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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이 좋아야 씨는 풍성한 결실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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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이 좋아야 씨는 풍성한 결실을 맺습니다.
마가복음4:1-9

연봉이 얼마나 되었으면 좋겠습니까? 누구나 한 1억 정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국내에서 1억원 이상의 고액 연봉(세금 공제 전 액수)을 받는 경영자나 근로자는 모두 얼마나 되겠습니까? 국민건강보험 공단 자료에 의하면 7만 4,998명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가운데 여성은 4,893명입니다. 연봉 25억원 이상을 받는 초고액 연봉자는 50명으로 되어 있습니다. 억대 연봉까지는 평균 14년 걸렸다고 하는데 이들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이렇게 많은 연봉을 받는 사람들의 성격은 어떤 공동점이 있을까요? 월간중앙이 설문지를 통해(2006.9) 분석한 결과 10가지 공통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①구체적인 신념(95.9%), ②신용(93.5%), ③변화지향(현실 타개형 92.9%, 변화 친화형 77.6%), ④집중력(85.9%), ⑤의욕(84.7%), ⑥목표의식(82.4%), ⑦끈기(80.0%), ⑧긍정적 태도(77.1%), ⑨낙관주의(74.7%), ⑩자신감(74.7%) 등이었다고 합니다. 억대 연봉자들은 이 열 가지 마인드를 두루 지닌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억대 연봉을 결정하는 3대 요소로는 능력(85.9%). 성실성(78.2%). 업무실적(75.3%)이 꼽혔습니다. 학벌(15.9%)과 연줄(15.3%)은 고소득을 올리는 데 이렇다 할 기여를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억대 연봉자가 되는데는 마음의 태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색깔의 마음을 가지고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매사 부정적이고 소극적이며 비관적인 사람, 비판적이며 신념이 없이 사는 사람들은 부자가 되기 쉽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나폴레온 힐(Napoleon Hill)은 500여 명의 성공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성공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을 발견하였다고 합니다. 그것은 모두 자신이 성공적인 삶을 살도록 운명지어져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때그때 일어나는 모든 일이 궁극적으로는 자신들의 성공을 보장하는 위대한 계획의 일부라고 믿었답니다.
커밍워크는 성공의 요인을 네 가지로 요약해 말합니다. 첫째는, "머리"가 좋아야 하며, 둘째는 "지식"이 있어야 하며, 셋째는 "기술", 넷째는 "태도"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네 가지 요인 중에서 성공적인 삶에 적어도 93% 이상으로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바로 "태도"라고 하였습니다. 물은 받는 그릇에 따라 모양이 달라집니다. 어떤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인생은 주어진 결과보다 마음의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은 어떨까요? 같이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참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성령이 충만하고 믿음충만, 은혜 충만, 만족 충만, 능력 충만하게 살아갑니다. 신앙 생활하면서 참으로 풍요로운 사역의 열매, 인격의 열매, 전도의 열매를 많이 맺으면서 살아갑니다. 예배를 드리며 말씀을 드리는데도 어린아이처럼 기대를 가지고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들으면 마른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아멘 아멘하고 기쁨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똑같은 교회에서 같은 예배드리고 같은 말씀을 들으며 신앙 생활하는데도 늘 불만이 많고 기쁨도 없고 마지못해 교회에 다니며 초라하고 빈약하게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씀을 들어도 시험을 받고 예배를 드리면서도 기쁨을 회복하지 못하고 늘 걱정과 근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엇이 같은 사람인데 이렇게 차이 나게 만들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문제일까요? 이것 역시 마음의 자세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앨빈 토플러와 함께 미래학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존 나이스비트는 이런 것을 '마인드 세트'(mind-set. 사고방식이나 마음가짐)의 차이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마인드 세트란 정보를 받아들이는 사고방식이라고 말합니다.
그는"마인드 세트는 빗방울(정보)을 받아들이는 대지이다. 우리가 어떠한 마인드 세트를 지니고 있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식물들이 자라나 다른 결론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성경에 보면 밭으로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4가지 밭을 말씀하고 있는데 어떤 밭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똑같은 씨앗이 떨어져도 결과는 전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길가 같은 마음에는 아무리 좋은 씨가 떨어져도 새들이 먹어 버리고 돌밭 같은 마음에는 씨가 떨어져도 자라지 못하고 가리떨기와 같은 마음에는 씨가 떨어지면 조금은 자라지만 결국 풍성한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밭이 좋아야 씨는 풍성한 결실을 맺을 수 있는데 우리 마음은 어떤 밭이 되어야 할까요?

