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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죽지 맙시다. 힘을 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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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죽지 맙시다. 힘을 냅시다.
본문 : 스바냐 3장 14 - 20절 마경훈 목사

본문 : 스바냐 3장 14 - 20절(개역개정)
14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15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16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18 내가 절기로 말미암아 근심하는 자들을 모으리니 그들은 네게 속한 자라 그들에게 지워진 짐이 치욕이 되었느니라
19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에게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20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에게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유다의 역사의 등불이 꺼져가는 B.C 626년경 요시아의 통치하에서 스바냐라는 선지자가 등장합니다. 스바냐는 예레미야와 함께 유대와 예루살렘에 앞으로 내려질 심판을 예언하는 심판의 선지자입니다.
그의 예언은 ‘하나님의 날’ ‘여호와의 날’이 주제입니다. 스바냐서에서는 1,2장에서는 유다의 멸망에 대해서 예언을 합니다. 그러고 갑자기 3장에서 급반전을 합니다. 14절에 보면 멸망이 눈앞에 있는 백성들에게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라고 외칩니다.

왜 스바냐는 멸망을 예언하다가 갑자기 기뻐하라고 외친 것일까요? 그것은 13절에 나오는 ‘남은 자’ 때문입니다. 모두가 타락해 우상숭배에 빠진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남은 자들을 본 것입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역사 중에 가장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남은 자들 즉 믿음을 지키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들이 있었기에 희망을 노래했던 것입니다.

본문은 이 남은 자들에게 허락하신 격려의 메시지입니다. 그 메시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세상이 너무나 악해져서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지만 너희 남은 자들아 기죽지 말라”
1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는 말이 공동 번역에서는 “기운을 내라”고 되어 있고, 리빙 바이블에서는 “cheer up”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힘을 내라!”, “기죽지 말라”라는 말이 될 것입니다.
그 당시 남은 자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메시지는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약속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역사적인 절망의 순간에 남은 자들에게 기죽지 말고 힘을 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1. 하나님이 용서 하셨으니 기죽지 말고 힘을 냅시다.

어린 아들이 아버지에게 큰 잘 못을 저질렀습니다. 아버지가 무서워서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골목에서 쪼그리고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혼 날 것을 생각하니 마음에 낙심이 되고 기가 죽어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집에서 나와서 아들에게 하는 말이 “얘야, 아빠가 다 용서한단다. 집에 들어오라고 하시네!”라고 하면 두려움에 집에 들어가지 못하던 아들에게 얼마나 힘이 나겠습니까?

15절을 보면 “여호와가 너희 형벌을 제거하였고 너의 원수를 쫓아내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네 형벌을 제거하였다. 그러므로 너는 힘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일어나라! 하나님이 네 죄를 사하셨다.”라는 말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가장 위축 될 때가 죄를 범했을 때, 죄의식이 해결되지 않을 때입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죄의식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그래서 삶의 의욕과 용기를 상실합니다.
그러다가 죄사함의 확신을 갖게 되면 기가 살아납니다. 새 힘이 넘치는 것입니다. 주님과의 관계가 정상적인 사람들이 세상을 활기차게 살 수 있는 이유가 죄사함의 확신 때문입니다.

어느 목사님의 실수에 관한 예화 하나 들겠습니다. 이 목사님이 통일교에 엮이고 말았습니다. 이십만 원이면 성지순례와 세계여행을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그 여행을 주선한 단체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따라 나섰습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성지를 구경하시고 뉴욕도 가시고, 워싱턴에도 갔습니다. 그러다가 그 모임이 통일교에서 주선한 모임임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후회했지만 이미 시간은 늦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오신 후에 통일교에서 엽서가 날아왔습니다. “통일교회에서 모임이 있으니 나와 주십시오.” 그러나 그 목사님은 나갈 수 없다고 했더니, 어느 날 어떤 잠바 차림을 한 청년 한 사람이 찾아왔더랍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목사님께서는 통일교의 돈으로 세계여행을 다 했다는 그 사실을 공개하겠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합니까. 꼼짝없이 그 통일교가 주선한 모임에 참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다음 모임에 또 다음 모임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끌려 다니시면서 마음이 얼마나 괴로웠던지 정말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만 참석하고 다음부터는 안하겠다고 말씀했더니 그 잠바차림의 청년이 지난 과거의 모든 사실들을 공개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그래서 또 하는 수없이 계속해서 쫓아 다녔습니다. 너무나 괴로운 목사님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정면 돌파하기로 했습니다. 그 교단 산하에 속해있던 모든 목사님들 앞에서 자기가 통일교와 관련되어 지냈던 과거의 모든 사실들을 드러내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목사직에서 쫓아내어도 좋습니다. 교단에서 어떤 징계를 주어도 다 달게 받겠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그러고 나자 자신의 마음이 얼마나 시원하고 개운하던지 모르겠더랍니다. 어느 날 또다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나갈 수 없노라고 완강히 거절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잠바차림의 그 청년이 또 나타났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만약 우리말을 듣지 않겠다면 과거의 사실들을 다 공개할 것이라고 위협했습니다. 그때는 이미 그 목사님이 죄를 다 고백하고 용서받은 후였으므로 “고발하려면 해라, 이놈아 이제 나는 자유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하더군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기죽지 말고 힘을 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모든 죄가 그리스도 안에서 사해졌으며 죄 사함 후에 지은 모든 죄도 자백하기만 하면 다 용서 받는 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엡 1:7에 보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모든 죄가 그리스도 안에서 해결되었습니다. 그러니 기죽지 맙시다. 힘을 냅시다.

