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전쟁 2
본문
본문 : 출애굽기 17장 8 - 16절 마경훈 목사
본문 : 출애굽기 17장 8 - 16절(개역개정)
8 그 때에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9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리라
10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11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12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13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무찌르니라
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
15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16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본문의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통과하는 중에 발생한 사건입니다. 아말렉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싸우기 위하여 르비딤으로 왔습니다. 아마도 아말렉 사람들이 유목민이기 때문에 목초지가 뺏기게 될 것을 염려해서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모세는 여호수아를 대장으로 세우고 군사들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산 위로 올라가서 손을 들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모세의 손이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모세의 손이 내려오면 아말렉이 이기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 사실을 알고 계속해서 손을 들고 싶지만 힘이 드니 계속 손을 들 수 없었습니다. 이 때 모세를 수종들기 위해 남은 아론과 훌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 놓고 모세를 그 위에 앉혔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한쪽 손씩 붙잡고 해가 지도록 모세의 손이 내려오지 않게 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말렉을 물리치고 승리했습니다. 전쟁에 승리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역 회복 사역을 앞두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있는 주변 지역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사단의 견고한 진이 무너지고 지역에 역사하는 악한 영들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악한 영의 영향력 아래서 고통당하는 백성들에게 복음 안에서 자유와 해방을 주기 위한 사역입니다.
성경은 믿음의 사람들이 악한 영들과 영적 전쟁 중이라고 가르쳐줍니다.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휴전 중이 아닙니다. 지금은 치열한 영적 전쟁 중입니다. 성도들은 민간인이 아닙니다. 영적인 전쟁을 수행해야 하는 그리스도의 병사들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승리를 보면서 영적 전쟁에 승리하는 비결을 배우려고 합니다. 주님께서는 영적 전쟁에 참전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국가는 전쟁에 나가는 군인들에게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무기를 공급해주는 것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잘 사용하셔서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주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지역회복사역에 승리하는 것만이 아니라 가정적인 영적 전투와 개인적인 영적 전투에서도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1. 조직의 능력.
엡 6:12에 보면 사탄도 조직적으로 싸웁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니까 사탄의 조직이 있습니다. 가장 우두머리가 사단 즉 마귀입니다. 그리고 그 밑에 군대의 조직처럼 조직화 되어 있습니다. 국가를 움직이는 악한 영들이 있습니다. 지도자들을 장악하는 악한 영들이 있습니다. 도시에 역사하는 영들이 있고, 마을마다 역사하는 영들이 있습니다. 개인들을 공격하고 장악하고 사단의 뜻을 이루게 하는 악한 영들이 있습니다.
악한 영들도 모이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 전쟁의 원리를 알기 때문에 조직적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이런 영적인 세계를 이해하고 우리들도 조직적으로 사역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조직적으로 싸워야 합니다. 조직하면 생각나는 게 있습니까? 조폭, 조직 폭력배 생각이 납니다. 혼자 싸우는 깡패는 무섭지 않았습니다. 조직적으로 덤벼들면 그게 무서운 겁니다.
개인적으로 싸움을 잘해도 조직이 없는 사람은 결국 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삼손이 그랬습니다. 그에게는 일대일로라면 누구도 당해낼 수 없는 엄청난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언제나 혼자였습니다. 어떤 조직에도 속하질 않았습니다. 그를 도와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결국 블레셋 사람들에게 잡히고 눈이 뽑히고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엘리야도 놀라운 능력의 소유자였습니다.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85명과 영적인 싸움을 해서 승리한 위대한 선지자입니다. 그런 그가 국가 조직을 이용해서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이세벨을 이기지 못하고 로뎀나무 아래서 하나님 앞에 죽기를 구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조직을 세워주시고 조직적으로 움직이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가나안 땅을 향해 갈 때, 장정만 60만 명이었습니다. 여자와 어린 아이들 까지 합치면 대략 300만 명 정도 됩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무질서하게 움직이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마치 군대가 부대별로 대대별로 중대별로 소대별로 분대별로 움직이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파별로 성막을 중심으로 움직이도록 하셨습니다.
