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들린 현대인과 타이태닉
본문
A Modern Demoniac and Titanic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 아직까지 믿음이 자라지 않아 미성숙한 신자들을 여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첫째로, 달구지같은 성도가 있는데 항상 밀어 부쳐야지만 움직이는 성도가 이 유형에 속합니다. 둘째로, 연같은 성도가 있는데 항상 붙들고 있지 않으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성도를 말합니다. 셋째로, 고양이같은 성도가 있는데 줄곧 토닥거려 줘야지만 만족하는 성도입니다. 넷째로, 풋볼같은 성도가 있는데 다음 순간 어디로 튈지 종잡을 수 없는 성도를 말합니다. 다섯째로, 풍선같은 성도가 있는데 잔뜩 부풀어서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성도입니다. 마지막 여섯째로, 전구같은 성도가 있는데 쉽게 열 받듯이 은혜도 쉽게 받고 또 쉽게 끊어지듯 시험 역시 쉽게 드는 성도를 말한다고 합니다. 오늘 이 아침에 여러분은 과연 어떤 유형에 속해 있는지 조용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성도들이 많은 교회는 목사도 힘들고 자신도 힘들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 중에 오랫동안 신앙 생활해왔지만 아직도 이와 같이 미숙한 신앙인의 버릇에 젖어 있다면 오늘 이 시간 깨끗이 고치시길 바랍니다.
출애굽기 16: 26에 하나님은 '우리를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지난 주중에 기도하는 가운데 인간의 상한 영혼과 육신을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에 대하여 설교해야 한다고 성령님께서 계속해서 제 마음을 움직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몇 주 동안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여러 가지 치유사건의 깊은 영적 의미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게 될 것입니다.
치료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연재 설교를 구상하던 중 제일 먼저 저는 본문 말씀에 나타난 거라사인이라는 이방 땅에서 군대귀신 들린 자를 주님께서 고쳐주셨다는 기록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이 얼마나 중요했던지 누가만 기록한 것이 아니라 다른 두 공관 복음서에도, 즉 마태 8: 28―34과 마가 5: 1―20에도 이 치유 이야기가 들어가 있습니다. 먼저 이 말씀의 줄거리를 깊이 살펴봅시다.
갈릴리 맞은 편에 거라사 인 지방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이 사는 지역이었습니다. 이 도시에 한 남자가 있었는데 귀신이 들려서 오랫동안 옷을 입지 않고 집에 거하지도 않고 무덤 사이에 방황하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마가 5: 3―5에 보면 이 남자의 처지를 더욱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여러 번 쇠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지만 번번이 자기 손에 채인 쇠고랑과 발에 조여 논 쇠사슬을 끊고 나다녀서 아무도 그를 제어할 수가 없었습니다(누가 8: 29 참조). 그래서 이 사람은 밤낮으로 무덤과 산 사이를 넘나들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면서 심지어 돌로 자기 몸을 상하기조차 했습니다. 한 마디로 그는 짐승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의 처지는 이사야 65: 1―4, 특별히 4절에서 할례받지 못한 이방인들을 짐승과 같은 형편으로 묘사한 그대로였습니다. "그들이 무덤 사이에 앉으며 은밀한 처소에서 지내며 돼지고기를 먹으며 가증한 물건의 국을 그릇에 담는다."는 표현이 꼭 이 귀신들린 사람을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문제는 이 귀신들린 사람이 유대 지역 갈릴리에서 약 33마일이나 떨어져 있던 이방 지역인 거라사 사람들의 땅에 오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남자 속에 들어가 있는 귀신을 나오라고 명령하자마자 그 귀신은 두려워 떨면서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습니다. 28절에 보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마소서."하고 외쳤습니다. 바로 이 때 예수님은 귀신의 이름을 묻습니다. 그 귀신의 이름은 놀랍게도 '군대'였습니다. 여기서 '군대,' 즉 영어로 'legion'이라는 말은 라틴어에서부터 파생되었는데 고대 로마 군대의 군단 급에 해당되는 규모--즉, 300―700명의 기병을 포함하여 3천―6천명의 보병으로 구성됨.--의 편제를 말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군대귀신이 들렸다는 말은 어떤 세상 군인들의 귀신이 붙었다는 말이 아니라 헤아릴 수없이 많은 마귀군대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이 사람은 하나의 귀신에 붙들려 있는 것이 아니라 일개 군단의 숫자와 같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마귀들에게 사로잡혀 신음하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31절에 보면 이 군대귀신은 예수님께 "제발 자기를 무저갱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무저갱'(無底坑)이라는 말은 한문 그대로 하면 "밑바닥을 알지 못할 정도로 깊은 굴," 즉 심연(abyss)을 말합니다. 