2.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기죽지 말고 힘을 냅시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내가 그 일을 해결할 능력이 충분하거나 누군가 해결해줄 사람이 있다면 지금 당한 어려운 일 때문에 기죽지 않을 것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국가의 멸망이라는 절망적인 상황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유대인들의 능력으로는 그 상황을 극복할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사실을 아는 유대인들은 힘이 빠지고 기가 죽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은 자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했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 자신들을 도우시기에 충분한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절망적인 순간에도 힘이 빠지거나 기가 죽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17절에 보면 하나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 계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남은 자들에게 “내가 너와 함께 한다.”라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려움을 당하거나 절망 가운데 빠질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 하나만으로 힘을 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려울 때면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약속을 상기시켜주셨던 것입니다. 수 1:9에서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고 말씀하셨고, 사 41:10에도 보면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약속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해야 할 이유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약속은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주어진 약속입니다. 우리는 그 약속을 확신하고 힘을 내야 합니다. 마 28:20에 보면 주님이 승천하시면서 이 땅에 남은 제자들에게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의 눈에 주님이 보이지 않아도 주님은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주변의 상황이 어떻게 전재되더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 하나를 믿고 낙심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 기죽지 말고 힘을 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환경이 조금만 어려워지면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힘이 빠지고 기가 죽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기가 죽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힘이 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의 힘으로 불가능한 일들이 가능합니다. 지난주에 제가 이런 예화를 들었습니다. 제 아들을 괴롭히는 불량한 학생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어ㅘ 아들이 함께 길을 가다가 그 학생을 만났습니다. 그러면 그 학생이 도망을 가지요. 왜 그렇습니까? 제 아들이 무서워서가 아닙니다. 제가 아들 옆에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가 없었다면 제 아들을 괴롭혔을 놈이 저를 보고는 도망을 가는 것입니다. 어제는 아들이 저와 함께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그 때 제 아들은 돈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돈도 없는 아들이 밥을 시켜서 먹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제가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제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에 가능했던 기가 막힌 사건들이 있습니다. 다른 목사님들도 그런 경험들이 많을 것입니다.

해오름교회 최낙중 목사님도 수십 년 목회를 하시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가능했던 일들을 종종 경험하셨습니다. 최 목사님은 1975년 9월을 잊을 수 없다고 하십니다. 우울증이 있는 성도와 금식기도원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오스트리아 빈에서 휴가차 귀국한 간호사를 만났습니다. 그 자매님은 1주일간의 금식을 마치고 대방동에서 양장점을 운영하는 사촌언니를 전도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자매님은 최목사님에게 길 안내를 부탁했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5리를 동행하기 원하면 10리를 동행하라”는 성경말씀이 생각나 대방동까지 안내해주었습니다. 그러나 가게는 이사한 지 오래였고 자매님은 언니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자매님은 미안해하며 최목사님의 목회현장을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당시 최목사님의 교회는 봉천동 무허가 판자촌의 10평 남짓한 술집 사이에 있었습니다. 성도 7명은 밤마다 모여 예배처소를 마련하기 위해서 기도 중이었습니다. 그날 기도회에 그 자매님도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결혼 비용으로 저축한 돈 150만원을 선뜻 내놓았습니다. 150만원이면 그 당시에는 집 한 채 값이었습니다. 예배당을 마련할 수 없어서 기도만 했는데 하나님은 우연 같은 필연적인 만남을 통해서 예배당을 마련할 돈을 공급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환경을 보지 말고 주님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니 어떤 환경 속에 있더라도 기죽지 말고 힘을 내십시오.

3. 하나님이 구원하시니 기죽지 말고 힘을 냅시다.

17절에 보면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십니다. 이 구원은 메시야가 가져다주는 구원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이 땅에 오셔서 고난을 받으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공로는 저와 여러분의 영혼을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기에 충분한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를 죄 가운데서만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질병 가운데서도 구원하시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한번 죄 가운데서 구원을 얻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영혼의 구원 이후에 계속해서 구원을 누리며 살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후 1:10에서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고 말했습니다.
한번 건지심을 받은 사람은 지금도 나를 건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믿을 수 있습니다. 과거에 하나님의 손으로 건짐을 받은 사람은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도 또 나를 건지실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은 과거에 나를 구원하신 것처럼 지금도 나를 구원하실 수 있으며 앞으로도 나를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해주신 하나님은 광야 생활 속에서 만나는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가나안에서 만났던 여러 가지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기죽지 마십시오. 힘을 내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여러분이 당하고 있는 모든 괴로움에서 여러분을 구원의 역사를 베풀고 계십니다.