조직에 있어서 중요한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 됨입니다.
9절, 10절에 보면, 모세가 지시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지시대로 그대로 움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전쟁에 하나 된 것입니다.
사실 이 전쟁이 발발하게 된 배경을 보면 우리의 하나 됨이 중요함을 느끼게 됩니다. 아말렉 사람들이 유목민이라 풀 때문에 이스라엘과 전쟁을 했겠지만 중요한 것은 언제 했느냐입니다. 8절에 보면 “그 때에” 전쟁이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그 때가 언제입니까? 7절에 보니 “그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왜 그곳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고 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곳에서 다투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하나 됨이 깨어질 때 사단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우리의 비전에 모두가 하나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명하신 하나님의 일에 하나 되어야 합니다.
몸이 건강한 사람은 머리의 명령대로 모든 지체가 하나 되어 움직입니다. 사지백체가 머리가 원하는 대로 하나 되어 움직이는 사람이 건강한 것입니다.
둘째는 자기의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모세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들이 서 있어야 할 자리를 주었습니다. 군대에는 수많은 병사들이 있는데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보직이 있고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지휘관으로 어떤 사람은 보좌관으로 어떤 사람은 운전병으로... 초병, 취사병, 위생병 등등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의 자리가 있는 것입니다. 모든 병사들이 자기의 자리를 잘 지키면 부대는 사고 없이 건강하게 움직여지는 것입니다.
건강한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 전도사, 장로, 권사, 집사, 셀리더, 찬양단, 전도팀, 중보기도팀, 차량운행, 교회학교교사, 주방봉사자, 교회청소 담당자, 재정부원 등등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성실하게 감당해야 교회가 건강한 것입니다.
셋째는 순종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하나님의 사람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선택된 자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이 전달되면 백성들은 자신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해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철저하게 순종합니다. 그들에게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내산 밑에서 십계명을 받습니다. 그리고 성막을 식양을 받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일할 사람들을 세웁니다. 그리고 전쟁에 나가서 사울 사람들을 골라냅니다.
군인들은 20세 이상 된 사람들을 골라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은 세상에 태어 난지 1개월이 되면 골라냅니다. 그리고 30년간 준비시켰다가 30세에 사역을 시작하게 해서 50세까지 합니다. 그만큼 하나님 앞에 선택된 하나님의 종들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 하나님의 전에서 일하는 레위지파를 맏 지파로 구별시킵니다. 사실 12지파 가운데 형통적으로 보면 맏지파는 르우벤 지파입니다. 그리고 민족 형성에 끼친 공로로 보면 요셉입니다. 그런데 실질적인 맏 지파는 레위지파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레위지파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 질서가 얼마나 정연한지 모릅니다. 요단강을 건너갈 때도 하나님의 법궤를 앞세우고 그 다음에 제사장들이 따라갑니다. 언제나 맏이가 앞장서는데 그 맏이가 누구냐? 레위지파란 말입니다. 그리고 요단강 건너가서 여리고 성을 돌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장한 자들이 물론 앞에 섭니다. 그러나 그 뒤에는 피리 부는 제사장들이 서는 겁니다. 무기든 자들이 서는 것은 누구를 보호하기 위함이냐? 제사장들을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군대가 서고 그 뒤에 백성들이 따라 갔던 것입니다.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는 거예요.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하려면 목회자와 중직자들이 앞서야 하는 것입니다. 예배도, 봉사도, 기도도, 영적인 전쟁도 앞장서야 합니다. 이게 안 되면 지도자가 아닙니다.
