들이 몹시 멸시하고 천대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정말 감사를 해야 할 아홉 사람은 감사하지 않았고 감사하지 않아도 좋을 전혀 의외의 사람이 오히려 감사했다고 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많은 은혜를 입고서도 배은망덕했던 우리 자신의 추한 모습을 주님께 깨끗이 씻어 달라고 부탁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래서 육신만 치료받고 영혼은 구원받지 못하는 반 쪼가리 치유만 경험하는 신자들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세 가지 의미를 던져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10명의 문둥병 환자들이 치료받은 것은 믿음을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길거리에서 만나자마자 12―3절에 보면 문둥병자의 신분으로서 주님께 가까이 갈 수 없었기 때문에 멀리 서서 큰 소리로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하고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이들이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부탁했을 때 당연히 불치병인 문둥병을 고쳐 달라고 했든지 아니면 거지로서 구걸을 하고 살았기 때문에 예수님께 먹을 것이나 돈을 구했을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주변의 각색 병자들을 고치신다는 소문을 이미 들었기 때문에 예수님이시라면 무엇인가 자기들을 도와주실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모두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육신의 병마로부터 혹은 영혼의 죄악으로부터 깨끗함을 받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이시라면 우리의 육신과 영혼을 깨끗케 하실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는 일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10명의 문둥병 환자들이 믿음이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행위의 순종을 통하여 입증해 보일 것을 요구하십니다. 14절에 보면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하시면서 마음속에 있는 믿음을 구체적인 실천을 통하여 증명할 것을 주문하십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둥병은 하늘이 내리는 가혹한 형벌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은 문둥병자들이 그 본인이나 부모가 모세의 율법을 잘 준수하지 못하고 제사장의 권위를 존중하지 않아서 생기는 하늘의 벌로 흔히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문둥병은 단지 육신의 문제뿐만 아니라 영혼의 문제가 된 것입니다. 문둥병자들은 전염성 때문에 가족들과 동네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어서 일체의 사회적 접촉을 끊고 고립된 환경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이와 같이 이들에게는 일체의 공민권이 박탈되었는데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하나님께 예배조차도 마음대로 드릴 수 없는 바 종교적 자유를 상실하는데 있습니다. 레위기 13―14장에 문둥병에 대한 유대 율법이 아주 상세하게 규정이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특히 13: 45에 보면 동네를 지나갈 때 혹시 사람이라도 만나면 문둥병자는 자기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우고 "나는 부정하다, 나는 부정하다!" 하고 크게 고함을 질러서 다른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해야만 했습니다.
이와 같이 레위기에 보면 문둥병은 기본적으로 종교적인 문제였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문둥병에 걸리거나 나았다는 사실을 진단할 수 있는 권위가 제사장들에게 있었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이제 10명의 문둥병 환자들은 예수님의 말뜻을 잘 알아들었기 때문에 모두 제사장에게 가면 자신의 병이 나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성전으로 올라가다가 자기의 병이 나은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지난주에 살펴 본 아람 나라의 군대 장관 나아만이 문둥병에서 고침받았을 때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하라는 명령에 순종함을 통하여 '믿음 있음'을 구체적으로 입증한 것과 너무나 비슷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영혼과 육신이 깨끗이 치료되기 위해서는 내적인 믿음뿐만 아니라 이 믿음을 우리의 구체적인 순종 행위를 통하여 증거해야만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행함을 통하여 역사하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치유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10명이 모두 고침을 받았지만 오직 사마리아 사람 하나만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14절에 '제사장'이라고 단수를 쓰지 않고 '제사장들'이란 복수를 쓴 것에 주목합니다. 9명의 유대인 문둥병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제사장에게 갔고 다른 1명의 사마리아인 문둥병자는 사마리아인들의 성지인 그리심산에 있던 성지에 올라가 자기 제사장에게 보였다는 사실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어쨌거나 9명의 유대인들은 병이 나았음에도 불구하고 감사를 잊어버리고 제 갈 길로 각기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오직 이방인이었던 사마리아인 하나만이 자기의 병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려 깊이 감사 표시를 했습니다. 이 사마리아인 하나만이 돌아와 감사하는 것을 보신 예수님은 다소 서운한 듯, 17절에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고 나무라십니다. 그러면서 19절에 그 사마리아인을 보시고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하시면서 육신과 영혼이 모두 깨끗이 씻겨졌음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신분으로 보면 사마리아인이요, 육신의 상태로 보면 문둥병 환자로서 이중으로 버림받은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믿음을 순종 행위를 통하여 증거했으며, 자기의 치유를 일어나게 만드신 분, 즉 치유의 근원을 바로 이해하고 주님께 감사하고 예배드림을 통하여 육신의 병만 치료한 것이 아니라 영혼까지도 구원받은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깨끗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먼저 우리의 모든 상한 육신을 깨끗이 고쳐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은 죄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같은 우리 영혼의 모든 질병을 치료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끗케 하시는 역사는 1) 먼저 우리가 주님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만 하고, 2) 이 믿음이 구체적인 실천을 통하여 입증이 되어야만 하고, 3) 우리의 영혼과 육신을 깨끗케 하시는 분이 주님이라는 사실, 즉 치유의 근원이 주 예수님께 있음을 인정하고 주님께 나아와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데 있습니다.
오늘 이 아침에 깨끗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우리 모두 좌우 전후에 계신 모든 분들과 "Asperges Me, Domine!" 하면서 인사합시다.
김흥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