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뼈에 생기를
본문
Enlivening the Dry Bones
어느 날 어떤 무신론자 한 사람이 조용히 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Loch Ness라고 하는 수중괴물의 공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괴물은 단번에 이 무신론자와 이 사람이 타고 있던 작은 배를 공중 높이 들어올리고서는 입을 활짝 벌려 이 사나이를 잡아먹으려고 했습니다. 이 때 다급해진 무신론자가 "Oh, my God! Help me!" 하면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공중에 높이 들린 이 무신론자의 절규를 들으시고 물으셨습니다. "내가 볼 때 자네는 나를 믿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그러자 쩔쩔매는 무신론자가 하는 말, "Come on, God, give me a break!" "하나님, 불과 이 분전까지만 해도 저는 당신만 안 믿은 것이 아니라 Loch Ness라는 괴물도 없는 줄로 알고 안 믿었습니다!" (Two minutes ago I didn't believe in the Loch Ness monster either!)
하나님 없이 잘 살아갈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사람들도 위기가 닥치면 결국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거스틴이 우리 영혼이 하나님 품에 안기기 전에 결코 참 행복을 찾을 수 없다고 한 말은 일리가 있습니다. 오늘은 초대교회의 탄생을 가능케 한 오순절 성령강림절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120명의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을 선물로 받기 위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그 때 갑자기 하늘로부터 불과 같은 성령이 내려와서 제자들이 방언을 하고 큰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성령강림을 체험한 후 제자들이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하게 되었을 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폭발적인 교회성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늘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 사실은 초대 교회가 오순절 성령 강림과 더불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오순절 성령강림절을 맞으면서 지금으로부터 약 2,600여년 전에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보여주신 위대한 환상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에스겔은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 포수(Babylonian captivity)에 빠져 있던 주전 593―570년경에 활동했던 선지자였습니다. 이 당시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 왕은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여 여호야긴 왕을 비롯하여 수천 명의 유다 귀족들을 바벨론에 포로로 잡아갔습니다(왕하 24: 8-17; 렘 22: 24-30; 겔 19: 5-9 참조). 바로 이 때 에스겔 역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어떤 때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또 어떤 때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과 희망을 선포했습니다. 특히 오늘 아침 봉독한 '마른 뼈에 생기가 들어가 다시 살아나는 환상'은 패망한 이스라엘의 부활과 소망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먼저 오늘 본문 말씀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10절까지는 에스겔이 골짜기에서 직접 본 환상의 이미지가 기록되어 있고, 11―14절까지에는 이 이미지에 대한 영적 해석이 들어가 있습니다. 에스겔이 골짜기 가운데서 바라 본 마른뼈들은 나라를 잃어버리고 바벨론 땅에 포로로 잡혀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비극적이고 절망적인 모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11절 후반에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고 이스라엘 족속들이 말한 것처럼 마른뼈는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낙심과 절망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의 죽은 모습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바로 바로 이 말라 비틀어져 죽어 있던 뼈들이 다시 살아나 거대한 군대 조직과 같은 강건한 생명체로 바뀌어졌습니다. 어떻게 마른뼈들이 힘줄과 살과 가죽을 얻어 생명체로 변화될 수 있었습니까?
첫째로, 에스겔을 통한 하나님의 대언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4절에 보면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代言)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마른뼈가 활력을 얻어 생명체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주의 종들을 통하여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만 합니다. 7―8절에 보면 에스겔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여 그대로 전했더니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락하며,"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였다"고 했습니다. 이제 마른뼈 위에 살이 돋아 사람의 형체가 되었지만 아직 그 속에 생기는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는 마른뼈 같은 우리가 활기 넘치는 생명체가 되기에는 아직도 역부족입니다. 하나님의 생기, 즉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지만 진정한 생명체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둘째로,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와야 합니다. 5절에 보면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生氣)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생기는 히브리어로 'ruach,' 즉 '영'(spirit), 혹은 '바람'(wind), 혹은 '호흡'(breadth)을 뜻합니다. 창세기 말씀에 보면 하나님의 생기는 아담과 하와를 만들 때 사용되었던 '생명의 숨'(the breadth of life)이었습니다(창 2: 7; cf. 창 6: 17, 7: 15). 또한 생기는 오순절에 제자들에게 불같이 바람같이 임한 성령의 뜨거운 역사를 말합니다(행 2: 1―4). 본문 9―10절에 보면 에스겔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여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하니 곧 살아 일어나서 거대한 군대 조직처럼 힘찬 생명체로 바뀌어졌습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생기, 즉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활기찬 생명체로 거듭나게 하시는 분은 한 분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6절에 보면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고 했습니다. 마른뼈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생명체로 바꾸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신 것을 기억하라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부흥하고 생명력 넘치는 사람으로 바뀌어질 수 있는 것은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으로 가능합니다. 사람의 능력이나 방법만으로 마른뼈같이 죽어 있고 비어있는, 영적으로 무기력한 사람이 결코 새사람으로 소생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영, 즉 생기를 충만히 공급받은 마른뼈들이 힘차고 당당한 군인들로 변화된 것처럼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생기, 즉 살아있는 성령만이 영적으로 무기력한 우리를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본문 11―14절에 나오는 에스겔이 본 환상의 해석처럼 마른뼈가 살아나는 이미지는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잃어버린 옛땅으로 당당히 돌아가게 되리라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오늘 성령강림주일을 맞는 우리들은 이 말씀을 오늘 우리의 영적 현주소를 말해주는 메시지로 이해해야 합니다. 골짜기의 마른뼈들처럼 오늘 우리의 모습을 보면 영적으로 죽어 있습니다. 사방을 둘러보면 마른뼈들, 해골들이 즐비합니다. 우리의 가정생활, 우리의 인간관계는 부서졌으며 폭력과 죽음이 곳곳에 넘쳐나고 있습니다. 분노와 근심, 정욕, 좌절, 복수심, 등등의 상한 감정들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우리가 비록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는 냄새나고 먼지나는 마른뼈들처럼 영혼이 죽어 있기 때문에 영적인 활기와 기쁨이 없습니다. 많은 교회, 많은 교인들이 하나님의 생기,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에 마른뼈와 같이 건조하고 무기력한 생활 속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Epiphany Lutheran Church'라고 하는 교회는 지난 1950년대부터 90년대 사이에 1,500여명의 교인들 중에 150명만 남고 대부분의 교인들을 잃어버렸다고 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생기, 즉 성령 체험을 잃어버리는 교회와 교인은 이처럼 무기력한 교회와 교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매년 약 1억 5천만 톤의 쓰레기를 생산해내고 있다고 합니다. 이 양은 루이지애나 주의 풋볼 경기장인 New Orleans Superdome을 매일 두 차례씩 바닥에서부터 천장까지 가득 채우고도 남는 양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이 쓰레기 중에 절반 이상이 리사이클, 즉 재생하여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의 생기로 하나님의 영으로 리사이클 해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우리는 쓸모있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과 사람들에 의하여 아름답게 활용될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 모두의 죽어 있는 무기력한 영혼을 하나님의 생기로 새롭게 리사이클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김흥규목사