조직이 유지되려면 명령대로 순종해야 됩니다. 10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조직이 움직이여지는 모습니다. 모세가 ‘하라’ 그러면 ‘예’ 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 밖에 없습니다. ‘아니요’는 없습니다. 모세가 ‘나가 싸워라’라고 말하니 나가 싸웠던 것입니다. 지도자가 하라면 하는 겁니다. 그게 조직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조직체로 만들어 놓으셨기 때문에 순종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이 제사 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 보다 나으니”(삼상 15:22)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 믿음의 능력.
믿음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고 믿음이 없는 곳에는 사단의 역사가 있습니다.
이번 전쟁이 발발하게 된 배경 중에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투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배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이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7절에 보면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그래서 “정말 우리 가운데 하나님이 계신가?” 하는 의심이 생긴 것입니다. 그들이 믿음 없이 행할 때 원수가 나타난 것입니다.
9절에 보면 모세가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올라갑니다. 모세는 왜 지팡이를 잡고 산에 올라간 것일까요? 출 4:20에 보니까 이 지팡이는 ‘하나님의 지팡이’입니다. 그리고 6절에 보니까 그 지팡이로 반석을 칠 때 반석에서 물이 나왔습니다. 5절에 보면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그 지팡이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나일 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지팡이, 능력의 지팡이를 손에 잡은 것입니다.
저는 모세가 지팡이를 잡고 산에 올라간 것은 신앙의 고백이라고 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고 그 능력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나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치루는 모든 영적인 전쟁에 하나님은 함께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도와주시며 반드시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모세처럼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이 이기게 하셨습니다.”라는 신앙 고백을 가지고 믿음으로 나가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3. 기도의 능력.
기도하면 이기고 기도하지 않으면 진다. 11절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모세가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습니다. 이 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기도의 손을 내리지 말라고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기도가 승리의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때 모세는 엄청난 영적 싸움을 했기 때문에 무척 피곤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름 단기선교를 나가서 성도들이 전도하는 수요일 오후에 저는 전도하는 성도들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그 중보기도의 시간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굉장히 졸립니다. 엄청난 영적 사움이 있는 시간입니다. 해마다 그렇더군요.
기도하는데 아무리 피곤해도 기도해야 합니다. 피곤하다고 봐주는 것 없습니다. 모세의 기도의 손이 괜히 내려간 것이 아닙니다. 피곤해서 내려간 것입니다. 힘드니까 내려간 것입니다. 그런데 힘드니까 피곤하니까 봐줍니까? 그런 것 없습니다. 어떤 이유가 되었든 모세의 손이 내려가면 이스라엘이 지고 모세의 손이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이깁니다.
우리는 너무나 바쁘고 피곤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쁘다는 핑계로 피곤하다는 핑계로 기도의 손을 내리는 일이 흔합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어떤 이유가 되었든, 피곤하든, 힘이 들든 사단은 봐주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힘들어 할 때 모세 곁에서 도왔던 두 사람이 있습니다. 아론과 훌입니다. 그들은 모세의 손을 붙잡아주고 모세의 손이 내려오지 않도록 도왔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기도의 동역자들입니다. 모세의 기도는 동역자들 때문에 더 강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승리했던 것입니다.
기도는 혼자 하는 것보다 동역자들과 합심해서 할 때 더 큰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부부가 기도 동역자가 된다면 더 좋습니다. 셀가족들끼리 기도 동역자가 되십시오. 교우들 가운데 같은 비전을 가진 사람들끼리 기도 동역을 하십시오. 기도가 더 강해지고 응답이 더 풍성해 질 것입니다.
전 4:9-12은 동역의 축복을 말합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이 동역의 축복은 우리의 기도생활에도 적용되는 것입니다.
4. 교육의 능력.
