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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발을 씻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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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발을 씻기라 <요 13: 1-20>


Wash One Another's Feet

클린에서 가까운 텍사스 오스틴에 가면 The West Lake Hills Presbyterian Church라고 하는 제법 큰 장로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가 1980년대 중반에 아름다운 성전을 새로 짓게 되었습니다. 성전 전체가 모두 새로 지어졌기 때문에 장엄하고 멋이 있는데 성전 출입문 바로 위에 새로 지은 성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하나의 푯말이 붙어 있었습니다. 이 사인은 'Servants' Entrance,' 즉 '종들이 출입하는 문'이라고 쓰여져 있었습니다. 참 좋은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종들이 출입하는 문,' 성전의 문은 사회적인 신분의 높낮이에 관계없이 누구든지 하나님 성전에서 예배드리는 자는 '섬기는 자,' '종'이 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일러줍니다.


오늘 우리 성루가 교회는 세상을 향하여 '섬기는 교회'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것은 어떤 친교 모임, 즉 클럽에 가입하는 것과 다릅니다. 라이온스 클럽, 혹은 로타리 클럽처럼 자기가 마땅히 내야 할 회비를 내고 마땅히 받아야 할 서비스를 받고 또 적당히 봉사하는 단체가 교회인 것은 아닙니다. 아니, 영국 성공회의 캔터베리의 대주교 William Temple이 말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자신의 멤버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유일한 기관"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교회는 이 교회에 속한 멤버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지역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의 이웃들과 온 세상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것임을 늘 기억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교회는 좀 더 겸손해져서 이 세상을 섬기는 빛과 소금의 직분을 잘 감당해왔는지 조용히 반성해봐야 하겠습니다.


제가 어떤 글을 읽어보니까 오늘날 십대, 즉 teenager들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한 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이 글에 따르면 오늘날 틴에이저의 약 절반이 매주 술을 마시며, 45%가 불법으로 된 각성제, 즉 마약을 복용하며, 매일 10만명 정도가 학교에 총을 가져가며, 2천명 정도가 매일 자살하며, 40% 정도가 성적인 경험을 하고 있으며, 20.1%의 틴에지 소녀들이 20세가 채 되기도 전에 낙태한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저는 이런 무서운 현실 속에서 우리 교회 청소년들이 밝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신앙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큰 은혜를 받습니다. 특히 매주 금요일마다 단지 우리 교회 학생들뿐만 아니라 이 지역에 있는 모든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Singspiration'을 지켜볼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교회는 비단 이 지역의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외로운 노인들, 집이나 직장 없이 고통당하는 홈리스 피플 등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겸손과 사랑으로 섬기는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시던 도중에 갑자기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씻겨주셨다는 말씀이 나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족식'(footwashing)의 기원이 된 성경 이야기입니다. 사실 성경학자들에 따르면 요한복음이 기록된 지 1세기도 채 안되어서 Tertullian과 같은 초대교회 교부는 '세족식'이 이미 성만찬이나 세례 예식과 마찬가지로 초대교회, 특히 요한 공동체의 중요한 예전 중에 하나였다고 증거하고 있다고 합니다. 흔히 예수님께서 이와 같이 제자들의 발을 직접 씻겨 주신 것은 당신이 장차 십자가를 지시고 제자들과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죽임을 당하셔야만 한다는, 사랑과 섬김과 겸손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씻겨주신 이야기에서 어떤 영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첫째로, 스승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 준다는 사실은 그 당시 유대 관습으로 볼 때 아주 예외적인 일이었습니다. 물론 고대 근동 지방에서 노예들이 주인의 발을 씻어 주거나 아내가 남편의 발을 씻어 주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주로 신분이 낮은 사람이 신분이 높은 사람에게 행하는 매우 굴욕적인 행위였습니다. 그러므로 출애굽기 21: 2의 '종에 대한 율법'을 해석해 놓은 Midrash Mekhilta는 유대 사회에서 심지어 노예 신분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기 주인의 발을 강제로 씻게 할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유대 경전 중에 외경에 속하는 Joseph and Aseneth에 의하면 요셉과 장차 결혼하기로 되어 있는 Aseneth라고 하는 이집트의 처녀가 요셉이 적극 만류함에도 불구하고 요셉의 발을 씻겨 주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와 같이 누군가의 더러운 발을 씻어 주는 일은 고대와 같이 엄격한 신분 질서 사회에서도 결코 흔한 풍속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바로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다 씻겨 주시다가 드디어 베드로의 차례가 되었을 때 6절과 8절에 보면 "선생님께서 제 발을 절대로 씻길 수 없습니다"하면서 만류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누군가의 발을 씻긴다는 것은 고대 유대 사회나 아니면 그리스 로마 사회에 있어서 열등한 신분에 있는 사람이 자기보다 훨씬 더 신분이 높은 사람을 위하여 행하는 '노예적 굴종'(servitude)의 표시였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둘째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직접 씻겨주신 것은 사랑과 겸손과 섬김의 모범을 직접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것이 '성만찬'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예수님의 모든 제자들이 되풀이하여 행해야 할 어떤 예전(sacrament)으로서 하신 것일까요? 아니면 단지 당신께서 장차 십자가를 지심으로 이루실 구속사역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symbol)에 불과할까요? 제가 볼 때에는 두 번째가 맞는 것 같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이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희생제의 의미를 가지듯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행위 역시 인류를 섬기고자 하는 주님의 겸손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발을 씻겨주셔서는 안된다고 말리는 베드로에게 주님은 8절 후반에 "내가 너를 씻기지 않으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고 대답하십니다. 이것을 십자가와 연결시켜 확대할 경우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지 않으면 인류를 구원할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언제나 성급해서 "전부 아니면 전무"(nothing or all)의 입장을 취하는 베드로가 9절에 "주여 내 발 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주옵소서" 하면서 자기 몸의 다른 부분도 씻겨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자기의 발을 씻겨주시는 이유를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베드로는 그 당시 사회적인 습관이나 윤리적인 관계로 볼 때 도저히 스승인 예수님께서 제자인 자기의 발을 씻겨주시는 것이 옳지 않다는 그 생각 하나만 하다가 이제 예수님께서 기왕 자기의 발을 씻겨주실 것이라면 자기의 손과 머리까지 씻겨달라고 부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발을 씻겨 주신 것은 당신의 십자가 죽음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일과 같이 겸손(humiliation)과 굴욕(servitude)의 상징이 된다는 사실을 일러주시기 위한 상징적 행위였습니다. 그래서 10절에 예수님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고 가볍게 대답하십니다. 발이 가장 더럽고 냄새나는 부분이기 때문에 비록 목욕을 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씻을 필요가 있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는 것은 단지 제자들의 더러운 몸을 깨끗하게 만든다는 차원이 아니라 장차 십자가의 죽음에서 분명히 드러나겠지만 창피와 굴욕을 무릎 쓰고 겸손히 당신을 낮추어서 섬긴다는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것처럼 이제는 우리들이 서로의 발을 씻겨주어야 합니다. 본문 14―15절에 예수님은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발을 서로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본을 보였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사랑과 섬김과 겸손의 모습을 직접 보여주었듯이 이제 제자들이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사랑과 섬김과 겸손을 베풀 차례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요한복음이 기록된 요한 공동체에서는 이와 같은 예수님의 발씻어주심을 기념하기 위하여 '성만찬'과 마찬가지로 '세족식' 역시 교회예전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삼고 정기적으로 실행했다고 합니다.