1. 길가 같은 마음을 옥토 같은 마음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말씀을 받아들임
길가에 떨어지면 어떻게 된다고 말씀합니까? 4절을 보십시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뜻이 무엇일까요? 15절을 보십시오. 말씀을 들었을 때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아 갔다는 것입니다. 씨앗을 땅이 받아들이지 않은 결과입니다. 아무리 좋은 씨앗일지라도 땅이 씨앗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코 열매를 풍성하게 맺힐 수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본인이 입에 빗장을 치고 먹지 않으면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들을 때도 아예 처음부터 말씀에는 빗장을 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찬양이 끝나자 주무시기 시작합니다. 끝나는 때를 정확히 알고 깨어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교회는 늘 나가시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는 사람에게 정말 교회에 나가는지 확인하기 위해 "당신 교회 목사님의 눈은 무슨 색입니까?"라고 질문했답니다.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기도할 때는 목사님이 눈을 감으시고 설교할 때는 제가 눈을 감아서 한번도 목사님의 눈을 본적이 없는데요!”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누가 웃자고 지어낸 이야기 같습니다.
이 길가에 떨어진 씨앗은 성장이나 열매는 물론 발아도 되지 못합니다. 아예 싹도 나지 않습니다. 새생명의 탄생을 위해 일생에 한 번 주어진 자신을 감싸고 있는 껍질도 한 번 깨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길가에 떨어진 씨앗은 길가 자체가 단단하여 씨앗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새들이 먹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하여 마태 복음에서는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리운 자요 (마 13:19)"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영적으로 어두워 영적 세계를 바라보지 못합니다. 마음이 강퍅해 있습니다. 교만합니다. 단단해 있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때로는 소신이라는 미명하에 때로는 고집으로 때로는 전통과 자기 신념,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철저하게 자기 방어를 합니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합리성, 익숙함이라는 이유로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세상 지식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자아가 너무 강하여 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빗장을 쳐 놓고 그것만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 배후에는 누가 있다는 것입니까? 15절을 보십시오. 사탄이 지배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씨앗은 무엇을 비유할까요? 14절을 보십시오. 영혼을 살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눅 8:11)” 천국의 말씀(마13:19)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증거되는 복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거듭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어집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벧전 1:23)”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7)”
예수님이 구약에 예언되어온 그리스도라는 사실과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도래했다는 사실을 중심으로 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자꾸 사단이 다른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사사 건건 시비를 하며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들이 그렇습니다. 예수님과 관계를 처음부터 경쟁자로 설정을 하니까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해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사람이 관계가 나빠지면 전하는 사람이 무슨 말을 해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설교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자와 관계가 나빠지면 아무리 좋은 말씀일지라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행5:33, 행7:54에 나오는 유대인들이 그렇습니다. 복음을 듣습니다. 그런데 반응을 죽이려고 합니다. "저희가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 (행 5:33)"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행 7:54)" 똑같은 말씀이지만 받아들인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똑같은 복음이지만 행2:37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행 2:37)"
그들의 삶이 어떻게 변합니까? 얼마나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까?(41-47)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풍성한 열매를 맺는 비결을 말씀합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5)" 예수님을 메시야로 구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를 괴롭히고 우리를 파멸시키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현실 감각이 없고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인 주문이 아닙니다. 말씀은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고 우리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소망을 주고, 상처를 싸매주고, 지친 영혼을 위로해 주며, 죄의식에서 해방시켜 주고 죽음에서 자유를 줍니다. 병든 가정 치료해 주고 꿈이 없는 자들에게 미래를 약속해 줍니다. 말씀은 우리가 세상에서 받을 수 없는 놀라운 것을 줍니다. 말씀은 우리 인생의 구원을 위해 주어졌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7)"
우리의 행복한 삶을 위해 주어졌습니다.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신 10:13)"
옥토같은 마음이 되어 30배 60배 100배의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먼저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와 육십 배와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듣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풍성한 열매를 맺는 첫 관문입니다.

2. 돌밭 같은 마음을 옥토 같은 마음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환난과 핍박을 견딤(17).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한 첫 단계가 밭이 씨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발아되어 잘 자라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뿌리가 깊이 들어갈 수 있도록 밭이 옥토가 되어야 합니다. 뿌리가 깊은 나무가 가뭄에도 결실을 합니다. 그런데 돌밭은 뿌리가 깊이 들어갈 수 없습니다. 여기서 돌밭은 돌이 썩여 있는 밭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밑에는 암반이 있고 그 위에 흙이 살짝 덮인 밭입니다. 따뜻하면 흙이 얇음으로 인해 쉽게 발아가 되지만 바로 밑에 암반이 있기 때문에 뿌리를 깊이 내렸지만 못합니다. 그러면 햇볕이 내리 쪼이면 말라 버립니다. 수분을 빨아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무슨 뜻이겠습니까? 17절에 이것을 설명하기를 말씀을 받을 때는 기쁨으로 받지만 그 말씀으로 오는 환난과 핍박을 견디지 못하여 곧 넘어지는 신앙인을 말하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마음의 변화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것같고 신앙 생활을 하는 것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진정 메시아로 하나님은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지 않는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에 대하여도 이론적으로 압니다. 그러나 실제로 믿지 않습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잠 16:3)”라고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아직도 마음 속 깊이에서 내 인생의 주인은 자신이라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인생의 생사 화복의 주인이 하나님인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인생의 주재권을 자신이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 아니라 자기 중심적인 신앙입니다.