계시록 20: 3에 보면 이 무저갱은 장차 사탄의 세력을 결박하여 가두게 둘 감옥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군대귀신은 무저갱에 감금되어서 형벌받을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제발 무저갱에만큼은 들어가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애걸복걸했 습니다. 바로 이 때 마침 수많은 돼지떼들이 산비탈에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먹고 있었는데 예수님은 군대귀신으로 하여금 이 돼지떼들 속에 들어가도록 허락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수없이 많은 귀신들이 이 남자에게서 뛰쳐나와 돼지떼 속에 들어가 그 돼지떼가 비탈길로 내리달아 호수에 들어가 몰사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와 같이 귀신이 쫓겨나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 돼지치던 사람들이 온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자기들이 본 사실을 그대로 알렸습니다.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밖으로 나가보니 과연 귀신이 들려서 아무도 막을 수 없었던 사내가 정신이 말짱해서 옷을 입은 채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37절에 보면 이 광경을 쳐다 본 동네 사람들은 두려워 떨면서 예수님이 자기 동네를 제발 떠나 주면 좋겠다고 간청했습니다.
왜 이들은 두려워 떨면서 예수님이 자기 동네를 떠나가도록 부탁했을까요? 그들은 한편으로 자기 동네에서 그 누구도 제어할 수 없었던 군대귀신들린 자를 예수님께서 말씀 한 마디로 간단히 고치신 것에 대하여 공포에 질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들과는 다른 신적 권능을 가지신 분임을 알고 두려워 떨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이유는 돼지떼들이 몰사당한 것을 보면서 장차 이 사건이 온 동네에 미치게 될 경제적인 손실에 대하여 깊이 걱정하였기 때문입니다. 거라사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한 정신병자를 고치셨다는 사실을 기뻐하고 감사한 것이 아니라 이 일로 인하여 자기 동네에 생기게 될 경제적인 손해를 주판질하면서 어떤 이기심 때문에 예수님을 빨리 떠나도록 종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행전 16: 16―39에도 보면 바울이 빌립보 지방에서 귀신들려 점을 치는 여종 하나를 고쳐주었더니 그 주인이 자기의 이익이 끊어질 것을 염려하여 바울과 실라를 속히 떠나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형편입니다.
아무도 자기를 도와주지 못했는데 예수님께서 자기의 정신병을 간단히 고쳐주시자 이 남자는 예수님과 함께 있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남자에게 자기 집으로 돌아가라고 타이르시면서 39절에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신 것을 일일이 고하라."고 새로운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귀신들렸다가 풀려난 이 남자는 그 길로 온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을 하셨는가를 전파하는 '이방인들에게 파견된 최초의 선교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거라사 인 지방의 군대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셨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동족인 유대 백성들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도, 즉 온 세상 사람들의 영혼과 육신의 병을 고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분임을 말해줍니다. 오늘 우리는 이 거라사 인 남자를 사로잡고 있던 수없이 많은 군대귀신들이 현대인들을 그대로 사로잡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온갖 탐욕과 향락, 마약, 섹스, 인터넷 중독 등의 숫자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귀신들이 현대인들에게 찰싹 들러붙어서 자기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노예의 상태로 만들고 있습니다.
크리스토퍼 콜럼부스가 오늘날 '바하마 군도'라고 하는 미지의 땅을 최초로 밟게 되었을 때 그는 앞으로 400년 동안 미국 사회의 방향을 결정지을 아주 중대한 말을 원주민들에게 던졌습니다. 그는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원주민들에게 악수를 청하면서, 물론 포르투갈어로 말했겠지만, "You got any of this?"하면서 자기 손안에 있던 금으로 된 동전들과 다른 금붙이들을 펴서 보여 주었습니다. 새로운 대륙을 우연히 발견한 콜럼부스는 "Show me the gold!"하면서 오직 금붙이를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물질만능주의 혹은 황금만능주의가 장차 아메리카 신대륙을 휩쓰는 씨앗이 벌써 콜럼부스에게서부터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날 현대인들을 사로잡고 있는 수없이 많은 군대귀신들이란 다름 아닌 이와 같은 물질에 대한 탐욕과 소비에 대한 욕구, 그리고 육체적 쾌락인 것입니다.