인도네시아 선교지에서 있었던 실화입니다. 따나롱설이라는 동네에다 한국 선교사가 교회를 세웠습니다. 교회 옆에 큰 나무가 하나 서있고 반대편에 집 한 채가 있는데 그 집 사람이 앞장서서 선교사님을 괴롭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동네는 회교도가 많은 동네인데 옆집 사람이 선동을 해서 원주민들이 돌을 던져 예배당 유리창을 깨뜨렸습니다. 이 선교사님은 원주민들의 위협 속에서 불안한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비가 많이 와서 큰 나무 밑의 흙을 다 쓸어갔습니다. 나무는 교회당을 향해서 기울어졌고, 만약에 나무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교회당은 박살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안팎으로 위기를 당한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선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님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비가 몹시 오는 어느 날, 번개가 번쩍하더니 교회를 향해 기울어져 있던 나무를 내리쳤습니다. 그 큰 나무는 쾅하는 소리와 함께 넘어졌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 그 나무가 예배당 쪽으로 넘어진 것이 아니라 반대쪽으로 넘어졌습니다. 그 큰 마무가 쓰러지면서 교회를 반대하고 핍박하던 사람 중에서도 주동자였던 사람이 살고 있던 집을 쳤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 놀라운 사건을 보고 동네 사람들은 다시는 교회를 핍박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선교사가 전하는 하나님이 참 신이라면서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따나롱설 교회는 1000명의 성도가 모이는 큰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 위기에서 구원하신 기적입니다.

기적의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십니다. 여러분도 열심히 부르짖어서 하나님의 구원을 생활 속에서도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4. 하나님이 사랑하시니 기죽지 말고 힘을 냅시다.

17절에 보면 “우리 가운데 계시는 구원자 하나님이, 우리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잠잠히 사랑하시며 우리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여기 ‘너’에 ‘나’를 넣고 읽어봅시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가 나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나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나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나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어떻습니까? 감격이 됩니까? 감동이 있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다면 그 말씀에 자신을 넣고 읽을 충분한 자격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나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현대어 성경에서는 이렇게 풀어 썼습니다. “그가 너를 맞이하여 환호성을 올리며 기뻐 뛰시는 모습이 마치 명절 잔치 때와도 같으리라.”

어느 분은 외동아들이었는데 결혼해서 아들을 셋을 낳았습니다. 자식들이 얼마나 예쁜지 자식들이 보고 싶어서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걸가는 법이 없이 항상 뛰어 갔다고 합니다. 이런 심정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어떤 여 집사님 댁에 목사님이 심방을 갔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아기가 오줌이 마렵다고 하니까 여 집사님이 밥그릇을 가져다 받더랍니다. 그 여 집사님이 웃으면서 하는 말이 사랑하는 자식이 눈 오줌인데 어떠냐고 하더랍니다. 부모가 자식을 이렇게 사랑한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사랑은 여기에다 비교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자식을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시27:10)

5. 역전인생을 보장하셨으니 기죽지 말고 힘을 냅시다.

20절을 보십시오. “내가 그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에게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지금 망해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 절망 중에 있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다시 모은다. 이 땅에서 너희들은 다시 회복될 것이다. 지금은 이웃 나라에게 짓밟히지만 그 때에는 너희들은 온 천하 만민 앞에서 칭찬과 명성들을 얻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역전의 명수입니다. 자식문제로 브닌나에게 고통당하던 한나가 기도하자 하나님은 사무엘을 허락하셔서 브닌나를 이기게 하셨습니다. 에서의 칼을 피해 외삼촌 집으로 도망갔던 야곱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자 하나님은 야곱으로 하여금 에서보다 더 큰 민족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형들의 미움을 받아서 애굽에 종으로 팔려간 요셉이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흔들림 없는 신앙생활을 하자 형들이 요셉 앞에 무릎을 꿇는 기적을 만드셨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 했으나 하나님은 다윗을 점점 강성하게 하셔서 사울의 왕관을 다윗에게 씌워주셨습니다. 사단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려 했지만 하나님은 주님을 부활하게 하셔서 사단의 권세를 깨는 역전 드라마를 펼치셨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인생에도 개입하셔서 역전의 드라마를 만드시는 분입니다. 지금 힘듭니까? 낙심이 됩니까? 힘이 빠집니까? 기가 죽었습니까? 걱정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십시오. 부르짖어 기도하세요. 전능하신 하나님이 역전승하게 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을 용서하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인생에서 역전의 드라마를 만드실 것입니다. 기죽지 마십시오. 힘을 내십시오. 주의 이름으로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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