이런 사람은 상당히 감정적인 사람입니다.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 중심적인 사람입니다. 금방 달구어졌다가 금방 식어버리는 사람들입니다. 처음 교회에 나올 때는 무엇이든지 다 할 것같습니다. 목사님과 장로님이 왜 저렇게 뜨겁지 못하냐고 비난합니다. 새벽기도를 하는데 냉냉하다고 합니다. 열정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직 환난과 핍박을 통해 신앙의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아 심정적으로 아주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온실 속의 화초와 같습니다. 구역식구 잘 못 짜주었다고 원망합니다. 왜 열심히 기도하였는데 아이들이 잘 못되냐고 신앙 생활 접겠다고 합니다.
말씀으로 살면서 잘되면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으로 살다가 말씀 때문에 조그마한 어려움이 다가오면 실망하고 좌절하고 낙담하고 원망합니다. 씨가 발아되어 깊이 뿌리를 박고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봄 여름 가을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인생이란 때로는 폭풍우도 불어오고 때로는 눈도 내리고 때로는 가뭄이 들기고 하는 것입니다. 나무가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이것을 잘 견디며 극복해야 합니다. 그 과정을 거쳐가야만 맛있는 열매, 빛깔 좋은 열매, 영양가 있는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시련이 다가옵니다. 시련의 비가 특정인만 비켜 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시련의 비를 통과하면 큰 인물이 되는 것입니다. 요셉과 다윗, 모세가 그랬습니다. 오늘날 시대 속에 쓰임받는 수많은 인물들이 이 시련과 환란의 비를 통과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다윗을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환난과 핍박이 있었습니까? 아버지로부터 무시당하였습니다. 장인이 자신을 죽이려 합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배신합니다. 부하들이 조롱합니다. 많은 전쟁에서 죽음의 위협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환난을 이겨냈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형제들에게 인신매매를 당하였습니다. 애매하게 모함으로 강간범으로 감옥에 갔습니다. 그는 그 시련과 환란을 딛고 일어섰습니다. 그 시련과 환란이 없었다면 그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마가복음을 받는 로마의 초대 교회 성도들을 보십시오. 얼마나 환난과 핍박을 많이 당하였습니까?
말씀을 지키기 위해 고향을 떠나야 합니다. 재산을 잃어버립니다. 무덤에 숨어 지내야 합니다. 때로는 화형을 당하기도 하고 사자의 밥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어떤 환난과 핍박도 이겨냈습니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벧전 1:7)"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치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엡 3:13)"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 주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환난과 핍박을 받았습니까? 수많은 선교사들과 한국 초대교회 성도들의 수고로 이렇게 한국 교회는 풍성한 열매를 거둔 것입니다. 공식적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선교사인 언더우드가 있습니다. 우리 나라 근대 교육의 선구자입니다. 경신 중,고 등학교의 전신인 영신학교를 설립하였습니다. 1915년 타자기 회사를 운영하던 형으로부터 5만 2천 달러의 기부금을 받아 연세대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를 세워 국내 대학교육의 기틀을 마련한 사람입니다. 31년 동안 수많은 환난과 핍박을 견디며 하나님의 사역을 하였습니다. 아무도 조선 땅으로 가지 않으려고 했을 때 그는 이십대의 약관의 나이로 한국에 와서 갖은 핍박과 환난가운데서도 견디어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우리고 환난과 핍박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면 풍성한 열매들을 맺힐 수가 있습니다. 환난과 핍박으로 쓰러지지 말아야 합니다. 환난과 핍박을 견디므로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직장에서나 풍성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능히 이길 수 있도록 위로해 주시고 힘을 주실 것입니다. 누가복음에는 풍성한 결실을 맺는 옥토를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눅 8:15)”고 했습니다. 인내가 필요합니다.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끝까지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과정을 성장의 기회로 성실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요즈음 세상을 보면 너무나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결과 지상주의, 업적 지상주의, 출세 지상주의, 성공 지상주의만 지향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 문화는 너무 과정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과정 자체로 인정받는 사회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초라함을 견디지 못하는 사회입니다. 그러나 과정 없는 결과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송곳도 끝부터 들어가는 것입니다. 결과란 과정이 모여서 된 것입니다. 과정의 질이 결국 결과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국무총리가 된 것은 과정 과정을 성실히 수행한 결과입니다. 노예로서 살 때도 죄수로서 살 때도 충실하게 주어진 일을 수행하였습니다. 때로는 모세처럼 40년이 아무 성과없는 환난의 과정일 수 있습니다. 다윗처럼 10여년이 핍박의 과정일 수 있습니다. 요셉처럼 수많은 세월을 노예처럼 살아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절망할 것이 아닙니다. 아무런 성과가 없는 시간, 실패의 시간도 하나님이 우리를 만들어 가는 시간입니다.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그런 가운데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더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계곡을 건어 산을 오르면 됩니다. 시련은 쓰지만 열매는 답니다.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 이 신앙 생각할 때에 기쁨이 충만하도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383장 1절)"