아마도 이와 같이 군대귀신들린 현대인들의 모습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예가 있다면 타이태닉 호일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세계에서 가장 비싼 돈을 들여서 제작되었다는 '타이태닉'이라는 영화가 나와서 큰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세계 제일의 기술로 만들어져서 절대로 침몰하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던 타이태닉 호가 1912년 4월 14일, 토요일 밤 11시 40분에 한 빙하(iceberg)에 부딪혀 서서히 침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튿날 일요일 아침 일찍 그 배는 완전히 바다 밑에 가라앉게 되었습니다. 이 배가 침몰할 당시, 길이가 882.5 피트(약 264.75미터), 넓이는 93피트(약 27.9미터), 무게는 103,774,720파운드나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타이태닉 호는 물위에 떠나니는 거대한 도시와 같았습니다. 배 위에서 까닥 잘못하면 길을 잃어버리기가 십상이었으며, 수영장과, 체육관, 테니스 장, 베란다, 사진을 현상할 수 있는 암실, 터키식 증기 목욕탕과 심지어 자동차들을 실을 수 있는 특별 차고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타이태닉을 사람들이 가장 오랫동안 기억하게 된 것은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의 장례를 치르기 위하여 관을 사는데 들어간 1천만 달러라고 하는 엄청난 돈 때문입니다. 배위에 타고 있던 2천 2백명 이상의 승객들 가운데 1천 5백명 이상이 물에 빠져 익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겨우 705명만이 구조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영화에서 이미 보아서 아시겠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가장 큰 이유는 이 배 안에는 오직 승객의 절반만 수용할 수 있는 구명정(life-boats)이 비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부자들이나 사회 유명인사들 역시 많이 숨졌지만 2등이나 3등칸과같이 값이 싼 선실에 있던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예를 들면, 1등칸에 탄 승객들 가운데 60%정도가 목숨을 건진데 반하여 2등칸에 탄 사람들은 44%가, 그리고 3등칸에 탄 사람들은 겨우 25%만이 구조가 되었다고 합니다. 더욱이 식당에서 일하던 요리사들, 접시 닦는 사람들, 웨이터들, 석탄을 대는 화부들의 경우 거의 다 목숨을 잃었으며 특히 3층칸에 탑승한 어린이들은 2/3 이상 모두 숨졌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타이태닉 호는 2등칸이나 3등칸에 탄 사람들 역시 돈을 받고 태웠지만 모든 시설이 부유층이나 어떤 특권을 가진 유명인사들을 위해서 만들어 졌기 때문에 심지어 마지막 죽어 가는 순간에도 이런 불평등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타이태닉 호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무엇인지 자명해졌습니다. 이 배를 만든 사람들은 절대로 침몰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저 호사스럽게만 치장을 하려고 했지 가장 중요한 구명정을 충분히 비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온갖 화려한 시설들로 충만한 타이태닉 호에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아주 소박하고 별 기술이 필요 없는, 가장 기본적인 구명정이었습니다. 바로 이 구명정만 충분히 있었다면 부자나 가난한 자나, 배운 자나 배우지 못한 자나, 노인이나 어린아이나 다 구조를 받았을 텐데, 바로 이 단순한 구명정이 모자랐기 때문에 1,500명 이상의 생떼같은 목숨을 잃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일 오늘 위기에 빠진 타이태닉을 탔다고 가정할 경우 구명정이 없으면 살아 남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오늘 여러분은 구명정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물질주의와 소유만능주의, 향락주의라는 무서운 귀신에 사로잡힌 현대인들을 살릴 수 있는 것도 아주 단순하면서도 기본적인 구명보트를 가까이 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를 온갖 귀신으로부터 해방시켜 살릴 구조선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놀랍게도 우리의 구조선은 타이태닉 호처럼 화려하지 않고 거칠고 부서지고 피가 묻어있는 나무 십자가입니다. 여러분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 몸과 마음을 싣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죽으신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한다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주님의 십자가라는 구조선을 의지하시면서 무서운 현대적 악마의 힘을 이기고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생의 바다를 힘차게 항해해 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흥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