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받지 못할 죄가 있습니다"
본문
본 문: 마가복음 3:22-30
1. 들어가는 말
예수님 주변에는 열 두 명의 제자들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따라 다녔습니다.
예수님의 열 세 번째 제자가 되었던 맛디아도
그렇게 예수님 주변을 따라 다녔던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따라 다닌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을 좋아해서 쫓아다닌 사람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마치 범죄자를 미행하듯이 예수님으로부터 허점을 잡아 어떻게 하든,
당시 종교법이 정한, 국법이 정한 법을 위반하는 범죄 사실을 잡아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고, 박해를 하려던 사람들도 함께 쫓아 다녔습니다.
예수님께서 고향인 북쪽의 갈릴리 지방을 여행하시든지,
아니면 예루살렘 근처를 여행하시든지, 그들은 한결같이 예수님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며,
조금의 틈만 있으면 예수님을 궁지에 몰아 넣고 파탄에 빠지게 하려 했습니다.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장소는 갈릴리 근처입니다.
예루살렘에서는 자동차로도 반나절 이상 걸리는 먼길이었지만,
예루살렘에서는 서기관들을 '예수 감시자'로
그 먼길인 갈릴리까지 파견하여 예수님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게 했습니다.
서기관들은 다른 말로 하면 '율법 학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정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율법을 잘 알기 때문에,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 하나 하나를 율법으로 조목조목 따져서,
조금이라도 허점이 보인다면 예수님을 잡아 가두거나,
율법대로 중형을 내려 이스라엘 사회에서 추방시키려고 했기 때문에,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은 서기관을 보내 예수님을 감시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이 시작되는 1장부터 보시면,
예수님이 수많은 병든 사람들을 고치신 사건들이 21절부터 등장합니다.
귀신들린 사람들, 열병에 걸린 베드로의 장모, 중풍에 걸린 사람들,
손이 오그라든 사람들 등 온갖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고치셨습니다.
당연히 예루살렘에서 온 예수 감시자들은
예수님이 많은 병자들을 고치셨다는 사실을 눈으로 보고 확인했을 뿐 아니라,
소문으로도 들었을 것입니다.
당연히 예수님의 엄청난 치유 능력을 믿을 수밖에 없었고,
신적인 존재인 것을 의심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에서 오랫동안 예언되어 왔던 메시야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그들이었기에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신적인 능력을 가지시고, 사람들의 병을 고치셨기에,
어떻게든 예수님에 대한 평가를 내려야 했는데, 그 결과가 바로 22절입니다.
"나사렛 예수는 귀신의 왕이다"라는 것입니다.
22절에 나오는 '바알세불'이란 말은 '귀신의 왕, 곧 사탄'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과 같은 신적인 존재'라는 것을 인정할 수는 없으니까,
거꾸로 예수님을 악한 영의 우두머리인 '귀신들의 왕'이라고 몰아 세운 것입니다.
예수는 '백성을 현혹하게 하는 귀신들의 왕'이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입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예수 감시자들의 판단에 대해서
예수님은 두 가지의 비유를 들어서 그들의 주장을 반박하셨습니다.
그 첫 번째가 24절입니다. "나라 안에서 내분이 생기면 그 나라가 온전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가정을 예로 드셨습니다.
"나라보다도 훨씬 결속력이 강한 가정의 가족들이 서로 분쟁하면 그 가정이 온전하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예는 23절의 마지막 말씀으로 정리가 됩니다.
"사단이 어떻게 사단을 쫓아 낼 수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사단들도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하여 서로 결속하는데,
어떻게 사단이 사단을 쫓아내어 내분을 야기 시킬 수 있느냐? 는 것입니다.
그럴 수는 없다는 말이지요.
곧 예수님이 온갖 병의 귀신들, 우리가 병마라고 부르는 사단을 쫓아 낸 것에 대하여,
예수님을 사단이라고 한다면, 이건 '사단이 사단을 쫓아 낸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하겠느냐며,
예수님을 사단으로 규정한 서기관들을 오히려 궁지로 몰아 넣으셨습니다.
그렇게 자신이 '사단이 아니라는 사실'과 더불어,
자신이 바로 구약에서 언급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임을 간접적으로 언급하신 예수님께서
29절을 통하여 중요한 선언을 하십니다.
그것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절대로 용서함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저희들은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는 '성령을 훼방하는 죄'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도대체 성령을 훼방하는 죄가 뭐기에,
다른 모든 죄는 용서받을 수 있음에도 그 죄만큼은 용서받지 못할까요?
1) 용서받을 수 있는 죄가 있습니다.