영적 전쟁에 승리하려면 승리의 원리를 후손들에게 들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영적 전쟁은 주님 오시는 그날 까지 계속 되기 때문입니다. 나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했는데 나의 자녀들은 영적 전쟁에서 패배한다면 그것은 내 자녀의 아픔만이 아니라 부모인 나의 아픔이기도 한 것입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하신 일을 가르치라고 말해서 인지 유대인들은 자녀들의 신앙교육이 잘 된 것 같습니다. 유대인들은 정월 15일에 유월절 양을 잡아서 먹습니다. 양고기를 먹을 때 집안에서 가장 연소자가 “오늘 밤 먹는 것이 다른 날과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가장 연장자가 출애굽의 역사에 대해서 말해주므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구원자라는 사실을 교육시킵니다.
1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번 승리의 사건에 관한 내용을 책에 기록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려주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앙이 대를 이어가게 만드는 비결입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만든 발명품들이 역사적으로 많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시계왕국이었습니다. 세종대왕 때는 시계가 얼마나 발달했는지 그 시대의 어떤 다른 나라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시계가 발달했습니다. 해시계, 물시계가 얼마나 정확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걸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본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책에 조금 기록되어 있는데 그걸 가지고 복원해 놓은 것이 정확하더랍니다. 인쇄술도 자랑할만합니다. 금속활자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잘 안 믿어요. 왜 그런지 압니까? 기록이 별로 없어서 그렇습니다. 15세기에 우리나라가 온실을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기록에 보게 되면 겨울에도 왕궁에서 야채를 먹었답니다. 그래서 온실에 관한 기록을 찾아서 복원을 했습니다. 남양주시에다가 복원을 했는데 사방 10미터, 높이 3미터, 그리고 위에는 한지를 비가 안 맞게 기름칠을 해서 덮었습니다. 햇빛 투과율이 45%로 햇빛이 들어옵니다. 그리고 밑에다는 온돌을 만들어서 그 온돌 위에다가 흙을 쌓고 흙에다가 씨앗을 심어 겨울에 먹었다는 것입니다. 세계 최초의 온실로 알려진 하이델베르그에 있는 온실보다 우리나라 온실이 170년을 앞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릅니다. 왜냐하면 기록하고 가르치는 것이 약해서 그렇습니다. 만약에 유명한 발명품에 관한 기록들이 후손들에게 책으로 전해졌더라면 우리가 그렇게 가난하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허준이 진짜 명의로 우리들에게 알려진 것은 병자를 많이 고쳤기 때문이 아닙니다. ‘동의보감’이라고 하는 책을 썼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비방을 후손들에게 알렸기 때문에 명의로 남는 것입니다.
서양의 의학이 발전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은 한사람이 발견을 하면 세미나를 열어서 다 알려줬습니다. 앞 선 사람들이 뒤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후배들이 배운 기술을 발전 시켜서 더 차원 높은 의술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만 은혜 받고 나만 능력 받고 끝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자녀들에게 후손들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줘야 합니다. 영적 생활의 승리의 비방을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다윗이 솔로몬에게 왕위를 계승할 때 ‘군인이 몇 명이다.’, ‘재산이 얼마다.’, ‘영토가 이만큼이다. 너 잘 지켜라’ 이런 얘기 안했습니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라. 하나님 잘 믿어라. 성전 건축해라” 그걸 유언으로 남겼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성공적인 인생, 승리하는 인생을 살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세상에서의 성공보다 먼저 하나님 앞에서의 성공을 가르치십시오.
15절에 보면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했습니다. ‘닛시’라는 말은 ‘승리의 깃발이다.’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 우리의 승리의 깃발입니다.’라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전쟁터에서는 깃발을 앞세웁니다. 그리고 그 깃발 가진 기수가 앞장서 달려가면 뒤에 따라오는 군인들이 그 깃발 보고 막 달려 나갑니다. 장수와 깃발이 같이 나갑니다. 깃발이 멈추면 군사들도 거기서 멈추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승리의 깃발’이라는 말은 그분을 보고 달려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서면 우리도 서고 그분이 가면 우리도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16절에 보니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싸우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주님이 앞장서서 싸우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앞서서 적을 물리치시고 우리는 그분의 뒤를 따르는 것입니다. 주님의 승리가 우리의 승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