3. 가시떨기 같은 마음을 옥토 같은 마음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유혹 극복하기
가시 떨기에 떨어진 씨앗의 문제는 무엇이겠습니까? 왜 풍성한 열매를 맺지 못하겠습니까? 땅도 좋습니다. 습도도 적당합니다. 뿌리도 잘 내렸습니다. 줄기도 나고 잘 자라납니다. 그런데 가시덤불이 있습니다. 가시에 찔려 신음하게 됩니다. 꽃을 피지 못하게 하고 결국 풍성한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합니다. 이 가시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은 이것을 설명해 줍니다. 19절을 보십시오. 그 가시덤불은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의 욕심이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8장 14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요 (눅 8:14)" 일락을 더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넘어뜨려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유혹하는 것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대표적인 것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우리는 세상의 염려의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염려란 "마음이 나뉘다, 분열되다."는 말입니다. 생각을 복잡하게 합니다. 단순하게 갖지 못하게 합니다. 말씀을 들어도 그것은 성경 이야기이고 지금은 달라, 현실과 이상은 달라라고 말합니다. 오병 이어의 말씀을 듣고 그것은 나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말씀의 세계와 현실 세상의 세계는 너무나 차이가 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생각이 복잡해지면 생각과 판단이 흐려지는 것입니다. 건강염려, 자식 염려, 장래 염려로 염려의 포로가 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립보서4:6~7)라고 말씀하는데도 뒤돌아 서면 염려의 포로가 됩니다.
2)재리의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재리란 재물의 풍요를 의미합니다. 재물의 유혹은 재물에 대한 필요 욕구라기 보다는 필요 이상의 재물을 구하는 욕심을 의미합니다. 재물을 하나님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맘몬니즘입니다. 재리의 유혹은 물질적 가치에 대한 집착과 추구입니다. 물질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말씀을 막히게 합니다. 질식시킵니다. 숨막히게 합니다 생명력을 잃게 합니다. 물질은 필요합니다. 부자로 사는 것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으로 주십니다. 이삭도 100배 의 수확을 거두어 거부가 되었습니다. 물질이 있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물질이 하나님이 되고 물질 때문에 하나님을 잊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빌4:11,12,13, 19에서 말씀합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빌 4:19)”
3) 일락의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쾌락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쾌락 지상주의입니다.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딤전 5:6)" 세상이 주는 기쁨은 잠깐이고 그 기쁨은 감정의 기쁨으로만 그칠 수 있습니다. 진정 행복하게 하는 기쁨은 성령님이 주시는 기쁨입니다. 요16:20절을 보십시오. 22, 24절을 보십시오. 이 기쁨을 누가 맛볼 수 있겠습니까?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행 13:52)"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롬 15:13)" 만약 요셉이 유혹에 넘어갔다면 요셉의 인생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는 당시 문화로 사형 당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무엇으로 이깁니까? 풍성한 열매를 맺는 땅에 대하여 누가복음에는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눅 8:15)” 말씀을 듣고 지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받아들이고 깨닫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켜야 합니다. 현재형입니다. 계속적으로 즉각적인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일락의 유혹, 재리의 유혹, 염려의 유혹이 다가 올 때 말씀 붙들고 그 말씀 따라 가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말씀은 옥토에 떨어진 씨앗이 되어 30배 60배 100배의 풍성한 결실을 맺게 됩니다.
말씀이 떨어질 때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입니다.(눅8:15). 말씀붙들고 내적인 모든 유혹을 과감하게 뿌리칩니다. 외적으로 다가오는 핍박과 환난을 말씀의 능력으로 인내하며 이겨나갑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사랑. 희락 , 화평, 온유, 절제, 인내, 양선, 충성과 같은 인격의 열매가 풍성하게 맺히게 되고 생명 구원을 통한 전도의 열매가 풍성히 맺혀질 것입니다. 때가 되면 사역의 열매가 풍성히 맺히게 될 것입니다. 우리 주님 오늘도 옥토가 되어 풍성한 결실을 맺는 인생으로 우리를 초청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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