2. 몸 말
1) 용서받을 수 있는 죄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있다는 것은,
반대로 "용서받을 수 있는 죄"가 있다는 말씀과 같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모든 인간의 죄를 용서해 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저희가 잘 아는 말씀 요한복음 3:16에 있습니다.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인간이 지은 모든 죄를 씻어주고
용서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말씀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가장 큰 목적이 무엇이었던가요?
그것은 도저히 인간 자신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너무나 엄청난 죄 속에서 살뿐 아니라,
그 죄 속에 살면서도, 자신이 죄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도,
그리고 자신이 바로 그 죄를 짓는 '죄의 공장,
sin maker'라는 사실조차도 모르면서 살고 있는
인간들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는 어떤 사람의 어떤 죄라도 용서해주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그 어떤 죄라도 용서해 주실 수 있으십니다.
인간이 지은 어떤 죄라도 예수 앞에 나오면 죄 용서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찬송가 184장의 가사가 그렇습니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나를 정케 하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예수의 흘린 피, 날 희게 하오니 귀하고 귀하다.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이 가사에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라는 말이 열 다섯 번이나 반복되어 나옵니다.
이 곡의 가사를 쓴 Robert Lowry 목사님은 뉴욕에서 목회를 하신 분이셨는데,
1827년 브루클린 침례교회에서 목회 할 때,
남북 전쟁이 몰아 친 뒤에 전염병이 뉴욕에 만연되어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었습니다.
교인 중에도 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많았기에 Lowry 목사님은 그들을 심방하고는
지친 중에 잠깐 눈을 붙이던 중,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광채 속에
예수님께서 피 묻은 손바닥을 펴시고 나타나심을 보면서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감격에 겨우 Lowry 목사님은 인간의 모든 죄와 세상의 평화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만 해결될 수 있다는 이 찬송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루를 살면서도 얼마나 흔하게, 그리고 쉽게 죄를 범합니까?
불평하는 일도 많습니다.
많이 가졌음에도 여전히 만족할 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잘되는 꼴을 못 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사람이 나보다 잘됐다고 하면 밤에 잠을 못 이룹니다.
다른 집 자식이 내 자식보다 공부를 잘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좋은 학교에 갔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도 시기와 질투가 화산처럼 끓어오릅니다.
거짓말을 의외로 쉽게 합니다.
자신을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변명하기 위해서 회칠한 무덤처럼 자신을
온갖 위선으로 치장하곤 합니다.
다른 사람을 욕하는 일도 의외로 쉽게 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종류의 범죄들은 용서받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몰랐고, 그래서 신앙생활을 잘 하지 못했고,
예수님의 은혜를 몰랐기에 시기하고, 불평하고, 만족할 줄 몰랐던 죄도 저질렀는데,
이런 죄도 예수님 앞에 가지고 나오면 용서함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설령 세상에서는 용서 받을 수 없는 그 어떤 죄인이라도
예수님 앞에 자신의 죄를 고백하기만 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죄값을 묻지 않고 용서해 주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서 함께 죽었던 두 명의 강도를 생각해 보십시오.
한 명은 예수님을 향하여"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자신의 영혼을 맡겼을 때, 예수님을 그를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2) 용서받지 못할 죄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문제는 이렇게 용서받을 수 있는 죄가 아닙니다.
이런 죄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용서받기를 원하면 사함을 받을 수 있는데,
문제는 오늘의 말씀인 29절입니다.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분명히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모든 사람들의 그 어떤 죄라도 다 용서해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고 당신이 직접 말씀하셨는데,
도대체 용서할 수 없는 죄가 있다는 게 무슨 말씀입니까?
도대체 예수님께서 어떤 죄를 왜 용서해 주실 수 없다고 하셨습니까?
그 죄목이 무엇인가요? 그것은 '성령을 훼방하는 죄'입니다.
'성령의 훼방하는 죄.' 그것은 성령의 역사 하심을 거역하는 죄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역사 하심이란 어떤 것일까요?
성령의 역사 하심이란 성령께서 일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은 그럼 어떤 일을 하시는가?
성령은 열려진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죄를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셔서 마침내 회개하게 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결국 성령의 일을 방해한다는 것은 회개하는 일을 방해하고 거부하는 자를 말합니다.
회개를 거부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인간의 창조주와 내 인생의 섭리자로 인정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내 영혼의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음을 말합니다.
결국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철저한 불 신앙의 사람을 말합니다.
성령의 일을 훼방하는 죄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불 신앙의 죄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성령의 역사 하심을 방해하는 죄,
곧 불신 죄에 대해서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기독교의 영원한 진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인데,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 구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성령을 방해하는 죄는 결코 용서받지 못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야말로 인간이 받을 수 있는 가장 커다란 범죄라는 말씀입니다.