우리의 삶은 예수님의 삶을 본받는 삶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적극적 사고'(positive thinking)로 유명한 Norman Vincent Peale목사님이 젊었을 때인 1921년에 자동차 왕으로 유명한 Henry Ford가 기차 정거장 앞에 세워둔 자기의 차 옆에 서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Peale목사님은 Ford에게 자기를 간단히 소개한 뒤 자기가 얼마나 Ford를 존경했는가를 말했습니다. 이 때 Ford는 이상한 질문을 던짐으로 Peale목사님께 대꾸했습니다. "자네의 베스트 프렌드가 누구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 Peale목사님의 대답을 미처 듣기도 전에 Ford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종이 위에다 다음과 같이 휘갈겨 썼습니다. "자네의 베스트 프렌드는 자네 안에 들어 있는 최고의 것을 끄집어내는 사람이라네." (Your best friend is the person who brings out the best that is within you.)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Henry Ford,"라는 자기 이름을 서명했습니다. 그런 뒤 Ford는 젊은 청년이었던 Peale에게 "이걸 잘 생각해 보고 자네가 아는 최고의 친구들과 항상 사귀도록 하게" 하고 격려해주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우리가 사귈 수 있는 최고의 친구입니다. 한문으로 근묵자흑(近墨者黑), 즉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진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우리가 누구를 가까이 하는 가에 따라 우리의 운명이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친구삼아 그 분과 교제한다면 그 분을 닮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분을 닮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그 분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것 같이 피차 겸손한 마음으로 섬기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J. C. Penny라고 하는 백화점을 크게 일으킨 J. C. Penny라고 하는 사람은 살아 있을 때 우리시대의 Bill Gates와 같이 당대 최고의 부자였습니다. 어느 신문 기자가 인터뷰를 할 때 그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Mr. Penny, 당신은 도대체 얼마만큼의 재산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러자 Penny가 "Nothing, 하나도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기자가 당황하면서 "제 질문을 피하시려고 엉뚱한 대답을 하시고 있는 것 잘 압니다. 제가 조사를 다해봤는데 당신 재산이 약 2천 8백만 달러 정도 되더군요." 물론 이 돈은 오늘로 치면 프로 야구팀인 Texas Rangers의 보통 선수들이 받는 평균 연봉에 불과하지만 Penny가 살던 당시에는 전세계에서 제일 가는 부자가 가질 수 있는 엄청난 양의 돈이었습니다. 기자의 질문에 대해서 Penny는 다시 대답하길 "그 돈은 모두 예수님께 속한 것입니다. 저는 단지 예수님 위해서 그 돈을 관리하는 특권을 가졌을 뿐이지요." (That all belongs to Jesus Christ. I just have the wonderful privilege of managing it for Him.)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떤 권력, 어떤 부귀영화, 어떤 명예와 지위를 가졌다고 해도 그것은 모두 주님의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누리는 것이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가질 수 없습니다. 우리 성루가 교회에 절실히 요청되는 것도 우리 교회의 모든 것이 하나도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겸손한 태도입니다. 모두 하나님의 것이며 우리 이웃과 함께 나누어야 할 하나님의 선물일 뿐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겸손과 섬김의 모습을 본받아 우리 주변의 모든 이들, 특별히 이 지역 사회를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오는 사람마다, 주 예수님을 가장 귀한 친구로 삼는 자마다, 주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심으로서 손수 보여주신 사랑과 겸손과 섬김을 우리의 이웃에 그대로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 곁에 누가 앉아 있던지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여러분으로 하여금 사랑하고 섬기도록 주님께서 보내주신 선물이요 천사임을 잊지 마십시오. 아멘.

김흥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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