절대로 예수님이 용서해 주시지 않는 죄가 바로 불신 죄란 말입니다.
다른 모든 죄악들은 예수님 앞에 가지고 나올 때에 용서함을 받을 수 있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 죄는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던 또 다른 강도를 생각해 보십시다.
그가 예수님으로부터 구원을 선언받지 못한 단 한가지 이유는
예수님을 향하여 자신을 고백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못한 한 가지 이유로
그 강도는 찰나같은 순간을 놓치고 영원한 죽음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을 감시하는
서기관들을 통하여 또 다른 무서운 죄의 모습을 봅니다.
그것은 단순히 자기만 믿지 않는 불신의 죄를 범하는 것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믿음을 고의적으로 방해하는 서기관들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사탄의 왕이라고 거짓으로 판정을 하였기에 다른 사람의 신앙까지도 방해하였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성령의 역사를 적극적으로 훼방하는 죄에 해당됩니다.
'다른 사람의 신앙에 저해가 되는 행위조차도 용서받지 못할 죄'라는 말씀입니다.
적극적으로 보면, 다른 사람의 신앙을 방해하고,
신앙생활을 못 갖도록 핍박하는 것도 여기에 해당되지만,
조금 더 확대해서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것도
이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난주일 설교에서 말씀드린 대로,
거짓말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때에, 입술로만 사랑을 말하고,
사랑의 본을 보이지 못하고 실천하지 못할 때에
그 사람은 거짓말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다른 사람들의 신앙을 시험들게 하고, 실족시키고 발전하는데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8:6에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다시 말하면 다른 사람을 범죄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 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불신해서도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범할 수 있지만,
나의 잘못된 행위로 다른 사람의 신앙을 방해하거나 시험에 들게 했거나,
혹은 죄를 범하게 했을 때에도, 그 역시 내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범했다는 것입니다.
3. 맺 는 말
인간 세상에서 가장 큰 죄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살인죄입니다.
미국의 경우에 살인죄를 여러 등급으로 나누는데,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서 의도적으로 살인한 경우에는 1급 살인죄,
1st degree murder로 판결을 내려 극형인 사형까지도 언도합니다.
그렇다면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심판 받을 때에 가장 큰 죄는 무엇일까요?
오늘 말씀은 성령의 역사를 방해하는 죄, 곧 불 신앙의 죄입니다.
하나님도 예수님도, 그리고 성령님도 어쩔 수 없이
천국 시민권 시험에서 불합격시켜야 하는 하늘 나라 후보 시민은 불 신앙의 죄인입니다.
광복절이나 성탄절 같은 특별한 절기가 되면
형무소에서 수감 중인 수인들이 특별사면으로 잔여 형기를 마치지 않고
조기 출소하는 특별한 은전이 있습니다.
미국의 7대 대통령인 Andrew Jackson이 대통령으로 재직할 때,
한 모범 죄수가 대통령 특사로 은전을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형무소에서 풀려나 자유인이 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그 죄인은 특사로 풀려나길 거절했습니다.
"나는 대통령의 은전을 거부한다" 변호사와 법무장관 사이에 논쟁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대통령의 은혜니까 강제로라도 그 죄인을 풀어 줘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다른 한쪽에서는 "아무리 대통령의 은전이라고 하지만 본인이 석방되길 거부하니,
그의 뜻대로 계속 감옥에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이 논쟁은 미국 법정에서 가리게 되었습니다.
"대통령의 은전을 거부할 경우에 그것이 대통령의 은전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1830년 당시의 법정에서는
"아무리 대통령의 은혜라고 하지만 본인이 수락해야 대통령 특사가 될 수 있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사랑이 크고,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하시는 은혜가 모든 사람,
모든 죄를 다 용서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랑, 그 은혜조차도 받기 싫어하는 사람,
받기를 거절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됩니다.
결국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불 신앙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하나님도, 예수님도 어쩌지 못하는 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던 단 한 가지 이유는
저희들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였지만,
하나님도 어쩔 수 없는, 예수님도 어쩔 수 없는 죄인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예수님을 믿지 않고 의지하지 않는 죄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이라도 아직도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신적인 존재를
믿지 못하시는 의심이 자리잡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을 과거 있었던 옛날의 전설처럼,
이야기처럼 생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불 신앙은 예수님조차도 용서해 줄 수 없다"는
오늘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도 어쩌지 못하는 죄가 있다"는 오늘 말씀을 다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용서가 안되는 죄가 분명히 있다"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의 길을 발견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아 멘
김종환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